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우리아 가문이 로마 황제의 자리를 차지한지도 어언 백 년.
시작은 미약했다. 이사우리아 가문의 초대 황제, 레오 3세는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으니까.
그러나 레오 3세가 뛰어난 외교술과 책모로 로마를 안정시키면서, 또한 사라센의 침공을 여러 차례 막아내면서, 이사우리아 가문의 황가로서의 입지는 반석 위에 올라섰다. 로마를 혼란과 위기에서 구해낸 구원자로서의 명성과 함께.
성상 숭배를 괴이하게 여기던 황가가 수십 년간 성상 파괴를 주도하면서, 로마 전역이 어수선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이러한 어수선함은, 이사우리아 가문이 황가로서 누리는 영광과 권세를 위협하기에는 턱없이 미약한 것이었다.
레오 3세 이후, 황좌의 주인은 세 번 바뀌었다.
그리하여 이번 대에 로마의 황제로서 뭇 로마인들 위에 군림하는 이는 레오 3세의 손자, 에우도키모스.
에우도키모스에게는 요즈음, 좀처럼 내려놓기 힘든 고민거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바로, 최근 다뉴브 강 너머 대초원 일대의 패권을 장악한 헤라클리우스 가문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것.
현재 헤라클리우스 가문에 대한 로마의 공식적인 입장은
[같은 신앙을 공유하며, 옛 황가의 혈통을 참칭하는 야만인].
그러나 현 황제 에우도키모스를 포함해, 로마의 수뇌부들은 모두 진실을 알고 있었다.
헤라클리우스 가문이 진짜로 옛 황가의 핏줄이며, 잃어버린 로마의 황제 자리를 되찾길 염원한다는 것을.
불과 십 년 전만 하더라도, 헤라클리우스 가문의 세력은 그리 위협적이지 못했다.
헤라클리우스 가문이 세력을 키우고 있다고는 하나 그들에 비견되는 세력 또한 여렷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그들은 어느새, 로마와 일대결전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고 말았으니.
어떻게 하면 헤라클리우스 가문의 진군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사우리아 가문의 황가로서의 지위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고민해도, 에우도키모스에게는 마땅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막대한 피해를 각오하고서라도 헤라클리우스 가문을 향해 칼을 뽑아드는 것 이외에는.
[...결국, 싸울 수 밖에 없겠구나.]
자줏빛 법복을 지켜내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기 위해 노년에 접어든 황제, 에우도키모스는 결연히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먼저 나서서 적을 꺾겠다는 그의 시도는, 연이어 터져나온 반란으로 인해 하염없이 뒤로 미뤄지게 되었다.
그리고...
----------
지난 화에서 마지막으로 전쟁 선포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끝낸 바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전쟁 명분으로
[Invasion of Greece]를 선택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유목정의 특징이 드러나는데요, 여타 정치 체제와는 달리 유목정은 조건만 갖춰지면 왕국령 타이틀을 걸고 인베이전을 횟수 제한 없이 시행할 수 있습니다. 준비 시간이 필요하고 1대에 단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인베이전 명분을 통해서만 왕국령 전체를 집어삼킬 수 있는 바이킹, 그리고 혼인을 통해 클레임을 얻지 않는 한, 혹은 교황을 어지간히 구워삶지 않는 한 왕국령 단위의 전쟁 명분 획득이 힘든 봉건정에 비교해 봤을 때는 가히 사기적이라고 할 수 있죠.
다만, 해당 명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인구 수가 3만이 넘어야 하고, 최대 수용 가능 인구의 75% 수준으로 인구 수가 차 있어야 합니다. 대초원의 거의 대부분을 장악하지 않고서는 활용하기 힘든 명분이지요. 그러나 이 명분이 사용 가능한 상태가 되었을 때, 그렇지 않아도 빠른 유목정의 확장 속도는 더욱 더 무시무시하게 빨라집니다. 병력과 수명이 갖춰지기만 하면 과장해서 1대 안에 전 유럽을 석권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명심하셔야 할 것이, 유목정의 인베이전은 왕국령 타이틀을 빼앗아오지 않습니다. 다만 부술 뿐이지요.
유목정으로 인베이전을 통해 특정 왕국령을 모두 차지하게 될 경우, 해당 왕국 내 공작 이상 모든 타이틀이 파괴됩니다.
전쟁을 선포한 마누엘은 다뉴브 강을 건너,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합니다.
로마의 주력이 반란군 제압을 위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빠르게 말을 몰아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한 마누엘.
[마누엘 : 전군, 콘스탄티노플로 향하는 모든 길목을 차단하고 포위하라.]
그러나 콘스탄티노플 포위는 어디까지나 적 병력을 전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입니다.
테오도시우스 삼중 성벽에 의해 보호받는 콘스탄티노플은, 지금 단계에서는 섣불리 넘볼 수 없는 도시이니까요.
로마의 병사들이 콘스탄티노플의 위기를 듣고 달려오길 기다렸다가 각개격파하는 편이 오히려 더 효율적입니다.
