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스포츠는 경쟁경기와 기록경기로 나뉩니다. 축구, 야구와 같이 상대적인 승패로 우승을 다투는 방식이 있다면 육상, 수영과 같이 절대적인 기록으로 1,2위를 다투는 것 역시 스포츠의 한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e-스포츠는 이에 따르면 경쟁경기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스타크래프트부터 현재 LOL을 비롯한 대부분의 종목 역시, 리그 또는 토너먼트 등을 거친 뒤 결승전을 통해 우승을 정하죠. 그리고 반대로 이렇게 경쟁이 가능한 게임만이 e-스포츠의 자격을 부여받습니다.
그럼 기록경기 e-스포츠는 어떤가요? 그를 위해서는 스피드런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합니다. 스피드런은 이름처럼 게임을 즐기는 매우 직관적인 방식 중 하나입니다. 게임을 시작하고 최대한 빨리 엔딩을 보면 됩니다. 모든 기록경기가 그렇듯, 승패를 가르는건 오직 시간입니다. 어찌보면 게임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스피드런이 더 쉬워보입니다. 우리가 윤성빈 선수의 스켈레톤을 볼 때 그가 무슨 기교를 부려서 스켈레톤을 잘 타는지 하나도 몰라도 오직 코스를 통과한 시간이 짧아서 금메달을 땄다는 걸 알듯이요.
이달 1일. CLG는 유명 스트리머 zfg1과 스트리밍 계약을 맺습니다. 스트리머가 e-스포츠 팀의 후원을 맺는거야 흔한 일이지만, 특이한건 zfg1이 98년 게임인 젤다의 전설 : 시간의 오카리나 게임의 스피드런을 주로 하는 스트리머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계약이 발표된 날, zfg1은 트위터에 스피드런을 시작하며 'e-스포츠 중이야.' 는 말을 남기기도 했죠. 물론 이건 위트에 가까운 말이지만, 어쩌면 이는 몇년 후에 e-스포츠 역사에 꽤 중요한 위치를 지니는 전환점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시리즈에서 얘기하려는 건 e-스포츠로서의 스피드런에 대한 얘기는 아닙니다. 꽤 진전하긴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일뿐, 실현된건 아니니까요. 저는 이 시리즈에서 스피드런에 대한 기초, 몇개 게임을 예로 들며 한 게임의 스피드런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얘기하려 합니다.
일단 향후 전개될 이야기들을 하기 전에, 스피드런의 기본적인 용어들에 대한 몇가지 설명을 하려고 합니다. 이는 앞으로도 언급할 때가 되면 다시 설명을 하겠으니 바로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1. Any % : 이유불문 그냥 깨면 됩니다. 켠왕을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왕 잡으면 땡입니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피드런 방식입니다. 제일 빠르니까요.
2. 100% : 왕을 깨되, 게임내에서 수집할 수 있는 아이템이나, 할 수 있는 서브퀘스트 등을 모두 하고 깨야 합니다. 이 100%의 자격은
http://www.speedrun.com 에서 기준이 성립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슈퍼 마리오 오딧세이에서 100%의 기준은 처음 발매시 상점에서 살 수 있었던 옷과 모자를 사는 것 까지를 기준으로 합니다. DLC 이후 추가되는 것까지 포함시키면 추가 될때마다 기록이 리셋되니까요.
위 두 방식은 대부분의 게임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스피드런 방식이며, 그 외에 각 게임별로 별도의 스피드런 방식이 존재합니다.
3. Glitch : 게임 내에서 사용 가능한 버그를 의미합니다. 작게는 게임내의 이동을 편하게 하는 버그 (슈퍼마리오 64에서 처음 피치 성 입구에서 김수한무의 설명을 생략하는 버그) 부터 엔딩을 보는 방법을 바꾸는 버그 (슈퍼마리오 3에서의 파이프 버그) 까지 다양합니다. 보통 스피드런에서는 정말 게임을 쉽게 깨는 방법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글리치는 허용을 하고, 대신 이런 글리치를 쓰지 않는 스피드런(glitchless) 을 별도 취급 합니다. 달성을 위해 반드시 글리치가 필요한 런도 있습니다. 포켓몬 레드/블루 버젼의 151마리 잡기 스피드런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그 외에 기본적인 것들로는
1. 콘솔게임의 경우, 원칙적으로 그 콘솔을 통해 플레이 해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젤다의 전설 : 시간의 오카리나 의 경우, 닌텐도 64, 닌텐도 Wii의 버츄어 콘솔, 심지어 특정 에뮬레이터에 의한 스피드런까지 허용이 됩니다. (물론 상황을 같게 만들게 하기 위한 기본적인 제약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기기를 사용한 슈퍼 마리오 64의 경우는 3가지 상황을 다른 스피드런으로 취급합니다.
2. 스피드런의 타이머는 중간에 멈추면 안됩니다. 시간 역시 게임 스타트 이후 게임 엔딩까지의 리얼타임이나 인 게임 타임이 기준입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소닉 3 & 너클즈의 경우, 스테이지를 빨리 깨면 얻게 되는 타임보너스가 스피드런에 영향을 미쳐서 (타임보너스가 5만점이면 그게 점수에 반영되는 시간이 길고 컨티뉴를 얻기 때문에 타임보너스 1만점일때보다 스피드런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순수 스테이지 플레이 시간만 반영합니다.
3. 게임의 업데이트가 이뤄지는 경우, 특히 그 업데이트를 통해 사용하던 글리치가 패치된 경우나 반대로 새로운 글리치가 추가되는 경우를 위해 스피드런이 진행되어야 하는 버전이 따로 존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크 소울 3의 경우, 스피드런의 성격에 따라 게임 버전이 최대 3개로 나뉘어져서 진행됩니다.
이런저런 예외가 왜 이렇게 많아 하실 수 있는데 결국 따지고 보면 최대한 공평한 상황에서 상식적으로 이루어진 기록만을 인정하기 위한 규칙들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결국 이 규정들도 그 게임을 플레이하는 스피드런 유저끼리의 합의등을 통해 정해지는 것이니까요.
재미없는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다음 글부터는 본격적인 스피드런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이게 아무리 기록경기라 해도 경쟁, 특히 라이벌구도가 스포츠에서는 제일 재밌는데요. 다음번엔 그 이야기부터 한번 풀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