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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2/01/13 18:50:51 |
Name |
쿠루쿠루 |
Subject |
[일반] 헬조선에서 함께 행복할 수 있을까? (수정됨) |
현재 한국의 문제는 누구도 풀어낼 수 없는 실타래 뭉치처럼 굉장히 복잡한 것들이 뒤엉켜 모두가 손을 놓은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답안나오는 여가부를 폐지하고 다시 만들기를 주장하는 것처럼 한국도 리셋해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먼 미래에도 불가능할지 모르겠네요. 그 와중에 뭔가 희망의 끈처럼 보이는 얘기가 있어서 글을 옮겨 적어봅니다. 이미 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몇 년 전 차이나는 클라스 출연했던 김누리 교수가 한국의 교육 문제에 관련된 얘기들을 했었습니다. 독일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교육제도를 모델로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현실, 이제껏 당연하게 여겼던 입시 교육이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 말했는데요. 불행한 한국 사람들을 바라보며 경쟁 속에서 ‘우리’가 없는 이유를 교육의 현실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어제 얘기 나온 사라진 ‘우리’와 연대에 대한 고민에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강연 내용들을 바탕으로 제 생각을 뒤섞어 재구성 해봤습니다. 김누리 교수의 주장과 다르게 왜곡하거나 누락 등의 오류가 많고, 평어체인 점 양해 바랍니다. 한국의 교육 현실
우리나라의 교육 역사를 살펴보면 일제 강점기에는 ‘황국신민’을 교육하는 제국주의 교육을, 해방 후에는 독재정권 하에서 ‘반공투사 산업역군’를 육성했고, 민주화 이후 30년째 ‘인적 자원’(한때 교육부가 교육인적자원부라는 이름을 가지기도 했다)을 생산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적 자원이란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육성해 기업에 제공한다는 의미인데 이는 자본중심적 시선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고 교육하지 않고 단지 자본의 수단으로 보기만 하는 것이다. 교육 철학과 제대로 된 목표설정 없이 단순한 자본의 도구만 길러내고 그들을 스펙으로 치장하여 상품을 취업시장에 내놓기를 경쟁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모두가 이에 전념했다. 좋은 학벌만 획득하면 학벌 계급으로 신분 상승할 수 있단 희망만을 품고 경쟁하고, 입시에 성공시키기만 하면 양육이 끝난 것처럼 교육의 의무를 다한 것처럼 가르치며 책임을 외면했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학창시절을 입시경쟁의 전쟁터 속에서 보내며 불행한 기억만 가진 채 세상에 던져졌다.
국가별로 ‘고등학교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 대한 설문을 보면 (2017년 각국 대학생 1000명 대상-한국개발연구원 KDI) 사활을 건 전쟁터라고 떠올린 응답비율은 한국 80.8%, 미국은 40.4%, 중국 41.8%, 일본은 13.8% 함께하는 광장이라고 떠올리는 응답비율은 한국12.8%, 미국 33.8%, 중국 46.6%, 일본 75.7% 교육이란 건 ‘e + duce+ate’. ‘밖으로 + 이끌다’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개인의 고유한 능력을 밖으로 꺼낼 수 있도록 돕는 게 교육이지만 한국 교육은 오히려 밖에 있는 죽은 ‘지식’을 인간 안에 집어넣는다. 반(反)교육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단 한번도 인간을 키우겠다는 교육 목표를 가져본 적이 없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지식만을 구겨 넣고 정답을 찾게만 만들고 있다. 정답이 없는 건 스스로 찾는 방법을 배울 수도 없고 가르칠 필요도 없다. 시키는 일만 잘하면 되니까. 생각하고 목소리가 커지면 피곤해지니까. 모든 가치가 사라지고 수능만 남아 입시전쟁, 생존경쟁에만 매달려있다. 21세기가 되고 선진국이란 자부심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런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되지도 않는다. 이런 극단적 입시전쟁을 만든 것은 교육목표가 인적 자원을 생산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교육 목표가 바뀌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한국의 모순된 민주주의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과정은 진정한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역사였다. 모두가 시위를 하고 정부와 맞서면서 대통령을 탄핵하기도 하는 세계가 놀라는 국민적 민주주의는 이루었지만 그들이 회사에 돌아가고 가정에 돌아가면 그 안에서는 제대로 된 일상의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못한다. 이런 모순된 민주주의는 우리가 68혁명의 세례를 받지 못한 것에 이유가 있다.