결국 겉으로만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고 있을 뿐, 실은 적병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마누엘에게 먹잇감이 다가옵니다.
[마누엘 : 성급하구나. 마음만 급하다고 하여 다가 아니거늘.]
먹잇감은, 마누엘의 기마대에 의해 삽시간에 갈려 나갑니다.
아나톨리아에서부터 마르마라 해를 건너 정말 먼길을 달려왔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섬멸당하고 마네요.
이렇게 두세 차례 로마의 병력을 끊어먹자, 인근에는 더 이상 콘스탄티노플을 구원할 여력이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아무리 높고, 견고하다고는 하나 단지 그 것뿐, 시민들은 이미 저항할 의지를 상실하였습니다.
결국 테오도시우스 성벽 위로는 항복을 뜻하는 백기가 내걸리고...
[마누엘 : ...아버지, 제가 드디어 해냈습니다.]
아버지, 콘스탄티누스가 그토록 밟고 싶어했으나 끝끝내 밟아보지 못한 곳, 콘스탄티노플에 들어서는 마누엘의 심경은 남달랐습니다.
대초원에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가문의 숙원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게 될 줄은...
하지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찬탈자의 우두머리, 에우도키모스가 이끌고 간 로마의 주력 병력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되돌아오고 있었으니까요.
[로마의 황제 에우도키모스 : 여기서 저 야만인들의 보급로를 끊는다. 그리하면 저들은 하는 수 없이 이쪽으로 말머리를 돌릴 터. 그리되면 내 원하는 자리에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일전을 벌일 수 수 있겠지. 그때를 노린다.]
에우도키모스는 바랑기안 근위대를 포함, 잔뜩 끌어모은 병력을 이끌고 카르브나에 진을 칩니다.
로마의 최정예 병사들이 초원의 야만족 무리 따위에게 지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자신감의 발로였을까요.
마누엘은 갓 점령한 콘스탄티노플을 나서서, 에우도키모스가 바라는대로 카르브나로 향합니다.
그리하여 시작되는 결전.
[바랑기안 근위대 병사 : 바, 방패벽이 뚫린다...!]
[마누엘 : 쉬지 않고 활시위를 당겨라! 적의 방진을 무너뜨린다!]
중앙을 맡은 로마의 최정예, 바랑기안 근위대는 후위에 있는 궁병대의 지원 사격을 받는 가운데 방진을 짜고 전진합니다.
그러나 마누엘의 궁기병대는 이를 농락하기라도 하듯이 바랑기안 근위대의 방진을 교란, 적 병력을 차근차근 손상시킵니다.
바랑기안 근위대조차도 적의 기동성에 휘둘리기에 급급한 전장.
좌, 우익의 상황 또한 로마 군 입장에서는 결코 녹록하지가 않습니다.
결국,
[마누엘 : 적의 주력을 무너뜨렸다! 모두 끝까지 쫓아가 섬멸하라!]
카르브나의 로마 군은 마누엘의 군대에 의해 철저하게 무너지고 맙니다.
이 싸움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잔존 병력은 인근 지역으로 후퇴.
그러나 헤라클리우스 가문의 군세는, 이들이 무사히 살아 돌아가는 것을 끝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저항할 힘이 사라진 로마 황제 에우도키모스는,
[로마 황제 에우도키모스 : ...이코니움으로 물러나겠다. 그곳에서, 콘스탄티노플을 탈환할 방도를 세우겠다.]
콘스탄티노플과 니케아를 포함한 로마 주요 도시의 방어를 포기하고, 아나톨리아 내륙의 이코니움으로 물러납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한 이래로, 로마가 콘스탄티노플을 완벽하게 상실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로써 마누엘은 아버지, 콘스탄티누스가 끝내 이루지 못했던 꿈, 콘스탄티노플 탈환에 성공합니다.
인베이전이 끝난 후, 그리스 왕국 데쥬레 내부는 보시다시피, 공작령이 모조리 다 박살난 상태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봉신 제한에 여유가 거의 없어지고 말았네요. 그렇지 않아도 봉신 한계가 10 깎이는 유목정으로서는 꽤 치명적입니다.
유목정 봉신은 봉신 한계에 카운트되지 않기에 별 상관이 없지만, 봉건정 봉신은 봉신 한계에 카운트되므로 관리해야 합니다.
유목정이 봉신 한계에 맞추기 위해 봉건정 봉신 관리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1.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작위 회수해서 봉건정 봉신들을 모조리 쫓아낸다. 그리고 봉건 영지를 열심히 태운다.
2. 휘하 부족에게 적당히 찢어서 나눠준다. 그러면 걔네들이 알아서 봉건정 봉신들 처리하고 영지 태우게 된다.
3. 공작령 작위를 열심히 만들어내서 봉건정 봉신들에게 뿌린다.
1번은 작위를 빼앗는 과정에서 봉건정 봉신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날 위험이 있습니다.
