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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5/10 16:22:33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역사] 중세의 대성당들은 누가 지었을까? (수정됨)

파리의 노트르담대성당. 중세 성당 중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입니다. 

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 3 June 2010.jpg

1163년 짓기 시작해서 1345년 완공된 성당으로, 짓는 데 무려 182년이나 걸렸습니다. 당시 대성당들은 대부분 짓는 데 상당히 오래걸렸습니다. 평균적으로 4세대에 걸친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건축을 지시한 사람도, 첫삽을 뜬 사람도, 조각상을 깎은 예술가도 본인들이 성당이 완공되는 걸 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엄청난 집념과 노력으로 성당을 짓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전혀 새로운 기법과 감각을 이용해 로마시대의 미적 감각과는 다른 독특한 형태와 자태를 살려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습니다. 이 새로운 예술적 사조를 오늘날 "고딕양식"이라고 부르는데 - 사실 고딕양식이라는 말 자체가 르네상스 이후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  당시에는 "프랑크스타일(Opus Francigenum)"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럼 이 무지막지한 건축물은 도대체 누가, 왜, 어떻게 지은것일까요?

학자들은 먼저 당시 유럽이 일종의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지구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농사가 잘되었고,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파리 주변을 중심으로 경제가 번영하고 있었는데, 생활이 비교적 풍족해진 왕과 주교들이 왕국과 교회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새로운 건축사업을 도모하고자 했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경우 프랑스왕 루이7세와 파리대주교 모리스 드 쉴리가 지시하여 건립된 건물입니다. 물론 이 두 명 모두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했죠. 

새로운 건축기법과 미적감각을 도입한 성당은 아주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파리 주변부를 중심으로 하여 들불처럼 번지면서 저 멀리 스칸디나비아에서까지 유행하게 됩니다. 유럽의 주요도시들은 서로 경쟁하듯이 성당을 짓기 시작했고, 당시 미의 기준은 파리와 그 주변부의 대성당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의 왕국들과 영주들은 전쟁을 통해서만 경쟁한 것이 아니라, 누가 더 아름답고 숭고한 건물을 짓느냐를 두고 경쟁한 것입니다. 화려하고 거대한 성당을 통해 도시의 영주나 국왕은 본인들이 그만큼 신실하다는 것을 주민들에게 뽐낼 수 있었고, 또 성당이 그 도시의 가장 중요한 트레이드마크가 되면서 대외적으로도 "나는 이만큼 대단한 왕 또는 영주라는 것"을 뽐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교하면서도 거대하고, 화려하면서도 엄숙한 건물을 짓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그저 의지만 가지고는 되는 일이 아니고, 숙련된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이 성당을 짓는 주역들은 이른바 "석공조합(Mason)"이었습니다. 이들은 당대 최고의 전문직으로 아주 폐쇄적이면서 높은 보수를 받는 집단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중세 당시에 대부분의 직군은 "조합(길드)"으로 조직되어 있었는데, 수많은 "조합" 중에서도 석공조합이 가장 은밀하고 폐쇄적인 집단이었다고 합니다. 후일 음모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프리메이슨"이라고 하는 조직이 이 석공단체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하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었고, 미적감각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자재의 질과 내구도 등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수학자이자, 지질학자, 광물학자이자 미술가였습니다. 

노트르담대성당을 착공될 무렵, 파리가 거대한 대성당을 짓겠다고 하자 유럽전역의 석공조합이 파리로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네덜란드 심지어 잉글랜드 출신들도 몰려들었다고 하니, 어떤 학자는 노트르담은 프랑스만의 유산이 아니라 가히 "유럽의 유산"이라고 불릴만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물론 건축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공사, 가령을 땅을 파고 자재를 운반하고 하는 일은 전문직이 아니라 일반 노동자이 도맡았고, 이들은 대부분 현지의 주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무급으로 일한 것이 아니라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였습니다. 사실 중세시대 성당이 짓는데 그렇게 오래 걸렸던 이유는 건축의 난이도도 난이도지만, 이들에게 지급할 돈이 항상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공사가 매번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재원을 확보할 때마다 공사를 재개하고는 했죠.  

