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사랑 얘기 아님
저는 이 글(
https://pgr21.net../freedom/83917)을 쓴 사람입니다.
(이전 글 요약 : 교사가 꿈이었으나 오랫동안 시험에 떨어져서 꿈을 포기하기로 함.)
기간제 원서 접수 시즌이 다가왔다. 오랜 고민 끝에 원서를 여기저기 넣었다. 떨어진 곳도 있었고 감사하게도 서류가 통과한 곳도 있었다. 그런데 슬프게도 통과한 학교들의 면접일이 동일했다. 나는 기존에 일하던 학교를 선택했고, 다행히 면접을 통과했다.
(다 적진 못해도,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기간은 5개월 남짓. 육아휴직 자리였다.
나는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코로나... 그렇다 코로나가 문제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누구나 처음이겠지만...), 온라인 개학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개학 전부터 아주 자주 학교를 나왔다. 업무도 해야 했고 수업 준비도 해야 해서...
그러다 몇 차례의 개학 연기와 마주했고, 온라인 개학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정책과 마주해야 했다.
학교에서 온라인 개학 지침이 내려오던 날, 내가 퇴근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다이소에 들러서 삼각대와 스마트폰 터치펜을 산 것이었다.
그런데 터치펜은 감도가 정말이지 별로였다. 그림은 그리겠는데 글자는 쓰기가 어려웠다. 나는 본문 텍스트에 이것저것 필기를 하면서 가르쳐야 하는 과목이기 때문에 판서가 중요한데 그것이 전혀 되지 않았다.
유튜브를 보니 삼각대에 스마트폰을 끼우고 책상 위에 두 손과 종이가 나오게 한 뒤 판서를 사인펜으로 하는 선생님이 계시길래 나도 도전을 해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으아닛 내 목소리가 이랬단 말인가!????? 녹음이란 걸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녹음된 내 목소리는 아주 들어주기가 힘들었다. 판서도 괴발개발이었다.
28분을 찍었는데 2.7기가가 나왔다. 우리 학교는 EBS 온라인 클래스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온라인 클래스는 한 강의 당 20분/400MB 제한이 있다. 인코딩을 하니 어찌저찌 용량이 줄어들긴 했지만 가독성이 매우 좋지 않았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녹화를 시도한 끝에 나는 삼각대와 기존 녹화분을 버리고 PPT 녹화를 선택했다.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에 녹화 기능이 있는 걸 아시나요?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내가 가르치는 과목은 피피티에서 입력이 안 되는 문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교과서 pdf 파일을 캡쳐해서 쓰기도 하였다. 저작권 문제로 출판사와 전화도 여러 번 했는데 흔쾌히 사용을 허락해 주시더라... (감사합니다 금* 출판사)
학교에서 쓰는 파워포인트 버전은 2016이었는데, 2016버전은 그 이전 버전보다 녹화 화면 인터페이스가 좋지 않았다. 쉽게 얘기하면 가장 쉬운 녹화 방법이 원테이크 녹화 방식이랄까... 틀리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했다.
또 다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녹화를 시도한 끝에 나는 무사히 18분짜리 강의를 얻었다.
나는 고등학교에 근무하기 때문에 50분짜리 수업을 해야 하지만 학생과의 상호작용 없이 내 말만 다다다 하기 때문에 1차시에 가르칠 내용이 20분이면 다 끝나버리더라...
나는 강의를 EBS 온라인 클래스에 올리기 위해 인코딩이라는 것도 해보고(다음팟 인코더 만세!)
어떤 버전의 강의 녹화분이 나은지 남자친구에게 물어보기도 하였다(이 글 보고 있냐? -남친이 피지알 알려주었습니다 2011년 즈음에)
그렇게 EBS 온라인 클래스에 강의를 올리는데... 아뿔싸... 강의가 안 올라갔다.
서버의 문제인 듯 했다.
그래서 유튜브에 올리고 링크를 걸었다. (유튜브 링크를 거는 기능도 있어요!)
맨날천날 보기만 했지, 올리는 건 처음인지라 가슴이 무척 두근댔다. 앗, 나도 이제 유튜버 데뷔인가...!!!(비록 부분공개를 해서 검색은 안 되지만...좋아요와 구독도 막아놨지만...)
하지만 유튜브 링크는 안 좋은 점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강의 링크를 다른 곳에 공유할 수 있어서, 우리 학교가 아닌 학생들이 강의를 들을 수도 있다는 점. 다른 하나는 EBS 온라인 클래스는 데이터가 무료인데 유튜브 링크 강좌는 그렇지 않다는 점...
얼굴이 나오지 않으니 전자야 그렇다 쳐도 후자가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EBS 온클에 올릴 수 있을지 고민을 했다.
인코딩이 문제인가? 서버가 문제인가? ... 알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강의가 올라갔다. (사이트 문제였어요)
테스트로 강의를 들어보는데, 역시나 오글거렸다. 내 목소리가 이렇게 높았던가, 내 혀가 이렇게 짧았던가, 내 말이 이렇게 빨랐던가...
