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older
[bihóuldər] n.
보는 사람, 구경꾼(onlooker).
비홀더(Beholder)는 지난 11월에 출시된 복합장르의 게임입니다(실시간 전략 RPG 어드벤처 생존 게임......).
스팀을 통해 구입해서 즐겨 보았고, 얼마 전에 다시 한번 플레이해본 소감 및 어쭙잖은 리뷰를 작성해보려 합니다.
한글화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짧은 영어로 플레이가 쉽지는 않았지만, 꽤 수작이라 생각되어 소개해 봅니다.
사실, 이 게임은 제 정신력으로 버티기 어려운 게임이었습니다. 분명 뭔가 엄청 몰입되고 재미있는 게임이긴 한데,
게임에서 요구하는 것과 게임이 주는 분위기가 사람의 혼을 빼놓습니다......네, 제 멘탈이 약해서 그런 것 같네요.
게임의 배경은 독재 정권이 나라를 움켜쥔 디스토피아(Dystopia)로, 권력층이 모든 시민의 삶을 관찰하고,
독재자가 정한 법에 저촉되는 행동을 하면 처벌을 받는 세상입니다.
그래픽 자체도 어두컴컴하고, 캐릭터들도 새까맣고, 음악도 음울한 게, 그런 세계관을 잘 반영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주인공 칼(Carl)은 아내와 아들, 딸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임과 동시에, 한 아파트의 관리인으로 임명되어
아파트 내에 사는 모든 주민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권력층의 눈, 손, 발이 되는 것이지요.
게임의 오프닝에서 나오듯, 주인공은 특수한 약을 복용함으로써 잠도 안 잘 수 있게 되고,
그로 인해 매일 24시간 주민들을 감시할 수 있게 됩니다.
주민들을 몰래 훔쳐보고, 집이 빈 사이를 이용해 몰래 들어가 수색을 하며, 카메라를 설치해서 감시하고, 그 결과들을 윗선에 보고합니다.
어떤 주민이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등......
그렇게 함으로써 돈과 신용을 얻어 권력으로부터 생존을 해나가는 게임입니다.
권력층은 플레이어에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정당한 명령을 하기도 하지만, 매우 부당한 명령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게임이 진행되면서, 주인공은 권력층에 대항하는 저항 세력 또한 만나게 됩니다.
그 둘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게임 엔딩 결과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죠(물론 그 전에 게임 오버가 될 수도 있고요.).
이 게임에서 사용되는 자원은 ‘돈’과 ‘신용 점수’입니다.
돈은 통상 다른 게임에서 사용되는 것과 비슷하게, 아이템을 사거나 퀘스트에 필요하곤 합니다.
신용 점수는 권력층 또는 주민들로부터 얼마나 신용을 받는지에 대한 점수인데 이를 소비함으로써 감시 카메라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돈을 버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주민들을 감시하여 주민들의 특성을 제대로 보고하면 보상으로 돈을 받습니다.
둘째, 법을 어긴 주민을 신고하면 그 주민은 체포되고 주인공은 보상으로 돈을 받습니다.
셋째, 법을 어긴 주민에게 협박(Blackmail) 편지를 쓰면 그 주민이 화분 밑에 몰래 큰돈을 숨겨놓아 주인공에게 바칩니다.
물론 그 주민은 협박 편지를 쓴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걸 모릅니다.
그 외 여러 퀘스트를 통해서 돈을 얻기도 합니다.
신용 점수는 주민들이 제공하는 여러 퀘스트를 통해서 얻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게임 진행상, 플레이어는 돈을 사용하여 신용 점수를 얻는 선택을 많이 하게 됩니다.
주민들을 감시하기 위해서는 감시 카메라가 거의 필수이고, 감시 카메라는 신용 점수로만 구입할 수 있으므로 중요한 자원입니다.
게임이 시작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법령이 하나씩 선포됩니다.
기본적으로 ‘범죄를 행하거나, 그것을 감싸는 행위 금지’가 처음부터 주어집니다.
첫 번째로 선포되는 법은 ‘정치 선전을 하거나 정치적인 포스터를 만드는 행위 금지’(의역했습니다.)인데,
독재자가 지배하는 세계니까 어느 정도 수긍할만합니다.
