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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5/15 14:36:14
Name 글곰
Link #1 https://brunch.co.kr/@gorgom/126
Subject [일반] [12] (삼국지) 화타, 방술이 아닌 의술
  화타의 자(字)는 원화(元化)입니다. 또다른 이름은 부(敷)라고 하네요. 삼국지연의에 등장하여 관우의 팔뚝을 가르고 독을 긁어낸 일로 유명합니다만 사실 그 의사는 화타가 아닙니다. 화타는 관우가 형주를 공격하기 십 년도 전에 죽었으니까요. 심지어 화타는 스스로를 학자로 생각하였으며 의원으로 여겨지는 현실을 마뜩찮게 여기기조차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명의로서 사서(史書)에 당당히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게 그가 바라던 바였을지 아니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화타는 서주 패국 초현 사람입니다. 즉 조조와 동향 출신입니다. 오래도록 학문을 닦아 경전에 통달하였다고 합니다. 패국의 상(相)인 진규, 또 태위였던 황원이 연달아 그를 천거할 정도였으니만큼 명성이 있는 학자였던 셈입니다. 그러나 화타는 그런 추천을 모두 거절하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습니다. 대신 양생과 의술에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그런 걸 보면 아무래도 당대의 현실에 회의감을 품었던 모양입니다.  

  정사 삼국지에도 정말이지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온갖 신기한 일화들이 잔뜩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전부 다 믿을 수는 없습니다. 개중에는 꽤나 그럴듯한 것도 있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굳이 다 적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화타가 의술의 대가로 인정받았다는 점은 확실해 보입니다. 왜냐면 당대의 권력자 조조가 그를 불러 곁에 두었거든요.

  당시 조조는 두통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재발이 잦았다는 걸로 보아 아마도 편두통이 아닌가 싶습니다. 화타는 침을 써서 조조의 증세를 어느 정도 완화시킵니다. 그러나 단번에 완전히 낫게 할 수는 없는 병이었습니다. 오래도록 곁에서 치료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헌데 당대의 권력자 곁에서 주치의 역할을 하면 부귀영화가 보장될 텐데도, 화타는 그게 내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거짓으로 아내의 병을 꾸며 고향으로 돌아간 후 조조가 몇 차례나 거듭해서 불렀는데도 가지 않았습니다.  

  조조는 점차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아무리 제일가는 권력자라 해도 병자로서 의사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이치였습니다. 조조는 서주로 사람을 보내 화타의 동태를 살피도록 합니다. 만일 화타의 아내가 정말로 아프다면 화타의 휴가 기한을 늘려주고 위문품도 보내라고 명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화타가 거짓말을 했다면 잡아들여 허도로 압송하라고 했지요. 그 결과 끝내 화타의 거짓말이 드러납니다.

격분한 조조는 화타를 끌고 옵니다. 순욱이 그를 용서하라고 간언했지만 조조는 이미 마음을 굳인 뒤였습니다. 천하를 위해서는 이런 쥐새끼가 없어야 한다고 선언한 조조는 화타를 가혹하게 고문합니다. 화타는 결국 매질을 이기지 못하고 옥사하지요. 죽기 전에 옥의 관리에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책’이라며 자신의 의술서를 건네지만, 처벌을 두려워한 관리는 거부합니다. 그래서 그 책은 결국 화타 자신에 의해 불태워지고 말았습니다.

  화타가 죽은 후에도 분을 풀지 못한 조조는 두통을 겪을 때마다 투덜거립니다. 이건 어차피 못 고칠 병인데 한낱 돌팔이가 잘난 체했을 뿐이다, 설령 그자가 살아 있었더라도 끝내 고치지 못했을 거다 하고요. 그러나 이후 사랑하는 아들 조충이 어린 나이에 병에 걸려 죽자 그때서야 뉘우치면서 화타를 죽인 걸 후회했다 합니다.

