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국제기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aurelius 님의 글을 보고 어릴적 제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80년 국민학교 6학년일때 아버지께서 인도네시아로 장기출장을 가시기 시작했습니다. 동네도 첨들어본 수라바야..그리고 그곳에 가시면 6개월 정도 계시다 서울에 오시곤 하였죠. 아버지 없는 집은 참 적막했던 했던것 같았습니다.
중학교 들어간후에, 아버지께서 이번엔 발리섬이란 곳으로 2년 반짜리 장기 프로젝때문에 모든 가족이 (저와 제 동생은 빼고) 그곳에서 살다 올거라 하셨습니다. 물론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면 그곳엔 국제학교가 없기에 아직 어린 막내 여동생만 데리고 갈것이고, 너랑 동생은 서울집에서 친척이 돌봐줄테니, 잘 지내다가 방학때 부모님을 뵈러가는 조건이었죠.
그 당시는 어릴때라 아버지가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잘 몰랐습니다. 아버지는 국영기업체 다니셨었죠. 첫 방학때 가본 발리섬 덴파사 근처의 부모님집은 여러 국적의 가정들이 모여사는 빌리지 같은 곳이었습니다. 한국 분들도 계셨고, 영국분, 이탤리분, 등등, 그분들 집에도 또래의 아이들이 있어서 방학때 부모님 집에 가게되면 재미있게 바다에서, 가까운 호텔 풀에서 놀던 기억이 납니다.
좀더 시간이 흐른 다음에 알게된것이 그곳에 오셔서 함께 일하시던 분들은(저희 아버지도 포함), 국제식량기구 (FAO)에서 발주한 당시 표현으로 "후진국"의 수리관개사업(농업용 수로개발) 프로젝에 참여한 국가에서 오신 분들이었습니다. 이렇듯 농업이 중심인 나라에게 안정적으로 물관리를 할수있다면 많은 도움이 되겠죠. 아버지는 이 발리 프로젝 전에 수라바야에서도 같은 프로젝 팀이랑 일을 하셨고, 그 후속사업이 발리에서 있게되어 다시 오신 것이죠. 아버지 직장의 다른 분들은 필리핀인지 다른 나라들로도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서울에 돌아오신 후에도 계속 중미, 남미, 인도네시아로 출장을 많이 다니셨죠.
이렇듯 80년대만해도 이런 국제기구들이 후진국/중진국에서 벌린 일들은 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도 그런 국제기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이제시간을 빨리 감아, 2010년대 왔습니다. 전 직장에서 제가 매니지 하던 분석기기의 용도중에 가짜약을 판별하는게 있습니다. The Global Fund라는 NGO에서 그 기기들을 사서 아프리카로 보낸일이 있습니다. 물론 그 나라의 신문에는 그 기사가 크게났고, 저도 그것을 제 프로덕 마케팅에 활용했었죠. 아프리카엔 가짜약(말라리아)으로 죽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게 그 정부가 썩어서 인데, WHO에서 약 지원해주면 그 약이 오다가 가짜약으로 바뀌고, 그 가짜 말라리아 약을 먹은 사람들은 약효가 없기에, 아님 다른 성분이기에 죽어갔습니다.
그래서 앞서 말한 NGO가 전에 제가 일했던 회사에서 그 가짜약을 판별하는 장비를 사서 보내준것이죠. WHO가 아니라. 뉴욕/제네바 노선은 항공사들에겐 상당히 "꿀" 노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네바와 뉴욕엔 우리가 이름들으면 알만한 국제기구들이 있죠. 그 두도시를 왕래하는 많은 사람들이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분들이고, 뭐 공무출장이니까, 비행기표 부담 없겠지요.
이제는 이런 국제기구들이 저렇게 도움이 필요한 나라들에게 정말 우리 아버지 세대가 받았던 것처럼, 했던 것처럼, 정말로 도움이 될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국제기구들은 인류의 공동발전(?)에 필요하지만, 이제는 한번 묵은 먼지를 털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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