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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8/08 00:40:09
Name 한니발
Subject [기타] [스타1] 프로토스 연대기Ⅱ : 수라를 잡는 수라
프로토스 연대기 Ⅱ  : 수라를 잡는 수라





- 이변

  기욤 몰락의 계기가 된 프리챌배 스타리그는 여러모로 잡음이 많았던 스타리그였습니다. 기욤의 노GG 탈락도 그러했지만, 그 외에 ‘마우스 오브 조로’ 최인규를 비롯한 거물들의 조기 탈락 등등. 하지만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것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 끈 문제는 16강의 테란 전멸 사태였습니다.

  흔히 1.07까지의 테란을 구제 불능의 종족으로 말하고는 합니다. 실제로 이 시기 배틀넷에서 테란은 운용하기가 어려운 종족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프로토스와 저그의 공세는 특히 유닛들이 모여 힘을 발휘하기 전엔 초반에 거셌고, 테란은 너무 쉽게 위험에 노출되었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 하나 테란에 손 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그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수려한 플레이를 자랑하는 정상급 테란들이 분명히 존재했지요. 아직도 메카닉 테란의 정립자로서 그 이름이 전해지는 김대건이 대표적인 이 시기의 정상급 테란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됐건 당시 테란이 상대적으로 운용하기 어려운 종족임이었음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는 고수와 일반 유저들 간의 심각한 편차로 나타났고, 프로의 세계가 아닌 배틀넷의 주류 흐름 속에서 테란은 점차 고립되어가는 참이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스타리그에서마저 테란이 전멸하는 사태가 빚어지면서 테란의 위기감은 계속해서 커져만 갔지요.

  이렇게 16강에서 테란이 전멸하고 8강에서는 전시즌 챔피언 기욤이 고배를 마신 가운데 판도를 장악한 것은 다시 한 번 저그였습니다. 그 필두에 선 것은 후일 KUF에서도 이름을 날리게 되는 봉준구. 잠깐의 하락세에서 반전에 성공하여 돌아온 저그의 강호였지요. 최진우, 국기봉, 변성철, 강도경, 거기에 다시 봉준구. 저그의 인재풀은 멈출 줄 모르고 강자들을 배출해냈고, 안티 저그의 선봉장이었던 최인규와 기욤조차 사라진 가운데 저그의 약진을 막을만한 세력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결국 4강 중 3석이 다시 저그로 채워지면서, 저그는 99 PKO 이래의 강세를 이어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토록 세력을 떨치던 프리챌배의 저그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형태로 최후의 순간 패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 이전까지 한 번도 이름을 떨쳐본 바 없는, 그리하여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프로토스 게이머가 그 모든 저그들을 무너뜨리고 우승을 차지해버린 겁니다.  
  그 모든 이변의 중심에 선 주인공의 이름은, 바로 김동수였습니다.

  김동수는 딱 이제 막 상경한 벽촌의 농사꾼 같은 이미지의 게이머였습니다. 작게 찢어진 눈에 바위 같은 얼굴, 무뚝뚝한 목소리, 억센 고집에 플레이마저도 투박하기 그지없었지요. 김동수가 프리챌배의 패권을 차지할 때 사람들은 두 번 물음을 던졌다고들 합니다. 처음에는 “저 녀석은 도대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녀석이야?” 하고 물었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저렇게만 해서 이겨?” 하고 물었다나요.
  프리챌배 저그들을 무너뜨린 김동수식 프로토스의 핵심은 바로 하드코어 질럿. 김동수는 그 우직한 외모만큼이나 솔직하고 담백한 돌격형 플레이를 즐기는 게이머였고, 그런 그에게 질럿은 어떤 분신과도 같은 유닛이었던 모양입니다. 단순하다면 단순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 강고함과 투박함이 오히려 노련한 붕준구를 당황시켰고, 결국 김동수는 3저그의 4강에서 프로토스로서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 – 그리고 프리챌배 스타리그 최대의 이변을 만들어내고야 맙니다.

  하지만 이변은 어디까지나 이변일 뿐. 김동수의 우승은 그 뒤로 어떠한 영향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온게임넷은 잡음이 많았던 프리챌배를 흑역사로 묻어버리겠다고 결심이라도 한 것인지, 리그 종료 이후 99PKO-하나로통신배-프리챌배의 상위 수상자들을 모아 왕중왕전 (홍진호가 우승한 후의 왕중왕전과는 다른 왕중왕전입니다)을 개최, 그 우승자에게 차기 시즌 시드를 배정하겠다고 선언해버립니다.
  김동수는 이 왕중왕전에서는 부진했고 결국 전 시즌 우승자임에도 시드조차 얻지 못한 채 밀려났습니다. 하루가 지나면 또 다른 스타가 탄생하는 이 판에서 더 이상 김동수가 설 자리는 없어 보였습니다. 물론 하드코어 질럿은 여전히 유효했지만, 그 외에 스타리그에서, 또 프로토스사에서 김동수의 흔적은 빠르게 지워져갔습니다.  




