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현업 종사자들조차 심심치 않게 출몰하는 어메이징 PGR이라, 아마추어 한글화를 진행하셨거나, 혹은 진행중이시거나, 혹은 심지어 게임사에서 페이를 받고 한글화를 하시는분도 제가 알기로는 두분이나 계신걸로 알아서, 감히 호랑이 앞에서 주름잡는 꼴이 될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들어서 글을 쓸까 말까 몇번을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바꿔 생각하면 여기 계신 많은 진짜 능력자분들과는 다르게 단순히 영어 번역만 할줄 아는 정말 순수한 아마추어 무능력자 게이머로서 순전히 책임감만 가지고 한글화판 내부 핵심까지 들어갔다가 나왔다는건 어찌보면 더욱 유니크한 경험이기에, 이야기 나누는것이 아예 무의미하지는 않을거 같아서 글을 써 봅니다.
- 어떻게 처음 한글화팀에 참여했나요? -
무슨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냥 한때는 디씨의 문화수도라고 불리던 클린 건전 게시판인 고전 게임 갤러리에서 친목 종자들 틈바구니에 껴서 애써 고정닉을 파고 싶은 유혹을 참고 유동닉으로 찌질대는 아웃사이더일뿐이었습니다. 그때 어쩌다 같이 트로피 헌터 2003이라는 정말 게임 오덕후들 아니면 존재조차 알지 못할 갓-게임을 같이 하던 사람중에 한글화판에서 나름 잔뼈가 굵으신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랑 친해졌다가 그냥 그분이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우연히 제가 재밌게 했던 게임이기에 합류한거에요. 그렇습니다. 저는 현대 사회를 병들게 하는 인맥 낙하산이었습니다.
- 어떤 게임이었나요? -
http://store.steampowered.com/app/3170/
러시아의 Katauri Interactive에서 과거 명작인 '킹스 바운티' 라는 게임을 리메이크한 시리즈로, 이 게임 시리즈 자체는 별로 유명하지는 않습니다만 (물론 아주 듣보잡 게임도 아니지만) 킹스 바운티 시리즈는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의 원형이 된 게임이라, 아마 게임을 모르시는분들도 해보시면 굉장히 진행 방식이나 등장 유닛들이 익숙하실겁니다.
레전드 - 아머드 프린세스 - 워리어 오브 더 노스 - 다크 사이드
이런 저런 확장팩을 거르고 게임 본편은 저렇게 총 4편이 발매되었으며, 이중에 아머드 프린세스까지는 재미를 검증할 수 있으니, 꼭 즐겨보시길 권합니다. 완전 오픈 소스 게임이라 모딩도 쉽고, 나와있는 모드도 많고 좋아요. 다만 4편이 전부 같은 엔진으로 제작되었고, 게임의 기술적 발전이 전혀 없기 때문에, 한번에 다 하시려고 하면 질리실수도 있으니까 참고를... 크크
저는 저 시리즈 4편중에 아머드 프린세스를 진행했습니다. 물론 단순 번역 참여만 한 작품은 저것 말고도 몇개 더 있지만, 매니징까지 한것은 저 게임이 유일합니다.
- 무슨 역할을 했었나요? -
프로젝트 초반부에 제 역할은 그냥 번역 핫산이었습니다. 수많은 번역번역 열매를 먹은 능력자들 틈바구니에서 (분명히 같은 열매는 한종류밖에 없을텐데 이상하게 능력자가 많았습니다? 크크), 몇 없는 저와 비슷한 처지의 열매 능력자가 아닌 일반인들과 함께 열심히 똑바로 서서 스트링 파일을 하나 하나 열심히 번역하는것이 제 의무였습니다.
그러나 진행하다가 생각보다 저만큼 게임을 폐인처럼 열심히 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사실 번역왕들의 초월적인 어학 능력을 고려했을때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게임을 클리어한것도 저를 제외한 극 일부밖에 없었으며, 전작인 '레전드'조차 완벽하게 클리어 하지 않은 분들이 많다는것을 알게 되고, 순수하게 시간이 많아서 폐인처럼 게임을 많이했다는 이유만으로 용어 통합과 검수를 돕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래에서 설명할 트러블이 생겨서 번역 지휘를 하시던분이 본인 기여분을 전부 삭제하고 나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저는 결국 초심자주제에 시간이 많은 노예라는 이유로 번역 지휘와 교정과 사태수습까지 통째로 맡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나중에 번역왕 + 게임왕 + 인성왕 그야말로 완전체 그 자체인 '루나' 라는 분이 오셔서 교정 업무를 전부 가져가주셨고, 결론적으로 작업을 마칠때 저의 최종적인 역할은 [번역 지휘] 였습니다.