성당을 짓기 위한 재원은 일차적으로는 도시 대주교의 사재출연 및 성당에서 매주 거두어들이는 헌금이었습니다. 물론 유력 귀족들의 기부도 있었고, 왕의 기부도 있었습니다. 이 돈으로 가장 높은 보수를 챙기는 건 역시 석공들의 몫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궁금한 건 어떻게 한 사업이 이렇게 오랬동안 끊기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는가에 관한 의문입니다. 
사업기간이 길어지고, 책임자가 바뀌고 작업자가 바뀌고 또 그 기간 동안의 정치적 다툼 등이 발생하면서 사업이 헝클어지거나 무산되거나 아니면 완전히 이상하게 바뀔 수 있습니다. 책임지가 바뀌면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려고 한다거나, 또는 왕이 바뀌면 전임 왕의 계획을 수정하거나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죠. 또는 우리가 사회생활하면서도 종종 겪듯이 높으신 분들 사이에서 정치적 알력이나 다툼이 발생하면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그런데 중세성당의 사업은 나름 굉장히 일관적인 모습으로 마지막까지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관성이 바로 집념 혹은 기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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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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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심이 그땐 정말 그만큼 강했다고 생각됩니다.
프테라양날박치기
20/05/10 16:45
수정 아이콘
뭔가 현대의 지자체에서 하는 공사는 수뇌부가 지선으로 한번 싹 갈리면 기존 수뇌부가 하던 사업을 다 갈아엎기 일수라 명분이 부족한 사업은 10년 가기도 힘든데... 180년이라니 너무 먼 이야기라 신기할 정도네요.

오히려 민주주의 체제하에선 저렇게 오래걸리는 사업은 어렵지 싶습니다. 내 한몸 돌보기도 바쁜 일반인들은 내 손자도 보기 힘든 건축물을 위해 내가 돈을 낸다는걸 전혀 납득하지 못할것 같네요.
20/05/10 16:50
수정 아이콘
소설 대지의 기둥 보시면 성당 짓는 석공이 주인공으로 성당짓는 모습이 묘사가 되는데 정말 평생에 걸쳐 하더라구요.
20/05/1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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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폴릿의 소설 '대지의 기둥'에 잘 묘사되어 있지요.
강추합니다.
동굴곰
20/05/10 16:56
수정 아이콘
뭐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 건설기 보면 대성당을 짖는다는 대계획만 그대로지 교황/책임자 갈릴때마다 아예 근본부터 설계 수정도 하고...
macaulay
20/05/10 17:12
수정 아이콘
제 아이디인 건축전공 그림책작가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고딕성당’이란 그림책도 추천합니다. 가상의 중세 도시에서 어떻게 대성당을 짓기 시작해서 완성에 이르게 되는지 그림과 함께 볼 수 있어 대략적으로 이해하기 좋습니다.
20/05/10 17:24
수정 아이콘
아이들 주려고 그 분 책 시리즈 전부 구입했다가 제가 더 열심히 봤습니다! 크
츠라빈스카야
20/05/10 17:16
수정 아이콘
그리고 저게 화재로 사라지는데는 채 하루도 안걸렸죠...ㅠㅠ
VictoryFood
20/05/1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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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대 이상 설계를 유지하면서 지으려면 석공조합이 폐쇄적이고 은밀해질 이유는 충분하겠네요.
87%쇼콜라
20/05/10 17:56
수정 아이콘
한때 성당 양식에 대해서 궁금해서 이리저리 뒤져봤는데, 국내에는 만족스런 서적은 없더라고요. ㅠㅠ
성당별로 이렇게 얽히 이야기 쭉 풀어주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나무늘보
20/05/10 18:24
수정 아이콘
우리 조상들도 돌로 좀 지어주시지..ㅠㅠ
antidote
20/05/10 18:38
수정 아이콘
뭐 건축물이 아니니 단순 비교는 어렵습니다만 현대에 저에 비유할만한 유사한 프로젝트가 있다면 핵융합 발전 프로젝트 정도가 아닐지 싶습니다.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고, 과학자/기술자의 자신의 대에 달성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일단 프로젝트 달성기간 자체가 수십년을 기본 텀으로 잡고 가죠) 대규모의 재원과 인력,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지만 거기에 자원을 투입하는 것에 대한 어느정도 국가적,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고 실제로 수십년 째 자원이 투입되고 있죠.