- 꽃쾌남 전성시대

  김동수가 그렇게나 빨리 밀려난 것은 프리챌배 이후 김동수 자신의 활동 자체가 뜸해진 것도 있겠으나, 김동수 외에도 강력한 존재감을 뽐내던 또 한 명의 프로토스 때문이기도 합니다. 바로 ‘한방토스’ 임성춘입니다.
  요즘에야, 아니. 이제 요즘도 아니군요. 여하튼 ‘야동줄까’, ‘취객’ 등의 개그 이미지로 자리가 잡혀버린 청춘이 형이지만, 1.07 말기의 임성춘은 개그와는 거리가 먼 거물이자 프로토스의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선이 굵으면서도 수려한 외모에 호쾌한 스타일을 겸비한 프로토스로서, 후일의 박정석이며 송병구 등에 비견할만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지요. 실제로 박정석이며 송병구는 어떤 면에서는 ‘임성춘 계파’의 일원이기도 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비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임성춘은 어떠한 프로토스였는가. 이에 대해서는 글쓴이의 기억이 희미한 관계로, 이미 프로토스의 여러 게이머들에 대하여 훌륭한 글을 남기신 바 있는 주다스 페인님의 기록을 토대로 설명을 해나갈까 합니다.

  당대 제일의 프로토스로서 위엄을 뽐냈던 임성춘이지만 그 플레이를 만들어낸 기초는 아주 단순한 발상이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프로토스는 기본적으로 유닛이 하나하나 강력한 대신에 값이 비싸지요. 즉 유닛이 귀합니다. 그럼 이 귀한 유닛들을 어찌해야 할까요? 아껴서 써야겠지요. 유닛을 아끼는 것. 어떻게든 아끼고 또 아껴서 잔뜩 모으는 것. 그 단순하고 당연한 결론이 임성춘이 자랑하는 ‘한방토스’였습니다.
  임성춘의 플레이는 뛰어난 컨트롤과 안정적인 운영에 근거하였습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유닛들을 잃지 않기 위한 최선의 컨트롤을 했고, 자신이 먼저 움직이기보다는 안정적으로 수비에 치중하면서 이득을 쌓아가며 게임을 후반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동안 눈덩이가 구르듯 구르고 굴러 거대해진 프로토스의 대군이 마침내 중원으로 치고 나갈 때, 그 앞에서 견디어낼 수 있는 적은 없었습니다.
    
  프리챌배의 김동수는 하드코어 질럿을 앞세운 저그전에서 두각을 드러냈지만, 임성춘은 세 종족전에서 고루 그 기량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이후 수년에 걸쳐 프로토스 플레이의 정석이 될 기본 틀을 제공하였습니다.    
  우선 동족전인 플플전의 경우에는 임성춘식 유닛 아끼기의 원동력이 되는 그 컨트롤이 크게 빛을 발했습니다. 당시의 플플전에서 유닛 컨트롤이 뛰어나다는 것은 곧 강자라는 말과 동의어였지요.
  그런가 하면 테란전에서는 유려한 운영을 통하여 적들을 제압하여 나갔습니다. 초반에는 옵드라로 맵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이후에는 치고 나오는 테란 병력을 셔틀 질럿과 발업 질럿으로써 막아서며, 거기에 추가된 템플러로 센터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뒤에 캐리어로 마무리. 보시면 알겠지만 이러한 임성춘의 대테란전 논법은 당대는 물론 이후 수년, 수대에 걸쳐서까지 정파 프로토스들이 핵심으로 삼는 플레이가 됩니다. 비록 뛰어난 후학들에 의해 세부적인 측면에서 대단한 발전을 이룩하였다고는 하나, 그 뼈대는 이미 임성춘이 완성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그전. 이 임성춘의 저그전이야말로 ‘한방토스’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저그는 값싼 유닛들을 앞세운 과감한 움직임과 높은 기동력을 통해 언제나 프로토스를 괴롭혀왔습니다. 하지만 임성춘의 프로토스는 저그의 집요한 괴롭힘을 견디고 또 견딘 뒤에, 게임 후반에 이르러 자신의 미네랄 멀티가 떨어질 때쯤에야 그 무거운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리고 그 어떤 저그라도, 심지어 올멀티를 먹어치운 저그조차도 그 한방을 견디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내리찍는 사이오닉 스톰 앞에서는 그 저그의 회전력으로도 불어나는 토스 병력을 따라가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저그가 여전히 판을 주름잡고 있는 가운데, 테란과 프로토스의 운명은 엇갈렸습니다. 테란은 스스로를 보호할 실력을 가진 몇몇의 생존자를 제외하고서는 속절없이 쓸려나갔지만, 프로토스에는 김동수가 남긴 흔적과 더불어 이 임성춘이 있었기에 공고한 방어선이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배틀넷의 수많은 아마추어 프로토스들이 이들의, 특히 임성춘의 플레이를 따라하며 저그에 맞서 전선을 유지했던 것입니다.
  게임 내적으로 미친 거대한 영향, ‘꽃쾌남’이라는 별명을 만들어낸 수려한 외모, 보는 이에게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는 호쾌한 게임 스타일까지. 임성춘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카리스마적 존재였고, 이론이 없는 종족의 제 1인자였습니다. 그와 같은 임성춘이었기 때문에  그가 게임큐 스타리그 제 1차 결승에서 상대 테란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우승했을 때에도 그는 그렇게까지 큰 이변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하지만 이 대결은 사실은 더 중요하게 여겨져야 했습니다. 임성춘의 우승도 중요했지만, 임성춘에게 대패한 그 상대 테란에게도 사람들은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습니다. 프로토스의 거성에게 겪은 패배로 좌절하기에는, 그 테란이 너무나 집요하고, 비열하고, 그리고 천재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테란의 이름은 임요환이었습니다.




