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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11/03 00:05:28
Name GjCKetaHi
Subject [기타] 스피드런 이야기 (4) - 코에 거는 귀걸이



20세기를 대표하는 설치류가 미키마우스라면 21세기를 대표하는 설치류는 단연 피카츄입니다. 광과민성 증후근의 일종을 '포켓몬 쇼크'라 부를 정도로 (물론 이건 포켓몬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문화적 현상을 만든 이 피카츄는 OSMU (One source multi use) 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상당수가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접한 포켓몬스터의 원작은 게임이고, 그 게임 중 첫 작품이 바로 '포켓몬스터 Red/Green + (Blue)' 입니다.

제가 지금 연재하는 시리즈는 스피드런 이야기이고, 이 게임을 해 봤던 분들이라면 많은 분들은 '???' 라는 생각을 하실 수 있습니다. 보통 스피드런이라고 하면, 정해져 있는 최적의 루트를 실수없이 플레이 하는 것을 의미하고 그렇다면 게임을 깰 수 있는 '최적의 방법' 이 있어야 할텐데 포켓몬은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게임같아 보입니다. 수풀이나 동굴, 산에서 걷다가 랜덤으로 야생의 포켓몬을 만나는 인카우터 시스템, 그리고 애초에 공격에 명중률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포켓몬을 잡는데도 확률이 있는 RNG (Random number generator) 가 쓰이는 것이 참으로 많은 게임에, 스피드런이라니?

포켓몬을 플레이하는 것은 때때로 유저에게 까다로운 선택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포켓몬 레드는 나온지 20년이 넘은 휴대용게임기의 게임이고, 따라서 이 게임은 많은 고전게임들이 그렇듯이 메모리 절약에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게임 내에서 사용자들이 메모리조작을 할 수 있다면 게임을 정말로 쉽게 깰 수 있습니다. 게임의 메모리 조작을 하여서, 게임의 엔딩 부분의 코드를 실행시키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게임은 이러한 작업이 정말 정교하게 가능한 몇 안되는 게임 중 하나입니다. 아래 나오는 뮤 잡기 처럼요.



그래서 그런지 이 게임의 with glitch run 과 glitchless run은 기록과 깨는 방법 모두 엄청나게 차이가 나게 됩니다. 이 게임의 glitch 허용 run의 최고기록은 11분 후반대. 그러나 glitchless run은 1시간 후반대입니다. glitch를 이용한 speedrun은 사천왕은 커녕 웅이도 만나지 않고 게임이 클리어되는 반면, glitchless run은 우리가 깨던 그 방식으로 8개의 체육관을 쳐부수고 사천왕과 라이벌까지 깨면서 끝내야 합니다. 오늘은 이 glitchless run에 대해서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이 게임의 스피드런은 이름을 짓는것부터 시작합니다. 이는 꽤 중요한 요소인데요. 왜냐하면 이 게임의 모든 대사는 스크롤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주인공이나 포켓몬의 이름이 한 글자라도 짧아야 조금이라도 속도를 올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인공의 이름, 포켓몬의 이름. 라이벌의 이름 등 지을 수 있는 모든 이름은 단 한글자입니다. 그리고 스타팅 포켓몬은 100이면 99 이상 꼬부기 입니다. 이 게임을 빨리 깨는 방법은 흔히 두가지가 있는데요. 첫번째는 야생의 수컷 니도란을 잡아서 니드킹으로 다 부숴버리는 니도란 루트이고, 두번째는 꼬부기를 거북왕으로 키워서 다 부숴버리는 꼬부기 루트입니다. 하지만, 니도란 루트 역시 달맞이 산에서 달맞이 돌을 얻어 니드킹을 진화시키기 위해 초반 앵벌이가 중요한데 이 역할을 하기 위해 웅이를 약점으로 잡을 수 있는 꼬부기가 선호됩니다. 오늘 글은 일단 현 1위도 그렇고 니도란 루트가 대세이기에 이를 중심으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스피드런은 glitchless 즉, 게임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버그를 이용하지 않는 run임을 말씀드립니다.

