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고 : 이 글은 픽션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내용을 진짜라고 믿으시거나, 따라하시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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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방학을 앞두고 원대한 계획 - 올 겨울에는 눈사람을 만들어보겠다거나, 팽이치기에 성공해보겠다, 방패연을 5층 높이 위로 날려보겠다 등등 -에 가슴이 부풀어있던 평범한 5학년 소년이었던 나에게 엄니는 계엄령보다 더 무서운 선고를 내리셨다.
"OO아 올 겨울방학에 포경수술 해야해"
--- 두둥!!
--- 포.경.수.술.
"어른이 되려면 다 해야하는 거야"
--- 그 때만 해도 어른이 좋은 건줄 알았다.
"옆집 OO형도 작년에 한거 봤지? 5학년 됐으니까 해야하는거야."
--- 옆집 형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어다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좀 웃기다고 생각했던 그거?
"안하면 군대가서 마취 안하고 해서 엄청 아프대"
--- 지금도 궁금하다 당시 군대에선 정말로 마취없이 했을까?
말 잘 듣는 착한 아들이었던 나는 엄니의 말씀에 아무런 의심이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이내 5시 30분이면 시작하는 TV만화에 집중했다. 당시에는 누구나 다해야 하는 줄 알았던 그 수술이 '의사 쌤님들의 수가를 올리기 위한 미개한 의료행위'라는 평가를 받을지 그 누가 알았으랴. 어쨌거나 그 때는 그랬고, "남자는 살인 빼고는 다 해봐야 한다"라는 어이없는 전통적 가치관을 보유하신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나로서는 10살나이에 '남자는 다 해야하는 거'라는 근엄한 전통을 거역할 정도의 비범함은 갖추지 못했다.
행동력이 뛰어나신 울 엄니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수술예약을 다 잡아놓으셨고, 겨울 방학이 시작하고 크리스마스의 즐거움도 잠시, 나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받으면 한달 동안 목욕을 못한다며, 동네 목욕탕에가서 아부지에게 벅벅 때를 밀려 말쑥해진 모습으로 30분에 한 대 오는 버스타고 근처에 하나있는 종합병원에 가면서도, 사실 크게 두려움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잔잔한 바다와 같았던 나의 평화로운 마음에 이변이 생긴 것은 병원에 들어서면서 부터였다.
평소에 항상 가는 곳 - 소아과와 치과 - 는 병원 2층에 있었는데 오늘은 엄니가 특이하게도 1층으로 데리고 가시는 것이었다. '그래봐야 병원인데 뭐가 다르겠어?'라는 안이한 생각은 평소에 보았던 이쁜 간호사 언니가 앉아있고 종이나비나 테이프 꽃으로 꾸며진 소아과 창구가 아닌, 뭔가 우중충한 아저씨들만 모여있는 창구에 도착했을 때 '아 이건 아닌것 같다'라는 생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OOO씨~"
소아과와 달리 어린이를 배려하는 분위기라고는 눈꼽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작은 방에 들어서자, 사무적인 표정의 간호사 누나가 "바지랑 속옷 벗고 위에 올라가 누우세요."라고 무뚝뚝하게 이야기했고, 나는 그제서야 "아...이거 물릴 수 없나....."라는 생각을 하며, 시키는대로 수술대 - 라고 해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처치용 침상이었겠지만 - 누웠다.
"마취할께요~따끔할거에요~~"
이미 고학년인 몸. 주사따위에 움츠러들 나이는 아니지만, 익숙한 장소인 팔이나 엉덩이가 아닌, 소중이에 주사바늘이 꼿히는 느낌은 역시나 생소했고, 또다른 불안감을 야기했다.
"마취되면 의사선생님 오셔서 수술 시작하실거에요~"
그 당시의 소년들이라면 한번 쯤 겪어봤을 뻘쭘한 감정 - 내 소중이를 처음으로 가족외의 사람에게 드러내놓고 가만히 누워 눈만 꿈뻑꿈뻑 감았다 떴다 해야할 때 느껴지는 그것 - 을 느껴며, 기다리기를 수 분. 마침내 문이 열리고 선생님들이 들어오셨다.
--- 응? 선생님'들'(?)
키 작은 땅딸한 나이드신 선생님 1명 + 젊고 잘생긴 키 큰 선생님 1명.
왜 선생님이 왜 두명이나 들어오지?? 의사 선생님은 1명만 들어오는거 아니었어?