  


  한편 당대에는 이른바 양생(養生)을 설파하며 자기가 백 살이 넘었다거나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좌자, 우길, 극검, 감시 등입니다. 대부분 사기꾼 혐의가 짙습니다만 당시 사람들은 또 그런 걸 많이 믿기도 했지요. 이러한 방술사들에 대한 조조의 두 아들, 조비와 조식의 견해가 기록으로 남아 있어 꽤나 흥미롭습니다.

  우선 조비는 기본적으로 그런 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방술사를 따르는 자들의 오만가지 추태를 기록했지요. 예컨대 신선이 되겠다고 복령을 먹다가 이질에 걸린 사람이라든지, 호흡법을 익히다가 기절한 사람 등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크게 비웃었습니다. 한편 조식은 기본적으로 방술사들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아 ‘간사한 무리와 결탁해 사람들을 속이고, 요사한 짓거리로 백성을 미혹시킨다’고 했습니다. 또 직접 감시와 더불어 대화한 후에 입만 살고 실질은 없는 괴이쩍은 놈이라는 식으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극검이라는 자와 함께 백여 일을 살면서 정말로 곡기를 끊었는지를 직접 확인해 보았는데, 정말로 밥을 안 먹고도 그대로이니 대단하다는 식으로 감탄하기도 했지요.

  이런 걸로 보아 당대의 상류층은 방술사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혹시나 하는 기대감 역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삼국시대에서 근 이천 년이나 지난 현대에도 고위층 인사들이 유명하다는 점쟁이를 방문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을 보면 아무래도 사람에게는 뭔가 ‘신묘한’ 것을 믿고 싶어하는 본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화타를 그런 사기꾼들과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는 적어도 스스로 백 살이 넘도록 살았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서에도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반면 그는 최대한 능력을 발휘하여 사람들을 치료했고, 실제로 많은 이들을 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금희라는 일종의 체조를 만들어서 전파히기도 했지요. 물론 이천 년 전의 의학이 지금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의술을 베풀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병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의료인으로서 화타는 당대 사람들이 두려움을 없애고 고통과 죽음을 피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마치 현대의 의사들처럼 말입니다. 그렇기에 의술은 곧 인술(仁術)이라 하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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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삼각형
20/05/15 14:4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임용한박사님이 비슷한 내용의 영상을 찍은적이 있지요.

박사님의견으로도
화타는 학자이고 그냥 평범한(?) 벼슬을 하고싶은건데,
의술을 잘한다는것 때문에 괜히 조조한테 끌려갔다가 죽은케이스라고요.

삼국지시대인 고대에 의술잘한다고 해봐야
지금처럼 병을 쉽게고칠수 있는게 아닌데,
벼슬은 안주고 괜히 부작용 나면 목이 날아가는 의사노릇하고싶지 않았겠죠.

조조도 그런 화타의 심리를 알았으니 잡아죽인것이고요

이런 이야기를 연의에서 잘 각색해서 유명한 의원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약간 현대관점으로 비유하자면

대학을 컴공에 갔더니,
친인척들이 컴퓨터 조립시켜달라고 연락이 와서
대충 해줬더니
컴조립 잘한다고 동네방네소문나서 계속 연락오면 짜증나겠죠.
20/05/16 20:52
수정 아이콘
근데 무려 태위가 벽소해도 거절한 걸로 봐서는 본래 벼슬길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사마의처럼 몇번이나 거절하다 반쯤 끌려가다시피 한 사례도 있지만요.
20/05/15 14:47
수정 아이콘
현대적인 사람이네요.
20/05/15 14:53
수정 아이콘
화타와 동시대에 장기라고 유명한 의원이 한명 더 있었는데 삼국지에 등장하지 않는 바람에 인지도에서 화타에게 압살 당해버렸지요.

