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브나 공작령을 점거하기 위해 군을 이끌고 출진하는 길.
병색이 완연하게 드러나는 낯빛을 한 콘스탄티누스는 장남, 마누엘과 함께 나란히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마누엘.]
[예, 아버지.]
[너는 콘스탄티노플로 향하자는 이 아비의 생각에 반대했었지.]
콘스탄티누스는 떠올렸다.
독감으로 쓰러지기 직전, 콘스탄티노플을 치고 찬탈자들로부터 정당한 황위를 되찾겠노라고 선언했을 때 유일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냈던 이가 바로 마누엘이었음을.
마누엘은 자신을 다소 책망하는듯한 아버지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소자는 그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여겼을 뿐입니다. 아버지께서 불세출의 영웅이시기는 하나, 한 손이 열 손을 이길 수는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한 손이 열 손을 이길 수는 없다?]
[예. 아버지께서도 익히 잘 아시겠지만, 초원의 인구는 적습니다. 반면에 찬탈자들이 차지한 기름진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수는 수십 배 이상이지요.]
[으음...]
[지금 우리가 출진한다면 몇 차례의 회전에서 승리하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공성전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군이 적의 성벽을 넘지 못하는 사이에 적병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온다면, 결국 우리는 패배하게 될 것입니다.]
마누엘은, 냉정한 현실을 말하고 있었다.
이대로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했다가는 그저, 테오도시우스 삼중 성벽을 넘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진 숱한 부족들과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음을.
콘스탄티누스는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 그럼 너는 어떻게 할테냐.]
[서쪽으로 향할 것입니다.]
[서쪽이라...]
[서쪽에는 광활한 목초지가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사람을 모으고, 병력을 늘려야지요. 다시금 일어날 수 없게끔, 적의 팔다리를 단박에 짓이겨놓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말입니다.]
[어쩌면 너의 대에서조차, 콘스탄티노플을 되찾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마누엘의 생각을 들은 콘스탄티누스의 목소리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나왔다.
익히 잘 알고 있었다. 마누엘의 성품이 진중하고, 착실함을 추구함을.
따라서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 판단하면 결코 콘스탄티노플을 넘보지 않을 것임을.
그러나 어렴풋이 짐작하는 것과, 이렇게 직접 입으로 전해듣는 것은 의미가 달랐다.
평생토록 온 힘을 다해 이루고자 했던 자신의 의지가, 마누엘에게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던 것일까.
그때였다.
[아버지. 아버지의 꿈은, 아버지 한 분만의 것이 아닙니다.]
마누엘은 상심한 아버지를 위로하듯, 입을 열었다.
[아버지의 꿈은 제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니면 저와 아버지의 핏줄인 누군가가 다시 못다한 꿈을 이어받겠지요. 꿈은, 영원할 것입니다. 우리 가문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꿈은, 영원하다라...]
문득, 콘스탄티누스의 머릿속에 아버지, 티베리우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에게 가문의 숙원을 남기고 떠난 아버지의 심정이 지금 자신의 심정과 같았을지.
[그래. 너만을 믿겠다. 나의 아들, 마누엘이여.]
어차피 자신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이 없는 미래에 가능성을 걸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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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에 걸려 사경을 헤메는 콘스탄티누스에게 궁중사제 겸 궁중의사인 타우스가 다가와, 한 가지 건의를 올립니다.
[궁중사제 겸 궁중의사 타우스 : 카간의 병환을 치유할 방도를 찾았습니다. 다만 이 치료법을 행하기 위해서는 귀한 약재들로 실험을 해봐야 할 듯 합니다만, 혹여 지원을 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사신의 수확 DLC에서 추가되어 랜덤하게 발생하는 이벤트입니다.
학식이 두 자리수이고, 궁중의사 직을 맡고 있는 캐릭터가 의학 연구 지원을 요청하는데, 이를 수락하면 높은 확률로
[저명한 의사]라는 트레잇을 달게 됩니다. 궁중의사가 이 트레잇을 달고 있는 경우, 플레이어가 병에 걸렸을 때 성공적으로 치료할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는 점에서 해볼만한 투자입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해, 급한 콘스탄티누스는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타우스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한편, 콘스탄티누스의 궁정에 머무르고 있던 바그라티오니 가문의 방계가 군사를 이끌고 아르메니아로 향합니다.