- 반격하라! 쫓아라, 약탈하라, 유린하라!
    
  당시에도 임요환이란 이름은 꽤 오래 전부터 퍼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대 이름을 떨치던 명문 클랜들 소속도 아니었고, 전통적인 방식을 뛰어나게 구사하는 강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이름이 퍼진다는 것이 어떤 ‘명성’을 떨치는 쪽이라기보다는, 뭔가 희뿌옇고 엷은 안개처럼, 가볍게 콧속을 간질이는 기분 나쁘리만치 달콤한 향기처럼, 진위조차 확실하지 않은 풍문을 타고 서서히 퍼져나가는 기담 같은 종류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례로 언젠가 옛적 게임 잡지를 봤던 때였는데, 이제는 이름조차 확실하지 않은 어떤 여성 프로게이머가 한 인터뷰가 기억이 납니다. “임요환이라고, 동맹을 맺었다가 갑자기 풀어 마인으로 상대를 전멸시키는 변태 같은 플레이를 하는 게이머가 있다고 들었다.” 당시에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해하려고 한참 고민을 했었는데 말이지요.
  아무튼 그 무렵 임요환에 대한 이야기는 다 이런 종류의 것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요렇게 저렇게 하는 게이머가 있다더라.”, “에이, 그게 말이 되기나 하느냐”, “설마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있겠느냐” 등등. 그렇게 모두가 반신반의하던 소문의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고, 기담은 하루아침에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 어떤 영웅담보다도 극적인 형태로.

  임요환은 이전까지의 그 어떤 게이머와도 달랐습니다. 어떤 점에서 달랐는가 물으신다면 꽤나 많은 점들을 꼽아볼 수 있을 겁니다. 기욤 이래 가장 기발한 전략가였다는 점이라던가, 전투의 승패를 뒤집고 나아가 전쟁의 승패까지 좌우하는 컨트롤을 가졌다는 점이라던가, 심지어 가는 선에 미청년 타입이었던 외모도 이전까지는 없는 타입이었지요.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임요환이 여타 게이머의 차이는 게임을 대하는 자세에 있었다 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최초의 프로’로서, 임요환은 이기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것을 활용하는 게이머였습니다. 이전까지는 크게 주목받지 않았던 요소들, 혹은 사람들이 일부러 경시하던 요소들을 승부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끌어들였습니다. 그것들은 크게는 전략, 컨트롤, 타이밍, 심리전이었고 작게는 지형, 비주류 유닛, 비주류 스킬, 비비기나 밀치기 같은 허슬 플레이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처음에는 하나같이 당황하고 경악하다가, 곧 열광하거나 분노하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임요환은 그들이 숨 돌릴 틈도 없이 자신의 전쟁을 이어나갔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한 가지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려 하면 또다시 그 다음 논쟁거리가 될 충격이 내던져졌습니다. 가공할만한 쾌속 진군 속에서 수많은 저그와 프로토스들이 눈 깜짝할 새 번제로 바쳐졌습니다.
  그 제물들 중에는 전대의 패자 기욤 패트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08 패치 직전에 펼쳐진 2001년의 <라스트 1.07>에서 기욤은 임요환에게 3:0의 완패를 당했고, 그 무대는 곧 이론의 여지가 없는 대관식이 되었습니다. 기욤Grrr은 임요환이 원래 프로토스 유저였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그런 그가 테란으로 전향하고, 악명을 떨치는 정복자로서 무대에 오른 계기가 기욤의 옛 숙적인 질리아스의, ‘슈팅 리버’ 발견과 사장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요? 만일 그를 알았다면, 기욤이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참 궁금합니다.