일단 니도란 루트에서 가장 중요한건 당연하게도 니도란을 가장 빨리 잡는 겁니다. 게임 진행 중 니도란을 가장 빨리 잡을 수 있는 곳은 상록시티 왼쪽의 작은 풀밭인데요. 여기서는 3렙 니도란과 4렙 니도란이 나오기 때문에 4렙 니도란을 잡고 진행하면 됩니다.

이미 이 두줄로도 이 게임의 스피드런이 가능한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풀밭에 니도란이 100% 나와도 몇걸음가서 나오느냐가 중요하고, 나와도 3렙인지 4렙인지 어떻게 알며, 나와도 잡는게 전부 랜덤, 솔직히 말해 운빨인데 어떻게 이걸 빨리 할 수 있나요.. 그런데, 놀랍게도 여태까지의 과정중에서 포켓볼을 던져 포켓몬스터를 잡는 것 이전까지의 확률은 '100%' 입니다. 그 이유는 아래 동영상에서 설명하고 있는데요.



게임보이의 기기 특성상 포켓몬의 랜덤요소를 담당하는 난수 생성기 (RNG)는 게임기기를 껐다 킬 경우 초기화됩니다. 즉, 껐다 킨 그 순간 만큼은 모든 게임 내 변수가 같은 상황이라는 것이고, 이 상황에서 동일한 동작을 실행했을 시 RNG는 같은 값을 return 하기 때문에 같은 결과를 도출하게 됩니다. 이 게임에서 이 트릭이 쓰이는 것은 크게 3번인데요. 첫번째는 니도란을 잡을 때, 두번째는 달맞이 산에 진입하기 전 (달맞이 산에 진입하기 전 저 트릭을 사용하게 되면 달맞이 산 가는 내내 야생의 포켓몬이 나타나지 않다가 거의 끝에 '파라스' 딱 한번만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갈색시티의 체육관에서 관장의 방으로 가기 위한 열쇠 2개를 얻을 때입니다.

자, 이 시점에서 서론에 제가 얘기한 glitch 에 대해 다시 얘기해보죠. glitch 는 게임 내에서 사용 가능한 버그입니다. 그리고 제가 설명하는 스피드런은 이런 glitch 마저 사용하지 않는 glitchless 런입니다. 그럼, 위에서 얘기한 트릭은 glitch 에 포함이 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게임기를 켰다 꺼는 것은 게임 내에서 사용한 트릭은 아니기에 glitch 가 아닌걸까요? 아니면 RNG를 초기화 시키는 것 자체가 게임에 관여한 것이기 때문에 glitch 일까요? 이건 뭐.. 잘 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다음 영상을 보시죠.



영상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자전거 바우처가 없이 자전거 샵의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취소하면 말이 바로바로 튀어나옵니다. 이를 instant text 라고 하는데요. 이건 누가봐도 명백한 게임내의 버그입니다. 거기다 이 버그는 정말 큰 버그인게, 이 게임은 스크롤 속도를 줄이기 위해 주인공과 포켓몬, 라이벌의 이름을 한글자로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스크롤 속도가 0이 되는 버그라니요. 물론 나중에 자전거를 얻으면 이 버그는 풀리긴 하지만 어쨌건 이 버그는 게임의 진행속도에 정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이 버그가 glitch 였다면 제가 이 글에서 굳이 언급하지 않았겠죠? 네. 이 버그는 glitch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제목에서 언급한대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지만 이건 코에다 귀걸이를 걸어놓고 코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보라타운의 포켓몬 타워에서 유령의 모습을 한 텅구리를 잡으려면 비주기를 잡고 실로스코프를 써야 하지만, poke doll 을 이용하면 텅구리와의 싸움을 스킵하는 버그가 존재합니다. 물론 이 역시 glitch 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사실 이 스킬들을 glitchless 런에서 사용해도 된다고 한 건 스피드러너들간의 약속입니다. 이 트릭(글리치가 아니라고 하니)들을 사용할 시 최고 기록은 2시간 즈음에서 1시간 45분대로 15분 정도 줄어들게 되고, 기록을 줄이는 것은 스피드러너들의 꿈이니까요. 물론 그들이 이러한 합의를 한 것에는 근거가 있긴 합니다. 이 트릭들은 게임 내에서 프로그래밍된 코드의 영역을 벗어난 글리치가 아닌, 코드를 프로그래밍하며 고려치 않은, 즉 놓친 부분에 대한 헛점이기 때문에 이 또한 게임 내의 정상 행동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거죠. 물론 glitch 가 허용된 포켓몬 레드의 스피드런은 아예 다른 분야이고, 그러다보니 이런 종류의 것들은 glitch에 포함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합의를 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자, 여러분의 판단은 어떠신가요? 이 기준과 이유에 모두, 납득하십니까?





