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편] 아타리 쇼크와 게임의 종말 ----------------------------------------------------------------------------
아타리2600의 순항으로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 미국 비디오 게임시장은 1982년에는 32억달러 규모에 달하는 거대시장었습니다.
비디오 게임이라는 이름만 달고 나오면 날개돋힌듯 팔려나가는 시절이었고,
이 새롭고 매력적인 신흥 시장에서 한몫 잡아보려는 업체들이 마치 골드러쉬의 광부들처럼 줄지어 게임업에 진출합니다.
개중에는 액티비전으로 대표되는 기술력을 갖춘 업체도 있었지만, 대부분 한탕을 노리고 뛰어든 뜨네기 업체들이었고, 시리얼이나 고양이 사료를 만들던 업체들도 개발자 몇명 고용해서 얼기설기 만든 게임을 시장에 쏟아냈습니다.
당시 아타리는 게임시장의 80%를 장악한 지배적인 하드웨어 벤더였고,
문란해지는 시장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입장이었지만,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게 문제였습니다.
워너가 아타리 창업자 놀란 부쉬넬을 쳐내고 사장 자리에 앉혀놓은 레이 에드워드 카사르(Raymond Edward Kassar)는 게임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 게임은 대충 만들어도 마케팅만 잘하면 팔려나간다는 사고방식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게임 프로듀서와 개발진을 단순 노동자로 취급했으며, 게임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게 해달라는 개발진의 요구도 거절해 이에 불만을 품은 유능 개발자들이 아타리를 떠나게 하는 빌미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때 아타리를 떠난 개발자들이 설립한 회사가 바로 액티비전이며, 사상 최초의 서드파티 업체입니다. 개발자를 크리에이터로 인정해 게임 타이틀에 이름을 올리는 전통을 만든 회사이기도 합니다.
1982년 3월, 당대 최고의 게임이라고 평가받던 팩맨의 라이센스를 획득한 아타리는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초도물량으로만 1200만개의 게임팩을 찍어내 발매합니다.
하지만, 절반을 조금 넘는 700만개만 판매되어, 무려 500만개라는 물량이 재고로 남게 됩니다.
초도물량을 과도하게 잡았다는 주장도 제기된바 있습니다만,
당시 팩맨은 아케이드 게임장에서 센세이셔널한 인기를 얻고 있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이식만 했다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물량이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아타리 팩맨은 오리지널에 비해 너무나도 조악한 이식품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700만개나 팔렸기 때문입니다.
<팩맨 아케이드판(1980)>
<아타리 팩맨(1982)>
기기성능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프로거등 다른 아케이드 이식작들은 꽤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후 발매된 미스팩맨도 더 나은 품질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아타리 팩맨의 수준낮은 이식품질은 그냥 '대충 만들었다'는 것 외에는 설명이 안됩니다.
아타리는 이후 팩맨을 기기 번들로 끼워주며 어찌어찌 재고처리는 한 모양입니다만, 그동안 쌓아온 아타리의 명성을 급격하게 추락시키는 기폭제가 됩니다.
게임은 대충 만들고 마케팅만 빵빵하게 하면 어떻게든 팔린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아타리 사장 레이 카사르는
1982년 크리스마스 상전을 앞두고, 초대형 기획을 성사시킵니다.
당대 최고의 인기영화였던 E.T의 라이센스를 획득해 게임화시킨다는 것으로,
오랜 협상끝에 2500만 달러의 거액으로 독점 라이센스를 손에 넣은 그는 개발진에게 E.T를 테마로한 게임제작을 지시합니다.
협상이 마무리된 후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개발진에게 주어진 개발 기간은 단 5주였다고 합니다.
지금에 비하면 볼륨이 작아서 개발기간이 덜 필요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통상 개발기간은 5-6개월이었다고 하니 통상 개발기간의 1/5이라는 개발기간 만이 주어진 것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불가능하다고 손사래를 치며 발을 뺐으며, 하워드 스캇 쇼우가 자임해서 개발을 떠맡게 됩니다.
<게임 E.T의 프로듀서 하워드 스캇 쇼우>
하워드는 개발용 피씨를 집으로 가져가 5주간 수면시간을 최소로 해가며 게임 개발에 몰두했다고 하며, 그렇게 5주만에 개발되어 시장에 출시된 게임이 전설의 게임 'E.T'입니다.
라이센싱과 대대적인 마케팅 비용을 합산해 3천만달러 이상을 투자한 아타리는 초도물량만 500만개를 찍어내었으나
150만장 만이 판매되는 처참한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판매된 물량도 상당수 반품되었기 때문에 라이센싱 비용, 마케팅 비용, 개발 비용, 게임팩 제작 비용이 고스란히 적자로 전환되며
아타리는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고, 실적발표 이후 주가도 급전직하하게 됩니다.