  아무튼 기욤을 포함하여 수많은 프로토스와 저그들이 이 젊고 야심만만한 테란의 칼날에 희생되었습니다. 프리챌배 테란 전멸과 배틀넷에서 약세를 면치 못하던 테란 유저들의 보복을 행하듯이, 임요환은 자신의 진로 위에 놓인 모든 적들을 베어 넘겼습니다.
  라스트1.07의 기욤, 게임큐 3차 결승의 최인규, ‘유럽의 챔피언’ 프레드릭 등이 연달아 무릎 꿇었습니다. 한빛 소프트배에서는 단 1패만을 기록하고 최고 승률 우승을 차지했고, WCG 2001에서는 아예 전승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거기에 블리자드에서는 ‘최후의 밸런스 패치’로 공언한 1.08에서 테란을 대폭 상향시켜버렸습니다. 유일하게 홍진호가 코카콜라배에서 임요환을 위협했으나, 라그나로크의 창끝이 그 가슴팍을 꿰뚫어버렸습니다.
  처음에 임요환이 프로토스와 저그들을 상대로 반격을 시작하며 두각을 드러냈을 때, 테란은 그를 ‘희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 반격은 어느새 추격이 되고, 약탈이 되고, 유린과 정복이 되었습니다. 임요환은 저그가 틀어쥐고 있었던 리그의 주도권을 빼앗았으며, 프로토스가 지켜왔던 견고한 입지를 짓밟았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달라 보였습니다. 임요환 이전에도 이미 꿋꿋이 자리를 지켜내고 있던 테란의 강자들이 새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1.08 패치를 통해 강화된 테란의 무한한 가능성이 비쳐져 왔습니다.
  테란은 이제 그들의 희망을 ‘황제’라 불렀습니다. 그로써, 테란은 스스로를 ‘제국’으로 만들었습니다. “누가 그를 막을 수 있겠는가!” 테란은 자신만만하니 호언했고, 임요환이 휩쓸고 지나간 벌판 위로 돌아오는 것은 그 메아리뿐이었습니다.




- 비겁하고 야비한 겁쟁이

  들어보신 적 있으신지 모르겠으나 이른바 구(舊) 3대 토스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옛적 가장 뛰어난 세 명의 토스를 꼽은 것으로 하나는 임성춘이고, 다른 하나는 김동수이며, 또 하나는 송병석입니다. 가끔 구 4대라 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인데, 이 경우에는 기욤 패트리가 포함된다고 합니다.
  기욤, 임성춘, 김동수에 대해서는 앞에서 익히 설명을 했으니 이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 같습니다만, 송병석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다소 의구심이 생기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실 초창기의 송병석은 삼성전자 소속으로써, 군소 리그들에서 그 이름을 널리 떨친 프로토스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온게임넷은 선수들로 하여금 리그 스폰서의 유니폼을 입도록 하고 있었고, 이 규정을 삼성전자가 거부하면서 송병석은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음에도 온게임넷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지요.
  그래서인지 오늘날 송병석은 저 유명한 일갈, “귀맵으로 러커를 알았더라도 마린은 전진해야 합니다!”로 대표되는 대쪽같은 ‘정암 송병석’으로만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듯 송병석이 임요환과 대립한 것은 이 ‘귀맵 사태’가 처음이 아닙니다. 태초에 ‘송병석과 아이들’이 있었으니까요.