//////////////// 본론 ////////////////
- 한글화 작업의 기본적인 진행 방식 -
제가 진행/참여했던 대다수의 프로젝트들은 다음과 같은 흐름에 의해 진행이 되었습니다.
프로그래밍 핫산들이 [게임을 뜯어서 대사 파일을 추출 / 변환해서 분량을 나눠 프로젝트 사이트에 올림]
→ 기간을 정해 번역 핫산들이 각 분량 별로 하나씩 찜을 해서 [초벌 번역]을 해서 올림
→ 초벌 번역을 관리자 핫산(?)들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통해 [1차적으로 용어 통일 / 교정 작업]을 실시함
→ 교정 담당자가 1차 교정이 끝난 파일을 일일히 뜯어서 용어 통일 / 오역 교정 / 오타 수정등의 작업을 실시함
→ ([매크로 프로그램을 통해 맞춤법을 교정하고 1차 베타 테스트용 패치를 제작])
→ (베타 테스트 플레이를 해보고, 제보를 받아서 잘못된 부분이나 오류가 나는 부분을 체크하고 수정)
→ (피드백을 받아서 총합한뒤 총괄, 교정 노예들에게 전달, 2차 교정)
→ 교정이 끝난 대사 파일, 그래픽 노예들이 작업한 그래픽 파일, 자막 파일등을 관리자들이 취합해서 최종 패치 본 제작
→ 내부 베타 테스트 이후 특별히 잘못된 부분이 없이 완성되었다는 결론이 나면 논의한 방식대로 [배포] 시작, 문제 발생시 윗윗칸으로...
- 대사 파일 추출 -
대사 파일 추출 같은 경우 제작사놈들이 어떻게 일을 했냐에 따라 난이도가 천차 만별입니다. 콘솔 게임중에서도 특수한 일부 게임 같은 경우 추출 이후 변환이 안되거나, 혹은 변환 이후 재변환이 안되거나, 재변환시 한글 폰트를 넣기가 어렵거나, 심지어 추출 조차도 빡센! 게임이 있습니다.
다만 PC 게임, 그중에서도 대체로 모딩을 지원하거나 엔진이 공개된 오픈 소스 게임은 대사 파일 추출이 간단한 편입니다. 참고로 킹스 바운티같은 경우는 굉장히 대사파일 추출이 쉬운편에 속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사 파일 자체를 일일히 뽑아서 사이트에 하나하나 올리는것은 대단한 정성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킹스 바운티 아머드 프린세스 (이하 KB : AP) 같은 경우 '호호아점마' 라는 닉을 쓰시던분이 이 작업을 혼자 맡아서 해주셨는데, 이 분의 노고가 없었더라면 다른 많은 핫산들의 노력도 다 물거품이 되었을것입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제가 도울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당시에 저는 모딩에 거의 문외한이라서... 굉장히 아쉽기도 합니다.
- 초벌 번역 -
초벌 번역은 솔직히 작업량이 너무나도 많다 보니 퀄리티보다는 속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1인이나 소수팀 내부 제작등의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면 (1인 제작의 경우 유료 번역 유틸리티를 사용하시는분들이 많습니다) 대체로 PC 게임 번역 같은 경우 초벌 번역 인원은 까다롭지 않은 기준으로 가급적 많은 인원을 받아서 진행합니다.
다만 대체로 이런거 참여 하시는분들은 한정적이라, 소수의 능력자들은 많은 게임의 한글화에 참여해서 별다른 닉네임을 남기지 않고 조용히 엄청난 기여를 하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듣지도 않으신채 사라지고는 하시는데, 굉장히 존경스러운 분들입니다.