물론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경우 군사적 목적을 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독자적 핵융합 기술을 개발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21세기 초반 현대사회에 중세시대의 대성당에 비견할만한 국가적 프로젝트는 핵융합 발전기술 정도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에는 핵융합 발전기술의 개발 자체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고 이번 총선에서 당선되었습니다만 그래도 국가적으로 이걸 뒤집어 엎는다는 소리는 아직 안나오고 있죠.
DownTeamisDown
20/05/10 19:25
수정 아이콘
더불어시민당 18번이 핵융합 전문가인 이경수 iter 사무차장인데...
양정숙 후보가 당선무효되서 승계되면 자리가 생길것도 같습니다.
아직 태양광이나 태양열 풍력이 여러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핵분열도 핵폐기물이라는 문제가 있다보나 핵융합은 대체에너지원으로 연구가 계속될것 같습니다
20/05/10 19:36
수정 아이콘
핵융합이랑은 좀 다르지 않나요? 핵융합 발전은 기술 자체가 불완전해서 아직 만들어나가야하는 분야고, 저건 그냥 시간 갈아넣는건데
antidote
20/05/10 19:47
수정 아이콘
지금이야 과학기술과 재료공학, 토목공학이 발전했으니 공사가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를 매우 높은 확률로 확실하게 견적을 내고 프로젝트에 착수하지만 중세시대의 과학기술적 상식으로도 그랬을지를 생각해보면 그 두가지가 완전히 다르다고까지는 할 수 없죠.
물론 그 이전에도 피라미드 같은 건축물이 있었으니 아래쪽을 두껍게 만들어야 안정적이다 이정도는 기술자가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을 겁니다만 지반상태, 재료, 인력, 공사비 같은 것들이 불확실한 것 투성이였을 고대/중세에 공사 시작 전에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를 따져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 남아있는 건축물들은 당대에도 나름 성공적으로 만들어진 것들 중에 화재나 세월의 풍화 등에 비교적 덜 훼손되어 보존된 것들이고 짓다가 실패한 건축물들은 남아있지 않죠.
20/05/10 19:52
수정 아이콘
뉴턴이 물리법칙 발견하기 전이긴 할텐데, 그래도 나름의 계산법이 있지 않았을까요? 함부러 층 올리다가는 대참사일 텐데 ㅠ
룰루vide
20/05/10 20:00
수정 아이콘
로마시대 콘크리트기법을 생각해보면 기술적으로도 이미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리고 저런 성당지을때는 미리 설계도부터 뽑고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antidote
20/05/10 20:39
수정 아이콘
로마 콘크리트 기법조차도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잃고 나서 기술이 사실상 동로마에서는 실전되었는데 암흑시대로라고까지 불리던 중세시대에 온전히 전승되는 곳은 드물었겠죠.
저 시대의 시멘트 기술이라는게 화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이고 시행착오로 만들어낸 기술이라 원자재의 출토지가 바뀌면 이전과 같은 배합비로 시멘트를 만들어 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프테라양날박치기
20/05/10 21:24
수정 아이콘
이거랑 비교해도 본문의 성당은 어메이징한 난이도네요. 그래도 핵융합은 180년(...)을 보고 진행하는건 아닌것 같은데.
DownTeamisDown
20/05/10 22:48
수정 아이콘
ITER 같은경우 해체계획 까지 잡혀있습니다. 완공후 20년 굴린다음 5년 감쇄 이후 해체라는 계획이 있어서...
非黃錢
20/05/10 22:51
수정 아이콘
아래 하기아소피아 글의 댓글에 민초입장에선 저런게 없는 게 낫다는 글에 대한 답으로 쓰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보탭니다.

공사비야 봉건영주든 교회든 냈겠지만, 그 돈이 결국 어디서 왔을까요. 영주든 고위성직자든 손에 흙 한번 안 묻히고 살았을텐데, 그들이 쓴 자원은 수탈을 통해 마련되었다고 보는게 상식적이라고 생각되네요.

제가 오해로 엉뚱한 댓글 달았다면 사과드립니다. 평소 써주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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