  ‘송병석과 아이들’이란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임요환을 두고서, “실력으로 안 되니 얍삽하게 전략을 쓴다”며 비난의 칼날을 세웠던 일군의 프로게이머를 이릅니다. 지금이야 이런 말을 꺼냈다가는 “전략 시뮬레이션에서 전략을 쓰는 게 문제라니, 제정신이냐”하는 반응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좀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임요환 이전까지 스타크래프트는 ‘잘 먹고 정면에서 잘 싸워서 승부를 결정짓는 게임’이라는 아마추어틱한 인식이 있었고, 오직 그것만이 실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처럼 전략 시뮬레이션에서 전략의 사용은 당연하며 오히려 중시되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임요환 출현 이후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며, 임요환의 업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 어떤 면에서는 임요환이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프로’라 할 수 있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지요. 일찍이 주다스 페인님은 이를 권투계에 비하신 바 있습니다. 무하마드 알리가 데뷔하여 잽과 스텝을 통해 패권을 쥐자 몇몇 사람들이 그를 ‘야비한 겁쟁이’라고 불렀지만, 결국 알리의 플레이가 현대 복싱의 거대한 발전을 이룩했음을 지적하면서 임요환이 스타판에서 행한 역할이 바로 알리의 그것과 같다고 하셨지요. (앞에서 제가 ‘비열한’이란 표현을 쓴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럼 이 ‘송병석과 아이들’의 멤버는 누구였느냐. 첫째는 당연히 송병석이고, 둘째는 강도경이며, 셋째는 김갑용, 그리고 넷째는 바로, 김동수였습니다. 김동수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다소 의외이신가요? 사실, 애초에 ‘송병석과 아이들’이 임요환을 비난한 계기 자체도 임요환이 김동수를 센터 투배럭으로 꺾은 일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프리챌배의 김동수가 보여준 성향을 생각하면 이는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하드코어 질럿을 운용하면서 보여준 탁월하고 감각적인 플레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융통성이란 단어와는 꽤나 거리가 먼 게이머였지요. 상상이나 하실 수 있겠습니까. ‘드라군이란 유닛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드라군 사용을 최소화하고, 드라군 리버 운용에 대한 질문에 ‘그것은 내 전공이 아니니 묻지 말라’고며 손을 내젓는 프로게이머를. 그런 그가 임요환의 방식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그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송병석과 아이들’은 다만 가장 대표적으로 불거진 문제였을 뿐, 당대 임요환의 방식에 불만을 품은 이들은 이미 적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프로토스 유저들이 특히 그러했습니다. 그 수장급인 김동수와 임성춘이 보여주었듯 프로토스는 우직하다 못해 단순명료한 승부의 미학을 중시하였으며, 정면에서 맞붙어 힘으로 누르는 것을 진정한 승리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들도 전략이란 개념의 가치를 아예 부정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그 모순 때문에 이들의 불만은 더욱 기괴한 형태가 되었습니다. 전략, 좋다. 그게 중요하다는 건 우리도 안다. 하지만 그래도 비겁한 건 비겁한 것이다! 같은 류의.

  하지만 어찌되었건 간에 임요환은 이미 전장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찬사와 비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도 되돌려주지 않고서, 그는 수라처럼 미친 듯이 전장을 질주하고만 있었습니다. 프로토스 역시 이대로는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해도 패자의 불평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일단은 누군가가 그를 막아야 했습니다. 그로써 임요환의 비열한 패도가 틀린 길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그들의 이의는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가? 누가, 어떻게? 위대한 기욤이 참패했고, 영광을 누렸던 임성춘도 밀려났습니다. 송병석은 기약조차 없었지요. 한빛소프트배, 뜬금없이 튀어나온 어떤 풋내기 프로토스 하나가 가까스로 1패를 안겨 임요환의 전승 우승만은 저지했으나, 그 풋내기는 그를 마지막으로 그대로 사라졌습니다. 차라리 홍진호를 필두로 한 저그에 기대를 걸면 걸었지, 프로토스 가운데에는 딱히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처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때. 프리챌배의 바로 그 때처럼, 김동수가 전장으로 돌아온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습니다.




- 김동수의 수라도

  도대체 어떠한 일이 있어 무쇠와도 같던 김동수의 심경에 변화를 불러 일으켰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분명 김동수는 이전까지의 자신이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선택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 대하여 우리는 다만 몇 가지 추측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프리챌배의 짧은 영광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빠르게 마모되는 동안, 김동수가 전전한 곳 가운데 하나는 itv 경인방송의 해설자 자리였습니다. 눈앞에 적을 두고 맹렬한 돌격을 즐기던  김동수에게 한 발 물러서서 제 3자로서 게임을 관찰해야 하는 해설자 자리는 상당히 어색한 자리였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또 의외로, 김동수는 나름대로 그 자리에 잘 적응해나갔습니다. 언제나 눈앞의 적만을 향해 무쌍 질럿을 돌격시키던 그는 이 해설자 자리를 계기로 보다 전장을 멀리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는 그 자리에 앉아 임요환의 출현을 코앞에서 목도했습니다.

  아무리 해설자로서 멀리 보는 눈을 기른 김동수라 해도 처음에는 임요환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던 듯합니다. 다른 수많은 프로토스들처럼 그 역시 임요환의 ‘비열함’에 악의를 품었고, 그를 성토할 기회를 노렸습니다. ‘송병석의 아이들’ 대열에 참가한 것 역시 그러한 감정의 발로였겠지요.
  하지만 좋든 실든 임요환은 이미 폭풍의 눈에 있었습니다. 그를 두고 논란이 거듭되어 갈수록 어찌됐든 게임을 보는 시각 자체가 빠르게 바뀌어갔고 이전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던 수많은 플레이들이 나타났습니다. 김동수는 그것 또한 지켜보았습니다. 들끓던 분노는 식고 또 식어 들어가, 마침내 그의 머리는 얼음처럼 차가워졌습니다. 대부분의 프로토스가 아직도 임요환을 향해 비난의 날을 세우기에 여념이 없을 때, 김동수는 천천히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이 수라장을 끝낼 것인가. 어떻게 해야 임요환의 질주를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

