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즈 앤 이어즈는 BBC와 HBO가 공동제작한 드라마로 왓챠플레이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배경은 2019년의 영국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출발해 대략 20년 가량의 시간동안 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는지를 다룹니다.
이야기는 라이너스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이 가족은 뭐랄까 의도적으로 PC의 집합체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학력 자산가인 백인 장남과 짧은 머리의 흑인 아내
게이인 차남
레즈비언이며 사회운동가인 장녀
지체장애인이며 미혼모인 차녀
여기에 장남의 딸은 인간의 육체를 버리고 정신을 데이터로 치환하는 트랜스휴먼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차녀의 두 아들 중 1명은 중국인이며 나중에는 트랜스젠더가 됩니다.
이런 장치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2020년의 세계를 아주 최신형으로 보여주기 위함인것 같습니다.
이어즈 앤 이어즈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는 얼마나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는가?]는 물음으로 정리된다고 봅니다.
모든 사람이 다가오는 위험을 인지하고 두려워 하고 있지만 그에 맞서서 구체적인 실천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지요.
분명 자본주의는 승리하였고 민주주의는 최선의 정치체제이며 역사에서 많은 실패를 경험한 인류는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한텐데도 말이에요.
우리가 사는 세계는 견고하며, 쉬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21세기의 선진 문물이 가져다주는 향락은 오늘도, 내일도, 내년도, 10년 후에도 계속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보이는데 말이에요.
이어즈 앤 이어즈의 세계에서는 극우정당이 집권하고 기후변화로 인해 홍수가 밀어닥치며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빼았긴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옵니다. 극우정당의 당수가 TV토론에 나와서 중요한 정치현안이지만 생각하기는 골치아픈 문제에 대해서 그딴것 X도 신경안쓴다며 내게 진정으로 중요한 일은 자신이 버린 쓰레기가 매주 재깍재깍 수거되는 일이라고 말하지요.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미친 소리로 치부하며 한번 웃고 말지만 그런 말에 환호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같은 가족안에서도 호불호가 갈리지요.
이어즈 앤 이어즈는 정말 딱 제 취향의 드라마였습니다.
보고있자면 어떤 느낌이 드나면요. 대략 MBN에서 6시부터 시작하는, 진행자와 여러 진보 보수 패널들이 나와서 현재 정치 현안들에 대하여 이것저것 자신의 생각들을 주워섬기며 떠드는 뉴스와이드를 보는데 정말 이슈가 한창일때, 패널들이 최고조로 흥분해서 PD는 패널들의 얼굴을 서로 교차하여 보여주는데 여념이 없고 진행자는 패널들의 말에서 모순을 찾아 맞불을 놓는데 거기 대답하는 패널이 진정으로 성을 내고 이를 수습하려는 PD는 고작 배경음으로 까마귀 소리를 흘려보내는 식의 느낌입니다.
지난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 아니면 작년 조국 전장관 사태, 이번 코로나 사태, 최근 다가오는 총선 이슈까지 MBN 뉴스와이드가 최고로 불타오를 때의 그런 재미가 이어즈 앤 이어즈에서는 느껴졌어요.
아니지요. 재미는 더 했습니다.
단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현안이 아닌 어떤 모습으로든 망가진 가까운 미래의 뉴스와이드는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 드라마의 한 부분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여당 지지자로서 야당의 지도자가 본헤드 플레이를 할 때 나도 모르게 탄성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는 식으로 제게 기쁨을 안겨주었습니다.
분명 끔찍한 디스토피아인데 오히려 그것보다 더 선과 같은 황색언론의 저질 찌라시를 나도 모르게 탐독하고 있는 느낌으로 즐겁더군요.
코로나 시국으로 세계가 뒤숭숭하며 한국의 총선이 며칠 남지 않은 이때 즐기기에 더 좋은 드라마가 아닌가 싶습니다.
추신으로 각본이 닥터후로 유명한 러셀 T 데이비스인데 저도 나름 닥터후 시리즈를 즐겼던 사람으로서 러셀이 이 정도로 재밌는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점에 제법 놀랐습니다.
저는 닥터후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 좀 유치하고 진지한듯 하면서 어이없는 sf적 상상들을 즐겼던 것인데 닥터후의 그늘에서 벗어나 작정하고 단단한 이야기를 쓰니까 이런 결과물이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리하면 닥터후와 블랙미러의 중간지점에 있는 드라마입니다.
드라마는 총 6회이며 호흡이 빨라 금방 몰입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