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 시국에 의료인 관련 글쓰기는 너무나 부담되서 안쓰고 있었지만, 오히려 이 시국이니까 가볍게 웃고 넘길 얘기도 쓸 법해서 그냥 가볍게 평어체로 써봅니다.
--
1. 2018년 여름.. 남양주 모 야구장에서 두 남자가 모든 것을 쏟아붓는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두 팀이 야구를 하고 있는데 투수와 타자만 정색하고 나머지 20명은 퇴근 준비를 하고 있다. 동네야구에서 7회말(동네야구는 7이닝이 마지막 이닝) 15점차에 진지빨고 야구하는 건 9번타자 우익수와 7이닝 8실점 완투승이 눈앞인 투수뿐이다. 쓰리-투 풀카운트 투수 와인드업.. 타자는 체크스윙을 하고 공은 타자의 손가락에 맞았다.
(체감상 이런 구위였기에 그런거다.. 절대 타자의 동체시력이 딸려서가 아니다.. ...)
"아앏!! (열여덟!)"
"괜찮으세요-" "타자 1루로 갈거에요 아니면 계속 칠거에요(사회인야구의 로컬룰)"
"그냥 치겠습니다"
타석 하나 하나가 소중한 9번타자는 다시 타석에 들어선다. 그리고 다음 공에 폭풍삼진.
'아 씁.. 걍 1루에 나간다할껄 괜히 쳤네 아오 아퍼..'
시합이 끝난 후.
"수고하셨습니다~"
"야 맞은데는 괜찮냐?"
"아 좀 얼얼하긴한데.. 어 뭐야 손톱에 피멍들었네;"
"아유 야 고생했고 병원부터 가봐"
"예 먼저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형님"
물론 병원간다는 말은 훼이크고.. 저녁 팀 회식에 불참한 후 집에 와서 손톱 쪽에 나온 피만 닦고 롤 3판 한 다음 잠들었다.
2. 다음 날 오전.. 일어나서 손가락을 보니 엄지손가락이 평소의 2배로 커져있었다. A 정형외과를 가보니 엑스레이를 찍자고 한다.
찍고 나니까, 손톱 깨진 건 냅두면 되는데 손가락이 뿌러졌다고 한다. 그러면 치료는 어떻게 하나요? 물으니 핀을 박는 수술을 하자고 한다.
??? 골절인데 수술을 해요? 라고 하니 대략 이런 설명을 해준다.
검은 네모만큼 뼈가 금이 간 걸 전신마취하고 손가락 째서 엑스자로 핀 박고 고정시켜서 몇 주 입원하면 확실하게 낫는다고 하는데???.. 비용을 물어보니 일단 수술비가 80만원이라고 한다. 손이 부러지면 부러졌지 도저히 80만원 내고 골절 치료 받을 수는 없었기에 속으로 이게 진짜 의사인가 호구 잡아먹으려는건가 의심을 하면서 다른 동네 병원으로 옮겼다.
3. B정형외과에 가니 의사 선생님께서 첫날에는 손가락에 깁스하고 소염제 먹고 일주일 후에 오라고 한다. 다른 대형병원에서 이거 요렇게 조렇게 해서 80만원 내고 수술하라던데요? 라고 물어봤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 "학생 돈 많아요? 누가 이걸 수술을 해요?" 라고 하신다. 일주일 후에 다시 가니 잘 붙었는지 다시 사진을 찍어보자고 하신다. 사진을 보시더니 뼈가 약간 휘어진 상태로 붙고 있다고 하신다. 그러더니 손가락을 내밀어보라고 하셨다.
"아 그런가요? 근데 저는 원래 손가락이 조금씩 뒤로 휘어있는데 #$@$@#$"
그런.. 을 말할 때쯤 의사 선생님 께서는 내 엄지손가락을 양손으로 잡고는 사정없이 손가락을 짓누르고 비틀어서 다시 손가락뼈를 뽀개놓으셨다. 뼈에서 뿌드드지직 소리가 나는 걸 들으니 통증이 몰려오고 욕이 입밖으로 나오려는 찰나 "이제 다시 깁스해서 고정해놓을테니까 손가락 안휘게 조심하라" 고 하시고 일주일 후에 오라고 하셨다. 이 글을 쓰면서 알아보니 이런 걸 의료용어로 '정복술'이라고 부르던 모양인데 정말 정벅자의 위엄이 느껴지는 기술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B병원에서 있었던 썰을 푸니까 의사가 돌팔인가 아니면 미친건가.. 로 씹고 뜯었는데 일주일 후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으니까 뼈가 반듯하게 붙어있었다. 부러지기 전보다도. 그 후로 B의사 선생님은 우리 집만의 작은 화타로 승격되었고 내 손가락은 아홉개의 휘어진 손가락과 한개의 반듯한 손가락이 되었다. 물론 한 손가락이 곧게 펴졌다고 해서 다른 손가락을 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고, 손가락이 펴졌다고 티어가 오르는 일도 없었지만.
4. 그 때는 A병원 의사는 사기꾼이고 B병원 의사는 화타의 재림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는데(물론 내가 관우처럼 의연하게 통증을 이겨내지는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내가 돈이 많고 B병원에서 겪을 고통을 알았다면 그냥 A병원에서 치료받고 확실하게 나았을 수도 있고.. 혹은 B병원에서 진료받는 사람중에 환자와의 소통없이 술기를 진행하는거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B를 돌팔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 거고.. 사실 명의와 돌팔이는 받아들이는 환자의 마음에 달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돈 없는 내 입장에선 B선생님이 명의였지만.
--
피지알의 의사선생님들이나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는 어떨런지 모르겠네요. A든 B든 간에 이게 진짜 일반적인 치료인것인가. 두둥.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