[카르, ruluy, 마룬드, 바운티르, 날개언니, 다크마이애즈머, 케빈쌤, 젊은락커,
반달고옴, 여피, peopleyy, 냉면서생, 후니, 엔젤하트, 세한도, 쿠마상, 빛으로,
로켓단, lust4u, 아랑, 무료함, 준혁아빠, 뽕까지마, 후버, 프리맨, 모카부족,
미아, 담드이, cineami, 브리카넬, 듀플러, Raysinzi, 브라운, zodinie, refuse76,
사랑해요, neodre]
KB : AP때 번역에 참여하신분들인데, 단순히 많은 사람을 나열해뒀다고 이분들의 기여가 절대 적은것이 아닙니다. 바쁨에도 불구하고 한두 파일 참여해주신분들도 너무나 감사하며, 저 중에는 번역 지휘를 했던 저보다도 훨씬 더 많은 기여를 하신분도 계시며, 초벌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손대는것이 불경스러운 마음이 들 퀄리티의 프로 수준 결과물을 턱 하고 가져다 주시는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글을 빌어 거듭 고맙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식으로 초벌 번역을 진행하면 가장 많은 트롤링이 발생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일단 초벌 번역에만 참여해도 패치를 남들보다 빨리 구할 수 있으니, 번역기등으로 대충 참여해서 한두문장 번역하는 체리 픽커들이나, 아니면 일단 잔뜩 분량을 맡아놓고 하다가 때려치고 잠수하는 중도포기자들이 생기면 정말로 골치가 아파집니다.
사람을 많이 쓰면 저런 일이 많이 발생하는 대신 속도가 빨라져서 교정할것은 많지만 전체 기간 자체를 좀 파격적으로 줄여서 진행 할 수 있으며, 소수 정예로 진행하면 교정 작업이 별로 할게 없고 쾌적한 대신에 전체 기간 자체는 길어지기 때문에, 그 중간선에서 게임의 대사 분량에 따라 최적화된 숫자를 잘 고려하는것이 초벌 번역을 진행할때의 중요한점입니다.
KB : AP는 위에 보시듯이 약 30~40명 정도의 인원이 참여하였으며, 체리픽커도 중도포기자들도 없이 원활하게 진행된 편입니다. 나중에 번역자로 참여했던 폴아웃 3의 케이스를 생각하면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습니다. : )
- 용어 통일 및 1차 교정 -
아마추어 한글화 작업에서 제일 오래 걸리고 중요한것은 단연 교정입니다만, 교정에 앞서서 교정의 기준이 될 용어 통일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이것을 거치지 않으면 같은 게임인데 용어가 이랬다 저랬다 왔다갔다 해서 유저들이 굉장히 혼란을 겪고 '한글화 완성 개똥이네! 이럴거면 영어로 하고 말지!' 하는 이야기를 하는 원흉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Fire Arrow'의 경우가 대표적으로 초벌 번역을 할때 누군가는 불 화살로, 누군가는 불꽃 화살로, 누군가는 불꽃의 화살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걸 통일하는 작업을 거치지 않으면 분명 원판에선 계속 같은 Fire Arrow인데, 한글판에서는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게 될 수 있겠죠. 이런 용어 통일 같은 경우 한번 '용어 표' 를 작성하면 매크로로 잡아내기 어렵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에, 교정 핫산들이 노예질을 하기 전에 프로그램을 돌려서 한번 잡아주는것이 모두를 위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회사에서 점심 먹을때 메뉴조차 통일하기 어려운것이 사람 심리라서, 여기서도 배포 방식을 결정할때 만큼이나 많은 잡음이 발생합니다. 누구는 Fireball은 파이어볼로 음차하는것이 낫다고 이야기하고, 누구는 블리자드식으로 화염구라고 하는게 낫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논쟁이 서로 양보 안해서 한번 격화되기 시작하면 정말 끝이 없습니다. 누군가에겐 레드 드래곤을 붉은 용으로 부르는것이 이슬람에서 할랄이 아닌 음식을 먹는것만큼이나 불경한 일로 느껴질 수 있다는것을 배우게 됩니다.
KB : AP의 경우에도 'WEREWOLF' 라는 단어의 번역을 가지고 '늑대인간' '늑대인간 엘프' 이 둘을 가지고 싸우다가 핵심 번역 지휘를 하시던분이 이탈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분은 본인의 기여분을 전부 사용하지 말라고 통보 하셨고, 안타깝지만 그분은 충분히 그럴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적지 않은 작업본을 완전히 새로 작업해야 했습니다. 고작 'WEREWOLF' 하나 때문에, 고작 엘프를 붙이냐 마냐 하나 때문에 한국으로 치면 국무총리가 나 안해 하고 사표를 제출한거에요.