하워드의 회고에 따르면 E.T의 폭망 이후, 아타리 직원 1만명중 8천명이 해고되었으며, 이때 해고된 하워드는 E.T의 프로듀서라는 오명으로 인해 게임업계에 재취업을 할수 없었고,
결국 게임업계에서 영구히 퇴출되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현재 심리상담사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타리 E.T의 TV광고(1982)>
이후, E.T로 대표되는 조악한 게임들에 질려버린 소비자들은 비디오 게임 자체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비디오게임=사기'라는 분위기까지 생겨나 비디오 게임시장은 급격하게 축소되기 시작합니다.
게임이 팔리지 않자 재고소진을 위한 각종 게임기와 게임팩의 덤핑이 이어졌고, 도산한 게임업체들은 하나둘씩 사라져 갔습니다. 완구매장을 수놓던 게임기와 게임팩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완구업자들이 '비디오 게임은 완구시장에서 하나의 유행일 뿐이었고, 이제 그 유행은 끝났다'라고 생각해 취급물품 목록에서 게임이라는 카테고리를 삭제해 버렸을 정도로 게임에 대한 당시의 분위기는 실로 냉담했다고 합니다.
아타리는 신형 게임기를 출시하는 등 여러 수단으로 기사회생을 꿈꾸었으나 반전의 기회를 찾지 못한채
수억달러에 달하는 적자에 허덕이다 1984년 분할 매각되었고,
게임시장을 창조했던 전설적인 기업 아타리는 그렇게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아타리의 매출 추이(1976-1985)>
미국의 비디오 게임시장은 1982년 정점인 32억 달러에서, 1985년 1억달러까지 무려 97%나 축소되는 대몰락을 겪게 되었고, 이 역사적인 시장붕괴는 '아타리 쇼크' 혹은 '1983년의 비디오게임 몰락(Video Game Crash of 1983)'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비디오 게임시장은 영원히 회복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고 '비디오 게임'이라는 용어 자체도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어,
나름 명맥을 유지하던 PC게임 업체들이 '컴퓨터 게임'이라는 대체용어를 적극 사용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 [부록] 역대 최악의 게임 '아타리 E.T' ----------------------------------------------------------------------------
<아타리 E.T 플레이 영상>
역대 최악의 게임이라고 불리우는 게임 E.T는 매우 어려운 게임입니다. 게임의 목적은 숨겨진 부품을 모아 전화기를 만들어 모성에 전화를 하는 것인데요. 전화를 하면 우주선이 어딘가에 착륙하는데, 여기에 탑승하면 클리어입니다.
체력 제한이 있고 움직이면 계속 줄어들어 0이되면 사망합니다. 따라서, 체력이 소진되기 전에 전화기 부품을 찾아야 하는데, 맵은 랜덤으로 변화하고, 부품이 어디있는 지 모르기 때문에 무작정 돌아다녀야 합니다.
돌아다니다 보면 구멍에 자주 빠집니다. 빠지는 판정이 애매해서 정말 걸핏하면 빠집니다.
맵 여기 저기에 FBI 요원들이 돌아다니는데 이들에게 잡히면 감금되므로 피해 다녀야 합니다. 주인공 이티는 각종 장애물과 구멍들을 피해 다녀야 하는데 비해, FBI 요원들은 구멍 위를 그냥 걸어오므로 피하기도 까다롭습니다.
게임이 어렵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려운 게임이지만 인기있는 마계촌이나 다크소울 같은 예도 있듯이 적절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성취감을 얻고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E.T의 어려움은 불합리한 게임성과 애매한 판정 그리고 수많은 버그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플레이하다 보면 짜증만 치솟아 오릅니다.
사실, 순수한 게임의 완성도만 따지자면 E.T보다 못한 게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게임이 E.T와 함께 망겜랭킹의 단골손님인 슈퍼맨64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E.T가 역대 최악의 게임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게임의 실패와 결부된 아타리 쇼크라는 역사적 사건과 미국 게임시장의 몰락
그리고 게임 프로듀서의 개인적 비극까지 결합된 복합적인 상징성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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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워너의 손길이....
마케팅이 중요하긴한데 이건 기본적인 제품의 질이 어느 정도 주변과 비슷하다는 가정이 있어야하는데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으로 도산하네요. 에드워드 카사르가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하네요.
EA도 게임 망치는데 일가견이 있던데 비슷한 전처를 밟지않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