[바그라티오니 가문의 아비라드 : 저는 제 정당한 자리를 되찾기 위해 떠납니다. 부디 보중하십시오, 카간.]
급성 독감이 콘스탄티누스를 습격한지 1년.
지난 1년간,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육신을 망가트린 독감이 남긴 후유증과 치열하게 싸웁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 비록 낫기는 하였으나, 몸이 예전 같지는 않다.]
병상에서 일어났으나,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결국 콘스탄티누스가 택한 길은 콘스탄티노플로의 진군이 아닌, 내실을 기하는 것.
먼저 그는 병력을 동원해, 흑해 무역 루트를 통해 막대한 이득을 거두고 있는 로마의 거점, 케르손을 습격합니다.
[콘스탄티누스 : 케르손의 재화는 우리 가문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모조리 쓸어담아라!]
마찬가지로, 오리엔트와의 무역에서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있는 조지아의 해안가를 습격합니다.
[콘스탄티누스 : 아직 찬탈자의 무리는 내전으로 정신이 없다. 이 틈을 잘 활용해야지.]
한편, 봉건화된 불가르 족의 영지를 빼앗아 불태운 다음 목초지로 만드는 작업 또한 병행합니다.
봉건정 봉신은 어차피 많이 거느리고 있어봤자 별로 도움도 안 되니, 이 참에 정리하고 가야죠.
[콘스탄티누스 : 그대들 이단의 영지를 빼앗아 목초지로 삼겠다. 불만이 있다면, 어디 한 번 저항해보도록.]
독감에 시달렸을 때 의학 연구에 투자금을 보태줬던 타우스는, 성공적으로 연구를 마치고 저명한 의사로 거듭났습니다.
[궁중사제 겸 궁중의사 타우스 : 카간 덕분에 나름의 성과를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타우스의 성과는 곧, 늦둥이로 태어난 병약한 딸을 살려냄으로서 그 빛을 발합니다.
[콘스탄티누스 : 오오, 연구를 지원한 보람이 있구나!]
플레이어의 궁중 의사가 학식이 매우 높거나, 저명한 의사 트레잇을 달고 있을 경우, 병약함 달고 있는 아이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신의 수확 DLC에서 추가된 사항으로, 이를 통해 병약함과 천재 동시에 달고 있는 아이가 요절한다든지 하는 비극을 최대한 줄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딸이 새로운 생명을 얻은 반면에, 콘스탄티누스의 건강은 다시금 악화일로를 걸으니...
[콘스탄티누스 : ...특별히 뭘 하지도 않았는데 심신이 피로하구나.]
처음에는 가벼운 피로감으로부터 증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기력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점차 쇠해졌습니다.
결국 타우스를 불러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게끔 한 콘스탄티누스.
[궁중사제 겸 궁중의사 타우스 : 암입니다, 카간. 이미 손으로 만져질 정도로 덩어리가 커졌군요.]
[콘스탄티누스 : 암이라. 그대가 보기에, 내가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 것 같은가?]
[궁중사제 겸 궁중의사 타우스 : ...길게는 1년 반에서 2년, 그 이상은 무리입니다.]
[콘스탄티누스 : ...알겠네.]
현대에도 암이 어느 정도 이상 진척되면 살아남기 힘듭니다.
하물며 의학이 제대로 발전하지 않은 이 시기야 오죽하겠습니까.
예정된 죽음을 선고받은 콘스탄티누스는 그나마 주어진 수명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시술을 받습니다.
[콘스탄티누스 : 고맙네, 타우스. 덕분에 몸이 많이 편안해졌어.]
위 이벤트 역시, 사신의 수확 DLC에 추가된 이벤트입니다.
첫번째 스샷에서, 첫 선택지는 실험적인 의료 시술을 받는 겁니다.
이 선택지를 고르면 높은 확률로 질환을 회복, 혹은 '성공적인 시술을 받음'이라는 모디파이어를 달 수 있습니다.