생각보다 번역, 한글화 작업에는 자존심 강한 분들이 많이 참여합니다. 한글화가 엎어지고 공개를 포기하는 이유의 5할이 나태라면, 5할은 자존심입니다.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 베타 테스트 -
베타 테스트는 한글화 팀별로 중요시해서 몇번씩 하는곳도 있고, 그냥 한번 대충 하는곳도 있고 천지 차이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 배포하는데 중점을 두는곳은 몇번씩 진행하고, 최대한 빨리 게임이 진행 가능한 결과물을 만들어서 내놓는데 중점을 두고, 일단 공개후 천천히 패치하며 수정해가는 방식을 선호하는곳에서는 한번만 진행하기도 합니다.
베타 테스트 인원 같은 경우 초벌 번역에 참여한 사람들을 최우선으로 새로 외부에서 뽑기도 하고, 그냥 내부에서 돌려가며 진행하기도 하는데, 외부에서 뽑는 경우 99.999999999999999999999999999% 웹하드에 유출되므로, 최근에는 내부에서 진행하는것이 보통입니다. 저는 외부 베타 테스트를 하고 유출이 안된 케이스를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내부에서 진행하면서도 유출이 된 케이스는 몇번 봤지만요. 크크
이 베타 테스트 과정에서 빨리 한글판을 얻기 위해 대충 참여한 체리픽커들은 자취를 감춥니다. 이제 그분들은 게임하러 가셔야 되거든요. 그래서 참여 인원이 갑작스럽게 줄어들고는 하는데, 굉장히 맘이 아픕니다.
KB : AP의 경우 최종 베타 테스트를 제외하고는 아마 특별한 베타 테스트를 거치지 않고 그냥 자주 테스트를 거친걸로 기억합니다. 이 게임은 그때 그때 번역 진행할때마다 게임에 반영시키기가 굉장히 쉬워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래서 유출될일도 없었구요 : )
- 그래픽, 자막, 사운드등의 작업 -
이것은 능력자들을 섭외하는 수뇌부와 섭외된 능력자들에 의해 진행되는것으로, 저같은 단순 번역 노예들이 특별히 참여할 부분은 없습니다. 다만 KB : AP의 경우 그림 파일과 오프닝 동영상 자막 작업 정도말고는 특별히 작업할게 없는 게임이라서, 내부 교정 인원들이 배워가며 진행했었는데, 생각보다 그럴싸한 퀄리티가 나와서 서로 굉장히 기분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크크
에뮬레이터 게임 같은 경우 이 작업이 컬러와 해상도, 조화등을 고려해야 해서 배로 귀찮아지는데, 에뮬 게임 그래픽 작업까지 한글화를 해준 팀의 경우 정말 대단한 노고를 하시는거라고 생각되네요.
- 최종 교정 -
특정 게임의 경우 이 작업만 몇달이 걸리기도 하는 등, 늘어지면 끝도 없는 부분입니다. 용어 통일, 1차 교정으로 잡아내고 베타 테스트로 피드백이 들어온 부분을 고려해 개개의 부품이 모여서 그럴싸한 하나의 작품이 되는 과정으로, 대부분의 관리자 핫산과 교정 핫산 일부 능력자 번역 핫산등이 이 과정에 모두 참여를 하는것이 보통입니다.
한글화팀에서 분명히 번역률 99% 라고 해놓고 패치 공개를 안한다? 이거 하고 있는 중인 경우가 90%입니다. (10%는 배포 방식 가지고 싸움이 난 경우)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중 대부분은 '아 그냥 한글이기만 하면 되지 퀄리티가 그렇게 중요함?' 이라고 생각하시지만, 일단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래도 시간 써서 만든 작업물이 좀 그럴싸하고 멋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어디가서 "KB : AP 한글화 매우 후짐"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서 게임내 전반적인 모든 파일을 원시적, 첨단적인 방법을 통털어서 검토하고 또 검토합니다.
KB : AP의 경우도 이 과정이 굉장히 오래 걸렸는데, '루나' 라는 능력자분이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저와 저를 꼬신 고갤러는 정말 지옥을 맛보았을것입니다. 이탈하신분이 이쪽 작업에 능통하신분이라 더더욱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었던 기억이 나네요.
- 배포 -
배포 방식의 경우 한글화 작업내내 어떻게 할지에 대해 다같이 의논하는데, 의견은 크게는 다음 세가지로 분류됩니다.
