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4학년이 되었음에도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문제집 푸는 것과 동생과 놀아 주는 것 말고는 오로지 그림 그리는 데에 시간을 쏟고 있는 큰딸한테 새로운 것 좀 해보자고 가볍게 건넨 말이었죠.
요 몇달 동안 겨울왕국에 빠져 있어 관련 그림을 A4 용지에 뽑아서 줬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틈만 나면 그것을 보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관심이 있긴 했는데, 학교 가는 것을 하나의 낙으로 삼던 녀석이 학교를 못 가게 되니 그나마 하루종일 그림에 몰두하게 된 셈이죠.
아무튼 겨울왕국 말고 다른 것 좀 그려봤으면 하는 마음에 꺼낸 말이었는데 그냥 그렇게 며칠이 갔습니다.
그런데 어제 다시 묻습니다.
"아빠, 근데 어떤 그림을 그려야 돼요?"
까먹고 있었는데 불시에 물어보길래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지요.
"응? 아... 그거, 마땅한 거 생각 안 나면 그냥 좋아하는 캐릭터 그림에 응원 문구 적으면 되지. 뭐 겨울왕국 안나나 엘사 같은?"
"어떻게요?"
"음... '의료진 여러분들 모두 힘내세요!' 같은 말도 좋고..."
결국 겨울왕국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꺼낸 이야기는 겨울왕국 캐릭터로 정점을 찍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녀석이 다 그린 다음에 저한테 그림을 내보이고선 어려운 질문을 던지네요.
"근데 아빠 이거 고생하시는 의료진들한테 어떻게 전달할 거예요?"
"아... 인터넷에 올리면..."
무심코 던진 말에 어린이에게 1주일 간의 고민 거리를 안겨 준 원죄 때문이었을까요,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주변의 의사 친구에게 물어 봐야하나, 그 친구는 이쪽이 아닌 걸로 아는데...
아니면 난데없이 이 그림을 카톡으로 보내 무작정 응원을 하면 되나...
그렇다고 인*타나 페이*북 같은 SNS를 하는 것도 아니고,
카톡 단톡방에 뿌리자니 코로나19와 관련해서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도 없는 것 같고...
직접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난감해졌습니다.
"인터넷에 어디다 올려요? 그러면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한테 전달해 줄 수 있어요??"
고민 끝에 내린 결론, 역시나 믿을 건 여기 밖에 없더군요.
여왕의 심복님을 비롯하여 코로나 전선에서 힘겹게 싸우고 계신 의료진들의 모습을 그나마 피지알에서 종종 접했던 게 생각나 올려 봅니다.
사태를 총괄 지휘하며 대응하는 질본이나,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고 있는 많은 시민들, 감염의 위험 속에서 묵묵히 책무를 다 하고 계시는 의사, 간호사분들과 담당 공무원들, 공항이나 역 등 수많은 인파가 다녀가는 곳곳에서 방역과 소독에 고생하시는 여러 종사자분들을 응원합니다.
(아이에게 쉽게 설명하고자 이 모든 분들을 '의료진'으로 지징했는데, 이를 그대로 그림에 적었나 보네요)
그리고, 최근 두달여 동안 부쩍 늘어버린 큰아이의 그림 솜씨가 더이상 늘지 않아도 좋으니 빨리 이 시국이 물러가고 따뜻한 봄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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