임요환 카페에서 본글인데, 원문은 온게임넷이군요.
유람기에 대한 엄재경님 리플도 같이 퍼왔습니다.
아... 나도 한번 같이 가보고 싶네요. ^_^
>>
제 목 : 참 묘한 인연이더군요,결 승전날 엄재경 해설위원님 @@@@
번 호
13405 조회수 992
작성자 이승환(taeetaee) 작성일 2001-09-09 오후 8:40:56
안녕하세요
전 부산에 사는 34살 노총각 .. 늙은 유저입니다
단순히 그냥 스타가 좋아서하는 실력없는 아시아 서버유저이지만
오랜 세월 많이만 하다보니 어언 5000승을 넘어 이제 6000승을 향해 달려가고 있군요
이 메일주소는 taeetaee@hanmail.net 이지만
배틀넷에서의 제 아이디는 zz--xx 랍니다
결승전 경기가 있던 날
며칠째 벼르고 별러 경기장인 장충체육관으로 갔습니다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
또 택시를 타고 장충체육관으로...
우리 친구들 및 후배들은 절 보고 미쳤다고 했지만 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제게 과연 이런 대경기를 관전할 기회가 또다시 올까 ? .....
스스로 질문해봤습니다
대답은 이미 맘속에 정해져 있었습니다
과연 장충체육관은 어떻게 꾸며져 있을까?
그 많은 좌석을 관중들로 다 채울 수 있을까?
나이 먹은 내가 거기 가서 늙은게 어딜 왔냐고 망신이나 당하지 않을까?......
너무 일찍 온건 아닐까?
아 !..........
도착하는 순간 모든 것은 기우에 지나치지 않았다는걸 깨달았습니다
4시 반에 도착해서 입장하려고 하니 입구에서 제지를 당했습니다
정성껏 다운받은 교환권을 꺼내 보이며 문의를 하려는 순간..
좌석이 없어서 입장 할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세상에나...
허무했지만, 맘속의 한군데에서는 뿌듯했습니다
아.. 벌써 만원이라니..
보라 !.. 세상의 모든, 게임을 무시하고 스타를 하찮케 여기는..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아!
속으로 그렇게 외쳤습니다
"너희들이 이 열기를 아느냐.."
스타를 사랑하는 모든 유저들과 팬들이 자랑스러웠고 고마웠습니다
암튼, 이걸 보러 부산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할 정신이 없더군요.
무조건 , 어떻게든 들어가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입구를 지키는 행사요원들의 잠시 한눈을 피해 난입(?)을 시도했으나 점잖케 제지하는 그분..
ㅎㅎㅎ
에구 망신..
그때, 좀 있으니 문을 부시고 들어가는 용감한 아줌마의 도움(?)으로 겨우 눈을 피해 입장할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 아주머니가 아니었으면 감동의 결승전은 생각도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장내에 들어서는 순간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새까만 인파, 함성, 열기 ,....
스타토크 쇼가 막을 내리고 본 경기에 들어가기 15분전 자리를 잡으려고
또 한번 진행요원과 숨바꼭질...
복도에 앉아 있으면, 여기 앉아 계시면 안됩니다..
그러기를 수차례..
도저히 이 방법은 안되겠다 싶어 ,
좀 위험 하지만.. 맨 꼭대기 쇠난간옆에 올라서서.. 겨우 자리를 잡았지요..
자세도 꼬이고 다리도 아팠지만 이 정도 위치와 화면각도라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답니다
드디어 1차전이 시작되고,
이내 격전이 벌어지며 이곳 저곳에서 교전이 빈번히 이루어지고 관중들의 함성과 탄성..
저는 거의 울부짖었습니다.
옆에서 저처럼 위태로운 자세로 관전하던 중학생이 저를 아래위로 몇번이고 훑어보더군요.
말은 안 했지만 그 학생의 눈빛은 ........
"늙은게 , 드디어 미치기까지 했군"
구경하던 저도 장기전으로 돌입하니 심장이 뛰고 지치는데 선수들은 지금 어떠할까...
우여곡절 끝에 임요환선수가 차례차례 홍진호 선수의 멀티를 파괴하고는 ..
결국 홍진호 선수 gg
아....
