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유게에서 댓글 하나를 보고 얼마 전 클리어했던 게임이 퍼뜩 기억이 나서 리뷰 하나 써 봅니다.

피지알에서는 거의 언급도 안 됐지만 제가 가는 타 커뮤니티에서는 꽤나 말이 많았던 게임이 하나 있는데요.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입니다.

퀀틱 드림이 만듬. 얘네가 만든 다른 게임으로는 '헤비 레인' '비욘드 : 투 소울즈'가 있어요. 전자는 꽤 인기가 있었고 이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초석이랄만한 게임입니다. 비슷한 점이 꽤 많음.

비욘드 : 투 소울즈는 게임의 탈을 쓴 영화입니다. 플스가 게임기로만 쓰이는 것이 안타깝다! 종합 미디어 기기로의 위상을 보고 싶다! 한 번 해 보시길. 보다 보면 시간 잘 가요.


이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아주 전형적인 QTE가 잔뜩 나오는 '무비 게임'이여요. 비욘드보다는 덜함. 보통 요즘 게임들은 하나의 장르로 순수하게 구분되는 경우는 거진 없고 기본적으로 슈터 요소랑 액션 요소 섞고, 뭐 넣고 뭐 넣고 하면서 부대찌개를 많이 만드는데 이 게임은 그런 느낌은 아니에요. 오히려 칠 거 다 쳐낸 게임.

하나씩 살펴보면 (근데 사실 게임의 특성상 여러 면이 고루 중요한 게임이 아닙니다)



1.[그래픽,아트] : 정갈하고 인물이 고와요. 특히 세 명의 주인공 중 하나인 '카라'가 참 마음에 들더군요. 참고로 저는 단발을 매우 싫어해서 여자친구도 목을 덮는 것 이하로는 깎지 못하게(끔) 설득하는 사람임. 카라는 줄곧 단발인데도 참 마음에 들었어요.

다만 그다지 인상에 남을만한그래픽은 아닙니다. 콘솔의 한계가 있기도 하고.

근데 별로 상관도 없어요. 게임하다 보면 어차피 넓은 배경에 사물도 많은 오픈월드도 아니고, 그냥 조그맣고 별거 없는 공간에 계속 플레이어를 쑤셔넣는 게임이거든요.



2. [캐릭터 및 세계관] : 사실 그냥 시놉시스라 퉁쳐도 좋은 건데, 이 게임은 시나리오,캐릭터,세계관 이 세 개로 그냥 전부 말하는 게임이므로 따로 다룹니다.

캐릭터는 '코너' '마커스' '카라' 이렇게 세 주인공이 나와요. 헤비 레인과 매우 유사합니다. '코너'는 CSI:마이애미 같은 애고, '마커스'는 터미네

이터,매트릭스 같은 애고, '카라'는 일상물이에요.

이렇게 세 개의 주인공으로 세 개의 분위기가 서로 사뭇 다른 챕터들을 교차해가며 진행합니다. 확실히 이 구조가 단일주인공 쓰는 통상의 어드벤쳐 게임보다 나은 게, 덜 질려요. 같은 분위기, 비슷한 기조의 아트웍을 계속 통과하다 보면 어느 기점부터 게임의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궁금증, 호기심 자체가 식는 일이 많은데 계속 카드깡하듯이 돌려쓰니까 그런 지루함을 많이 덜어줍니다.

이 3개의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시점에서 동시간대의 일들을 돌파해 나가는데, 당연히 만나는 조역 캐릭터들도 다릅니다.

근데 이 조역 캐릭터들은 주인공 캐릭터들에 비해 매력이 한참 떨어지긴 해요. 클리셰 오브 클리셰 덩어리.

세계관은 안드로이드를 다룬 게임이고 당연히 미래 배경입니다. 그러고보니 이게 핵심인데 이걸 지금 언급하네요. 하여간에 그렇습니다.

근데 사실 이 세계관은 후술도 하겠지만 SF로서는 좀 많이 엉성해 보이긴 해요. 안드로이드라는게 정말로 설득력을 가진, 근미래에 볼 것 같은 모습의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그냥 '피지배자' '소외계층'을 형상화해놓은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3.[시나리오] : 이건 제가 느끼기에 딱 [SF로서는 빵점 드라마로서는 만점]이었어요. 구성은 전형적인 미드식 구성입니다. SF로서는 비슷한 테마를 가진 '블레이드 러너' 같은 걸 연상하시면 너무 달라서 깜놀하게 되실 거에요. 사실 그런 주제의식을 게임으로 구현한다는 것도 힘들 것 같긴 하지만요.