1. 걍 배포하지 말고 우리끼리 하자 <- 의외로 엄청나게 많이 나오는 의견
2. 머리를 굴려서 2차 웹하드 유포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한정적으로 배포하자
3. 그냥 마음을 비우고 완전 공개를 하자
KB : AP의 경우 저는 번역 내내 3번 입장을 고수했고, 애초에 주동자 자체도 고갤러라서 3번으로 결론이 났지만, 2를 주장하시는분들 주장도 일리는 있었습니다. KB : AP도 인기 게임은 아니지만 한글화 된 게임을 올려서 누군가가 웹하드에서 번 캐시가 다 합치면 대충 1000만원 정도는 되지 싶고, 게임값으로 환산하면 억 단위가 될지 모르는 불법이 일어난건데, 꼭 우리가 1000만원 어치의 불법에 동조한 사람들이 되는거 같은 기분이라서...
다만 저와 주동자 고갤러는 한글화부심등 작업물에 부심을 부리려면 애초에 유저들에게 기대를 하게 하지 말고 몰래 해서 우리끼리 즐겨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잔뜩 작업한다고 약올려 놓고 메롱 공개 안함 이런 행위를 하는것에 원래부터 극도로 혐오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1번은 논외가 되었고 2번을 할 방법도 딱히 떠오르지 않아 완전 공개를 했었습니다.
2번의 경우 현재 한글화팀등에서 사용하는 방법은 몇가지가 있는데
- 카페에 본인 인증을 하면 그 사람용 파일을 따로 만들어 누가 유출했는지 추적 가능하게 만들어서 보내줌
- 애초에 번역한 홈페이지에서 인증을 받지 못하면 사용하지 못하게 만듦
- 미완성 작업본을 먼저 완전 공개하고 일장 시간 기다렸다가 그 사이 유출시 완성본은 공개 안함
그러나 어떤 방법을 써도 풀릴 패치는 다 풀리며 우리는 웹하드와 토렌트 사이트에서 금방 별 문제 없이 한글판을 구할 수 있습니다.
- 뒷 이야기 -
이후 한글화 카페는 KB : AP의 게임 카페로서 잘 돌아가다가, 디사이플스 3의 한글화를 추진하려는 고갤러의 작업이 엎어지고, 어찌 저찌 크로스 월드 발매 이후 한글화를 하니 마니 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맘때쯤에 제가 신변에 큰 변화가 생겨 1년 6개월간 인터넷을 끊게 되면서 한글화 카페와의 인연이 끊어지는데, 크로스 월드 한글화를 진행을 못하고 그렇게 된게 아직도 내심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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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언어의 문제로 인해 원하는 게임을 즐기지 못하는것이 게이머로서 겪는 경험중에 가장 큰 안타까운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내가 꿈꾸던 그런 게임이 발매됐는데, 한글화를 안해준다? 지금이야 영어 할줄 아니까 괜찮다고 쳐도 어릴때는 절망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일본어나 중국어만 지원하는 게임의 경우 애써 손가락만 빨며 아 나도 저 게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안타까워 하고는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나 지금이나 아마추어 한글화를 진행해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정말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한글화 하나를 그래도 매니징까지 하면서 끝낸 이전에도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생각입니다.
또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 어렵게 작업한 작업물이 웹하드 등지에 올라와서 누군가의 부당한 돈벌이로 쓰이고, 유린되는것을 싫어하는 작업자들의 마음도 누구보다 깊게 이해하며, 마음 아픈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원판만 올리고 한글 패치는 링크만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많은 인간중 누군가는 나쁘고 편한 길을 택하고 싶어할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애초부터 감수하고 시작한 일이라면, 그 사유 때문에 번역을 엎거나, 공개를 포기하는것은 또한 마찬가지로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아직도 가끔 블로그나 게임 사이트 등지에서 KB : AP를 한글로 즐기고 재밌었다고 하는 같은 게이머들의 글을 보면 기분 좋고 뿌듯합니다. 그리고 이 뿌듯함만으로도 당시 1년에 가까운 시간을 잠과 수업후 일과까지 포기해가며 시간을 바친데에 대해 '미련한 짓을 했다' 거나 '무의미한 짓을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본문에는 친숙한 용어라서 한글화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한글화는 틀린 표현이라고 하죠. '한국어 번역'을 하고 계시는, 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다시금 감사하며, 여러분의 노고덕에 저와 많은 게이머들이 즐겨운 경험을 했고, 웹하드에서 단돈 몇푼짜리 불법 행위에 여러분의 노력물이 굴러다닌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결과물을 즐기며 많은 게이머들이 얻어갈 행복까지 훼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유통사들에게 아마추어 한글화가 해가 된다거나 하는 의견도 있어서 앞으로 아마추어 한글화판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많은 공식 한국어 번역이 되지 않는 구작 / 신작들을 한국어로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