다만, 말 그대로 실험적이기 때문에 치명적인 부상과 함께 팔이나 다리가 날아갈 수 있고, 심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두번째 선택지는 아는대로, 확실한 치료법만 시행하라는 선택지입니다.
이 선택지를 고르면 궁중의사는 부작용이 없는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아 시행하게 됩니다.
따라서 궁중의사의 학식이 높다면, 두 번째 선택지가 제일 안정적입니다.
다만 학식이 낮은 궁중의사의 경우에는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세번째 선택지는 무섭다는 이유로 모든 치료법을 거부하는 이벤트입니다.
증상이 심해지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병증이 낫지도 않습니다. '겁쟁이' 트레잇을 달 확률도 존재하고요.
후계 문제로 현재 플레이하고 있는 캐릭터를 죽이거나 하고 싶지 않는 이상에야 누를 일이 없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첫 번째 선택지를 골랐습니다.
다행히, 두 번째 스샷에서처럼 최고의 결과가 나왔네요.
물론 암은 달고 있는 한 꾸준히 건강을 깎는 트레잇이기 때문에, 시술을 잘 받아도 반드시 살아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암 치료를 받는 사이, 그의 영토를 향해 대대적인 침공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 바랑기안 근위대의 대장, 스툴라가 여길 넘본다라.]
콘스탄티누스는 조용히 그를 제거할 계획을 실행합니다.
[콘스탄티누스 : 마누엘에게 무거운 짐을 남기고 떠날 수는 없다. 끝낸다면 내 손으로 끝내야지.]
마누엘의 앞날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준비하는 계책은 치밀하고, 위력적이었습니다.
[바랑기안 근위대의 대장 스툴라 : 멈춰! 멈추란 말이다! 저 앞은 절벽... 끄아아악!]
[콘스탄티누스 : 어차피 지옥에 떨어질 몸, 한 사람 정도 더 데리고 간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지난 전쟁 경험을 살려서 공성전의 요체에 대한 기록을 남깁니다.
[콘스탄티누스 : 결국 로마를 되찾기 위해서는 성벽을 넘을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이 흘러, 808년 12월.
알라니아의 군대가 남쪽을 향합니다.
목표는 최근 세르비아 왕국이 불가리아 왕국을 멸망시키고서 차지한 영토, 카르브나 공작령.
[세르비아의 왕, '장님왕' 라도슬라브 : 콘스탄티누스가 침공해왔다고? 크으...!]
전투는 신속하게 진행됩니다.
성을 포위하는 일 없이, 개량된 공성 전술로 직접 성을 공격해가면서요.
[콘스탄티누스 : 전군, 성벽을 넘어 적을 섬멸하라!]
순식간에, 콘스탄티누스는 세르비아 왕의 패배 선언을 받아냅니다.
[콘스탄티누스 : 나의 마지막 싸움이... 드디어 끝났구나.]
이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은 어린 장손과 함께 하기로 합니다.
[유스티니아누스 : 할아버지, 헤라클리우스 폐하의 이야기 다시 한 번 들려주세요!]
[콘스탄티누스 : 그래, 그러자꾸나. 우리들의 선조, 헤라클리우스 폐하가 어떤 분이셨냐 하면...]
그리고 809년 11월 12일.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게르에서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콘스탄티누스 : 꿈은... 영원하리라...]
아버지, 티베리우스로부터 알라니아를 물려받을 당시에는 세력이 미약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우콸리드 일족의 압도적인 대병력을 뛰어난 전술로 무찌르면서,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아르메니아 왕국으로부터 조지아 지역을 탈취, 주가(主家) 아시나 가문으로부터 독립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간은 확대 일로를 걸으며 대세력으로 성장, 말년에 이르러서는 콘스탄티노플을 노리나 수명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가문의 숙원을 끝내 이뤄내지 못한 채로 숨을 거두니, 그의 나이, 향년 64세.
비록 로마의 제위를 되찾지는 못했지만, 알라니아의 약소 세력에서 출발하여 대초원의 패자로 자리매김한 그의 위업은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이제, 콘스탄티누스의 시대는 끝나고 마누엘의 시대가 왔습니다.
아버지와는 달리, 콘스탄티노플 공략에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마누엘.
그의 행보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다음 화를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