단적으로 말하자면, 안드로이드가 굉장히 사람 같고, 사람 같아진 이유, 즉 미스터리에 대한 부분도 게임에서는 안 풀려요. 이 게임에서의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대비되는 안드로이드, 인간과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라기보다는 그냥 차별 받는 인간이에요. 실제로 안드로이드들은 작중에선 '원래' 감정도 없고 인간적이지 않은 존재로 나오는데, 작중의 안드로이드들은 그 한계를 너무나도 쉽게 패드 버튼을 3회정도 눌러주는 것으로 돌파하며, 다른 안드로이드들도 악수하면 반란군 됩니다.

개인적으로 SF를 아주 좋아하고 영화,소설을 많이 접해왔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SF는 참신하고 기발하거나, 아니면 설득력을 가지거나 둘 중 하나인데 이 게임은 딱히 둘 다 해당 안된다고 느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을 참 재미있게 한 건, 그리고 엔딩 보고 나서도 하길 잘했다고 느낀 건 드라마적 재미입니다. 차기 시즌에 대한 부담감 없이 완성도 있게 만든 미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일단 시나리오도 다양하고, 유저 선택을 정말로 존중하며, 각 챕터별 구성도 흥미지게 잘해 놨습니다. 주인공 3명이 다 테마가 제각각인데, 개인적으로 코너 파트와 카라 파트를 더 재미있게 하긴 했지만 마커스 파트도 흥미는 붙였습니다.

특히 코너 파트는 아무래도 이미 비슷한 걸 따온 다른 많은 게임들이 있었기에 덜했지만, 카라 파트는 실시간으로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비디오게임의 우월성을 확인시켜 준 파트랄까요. 미드 재밌는 거 있는데 이거 내 선택에 따라 스토리가 막 바뀌고 결말도 바뀌고 주인공이 창문 열고 커튼 여는 것도 내가 버튼으로 직접 함 킄 이런 느낌이에요.

다만 하나 중요하게 복기할 만한 점을 추가로 짚어보면, 인간 캐릭터들의 천편일률적인 모습입니다. 이 게임이 안드로이드라는 소재에 무게를 두지 않았구나, 결국 사람 일을 말하려고 하는 거구만 하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러한 인간캐릭터들의 모습이에요. 안드로이드들의 사고 방식, 대처 방식도 딱히 다양하게 제시는 안 되지만, 인간 쪽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원사이드합니다. 행크야 어차피 클리셰 속의 겉은 냉정 속은 촉촉한 파트너 형사 캐릭터니 그렇다 치고, 그 외의 입체적인 유형의 인간은 거의 없어요. 대신 반대 성향의 '인간' 캐릭터들이 설정만 안드로이드인 느낌입니다.




4.[실제로 유저 선택이 의미가 있음] : 퀀틱이 텔테일의 싸대기를 강하고 빠르게 여러 대 때려버렸어요. 사실 이런 인터랙티브하고, 영화 느낌에, 유저의 선택을 섞은 게임은 텔테일이 아주 유명 메이커인데, 텔테일의 게임은 선택을 시키기는 하지만 그건 그냥 선택했다는 느낌만 줄 뿐 실제로 그거 가지고 뭘 하진 않습니다. 아니 하긴 하는데 다 도찐개찐으로 끝나게끔 만들어요. 공장에서 다품종 생산을 하는데, A를 주문하든 B를 주문하든 C를 주문하든 다 일단 A 주고 A에 붙이는 스티커를 취향 따라 주는 걸로 퉁치는 느낌이에요

그렇지만 이 게임은 정말로 유저 선택을 존중합니다. 각 챕터별로만 그런 게 아니고 전체 게임의 시나리오 자체가 변화해요. (물론 챕터의 구성이나 챕터 간의 관계가 아예 지각변동하진 않습니다)

이게 진짜 놀라운 게 , 유저에게 3가지 선택을 줘놓고 그 3가지 선택을 전부 유효하게 반영하려면, 만드는 입장에서는 아주 골칫거리입니다. 게다가 그 처음의 선택 이후에 또 다른 뭔가를 선택하죠. 그럼 그것도 반영을 해야해! 근데 이 게임은 좀은 모자라도 그거에 가까운 형태로 구현을 해 놨어요. 쉽게 말해 아름다운 노가다를 해냈습니다. 제작 기간이 대단히 길었다던데, 보통 제작기간이 긴 게임들은 중간에 엎어진 게임들이죠. 근데 이 게임은 정말로 그 제작기간이 성과로 이어진 느낌입니다.




결론 : 요즘 플스 독점작들이 단체로 미친 퀄리티라 부각이 덜 된 게임입니다. 액션은 거세되었어도 이 장르 좋아하면 해봐야할 게임으로 추천 드립니다. 사실 이 쪽 장르가 의외로 좋은 게임 자체가 정말 드문데 그 중 제법 괜찮습니다.

별은 다섯개 만점에 주인공이 셋이니 세 개에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공존을 위해 반개 얹어서 세개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