tv가 있기 이전에 세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정부등의 발표를 순응하고 따라가던 사람들이 베트남 전쟁의 실상을 tv로 접하게 되고 이전 세대의 모순과 억압에 대항하면서 세계의 많은 나라가 ‘모든 형태의 억압’에서 해방되려는 운동을 하였다. 반전운동, 흑인운동, 노동운동, 심지어 전공투까지 많은 종류의 운동들이 일어났다. 그 중 패전 후 혼란스러웠던 독일은 68혁명을 겪으면서 여러 면에서 민주화의 극단까지 실험하게 된다.
정치민주화 – 모든 직업, 직능, 계층, 세대군에 비례하는 대표성을 띄는 국회 구성 사회민주화 – 교수, 조교, 학생이 33%씩 동등하게 총장에 도전할 권리를 가진다 (대학을 구성하는 주체가 권리를 동등하게 나눠 가져야 한다. 실제 조교가 총장에 당선됨) 경제민주화 – 기업의 권력을 누가 가지나? (이사회에 노동자가 50% 포함) (임금동결. 주인의식등으로 위기에 강한 수많은 성공한 기업들로 경제 강국이 되다) 문화민주화 – 교수등의 권위를 무너뜨리다(서로 이름을 호명) 인간 관계에 수평적 변화 코뮤니즘(공동체)이 만들어지고 성 공동체(일부다처제로부터 해방)등을 실험했으나 실패했고, 그 외 탈물질주의 등으로 발전하고 소비 포기 운동 등이 일어났다.
독일에선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과거의 나치 잔당을 청소하고 혁신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이렇게 세계가 68혁명의 물결에 휩싸여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베트남 전쟁 참전을 방해하도록 베트남의 사주를 받은) 북한과의 게릴라 전쟁으로 간첩 색출을 하는 상황이었기에 68혁명의 세례를 받을 수 없었다. 예비군 훈련이 생겨나고 병영사회가 되어 주민등록을 만들고 교련(총검술), 정신교육(국민교육헌장)등을 교육하였다. 세계가 억압으로부터 해방될 때 오히려 깊은 억압으로 빠져드는 상황이었다. 그 후 86세대의 노력으로 독재와 군부정권에 맞서 정치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그들은 그 이상의 민주화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을 수 있을까?‘ 정도의 고민을 했었던 그들의 희생과 결단으로 한국 사회가 정치민주화의 빚을 지고 있지만 이상적 세계를 꿈꾸는 정치적 비전에 한계가 있었다. 그들보다 정의롭고 민주적이고 도덕적으로 우월한 상대를 만나본 적이 없었기에 국민의 힘만을 라이벌로 생각하며 그 수준만큼 무능해졌다. 한때 정의를 외쳤던 86세대의 정치적 실패는 사회 전체에 냉소주의 패배감, 좌절감을 안길수도 있기에 그들 자신의 개혁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진영의 도덕적 정체성이 지금이라도 다시 살아나야 한다. 이렇게 한국에 오지 못한 68혁명이 반세기 동안의 문화 지체 현상을 만들었다.
복지 없는 자본주의의 한계
찬란한 경제성장과 정치민주화를 이룬 한국이지만 누구나 헬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전에는 가난하니까라고 핑계를 댈 수 있었지만 이제는 나라에 그렇게 돈이 없다고 느낄 정도도 아니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인데. 10억짜리 집을 가지고 있고 연봉 1억이 되어도 여유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불행하다.
왜 헬조선이 되었을까?