  모든 챔피언들과 모든 도전자들이 황제의 말발굽 앞에 몰락했을 때, 모든 프로토스들이 이제 더 이상 토해낼 분조차 바닥났을 때, 임요환이 마침내 3회 연속 스타리그 우승이라는 초유의 위업을 향해 그 해의 마지막 원정을 출발했을 때, 바로 그 때가 돼서야 김동수는 장고를 끝내고 돌아옵니다.
  김동수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름을 듣고서 많은 프로토스는 의구심이 가득한 눈길을 보냈습니다. 도대체 그가 어떻게 지금 돌아온 것이며, 이제 와서 무엇을 어쩌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기억 속의 김동수는 투박하기 그지없는 얼굴만큼이나 고지식한 정면 승부를 고집하는 선수였고, 지금껏 그와 같은 수많은 프로토스들이 임요환의 기만전술에 철저하게 유린당해왔습니다. 이제 와서 거기에 김동수라는 이름 석 자가 더해진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으리라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품었던 의문은 겨우 몇 경기 만에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다시금 김동수를 향해 의구심 가득한 눈길을 보냈으나, 이제 그는 ‘지금 내가 보는 이 선수가 김동수가 맞는가’ 하는 의심의 눈빛이었습니다. 김동수는 숨김 다크템플러로 상대를 교란시킨 뒤 질템으로 밀어붙였고, 상대 앞마당에 전진 로보틱스를 지어 대놓고 리버를 뽑았습니다. 상대들은 당황했고, 허둥댔으며, 그러다가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모든 것은 일찍이 그가 그토록 소리 높여 성토하였던 ‘비열한 플레이’, 틀림없는 임요환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게 김동수의 답이었던 겁니다.
  수라를 잡기 위하여, 수라가 되는 것.

  전략가로 돌아온 그는 4강에서 어느덧 저그의 정점을 차지한 홍진호를 무너뜨렸고, 마침내 당연하다는 듯 결승에서 기다리고 있던 임요환과 조우했습니다.
  바로 이전 시즌 코카콜라배, 임요환과 홍진호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바로 그 결승에서, 임요환은 홍진호에게 패배를 당할 때마다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고 하던가요. 그는 마침내 적수다운 적수를 만났다는 데에서 나온 웃음이자, 자신의 플레이를 이해해주고 한바탕 어울려 줄 수 있는 상대를 맞았다는 데에서 나온 웃음이었을 겁니다.
  이제, 그는 저그에 이어 프로토스로서 그를 이해해주는 적수를 만났습니다. 그를 패배시키기 위하여 그의 길을 따라온 프로토스를 만났습니다. 이 결승에 대한 기억은 이제 저조차도 희미하여 임요환이 여기서도 패배할 때마다 미소나 뭐 그 비슷한 것을 띠었는가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 웃었다면 홍진호 때와 같은 의미였을 것이고, 아마 그러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는 이미 그 때부터 불길한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큐버스, 사일런트 볼텍스, 네오 버티고, 크림슨 아일즈, 그리고 다시 인큐버스로 돌아오는 다섯 경기에 걸친 장대한 혈전 끝에 – 김동수는 마침내 임요환의 질주를 저지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사람들은 김동수의 이름 석 자를 연호하고 또 연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작은 시작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스타크래프트 판, 그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스러지고 되살아나기를 반복한 – 바로 그 ‘가을의 전설’의 시작치고는, 말입니다.




- 뒤는, 가장 강한 자에게
  
  테란의 임요환. 저그의 홍진호. 그리고 프로토스의 김동수.
  2001년의 스타리그 결승들을 갈라먹은 이 세 사람은 순식간에 각 종족을 대표하는 스타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딴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성황리에 반영됐지요. 임요환의 유린제패를 저지한 장본인이자, 스타리그에서 두 번의 우승을 이룩한 프로토스로서, 김동수는 순식간에 임성춘이며 기욤 같은 이름들을 밀어내고 프로토스의 대표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그런 김동수가 급작스럽게 다시 사라진 것은, 그로부터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었습니다.

