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는 약 올해 2월 중순, 나의 해외 취업 준비는 비자 발급 확정 소식과 함께 드디어 순조롭게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늦은 나이에 군 전역을 하고 반년간 마음고생 하며 한 구직활동이 드디어 열매를 맺는 순간이었다.
이때만 해도 코로나 사태는 중국에서나 심각한 수준이였고 다른 나라에서는 머지않은 미래에 종식될 듯 보이고 있었다. 나는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곧 출국할 예정을 세웠다. 정해진 항공편은 3월 4일 새벽비행기, 솔직히 그 때만 해도 약 2주 남짓 사이에 이렇게 큰 변화가 일어날 줄은 몰랐다.
-
약 1주 뒤, 국내 코로나 확진자가 갑자기 무자비하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전 세계가 한국인의 입국금지를 하기 시작했다. 난 부랴부랴 항공편을 바꾸기도 애매했던게 그럴만한 금전적 여유가 없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항공사들이 무료 예약 변경을 해주기 전이였고, 해준다고 해도 일정을 뒤로 미루는것만 가능하지 앞당기는 것은 쉽게 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찾아온 3월 3일 저녁, 공항으로 떠나던 중 심장을 출렁이게 하는 소식을 보게 되었다. 도착 예정국에서 내일부터 한국 방문 이력이 있는 사람들의 무비자 출입국을 전면 통제할 예정이라는 소식이었다. 허겁지겁 기사를 클릭해보니 3월 4일 23:59 부터라고 적혀있었다.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기 직전의 상황에서 다시 정신을 차리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난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에 탑승한 인원은 10명도 되지 않았다. 이렇게 쓸쓸한 비행은 처음이었다. 난 집에서 공항까지,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까지, 그리고 비행기가 착륙할 때 까지, 그리고 도착한 공항에서 무사히 나오기까지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답답했지만 조금이라도 잘못되어 내가 확진이 되는 순간 내 취업 또한 물거품이 된다고 생각했다. 인적이 부쩍 한산해진 공항에 착륙했을 때, 묘한 기분이 들었다. 군입대를 하기 전 10년 가까이 지냈던 나라이거늘, 뭔가 많이 어색해지고 달라진 느낌이었다. 이것이 현 사태 때문인지 아니면 이곳이 정말로 달라진건지 콕 집어서 알 수 없었다.
-
["출근은 2주동안 대기하셨다가 해주세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 출근할 회사에 전화를 해보니 내 백수기간이 공식적으로 2주 늘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회사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갔기 때문에 크게 토를 달지는 않았다. 다만 이러다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조금은 들었다. 돈도 넉넉하지 않은데 무급여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소식이 썩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2주동안 나를 거두어주고 함께 지내게 해준 지인이 있어서 무사히 출근날까지는 버틸 수 있었다.
3월 23일, 첫 출근날이 드디어 찾아왔다. 입사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각 부서를 찾아가면 된다고 해서 부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오늘 우리가 자택근무를 하게 되서, 오늘은 그냥 집에 가시고 내일 출근하시면 되요."]
출근 첫날부터 조기퇴근이라니. 좋은건지 안좋은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집에 갔다. 다음날 출근을 해서 들어보니 회사에서 교대로 자택근무를 하는 체제를 도입 중이라, 팀원 중 절반 이상은 당분간 만날 수 없다고 한다. 부장님은 교대 순번이 달라서 이 사태가 끝날때 까지는 만날 수가 없다고 한다. 덕분에 난 아직도 날 뽑아준 부장님의 얼굴을 직접 뵌 적이 없다. 오늘까지도.
그렇게 입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회사는 자택근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교대로 진행하던 자택근무가 사태가 심각해지자 상시로 전환되었고, 원래 5월 초부터 다시 정상 출근이 가능해질 예정이었으나 사태가 진정이 완벽히 되지 않아 6월 초까지 연장되었다. 새로운 회사에 입사한 경험을 잘 기억하는 분들은 잘 알겠지만, 신입사원에게 자택근무는 썩 유리한 환경이 아니다. 새로운 직장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는 상태에서 주어지는 업무를 처리하다보니 삽질이 배로 늘어난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건 얼굴도 본 적 없는 팀원들과 협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팀원중 내가 실제로 얼굴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약 6명, 14명쯤 되는 팀에서 약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사실상 디지털 동료가 되어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더 머나먼 미래에는 실제로 이렇게 일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코로나가 세계의 전면 디지털화를 반 강제적으로 이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1달 넘게 지난 요즘, 꾸준한 화상회의와 연락으로도 팀원들과 어느정도 친밀감이 생긴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직장 일도 어느정도 적응을 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팀의 일원으로 정착하고 있다. 아직도 나는 팀원들 중 절반 이상을 본 적이 없고, 아직도 여러모로 적응하는데 고생을 하고 있지만, 열심히 하다보면 그래도 어떻게든 돌파구가 보인다는 것을 느겼다.
2년 반만에 돌아온 직장생활.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점차 모든 것이 궤도로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
갓 전역했던 2019년 8월, 여름의 기승은 꺾이지 않은채로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음 우리집도 이제 슬슬 에어컨 설치하는게 좋지 않을까?"] ["항상 생각은 하는데, 작은 돈도 아니고 그냥 버티다 보면 지나가더라고~"] ["에이, 그런게 어딨어! 내가 다시 취업하면 가장 먼저 에어컨부터 사줄께!"]
작년은 정말 더운 여름을 보냈다. 제작년도 그랬던 것 같다. 늘 그랬다.
우리집은 항상 더운 여름을 보낸다. 그런데 매 해 여름은 야속하게도 점점 더워져 간다. 하지만 어머니는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지내면서 아직까지도 에에컨을 설치하지는 않으셨다. 군생활 중 휴가 나올때마다 가장 안쓰럽게 느껴진 부분이 있다면 여름만 되면 찜통이 되는 우리 집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첫 월급을 받았다. 군입대와 전후 기간을 더해 약 2년 반만에 처음으로 받아보는 제대로 된 월급이었다. 맨날 집에 있는데 월급이 들어온다는게 좀 신기했지만, 그래도 현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기에, 그 어떤 월급보다도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올해 여름은 시원하게 보내시라고, 약속대로 에어컨 하나 달아드려야겠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그러시군요. 아래 댓글을 읽어보니 싱텔이나 스타허브신 것 같은데 더욱 대단하십니다. 혹시 PR이신지요? 국가 기간산업에 EP 홀더로는 좀체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Republic Plaza 근처에서 점심 같이 먹을 사람 없으면 쪽지 주세요. 아재가 동방홍에서 짜장면은 쏠 수 있지요.
저는 싱가폴에 본사를 둔 회사의 서울오피스로 1월 말쯤 이직을 했는데, 여기 상황도 매우 골때립니다. 크크
이게 서울 오피스가 새로 오픈되는 상황에 초기 맴버로 들어왔는데, 내부 사정으로 다른분들 채용이 늦어져서 첫 출근하고 봤더니 HR매니저만 계시더라구요. 진짜 완벽한 초기맴버였던거죠..
그래서 단둘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와중에 코로나가 빵!
전사적으로 채용이 프리즈됐어요!
저랑 HR 매니저랑 둘이 손가락 빨고있어요!
어쨌든 본사 지침으로 2월 말쯤 재택 전환되고 사정 나아지던 4월 초에 A/B팀 나눠서 반씩 출근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죠.
아시다시피 저희는 둘 뿐입니다..
단 하나뿐인 동료직원 얼굴도 못본지 석달이 다 되어갑니다. 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