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0/04/11 00:50:16
Name
Subject [일반] 갑자기 옛이별 사무칠 때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마음이 허하고 텁텁합니다
아니, 어제도 아니고 그저 한시간 전만 해도 저는 T1의 패배가 분해서 기분이 팍 상했을 뿐이었는데요
그런데 그런 의식의 흐름이 저를 작년 롤드컵으로 인도하고 갑자기 그 친구의 자취방에서 경기를 보던 순간이 떠오르면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파박 몰려오는 이 기분은 뭘까요
아주 우울한데 이 우울감속에는 정다운 기억들이 가득해서 싱겁도록 이상한 느낌이 드는거에요

우리의 행복은 많은 부분 내일은 더 멋진 날이 펼쳐질 것이라는 희망과 맞닿아 있는데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치사하고 샘통맞은 어제의 옛이별이 오히려 저를 단단하고 외롭게 만드는 것이지요
또한 놀랍게도 그런 감정에게서 제법 기쁜 마음도 든답니다
파노라마처럼 늘어진 어떠어떠한 행복과 불행들에 대하여 어떤 일도 있었다... 어떤 일도 있었다... 라고 혼자 주억거리고 있으면 내일같은 것 없이도 잘 살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요.
그래서 오랜만에 시집을 꺼내어 읽어보았답니다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
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산 밑 뒤뜰에 가랑잎 지는 걸 보고 있었다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
바람이 있고 나는 눈을 감는다
떨어지는 가랑잎이
아직 매달린 가랑잎에게
그대가 나에게
몸이 몸을 만질 때
숨결이 숨결을 스칠 때
스쳐서 비로소 생겨나는 소리
그대가 나를 받아주었듯
누군가 나를 받아주어서 생겨나는 소리
가랑잎이 지는데
땅바닥이 받아주는 굵은 빗소리 같다
후두둑 후두둑 듣는 빗소리가
공중에 무수히 생겨난다
저 소리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다 옛일이 되었다
가을에는 공중에도 바닥이 있다

-문태준, 바닥



저 소리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다 옛일이 되었다는 부분은 항상 기가 막힙니다
그런 친구가 있었지.. 지금은 어디 어디 살겠지.. 뭐 뭐 하고 있겠지..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一代人
20/04/11 02:24
수정 아이콘
그러나 다 옛일이 되었다
20/04/11 02:52
수정 아이콘
전대호 시인의 "상처"란 시가 생각 나네요.
- 지나간 일들은 정말로 지나가 버린다 -
마우스질럿
20/04/11 07:03
수정 아이콘
(수정됨) https://www.youtube.com/watch?v=hYFMppaG83o

임한별 커버 윤종신의 '좋니' - 개인취향이겠지만 좋니 커버 들중에 이게 정말 괜찮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29h0TrJfSM

민서 세로라이브 '좋아'
VinnyDaddy
20/04/11 08:18
수정 아이콘
가을에는 공중에도 바닥이 있다...크으.
걷자집앞이야
20/04/11 08:3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5655 [일반] 이런저런 이야기들. [16] 공기청정기10136 20/04/11 10136 0
85654 [일반] [스연] XFL이 한시즌도 못해보고 해체되네요 [16] 강가딘10233 20/04/11 10233 0
85653 [일반] [스연] 스카이스포츠 회원 선정 19-20 프리미어리그 베스트11 [5] 키류6916 20/04/11 6916 0
85652 [일반] 내 주변의 노벨상 수상자 이야기 [73] boslex14017 20/04/11 14017 25
85651 [일반] 전직 배달 종사자가 본 공공배달앱까지의 여정 [114] neuschen15560 20/04/11 15560 32
85650 [일반] 갑자기 옛이별 사무칠 때 [5] 7309 20/04/11 7309 2
85648 [일반] [도서] 교황청의 역사, 로마제국부터 21세기까지 [6] aurelius8106 20/04/11 8106 2
85647 [일반] [스연] ‘런닝맨’ 정철민 PD, SBS 퇴사 & CJ ENM으로 간다. [13] 휴울14266 20/04/10 14266 2
85645 [일반] (단편) 이런 세상 [27] 글곰8822 20/04/10 8822 21
85644 [일반] [스연] 슈퍼소닉 이대형 선수가 은퇴합니다. [80] 산밑의왕12803 20/04/10 12803 1
85643 [일반] [스연] 남의 군생활은 역시 짧습니다! [26] 빨간당근12230 20/04/10 12230 0
85642 [일반] 공립학교 vs 사립학교 여러분 자녀를 위한 선택은? [48] 그랜즈레미디11029 20/04/10 11029 1
85641 [일반] AMD 4세대 CPU 젠3 9월 출시 +삼성 3200 램 출시 [76] 토니파커13757 20/04/10 13757 7
85640 [일반] [스연] 걸그룹 근황 (로켓펀치/니지프로젝트/엘리스) [30] 어강됴리12439 20/04/10 12439 4
85639 [일반] [웹툰 추천]마법스크롤 상인 지오 [54] 모나크모나크11452 20/04/10 11452 1
85638 [일반] (웹 소설) 전생하고 보니 크툴루... [30] 카미트리아13588 20/04/10 13588 3
85637 [일반] [스연] 2020년 3월 여자가수 음반판매량(가온기준) [6] VictoryFood7173 20/04/10 7173 1
85636 [일반] 골드만삭스, 일본 2분기 성장률 -25%로 예상 [85] 어강됴리17748 20/04/10 17748 1
85635 [일반] 여러가지 기본소득이 통합된 카드가 나왔으면 좋겠네요 [26] 잰지흔8959 20/04/10 8959 0
85634 [일반] [스연] LG 현주엽 감독 계약만료로 사임 [22] BitSae9795 20/04/10 9795 0
85633 [일반] [스연]다음주 방탄소년단이 콘서트 영상을 무료스트리밍 합니다 [6] 아사7298 20/04/10 7298 8
85632 [일반] [웹소설] 괴담동아리 연재 재개 [11] 랑비8860 20/04/10 8860 4
85631 [일반] 미국 박스오피스 근황 [8] 감모여재11329 20/04/10 11329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