세습자본주의, 학벌 계급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겠지만 더 근본적 원인은 복지에 있다. 유럽에서 복지국가란 정부가 많은 재정지출을 통해서 약자를 구제하는 것을 말한다. 나라별 복지예산을 살펴보면 2019년 당시 프랑스 52%, 스웨덴 49.4%, 독일 45.5%, 미국 31%였다. 한국은 24.6%. 이렇게 oecd 최저수준의 복지예산을 가지기에 사람들을 도울 방법이 부족하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야수의 속성을 가진다. 그것이 인간을 잡아먹는다. 이를 지키는 게 정치의 임무이다. 헬무트 슈미트 – 1974~82 독일 총리)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효율적이라는 것은 증명이 되었으나 극단적 자본주의의 야수성이라는 단점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자본주의의 열차에서 낙오된 사람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인간을 잡아먹는 야수적인 부작용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민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실업과 불평등지수는 높아지고 빈곤과 불안에 시달리게 되었다. 인권감수성은 사라지고, 소비지상주의, 권위주의, 자아를 착취하며 모두가 소외되는 문제가 나타났다. 세습자본주의를 당연시하고, 기회독점의 학벌사회, 엘리트 교육 체제등이 공고해졌다. 조선시대의 계급은 붕괴되고 새로운 학벌계급 사회로 전환되었다. 개인의 실패를 노력이 부족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며 자살율은 높아지고 출산율은 낮아져버렸다. 능력주의가 만연하고 자기착취를 유도하는 자본에 잠식된 결과를 만들어냈다.
자본주의는 체제 특성상 실업과 불평등의 문제가 필연적이다. 독일은 ’실업은 자본주의라는 효율적 시스템 사용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며 그들에 재활을 돕는다. 우리는 이를 개인의 노력과 능력 탓으로 돌리며 외면한다.
독일의 정당별 지향점을 살펴보면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자유민주당은 18대 국회 입성 실패하였고, 보수진영에 속하는 기민당은 사회적 시장경제(시장경제의 효율성은 활용하되 필요할 때 국가가 개입)를 지향하고, 독일의 진보진영의 사회민주당이 사회민주적 시장경제(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최소한의 영역 주거, 교육, 의료 부분에 있어서 시장경제 반대)를 지향한다. 이렇게 시장경제가 가진 효율성은 활용을 하되 시장경제가 인간을 잡아먹지 못하게 필요할 때 국가가 개입하는 구조의 형태를 가지고, 어려서부터 누구도 무너지고 붕괴되지 않게끔 국가가 경비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국회의원 대부분이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정치지형을 가지고 있다. 수구와 보수로 나뉜. 집 나눠주고 대학 공짜로 보낼 독일 보수 메르켈이 한국에 오면 극좌파 빨갱이 취급 받을거다. 한국은 철저하게 미국의 자본주의를 모방해왔지만 미국은 이미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니다.
6.25 전쟁 후 미국과 소련의 이념 전쟁하에 급속도로 뿌리내린 한국의 자본주의는 냉전, 산업화 시대, imf, 금융위기등을 거치면서 단시간에 신자유주의를 통과하면서 어떤 브레이크도 없이 능력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스스로 지배당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자본독재사회로의 진입. 긴 시간에 걸친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을 가지고 68혁명을 지나온 나라들과 달리 우리는 사회 안전망따윈 필요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자본주의의 효율적이고 긍정적인 면만 바라보면서 부정적 효과는 외면해왔다. 합법적으로 약탈하고 착취하는 게 가능해졌다. 여기에 더해진 경쟁교육은 인간을 원시의 적자생존 상태로 퇴행시킨다.
자본주의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
전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을 만들어내고 경쟁적이고 고통을 주는 교육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효율적으로 유지하는 체제지만 인간의 여러 관계에 악영양을 미친다. 인간과 상품의 관계를 왜곡시켜 사물이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은 소외된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왜곡해서 생존 경쟁시키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왜곡해 생명을 경시하게 만든다. 독일의 일부 탈물질주의자들은 미래 생명에 대한 책임, 내 욕망을 위한 소비의 영향을 고민하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는 얘기다.
프랑코 베라르디 (이탈리아 철학자)는 한국 사회 특징을 4가지로 정리했다.
1.끝없는 경쟁 2.극단적 개인주의 3.일상의 사막화 4.생활 리듬의 초가속화
또 누군가는 한국은 강력한 현대 허무주의에 순응해버린 나라라고 표현했다. 청년 자살률, 날개를 펴보기도 전에 삶을 마감하는 아이들. 위의 2,3,4의 문제는 결국 1의 끝없는 경쟁 때문에 생겨난 것들이다. 그리고 경쟁이 가장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곳이 교육 현장이다.
이제 진정한 교육의 역할을 생각해야 한다.