  프리챌배 이후 처음 그가 모습을 감출 때처럼, 또 홀연히 나타나 복귀하던 때처럼, 그는 너무나 시원스럽게 프로토스의 톱 자리를 내놓았습니다.
  기량의 저하 때문에? 분명 스카이 2001의 영광 이후로 그의 폼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경기였던 파나소닉에서 임요환과 벌인 일전, 아비터와 고스트의 대결이라는 이 사상 초유의 게임은 여전히 사람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고 김동수에게 아직 보여줄 것이 남았음을 말해주었습니다.
  군대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액면가로는 상상하기 힘듭니다만, 김동수는 임요환보다도 나이가 어렸습니다. 임요환이 여전히 리그의 최상위에서 군림하며 군대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고 있는데, 군대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누구보다도, 당황을 금치 못한 것은 프로토스 유저들이었습니다. 비록 김동수가 저지시켰다고는 하나 임요환은 여전히 시대의 정점에 서 있었고, 그 반대편에 선 홍진호는 저그의 정점에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임요환 – 홍진호 – 김동수는 각 종족의 세 지주로서 균형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갑자기 김동수가, 프로토스의 정신적 지주가 빠져나간다는 것은 균형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김동수 또한 그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김동수는 누구보다도 홀가분하게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대신하여 그 자리를 굳세게 버티고 설 후계자를 발견했기 때문에, 김동수는 미련 없이 자리를 비울 수 있었습니다.

  김동수는 수많은 프로토스들을 앞에 두고서, 자신의 고향 한빛 스타즈에 뒤를 맡길 자가 있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이름 모를 후계자에게 수많은 찬탄을 더하였습니다. 후일 그 후계자를 두고 내려진 평가들 중, 유달리 울리는 한 마디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신의 왼손.
  신의 왼손을 가진, 한빛의 후계자가 김동수의 뒤를 이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후계자는, 이전과 이후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프로토스로 기억될 자였습니다.



- 3편에서 계속




큰 도움을 받은 글입니다

Judas pain님의 「잊혀진 왕과 선지자」(http://judaspain.tistory.com/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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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강이
14/08/08 00:54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골수 플토빠로서 잘 읽고 갑니다
사티레브
14/08/08 00:55
수정 아이콘
''액면가로는 상상하기 힘듭니다만''

이 부분이 임요환과 김동수 이야기의 요약이군요
잘봤습니다
14/08/08 01:32
수정 아이콘
갑자기 sbs 챔피언쉽이 가물가물하게나 생각 나네요 그당시 온겜넷도 안나올땐대 김동수와 강도경의 경기가 그렇게 멋잇어 보였는데...
여우비
14/08/08 01:39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포프의대모험
14/08/08 04:50
수정 아이콘
등짝!
14/08/08 06:52
수정 아이콘
클리프행어라거 하나요? 크! 한빛의 프로토스라
기아트윈스
14/08/08 07:28
수정 아이콘
그래서 임요환이 참 싫었었지요.

김동수 vs 임요환을 직관하면서, 그리고 후에 등짝 vs 임요환을 직관하면서 그렇게나 열광적으로 환호했었습니다.

그런데 임요환이 김동수에게 패하면서 웃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제 기억이 맞다면 당시 인큐버스 맵의 아주 자그마한 섬 지역에 (섬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맵 "디자인"에 가까운 지역에) 탱크 딱 한 대가 드랍 가능하고, 그걸 시즈모드로 박아두면 공대지 공격이 아닌 이상 어떻게든 제거할 수 없었던 그런 지역이 있었어요.

임요환은 특유의 근성으로 그 작은 가능성을 발굴해내고, 그곳에 탱크를 드랍해서 시즈모드를 박음으로써 프로토스의 숨통을 막을 전략을 세워서 왔지요.

문제는 당시 리그 운영의 아마츄어리즘이었어요. 결승전에서 쓰인 인큐버스 맵이 임요환이 연습하던 인큐버스 맵과 버전이 달랐던 거지요. 새 버전의 맵에서는 이 작은 섬이 수정되어 더이상 탱크 드랍이 불가능하게 바뀌어있었고, 임요환은 결승 1경기 당시 문제의 지점에서 수차례 드랍을 시도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쉬운 상황이지요.