내가 업무를 보고, 강의를 녹화하는 동안 내가 속한 실(교무실)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예 젊은 선생님들에게 모든 걸 떠맡기는, 퇴직을 앞둔 선생님도 계셨고,
똑같이 퇴직을 앞둔 선생님임에도 여기저기 물어가며, 퇴근을 늦춰가며, 변화에 적응하는 선생님도 계셨다.
놀랍고 감동적이었던 것은, 서로가 서로를 돕는다는 점이었다.
어려운 게 있으면 조금이라도 잘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을 요청 받은 사람은 흔쾌히 자기 시간을 할애해서 알려주는 모습. 정말 감동적이었다. 특히 내 옆자리 선생님이 젊은이이자(?) 만능 재주꾼이어서 여기저기 불려가며 이것저것을 알려주었다. 그 선생님은 비교과 선생님이어서 수업을 할 일이 우리 학교에선 없는데도 일당백을 할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아무튼 간에 나는 어렵사리 강의를 녹화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열정이 생겨서 2주차 하고도 절반의 강의를 녹화했다. (저는 지금 고2를 가르치기 때문에 고2 온라인 개학 일정에 맞는 강의는 다 찍은 상태예요)
동료 선생님에게 빈 교실을 빌려서, 혀가 꼬이면 다시 녹음하고, 녹음하고, 또 녹음했다.
녹화한 내용 중에 임용 시험에 나왔던 부분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틀린 문제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이 녹화를 옛날에 했다면, 그 기입형 문제를 맞힐 수 있었을 텐데...
강의를 녹화하고, 개학 전에 내준 과제 게시물에 댓글(피드백)을 달고, 업무를 하고, 수업 준비를 하고... 고된 하루였지만 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아서 마음이 편했다. 다만,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이런 나에게, 아이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바로 zoom을 이용한 원격 수업!
우리 학교는, 온라인 개학 기간 중에 무조건 쌍방향 온라인 강의를 해야만 했는데,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주어졌다.
지난 주에 모의로 쌍방향 수업을 해보았는데, 애들 출첵하는 것만 해도 15분이 훌쩍 지났다.
그래도 들어와주는 애들이, 캠을 켜주는 애들이, 내 말에 대답을 해주는 애들이, 그것도 안 되면 채팅으로라도 대답해주는 애들이 무척이나 기특했다. (zoom 프로그램 참 좋은 것 같아요... 해킹 위험이 크다고 들었지만...)
오늘은 1,2학년 온라인 개학이라서 실제로 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물론 우리 과목은 동교과 선생님들과의 협의 하에 오리엔테이션으로 진행했지만...
다문화, 도움반(특수교육대상자) 학생들 외에는 모두 다 들어와서 뿌듯했다.
얘들아, 너무 보고 싶었어.
나는 괜히 이것저것 친밀감을 올릴 말들을 해보았다. 처음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처음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웃어주면, 풀어주면, 아이들이 간을 보다가 기어오른다. 이것이 교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전해지는 말이지만 나는 올라가는 입 꼬리를, 만개하는 잇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새로운 매체를 접하는 것도, 새로운 방식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너무 재밌었던 것 같다.
아, 그리고 우리 학교는 교과서 배달도 했다.
나는 담임이 아니라 부담임이기 때문에 교과서 배달에 대한 부담이 덜했지만, 그래도 학교 주변 동네의 아이들에게, 언니 차를 호출해서 교과서를 나눠주었다. 그날 뒷좌석에 앉아서 그런지 차멀미가 너무 심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마저도 추억이다.
나는 분명 피지알에게 나의 첫사랑과 헤어지겠다고 글을 썼는데, 어쩌다 보니 다시 도돌이표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나의 선택을.
계약이 5개월 남짓이라. 코로나 때문에 학사 일정이 밀린지라, 방학식 며칠 전에 사라져야 하는 입장이라 슬프지만, 지금은 그저 좋다.
다시 너희들을 만날 수 있어서. 만날 수 있어서.
강의를 3주차까지 찍어놔서 온라인 개학을 한 주 더 하면 좋겠지만, 그래도 건강이 최고니까 코로나 빨리 사라지시고 애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오늘 실시간 쌍방향 수업(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그런 말을 들었다.
“이번 학기 OO(내가 가르치는)과목, 재밌을 것 같아요!”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말이다.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이렇든, 저렇든, 코로나가 얼른 물러가서 애들 좀 봤으면.
계약 기간 끝나기 전에 애들 한 번도 못 보면 슬플 것 같다.
시험을 너무 자주 떨어져서 ‘붙어서 정교사가 되어야지’라는 말은 못해도,
적어도 올해는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힘내자. 2020. 이 글을 보는 분들도 모두 파이팅입니다.
추신 : 제가 지난번에 글을 썼을 때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도 많았고 따로 쪽지를 보내주신 분들도 많았는데, 그때 받은 위로가 참 감사했었습니다. 그런데 간사하게도 다시 이 일을 하게 되었네요. 그래도 행복하니까 아직은 괜찮은 거겠죠?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모두 하시는 일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