장중경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고 상한잡병론이라는 전염병 치료책을 썼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삼국지 예전 시리즈에 상한잡병론이 아이템으로 등장한 적도 있었네요.
HA클러스터
20/05/15 15:02
수정 아이콘
아 그 유명한 상한론의 저자 장기도 이때 사람이군요.
20/05/15 15:28
수정 아이콘
화타가 너무 유명한거죠. 크크
그래도 장중경은 아직까지도 참고되는 유명한 의서를 남겼으니...
20/05/16 20:53
수정 아이콘
현대에도 사실 티비에 나오는 사람이 제일 유명한 의사죠. 같은 이치 아닐까요.
애패는 엄마
20/05/15 14:56
수정 아이콘
조조는 냉혈한처럼 나오지만 사실 누구보다 다혈질이신 분 머리 좋은 다혈질이지 절대 냉혈한 체질은 아닌듯 합니다.
Lord Be Goja
20/05/15 16:35
수정 아이콘
그래서 삼국지라는 소설과 조조라는 케릭이 재미있게 나온거같습니다.

냉철한 타입이였다면 삼국정립이 안됬거나 너무 심심하고 뻔한 흔히 보이는 타입의 인물로 나왔을거같아요.

번뜩이는 지모가 있지만 감정에 쉽게 따르니,실수나 방심을 해서 여러 재미있는 이벤트가..
20/05/16 20:58
수정 아이콘
완전 예술가 타입이죠. 근데 정치와 군사 방면에도 만렙... 인기있을 만도 합니다.
興盡悲來
20/05/15 16:01
수정 아이콘
(수정됨)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에는 학자들이 의사를 겸하는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죠. 학문을 두루 넓게 익히는게 학자의 기본 소양이다보니.... 괜히 추천서 같은데 '이 사람은 천문 지리 인사를 두루 어쩌고'라는 얘기가 들어갔던게 아니었고.... 중국에서도 마찬가지고 한반도에서도 학자들이 의학을 많이 익혔고 실제로 환자를 많이 보기도 했는데.... 그러다보니 정말 환자만 보던 이른바 '의원'들과, 학문을 하는 김에 의학을 공부한 학자들(보통 유학자들이라 유의라고 했죠) 사이에 알게 모르게 신경전이 벌어지는 경우도 많이 있고 그랬습니다. 유의들은 '저것들은 의학을 공부함에 깊이가 없으면서 심오한 이치를 모르고 마구잡이로 환자를 본다'라고 무시했고, 의원들은 '책상머리 앞에서 글만 읽던 샌님들이 이론과 실전은 다른걸 모르고 탁상공론으로 환자를 보려한다'면서 유의들을 무시했고.... 하지만 대체로 의원들이 유의들 보다는 의술이 뛰어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프로와 아마추어는 다르죠.... 때문에 삼국지 진수전에 화타가 사람들이 자기를 의원이라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였다는 대목은 화타가 본인이 의사라고 생각을 안하였다.... 이런 뜻이라기보다는 의원이 아닌 유의로서 대접받기를 바랬는데, 의술이 너무나도 뛰어난 나머지 사람들이 당연히 의원일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기분이 좀 거시기했다... 이렇게 봐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동시대에 의술로 이름을 떨쳤던 장기.. 장중경만 보더라도 의술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소개되기를 의원이기에 앞서서 장사태수였다.... 라고 사람들이 말했으니.... 화타 본인도 '의원'이 아니라 '의학에 뛰어난 학자'였다... 라고 불리우기를 바랬던 것이 아닐지...
20/05/16 20:59
수정 아이콘
오 좋은 지식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05/15 16:28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습니다
의과대학에서 의학사는 짧게 배웁니다만, 그나마도 유럽의 의학사 중심으로 배우고 (한의대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네요)
동양권은 중국 이야기에 한국 조금 다루고 아랍권(이슬람)이나 서남아시아쪽은 거의 언급되지도 않습니다...
그 서양의학에서도 고대/중세는 정말 초네임드만 짚어보고 르네상스-근세를 주로 다루는 경향이 있어서 이런 글 보면 반갑습니다 흐흐
Liverpool FC
20/05/15 16:49
수정 아이콘
오금희 하니 드라마 쓰마이에서 쓰마이가 오금희 체조하던 장면이 생각나네요
헤이즐넛주세요
20/05/15 17:41
수정 아이콘
양생술 같은 비법을 익혀서 물만 먹고 장기간 생활한다던지 극한의 신체단련으로 비인간적인 체질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신기한데 당시엔 정말 혹세무민할 만 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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