승부를 떠나 이 위대한 경기를 내가 죽기 전에 다시 볼수 있을까..
끊임없는 멀티, 집요한 멀티 파괴, 방어..
다리에 쥐가 난 줄도 모르고 응원했습니다
1차전이 끝나고 난간에서 내려와 다리를 주무르고 다시 2차전을 관전했습니다
전 점점 더 미쳐만 갔습니다.
2 , 3차전이 끝나고는, 스타의 세계에 절대강자는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임선수도 여기서 주저앉는게 아닌가.... 의문도 생겼지만...
역시 임요환 선수
스타크래프트 .. 제2의 중흥기를 마련한 선수답게
4차전 라그나로크에서 저그의 필살기 성큰러쉬..
저도 얼마전 게시판에 뜬 그 필살기를 많이 시뮬레이터 해 봤지만
알고서도 잘 막지 못하겠더군요.
정말 초싸움이더군요
몇 초만 늦게 가스를 채취하면 시즈는 못 나오더군요.
근데 홍진호 선수가 조금 늦은 타이밍에 해처리를 짓더군요.
그래서 임선수가 막을 수 있었던거 같아요.
버로우 저글링의 실패,
내심 저도 임선수가 최고의 기량을 갖추었다지만 도전하는 약자의 편을 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홍진호선수가 gg 칠땐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2 승 2 패
물러설 곳 없는 마지막 한판 승부 !!
지칠대로 지친 선수들..
엄재경 해설위원님의 말씀대로 이젠 정말 정신력의 승부더군요
5 차전
여태껏 있었던 빅게임이나 결승전 경기는 대부분 승패가 빨리 갈렸지만
이번 결승전은 마지막 5차전까지 가는 피말리는 명승부였습니다.
마린, 메딕 드랍쉽..
히드라, 러커 드랍...
서로의 본진을 치는 배수진 승부
임선수, 어렵게 저그의 공격을 막아내고 ...
홍선수, 힘겨운듯..
마린, 메딕의 무자비한 공격..
스팀팩 마린의 "?" " 아 ~ 예 " "두두두두두"
그 순간 관중석의 관중들은 저뿐만 아니라 모두들,
흡사 영국의 축구에 미친 훌리건들이었습니다
일제히 일어나 "와~~"" 하고 함성과 괴성을 질러대었습니다
"" 이 ~~야 !!!! "" 감탄과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임요환 선수의 2연패 ..
시상식과 선수부모님들의 인사..
저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비단 저뿐 아니라 모두들 그랬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렇게 코크배 스타리그도 막을 내렸습니다.
경기장을 빠져나오는 발걸음이 그렇게도 허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쉬웠습니다.
다들 그랬겠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초등학교친구들을 만나 술을 한잔하려고 홍익대학교 앞으로 갔습니다.
허걱 !!
그런데 우리들이 간 그 분위기 좋은 " 아지오 "라는 술집에서 영업시간이 끝났다고
투덜대며 내려오는 순간 엄재경 해설위원님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불과 두시간 전 경기장에서 보았던 그분이 틀림없었습니다
너무나 반가워서 그랬는지 저는 그분에게 대들듯이 인사를 건넸습니다.
"어 !! 엄재경씨.."
하마트면 오버로드씨 라고 할뻔 했답니다.(죄송합니다)
"저 오늘 결승전 그거 보러 부산에서 비행기타고 왔어요"
그러자 그는 못 믿겠다는 어투인지, 놀라셨는지..
"정말요?" 그러셨다..
비행기 티켓과 카드 영수증을 들이밀며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진짜라니까요."
그 다음,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돌아서고 말았다.
엄재경 해설위원님도 흐뭇하셨으리라..
부산서 비행기까지 타고 와서 스타를 관람하는 팬까지 생겼다는 자부심도 느끼셨으리라...
영업 끝나서 올라가봐야 헛일이라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반가움에 그것조차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길이 끝나는 큰길까지 나가면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곤 했답니다.
평소 그분을 만나면 참 많은 할말이 있었던거 같았는데...
막상 우연히 부딪히니 멍하니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누구냐, 뭐하는 사람이냐, 무슨 얘길 하는 거냐?
결승전은 뭐고 해설위원은 뭐냐...