두 번째로 선포되는 법은 ‘마약과 같은 약품을 제작하거나 복용하는 행위 금지’이고 이 또한 그러려니 생각할 만합니다.
세 번째부터가 어이없는데, 선포된 법이 ‘사과(apple) 소지 금지’입니다. 무슨 이유인지 가르쳐주지도 않습니다.
그저 수령께서 정했기 때문에 사과를 소지하거나 먹는 행위는 법에 어긋나게 됩니다.
이 세계에서는 ‘마약을 하는 것’과 ‘사과를 소지하는 것’이 동급의 범죄로 여겨져, 감옥행을 가는 똑같은 처벌을 받습니다.
이러한 법령을 기반으로, 주민들이 법에서 금지한 물품을 가지고 있는지, 금지된 행동을 하는지를 감시하는 게 주인공의 주 역할입니다.
앞서 사과 관련 법령을 예로 들었듯이, 금지 물품이나 금지 행동들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아무런 위험 요소가 안 되는 것들이
대다수입니다(아닌 것도 있습니다).
청바지, 파란색 넥타이, 80년대 음반, 외국 소금 등의 물품들이 단지 독재자가 금지했다는 이유로 소지가 불법이 되는 것이지요.
또한, 눈물을 흘리는 행위가 법으로 금지되기도 하는데, 아내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그녀를 신고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네, 무서운 게임이죠.
그런데 이 게임의 가장 무서운 점은, 이러한 비현실적인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꽤 현실적으로 ‘원인과 결과와 책임’을 바탕으로 게임이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게임 초중반에 주인공의 딸이 병에 걸려 막대한 치료비가 필요한 상황이 옵니다.
착하고 선량한 시민들의 집에 불법 물품(사과 등)을 몰래 놔두고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는 등의 행동을 함으로써,
딸을 살리는 게 과연 옳겠냐고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묻습니다.
그 외 양심상 할 수 없을 것 같은 여러 일을 권력층이 계속시키는데, 이를 따르는 척만 하고서 위험 부담을 안고 저항 세력에게 협조할지,
아니면 권력의 개가 될지를 선택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가족의 안위도 돌봐야하는 가장이기 때문에, 선택이 쉽지 않습니다.
실시간 게임이라는 점이 플레이어에게 더 큰 압박감을 들게 하고(물론, 게임 일시 정지 버튼이 있지만요.),
자동 세이브가 되지만 원하는 때에 세이브를 할 수 없다는 점 또한 선택에 있어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퀘스트 시간은 다가오고, 돈이 부족한데 결정은 해야 하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이러한 상황들이 플레이어의 멘탈을 깨뜨립니다.
게임 특성상, 첫 번째 플레이에서는 이 망할 놈의 세상으로부터 쓴맛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선택에 대한 결과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저는 첫 번째 플레이에서 주인공의 딸, 아들, 아내를 모두 잃었습니다......
슬프더라고요. 게임은 즐겁기 위해 하는 건데 말이죠.
현실 세계에서도 ‘책임’이라는 것의 중압감이 큰데, ‘게임에서조차 이렇게 스트레스받아야 하는 건가’하는 회의감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게임은 계속 곱씹게 되는, 다시 도전하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게임입니다.
마지막 플레이에서는 가족들 모두와 함께 다른 나라로 몰래 이민을 가 그곳에서 행복하게 사는 엔딩을 보게 되었네요.
다른 엔딩은 어떤 것이 있을지 좀 더 플레이해봐야겠습니다.
게임 인터페이스에 관해 이야기를 하자면, 인터페이스 구성 자체는 편하게 되어있긴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불편함도 많이 느껴집니다.
주민들이 사는 집의 문과 수색할 가구들이 작은 편이라 클릭하는 게 쉽지 않고, 취소 버튼이 따로 있지 않아서,
원하는 대로 조작이 힘들기도 합니다.
선포된 법령이 많아졌을 때 살펴보기 위해서 마우스 휠로 노동을 해야 한다는 점도 단점인데,
실시간 게임이기 때문에 법령의 코드 번호를 외우는 게 수월하게 게임을 진행하는 방법이겠네요.
플레이하는 사람에 따라, 보는 관점에 따라, 그저 즐기는 게임이 될 수도 있고, 생각하고 느낄 만한 것이 많은 게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비홀더, 추천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