독일의 교육을 다시 비교해보면 1. 개인의 개인의 고유한 능력을 밖으로 꺼낼 수 있도록 돕는 게 교육이라 생각하고 사람 하나하나가 고유한 존재가 되도록 한다. 2. 강한 자아를 가질수록 돕는다. (망가지고 짓밟혀 약한 자아로 졸업하는 한국학교. 서울대에서마저도 50%의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갖지 못한 교육을 하고 있다) 3. 타인과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가르치고, 사회적교육을 가장 중요시한다. 학교는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곳이고, 정답을 고르는 것보다 답을 찾는 과정에서 생각의 흐름을 중요시한다.
이렇게 그들은 학교에서 행복을 배우지만 우리는 학교에서 패배감을 배운다. 한국 청소년 행복지수 최하위가 괜한 것이 아니다.
독일의 교육원리는 우리와 전혀 다르다. 경쟁은 야만이라고 생각하고 경쟁하지 않는다. 시험날짜를 알려주지도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 시업만 붙으면 대학에 갈 수 있고 통과율은 90% 이상이다. 대학입학시험이 없고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 원하는 때에 갈 수 있다. 입학의 문턱은 없애고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곳에는 자격시험을 엄격하게 다룬다. 쏠림 현상이 많은 곳에는 맥시멈 20%정도의 비율로 성적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대기기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3년정도 기다리면 우선순위로 입학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한다.
우리는 경쟁 중독되어 경쟁 이데올로기에 빠져서 모든 사람을 위계화시킨다. 경쟁은 불가피하다. 때로는 좋은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이를 자연의 섭리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일 뿐인데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한다. 자기개발이라는 포장으로 끊임없이 자기착취를 강요한다. 경쟁 대신 연대하고, 순응 대신 비판하는 성숙한 인간을 만드는 목표를 가지는 독일의 교육정책이 우리와 가장 다른 부분을 짚어보면
성교육-나와 내가 건강하게 관계맺는 것(성충동을 억제하며 개인이 자기부정을 하지 않는 튼튼한 자아를 가지도록) 사회교육-다른 인간과 관계 맺는 법 자연교육-자연과 인간이 관계 맺는 법
등이 있다. 자아를 완성하고 인간과 사회와 관계 맺는 법을 배우며 하나의 건강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학교에서부터 교육하는 것이다.
교육 혁명이 시작이다
모든 것이 점수로 결정되는 사회. 과연 이것이 정의일까? 정의에 기준을 바꾸고 모두에게 최대한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 한국에 교육혁명 정도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입시를 철폐하고 경쟁을 없애야 한다.
그 방법론으로는 1. 입시 철폐 2. 대학 서열 폐지(국립대 네트워크화 대학내 이동의 자유 보장) 3. 등록금 폐지 4. 특권 학교 폐지
수능을 점진적으로 철폐하는 등 입시제도 전환해야 한다. (희망자만 대학 진학하거나 대학 구조 개편등) 새시대의 진정한 교육으로서의 전환해야 한다. 단순히 입시제도의 공정성을 손보는 정도로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모순을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언제까지 아이들에게 불행한 학창시절을 물려줄 수 없다. 수많은 반대와 거센 저항을 받겠지만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육의 방향을 바꿔 백년지대계의 교육 혁명을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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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김누리 교수를 영입해 점진적으로라도 교육 정책을 전환시키기를 바랬는데 현재 공약상 민주당측 교육정책 인사에 합류할 가능성이 좀 있어 보입니다. 아닐수도 있구요. 괜히 제가 여기에 김빼거나 재를 뿌리거나 각 당의 정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몰라서 조심스럽지만, 또 김누리 교수의 교육 혁명에 관한 주장이 이재명이나 민주당측 삽질에 묻혀서 흐려질까 걱정되지만. ‘출산율’과 ‘자살율’이라는 절망적 문제들의 극복과, ‘나만 잘살면 돼’ 가 아닌 ‘다시 우리’가 되어 행복할 수 있을지.. 라는 문제들의 해결에 도움이 될만한 실마리를 함께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글을 올려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진보지향적 정치성향을 띄고 있고 글의 내용도 논란이 될 게 많아서 정치 탭에 글을 씁니다. 쓸데없이 길고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131회 요약 https://www.youtube.com/watch?v=dYpRjUeGvLQ 차이나는 클라스 147회 부분별 https://www.youtube.com/watch?v=uZ079XUFuw4&list=PLISvJ8Fu1B4eYGMzFdIKpzHl0DJk4VVDJ&index=1 그외 차이나는 클라스132회, 세바시 강연 등등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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