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원희룡 도지사 후보의 바람이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나 같은 제주도 토박이에게 원희룡이라는 이름 석자는 일단 그냥 무시하고 넘겨버리기 어려운 이름이다. 대학입시가 수능으로 바뀌기 전에는 학력고사라는 시험을 치르고 대학을 지원했다. 그리고 학력고사 시험 채점이 끝나게 되면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뉴스가 바로 전국수석을 차지한 학생에 관한 것이었다. 전국수석을 차지한 학생들은 TV 뉴스에 나와서 약속이나 한 듯 "잠은 충분이 잤고 과외는 받지 않았으며 교과서 위주로 그리고 학교 수업 위주로 충실히 공부했다"고 자신들의 공부 비법을 털어놓곤 했었다.

1982년 대학입학 학력고사의 전국 수석은 서귀포 중문 출신의 원희룡 학생이었다. 제주에서 전국 최고 인재가 탄생한 것이다. 제주 사람들은 “육지”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굳이 제주 4.3사건을 들지 않더라도 예전부터 제주는 육지의 관료들의 폭정이나 수탈의 피해지였고 중죄인들을 유배 보낼 정도의 척박한 곳이었다. 기본적으로 섬이라고 하는 환경에서 오는 배타성에다 이런 것들이 겹치다 보니 제주 사람들은 “육지”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과 의구심, 그리고 피해의식을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살아간다.

“말은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 우리 부모님들에게 자주 들었던 얘기다. 한마디로 제주도는 인재가 나올 수 없는 곳이고 그저 말이나 키우면 딱 좋을 곳이다라는 이 말은 그 자체로 제주도에 대한 비하와 폄하의 감정이 들어가 있다. 그런 제주에서 대학을 가겠다는 전국의 학생들이 치른 시험에서 제주 출신 학생이 전국 수석을 차지했다. 이것은 마치 김연아가 척박한 한국 피겨 현실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과 같은 사건이었다. 지금 제주도에서 40대 중반 이상 된 사람들은 다 그 당시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동안 그렇게 무시를 받던 제주에서 “육지”사람들에게 “공부”로 제대로 본때를 보여준 원희룡이라는 학생의 쾌거(!)를 말이다 (이 일 이후로 내가 부모님에게 당한 구박은 그냥 부차적인 피해 정도로 치자. 그런 친구들이 나 말고도 많았을 거다…--;;;).

지금 제주도의 중, 장년층이 원희룡 후보에게 가지고 있는 호감은 이 일을 빼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는 정말이지 “자랑스러운 제주의 아들”이었다. 그가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하고 나서 잠시 학생운동에 빠졌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내 부모님조차 “족헌 아이 서울강 베려부렸져 (아까운 아이가 서울 가더니 안 좋게 변해버렸다)”고 한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이런 고향 사람들의 자랑스러움과는 별개로 지금까지 고향에 대한 그의 발자취는 미미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는 아마도 본인의 중앙 정치 생활에 별다른 힘이 되어주지도 못한 못난 고향을 일부러라도 잊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본인이 원해서라기 보다는 등 떠밀려서 나온 것 같은 이번 선거에서 만약 그가 당선된다면 과연 그는 고향을 위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을지 또는 오매불망 그리는 저 중앙정계로 다시 진출하기 위해 중간에 잠깐 들린 기착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