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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7/31 22:04:29
Name Danpat
Subject [스타1]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GG 투게더' 시청 소감
어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GG 투게더' 방송을 본 개인적인 소감입니다.
편의상 경어체를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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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잘 쓰지 않지만, 어제 밤 방에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GG 투게더’라는 방송을 보고 나서 글로써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스타크래프트는 굉장히 오래된 게임이다. 1998년에 나왔으니 만으로 19년, 사람으로 치면 20세가 된 게임이다. 나와 스타크래프트의 인연은 2000년도부터 시작되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새로 이사간 집의 티비에는 온게임넷이라는 게임 전문 케이블 방송이 나왔고, 내성적이고 밖에서 뛰어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에게 게임 방송을 보는 것은 새로운 취미가 되었다. 처음에는 각종 건물과 유닛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도 몰랐지만, 그건 방송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내가 중학생이던 때는 게임리그가 이제 막 발전하는 단계에 있어서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고등학교를 가던 때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스타크래프트는 2004년 광안리에서 벌어진 프로리그 결승전에 무려 10만명이 넘는 관중을 끌어모았다.

대학교에 가서도 한동안은 방송에 나온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많이 챙겨봤다. 그때는 두 개의 방송사가 있었는데, 2학년때까지는 본방송과 재방송, 다시보기를 통해 방송에 나온 경기는 거의 다 봤던 것 같다. 처음보는 사람이 나에게 취미를 물으면 음악감상과 독서라고 대답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스타크래프트를 보는데 썼으니 내 취미는 사실상 게임방송 시청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스타크래프트를 즐겼고 이스포츠(e-sports)라는 용어도 보편화되어서 게임을 잘하는 친구는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프로들의 경기를 보면서 나와 프로게이머의 사이에는 타고난 ‘손가락(재능)의 차이’가 있다는 걸 느꼈다. 아마 그때쯤, 내가 하루에 12시간을 스케이트를 탄다고 김연아가 될 수 없듯, 12시간을 게임해도 저들처럼은 될 수 없다는 걸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몇 번의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줄어들며 게임리그도 조금씩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2010년이 지나고 ‘롤(리그 오브 레전드)’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스타크래프트 대신 롤을 하기 시작했고,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2012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티비에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때 캐스터 한 분은 자신의 입으로 리그의 마지막을 알리며 눈물을 흘렸고,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이 난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서 게임에서 한 발 더 멀어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가락은 예전같이 움직이지 않았고, 게임할 때 예전보다 더 쉽게 피로감을 느끼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게임을 줄여나갔다. 리그가 없으니 많은 프로게이머도 자연스레 은퇴 수순을 밟았고, 다행히 아프리카라는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서 간간이 리그를 열어주긴 했지만 이미 그때는 한 줌의 프로게이머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머리속에서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지워갈때쯤, 티비에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remastered) 출시를 기념하며 과거에 활동했던 프로게이머를 한 데 모아 특별 이벤트전을 여는 것을 보았다. 과거의 프로게이머들은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각자의 길을 걸었으며, 누군가는 회사원이 되었고 누군가는 아직 게이머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한 집안의 가장이 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다시 하는 것을 보았는데, 무언가 알 수 없는 뭉클함이 밀려왔다. 비록 그들의 손은 굳고 예전만큼 날카로운 경기력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나는 과거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무언가를 티비에서 보았다.