설명할 수도 ..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해하지도 못하는 애들한테.. 후후후
그리고는 밤새 술을 마셨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들을 했지만 머리속은 온통 스타 생각뿐이었습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이번 명승부..
긴 여운을 남기고 그렇게 밤은 가더군요
다음날(오늘이군요) 다시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왔습니다.
오는 내내 흐뭇하고 뿌듯하더군요.
여태껏 타본 비행기중에 기체가 가장 많이 흔들렸지만 (기상악화로)
전 히죽히죽 웃고 왔답니다 .. 미친 사람처럼..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지만...
비행기값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부산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자주 가는 게임방으로 달려갔습니다.
모두들 경기결과를 알고 있었지만 저는 승전보를 알리러 먼길을 달려온 초병처럼 흥분했답니다.
그리곤 이내 떠벌이기 시작했지요..
예의 그 문 부신 아주머니 얘기부터 엄재경씨를 직접 본 것까지...
애들은 덤덤했지만 전 흥분이 가시질 않더라구요..
지금도 술 한잔 마시면서 스타얘기를 꽃피울 거고요
우리는 술 마시러 가자는 말도 스팀팩 한잔 하러 가자고 한답니다.
한잔 얼큰하게 취한 뒤엔
조금 있을 결승전 재방송 보러 우르르~~ 몰려갈 거랍니다.
에구 적다보니 말이 무척 길어졌군요
스타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
앞으로도 계속 사랑해주세요 .. 스타를
저도 계속할 거랍니다. 스타를...
배틀넷에 단 3명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엄재경님 리플
기억이 납니다. 그 날, 그 곳(아지오 계단)에서 어떤 분이
대뜸 저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죠. ^^;
'결승전 끝난지가 언젠데 벌써 나오셨어요?'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이런 말이었죠.
저는... 아는 분인줄 알고 슥 보는데, 처음 보는 얼굴... ^^;
내심 놀랐답니다. 흘. 몸과 마음이 썩 좋은 상태가 아니었는데,
저도 매우 반갑고 기분이 좋았고요. 한결 기분이 나아지더군요.
감사드립니다. ^^;
그 날 제 처도 행사장에 왔었는데, 첫 경기가 끝나고 화장실에
갔다 와보니 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더랍니다. 그래서 내내 서서
경기를 봤고, 몹시 피곤해 하더군요. 그래서 행사가 끝나고 사인을
해 드리러 위층으로 올라갈 때 처는 먼저 집으로 왔고, 저 역시
피곤했지만 뒤풀이 자리에 얼굴은 비추어야 할 거 같아 뒤풀이 자리로 갔죠.
뒤풀이 자리에 들어선 순간 어둡고 웅성대는 분위기에 눈앞이 아뜩한
기분이 들어 걍 집으로 도망쳤고, 밥도 굶고 자고 있던 아내와 함께
식사를 하러 나온 거였습니다(제가 그 동네에 삽니다. ^^;).
전 성격과 체질이 좀 이상해서 그런 큰 이벤트가 있는 전 날에는 잠을 잘 못자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 전날엔 웬일인지 새벽 1:30에 잠이 와서 잠이 들었는데, 3:30에 깨더군요.
더 자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 6:00까지 침대에서 뒹굴다 결국 포기하고 작업실로 내려와 컴터를 했답니다.
행사장엔 11시 좀 넘어 도착했고요..., 그 상태에서 종일 일을 했더니 몹시 피곤했던 거죠.
눈이 붉게 충혈되었었다는... -.-;
아지오가 문을 닫아 결국 그 맞은 편에 있는 삼겹살집에서 밥과 고기를 좀 먹고
술도 한 잔 못하고 집에 돌아가 쓰러져 14시간을 잤답니다. ^^;
행사를 재미있게 즐기셨다니 기쁘고 뿌듯하고요, 정말로 그런 인연이 쉬운 인연이 아닌 건데,
좀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던 게 아쉽군요.
제가 혼자 있었거나 저희 부부 상태가 좀 나았으면 같이 술이라도 한 잔 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
아무튼 멀리 부산에서 오셔서 그래도 만족스럽게 돌아가셔 정말 다행이고요,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항상 즐겜하세요.
-- 서교동에서 엄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