결론적으로 포켓몬 레드는 두 가지의 glitchless 카테고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glitch 같아 보이는 트릭들이 허용되는 glitchless, 그리고 저런 트릭마저 허용되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glitchless (classic). 물론 하는 사람도 그렇고 기록도 전자가 더 많지만, 후자가 진정한 glitchless 라며 후자의 기록을 더 쳐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국 스피드런이라고 하는 분야는 수많은 게임의 장르, 갯수 만큼 각각의 게임에 따른 룰이 존재해야 하고, 이 룰은 결국 기존에 스피드런을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 그리고 넓게는 이 게임을 만드는 유저의 합의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아마추어 같아 보이긴 하지만, 이러한 룰의 개정이나 이를 위한 토론. 그리고 싸움들도 스피드런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임에는 확실합니다.



p.s) 스피드런 세계에서 지난주는 역사깊은 한 주 였습니다. 슈퍼 마리오 브로스, 슈퍼 마리오 브로스 3, 슈퍼 마리오 64 16스타 런 등에서 세계기록이 우수수 쏟아졌는데요. 특히, 이 시리즈가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얘기로는 이미 확정되어 있는 '슈퍼 마리오 브로스' 의 경우, 지난 한달 간 역사의 이정표가 하나 쓰여질 정도의 의미있는 기록 단축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그때 하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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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03 01:27
수정 아이콘
Glich run도 이야기해주세요. 어떻게 하는거에요?
GjCKetaHi
18/11/03 02:02
수정 아이콘
https://www.youtube.com/watch?v=yooD_IyA5_Y

이렇게 합니다. 블루 버전만 되는 걸로 알고 있고, 주인공 이름짓는 거 부터 모든게 정해진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킥킥킥이나
18/11/03 01:29
수정 아이콘
심도깊은 글 감사합니다. 젤다 꿈꾸는섬의 경우 GB에서1탄 던전 glitch를 우연히 발견하고 엄청 흥분했던 기억이 있네요. 스피드런엔 사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숨은 던전에 곧바로 돌입할 수 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캣리스
18/11/03 06:35
수정 아이콘
gta나 세인츠로우 어쌔신크리드 같은 오픈월드게임 100%할때 동선짜는법 글써주실수 있나요?
GjCKetaHi
18/11/03 10:52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는 스피드러너는 아니고 제 글은 앞으로도 특정 게임의 스피드런 히스토리에 대해서 쓰게 될 것 같습니다. 해당 게임들은 유튜브에 100프로 세계기록 런이 있으니 참고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사실 오픈월드 100프로 런은 다른 것보다 보는 재미와 하는 재미 모두 떨어져서 크게 연구되지 않는 분야에요. 애초에 100 프로 기준이란걸 잡는 것 부터가 문제라
18/11/03 11:37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예전에 다크소울 3 스피드런을 봤는데 그쪽도 온갖 방법으로 동선을 줄이더라고요. 보스룸 앞 게임종료 고공낙하 게임종료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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