걔들이 힘을 합치면 진압하기가 꽤나 골치아프죠. 물론 병종의 우위 덕분에 진압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만.
게다가 이걸 한 번 시작하면, 봉건정 봉신을 휘하로 둘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잘못된 정부 형태 페널티에 폭군 페널티까지 붙어 관계도 수치가 개판이 되는 관계로 툭하면 반란 일으키게 되니까요.
다만, 이러한 불리함을 이겨내고 봉건정 봉신 제거하는 작업 끝내면 상당한 크기의 목초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2번은 봉건정 봉신들이 나를 향해 칼을 들이밀지 않는다는 점 빼고는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1번으로 가기에는 내 상태가 영 메롱하다 싶을 때만 써야 하는 방법이죠. 휘하 부족들에게만 좋은 일 시켜주는 겁니다.
3번은 공작령 만드는데 돈이 장난 아니게 드는 관계로 잘 선택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공작령을 뿌려서 다수의 공작을 만든다 하더라도, 어차피 다들 봉건정 봉신이라 봉신 한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도 못하죠.
하지만 이번 경우, 저는 3번으로 가려고 합니다. 제 플레이 컨셉 상, 로마의 영토를 불태워서 목초지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거든요.
에우도키모스를 아나톨리아로 쫓아내고, 마누엘은 장남, 유스티니아누스를 롬바르드 왕국의 공주와 약혼시킵니다.
[마누엘 : 롬바르드 족속이 로마의 강역을 제멋대로 차지하고 있는 것은 괘씸하다. 그러나 아직은 그들과 척을 질 때가 아니다.]
당분간은 롬바르드 왕국을 손댈 생각이 없던 마누엘은 정략 결혼을 통해 일단 화친을 맺어둡니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을 손에 넣은 마누엘이 향한 곳은 일리리쿰의 서북쪽, 오늘날에는 크로아티아라 불리는 땅.
[마누엘 : 지난날, 로마는 멋대로 국경을 어지럽히고 땅을 차지한 슬라브 무리를 몰아내지 못했다. 지금이야말로 이를 바로잡을 때.]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한 이래로, 실질적인 로마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마누엘은 고토를 회복하고자 군을 일으킵니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슬라브 족은 헤라클리우스 가문의 오랜 원수였습니다.
헤라클리우스 치세에 아바르 족의 주구 노릇을 하며 일리리쿰을 약탈, 로마에 큰 피해를 입힌 바 있으니까요.
이후로도 끊임없이 국경을 넘어 일리리쿰으로 밀고 들어가면서 로마의 지배력을 훼손시킨 이들이 바로 슬라브 족입니다.
현재, 일리리쿰 일대를 주름잡던 세르비아가 마누엘 휘하 부족들에 의해 멸망당하면서 슬라브 족의 세력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로마의 영토를 기생충처럼 좀먹는 이들을 몰아내야겠다고, 마누엘은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시작된 크로아티아 정벌.
[마누엘 : 저 야만인들의 청야 전술은 확실히 수준급이군. 매우 골치가 아파.]
스샷에서처럼, 슬라브 신앙 특유의 보급 제한은 늘 짜증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나마 슬라브 신앙이 사슴교만큼 빡빡하게 보급 제한을 옥죄이지는 않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요.
만약 쟤네들이 사슴교를 믿는 애들이었다면, 저는 처음부터 얘네들 건들지도 않았을 겁니다. 크크;;
그래도 크로아티아의 병력 자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전쟁을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이 답이죠.
[마누엘 : 적이 숨어들어간 요새를 모조리 찾아내어, 불사른다! 그리하면 저들도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 항복하겠지.]
스샷 빨간 버튼을 누르면, 포위하던 병력이 공성에 들어갑니다.
이를 활용해 지나가는 곳마다 다짜고짜 공성, 병력의 손실은 다수 있지만 이를 대가로 전쟁 승점을 빠르게 쌓아갑니다.
보급 제한 때문에 병력이 죽어나가나, 공성해서 병력이 죽어나가나 매한가지니까 이럴 때는 공성하는 편이 낫습니다.
크로아티아와의 전쟁에서, 마누엘은 결국 완벽한 승기를 잡습니다.
청야 전술을 펼치고 숨어들어간 요새마다 족족 공략을 당하니, 크로아티아 입장에서도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습니다.
[크로아티아의 대추장 도브로미르 : 떠나겠소! 떠나겠소이다! 그러니 부디 자비를...!]
이렇게, 슬라브 족의 세력은 일리리쿰에서 완전히 일소됩니다.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는데 성공한 마누엘.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함으로써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로마의 실질적인 주인으로써, 마누엘에게는 이제 로마의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으니까요.
과연 마누엘은 로마의 강역을 회복함으로서 로마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요?
또한, 찬탈자의 무리로부터 정당한 로마의 황제 자리를 되찾아 등극할 수 있을 날은 언제 찾아올까요?
다음 화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