만약 이 때 이런 헤프닝이 없었다면, 단언컨대 인큐버스에서 임요환은 절대로 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역사도 바뀌었을 거구요.
대한민국질럿
14/08/08 13:28
수정 아이콘
과연 임요환이 3회우승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오래전이라 그당시 골마가 있었나 없었나도 가물가물하네요.. 2001 스카이 결승전 하면 5세트 인큐버스에서 김동수가 셔틀질럿으로 임요환의 조이기를 뚫어내고 GG를 받아내는 장면밖에 생각이 안나서..
Abrasax_ :D
14/08/08 17:55
수정 아이콘
임요환 선수의 자서전에 나오는 내용이지요. 그런데 아마 PGR21에서 봤던 것 같은데, 그 내용에 따르면 리그 내내 사용됐던 인큐버스는 같은 버전이었다고 합니다. 결승전에서만 맵이 수정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임요환 선수가 예전 버전으로 연습했던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도 아쉬움은 남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전이라서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았는데요. 검색을 해보니 무려 인큐버스 맵의 제작자 김진태님이 쓰신 글이 있습니다. 결국 이건 당시 IS 게임단 내부의 문제이지 온게임넷의 잘못은 아니었습니다. https://pgr21.net../?b=1&n=447
14/08/08 08:38
수정 아이콘
와... 정말 숨도 못쉬고 몰입해서 잘봤어요. 헠헠 이런글은 주다스페인님 글 이후로 거의 처음인듯..
그나저나 전 오늘까지도 김동수가 임요환 보다 형인줄 알고있었는데....
14/08/08 10:51
수정 아이콘
동생인데도 임느님 극딜하는 흐콰형의 패기 크크크
타이밍승부
14/08/08 09:42
수정 아이콘
정말, 스타판의 역사를 되짚어보고있으면
그야말로 대서사시라는 표현이 아깝지않네요.

훌륭한 필력으로 다시금 당시의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글 감사합니다.
14/08/08 10:53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바로 추천! 다음편도 기다립니다
대한민국질럿
14/08/08 11:40
수정 아이콘
김동수의 초기 플레이를 하드코어질럿이라고 단순요약하셨는데 하드코어질럿에서 이어지는 그의 저그전운영을 좀더 자세히 적어보자면 대략 이렇습니다.

2게이트질럿으로 저그를 초반부터 거칠게 압박합니다. 앞마당에 해처리를 피던 피지않던, 당시 초반 저그에겐 초반 1마리부터 2기씩 꾸준히 충원되는 질럿에뒤에서 질럿공1업의 효과를 만들어주고(프로브가 1대만 쳐주면 질럿2방에 저글링이 죽죠)블로킹까지 해주는 프로브도 2~3기가 포함된 병력은 꽤나 압박이었습니다. 러쉬거리에 따라 여기에서 끝나는 저그도 많았고 설령 러쉬거리가 좀 되는 맵이라 할지라도 그당시의 저그가 이걸 버텨내기 위해선 저글링을 뽑고 성큰을 짓는 수밖에 없었는데, 다들 아시다시피 저그는 유닛을 생산하기 위해서 해처리에서 리젠되는 라바가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일꾼인 드론을 생산하는데도 라바가 필요하고, 건물을 짓는데는 드론이 반드시 소모됩니다. 결국 초반 질럿을 막기 위해서 드론을 성큰콜로니에 소모하고 라바까지 저글링에 써버린 저그는 극도로 가난한 상황에 처하게 되고, 프로토스역시 초반 질럿에 자원투자를 했지만 프로토스는 건물을 지을때 일꾼을 소모하지 않고(오히려 워프만 해놓고 다시 일을 할수있으니 제일 효율적이죠),게이트에서 질럿을 소환하는 동시에 넥서스에서 프로브를 생산할 수 있어서 저그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 결국 둘다 가난해졌지만 프로토스가 상대적으로 조금 더 부유해지게 되는겁니다. 당시 12드론 앞마당 빌드를 바탕으로 프로토스를 자원우위와 회전력으로 압살하던 저그를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한거죠.

또한 김동수가 드라군을 뽑지 않은것은 단순히 그가 드라군이라는 유닛을 싫어해서가 드라군 자체가 드럽게 효율이 떨어지는 유닛이고(여기에 대해선 브루드워를 플레이해보신 분들이라면 이의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또 그의 저그전 운영에서 거의 필요 없어서입니다. 저그전에서 드라군의 역할은 저그가 히드라나 럴커 위주의 유닛구성을 했을시 리버나 하이템플러가 충분한 화력을 뿜을수 있게 앞에서 탱킹을 하는것입니다. 하지만 김동수의 운영 하에서 저그는 히드라나 럴커의 대량생산은 꿈도 꿀수 없었으며 고작해야 성큰콜로니로 근근히 버텨내며 무탈리스크를 생산하는것이 전부였죠. 프로토스 입장에서는 상대가 히드라 럴커를 생산하지 않는것이 확실시되었으니, 무탈리스크를 충분히 제압할만한 숫자의 드라군을 생산하는것보다는 그동안 축적해놓은 가스로 아콘을 생산하는것이 훨씬 효율적인 판단이었습니다. 앞서 적었듯이 프로토스도 저그보단 낫지만 어쨋든 2게이트웨이 하드코어질럿러쉬로 시작했으니 가난한 상황이니까요.
컨트롤황제
14/08/08 13:1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王天君
14/08/25 23:06
수정 아이콘
키야....... 마지막이 정말 죽이네요.
장대한 프리퀼 시리즈를 읽는 기분.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이 개봉했을 때 미국인들의 마음이 이러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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