10년 전의 모습이 기록된 영상을 보면서 나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건 나의 학창시절이었고, 추억이었다. 비록 티비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제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 10대와 20대의 내 모습이 영상에 오버랩되어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스타크래프트를 보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티비앞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봤고,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이기는 것을 간절히 바랬다. 그때의 프로게이머들은 남들이 그저 ‘게임 한판’이라고 부르는 30분 가량의 경기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그리고 그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지켜보며 울고, 웃고, 기뻐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래, 그건 나와, 프로게이머들과, 해설자를 비롯한 여러 관계자, 게임팬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의 인생이었다. 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건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아니라 그때의 내 모습이었다.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지나가버린 학창시절에 대해 가끔 후회를 하곤 한다. 그 때 외국어를 열심히 했다면 좋았을걸, 책을 더 많이 읽어서 전문성을 키웠으면 좋았을걸. 결국은 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더 썼다면 지금의 내가 좀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오늘, 게임방송을 보면서 보냈던 그 수많은 시간들도 결국은 10대와 20대의 내 인생이었음을, 아무 의미없는 시간이 아니라 내게 즐거움과 추억을 만들어준 시간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예전 같은 찬란한 시대는 오지 않겠지만, 스타크래프트에 인생을 걸었던 수많은 게이머들과 나를 포함하여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했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가끔은 그 때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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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dymove
17/07/31 22:12
수정 아이콘
스타 열심히 봤던 시절이 소환되더라구요.. 저도 엄청난 시간을 스타 보는데 썼지만 후회하진 않는거 같아요.
17/07/31 22:1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피지알이 스타로 가득했을땐 글도 열심히 쓰고 그랬는데 하하...ㅠㅠ
아유아유
17/07/31 23:05
수정 아이콘
추천합니다...ㅠㅠ
대니얼
17/07/31 23:07
수정 아이콘
동일한 감정이네요..
VividColour
17/08/01 00:42
수정 아이콘
추천드려요
17/08/01 00:48
수정 아이콘
「그건 나의 학창시절이었고, 추억이었다.」
저 역시 비슷한 감정입니다. 누군가에겐 HOT가, 젝스키스가, 핑클이, 신화가 그랬듯 저는 스타크래프트가 제 학창시절이고 추억이었습니다!
낭만없는 마법사
17/08/01 01:07
수정 아이콘
스타는 제 인생이었고 암울했던 시기에 빛이었습니다. 정말 고마운 존재예요. 추천 박고 갑니다.
사르르
17/08/01 06:43
수정 아이콘
스타는 제 인생의 일부분이었네요
Faker Senpai
17/08/01 08:43
수정 아이콘
동감입니다. 스타로 게임을 입문해버려서 스타를 안했었었으면 하고 후회도 했었지만 생각해보면 그시간에 뭔가 다른걸 했겠죠.
롤을 즐기고 있는데 언젠가 롤도 스타처럼 추억이 될테고요.
DavidVilla
17/08/01 09:30
수정 아이콘
아버지와 주말 아침 itv로 빨간머리 강도경의 스타를 보던 중학생
수험생이고 나발이고 맨날 피씨방으로 몰려가 스타했던 고3학생
강의 끝나면 코엑스 직관이 일상이던 대학생
게임사이트 pgr 접속한 죄로 군장 쌀 뻔한 이등병
송병구의 우승에 이유모를 눈물을 훔쳤던 예비역

이젠 직장인에 곧 애아빠까지 되지만,
스타는 멀리한다고 해도 벗어나질 수 있는 게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저 어느 순간 내게 착 달라붙어버린 나의 일부분이기 때문이죠. 지금도 제 인생은 스타의 여정 속에 함께 흘러가고 있습니다.

늦었다면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리마스터를 만들어준 그들에게 정말로 고맙고, 친구들과 항상 하던 얘기처럼 할아버지 돼서도 키보드, 마우스 마음껏 두드릴 수 있길 소망해봅니다.

스타.. 너란 녀석은 참 좋겠다. 이렇게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아서..

끝으로,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이 공감돼서 적어봤어요.
레가르
17/08/01 11:44
수정 아이콘
정말 오랫만에 스1을 봤는데 재밌더군요. 다시 한겜 해볼까 생각도 들고, 그 당시 길드원들 생각도 나고...

감성 젖어서 그 당시 많았던 스갤문학들을 찾아보고 싶은데 찾기가 어렵네요 하하;;
키스도사
17/08/01 12:19
수정 아이콘
중학생때 처음 임요환, 홍진호, 박정석, 이윤열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는 그때의 영웅들보다 늙어버렸네요.

하지만 어제 그들의 모습, 그들의 행동, 그들의 게임 하나하나에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던 어린 날로 돌아갈수 있었어요. 전용준 캐스터가 그때를 추억하며 가슴 뭉클해 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눈물이 핑 돌뻔 했네요.
로랑보두앵
17/08/01 14:29
수정 아이콘
짧게 오프닝만 봤는데도, 참.. 그때가 많이 생각났습니다. 전용준캐스터와 엄재경해설에게서는 그누보다도 벅차오르는 설렘과 흥분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가 정말 정말 그립습니다.
저글링앞다리
17/08/01 23:25
수정 아이콘
읽으며 많은 부분 공감했습니다. 간만에 선수들과 경기 보며 참 즐거웠네요. 가끔씩이라도 이런 자리가 다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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