의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그 때까지의 나의 병원 경험에서는 소아과 또는 치과. 선생님1명+간호사님 1~2명이 기본 메타인데, 새로운 메타 2선생+1간호사 조합이 나타난 것이다. 롤에서 EU스타일이 처음 나왔을 때에도 이런 생경함을 느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이라면 뭔가 미심쩍게 생각을 했겠지만, 어린 소년이 그런 비판적인 사고를 갖추었을리도 만무했고, 당시의 의사선생님이라는 존재는 시대의 인텔리이자, 권위의 상징이었으니 그냥 이상하네? 정도의 생각에서 그쳤다. 뭐 수술대를 뛰쳐나올 것도 아니고 저항한다고 저항이 통했을리도 없었겠지만.
곧 의사 선생님들은 수술도구를 들고와 수술을 시작했다. 지금이라면 눈가리개를 하든 차양을 치든해서 환자에게 수술 부위를 보여주지 않겠지만, 당시의 지방 병원에는 그런 배려는 찾기 어려웠던 것 같고, 나는 내 소중이가 도려지는 광경을 생생히 관찰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작디작은 나의 소중이에서 자를 부분이 어디있다고 젊은 선생님은 가위를 들고 표피를 무자비하게 잘라나가기 시작했다.
스걱스걱스걱
스걱스걱스걱
아마 그 살 자르는 소리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물론 마취는 성공적이어서,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고, 나는 억지로 태평한 표정을 꾸미려고 노력하면서 수술장면과 천장과 창밖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반면 젊은 선생님은 긴장한 표정으로 신중하게 가위질을 하고 계셨고, 옆에서 나이 드신 선생님이 "좀더 위로, 좀더 아래로"하며 연신 지시를 하고 있었다. 당시의 내겐 인턴 레지던트의 개념따위는 없었으므로, '의사선생님이 다른 의사선생님에게 가르친다'라는 상황에 생경함을 느끼며 나는 가급적 주의를 다른 곳에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실밥을 꿰매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내가 태평한 척을 연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아니 안쪽으로 안쪽으로. 그래그래, 아니 거기 말고 거기말고"
"그렇게 하면 실밥이 꼬이잖아. 그렇지 그렇지. 그렇게.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하 참 답답하네. 이리줘봐 다시 보여줄께. 이렇게 하는거라니까. 자 다시해봐"
"아...몇 번을 보여줘야하나...다시 해봐 그래 그렇지!"
"아 이제 제대로 하네. 그래 그렇게 하는거야!"
.......아니 선생님들 남의 소중이 갖고 뭐하는 건가요. 내 소중이가 무슨 교보재도 아니고....
....라고 해도 권위주의로 가득찬 시대에 의사선생님에게 항의를 할 수는 것 아닌가. 식은땀을 흘리며 어쩔줄 몰라하는 젊은 의사선생님에게 미덥지 않은 눈빛을 강하게 보내는 것으로 내 나름의 항의표시를 하면서, 입꾹닫고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이윽고 꿰매는 것이 끝나고, 내 소중이는 난생 처음보는 이상한 모양으로 변해있었고, 표피를 잘라낸 부분에는 빨간약에 물든 실밥이 송충이 털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묘하게 참담한 감정으로 내 소중이와 미덥지 않은 젊은 의사선생님을 연신 번갈아 바라보았지만, 선생님들은 어린 환자의 불안감 따위는 눈치채지 못하셨는지 곧 처치실 밖으로 나가셨고, 간호사 누나는 예의 그 사무적인 말투로 "주기적으로 드레싱 해주시고 블라블라블라~ 몇주 지나면 실밥 뽑으실거에요~~"라고 엄니께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후로도 몇 분간 부상당한 내 불쌍한 소중이를 애처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간호사 누나의 배려로 내 소중이가 옷에 닿아 쓸리지 않도록 종이컵 모자가 씌워졌을 때 나는 처음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종이컵이 그렇게 믿음직한 존재였을 줄이야!
수술자리가 아무는 몇 주의 기간동안 약간의 고통과 불편함은 있긴했지만, 적응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애초부터 실내활동을 더 좋아하는 편이었고, 겨울은 딱히 밖에서 놀기도 애매한 날씨이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대강 수술이 거의 다 아물어가는 몇 주 후, 어머니는 나를데리고 먼 도시에 있는 외갓집을 방문하셨다. 실밥뽑기를 굳이 집에 돌아갈때까지 미룰 이유도 없어서 외갓집 근처 비뇨기과에 나를 데리고 가셨다. 그런데 의사선생님의 반응이 걸작이었다.
"아니 누가 실밥을 이렇게 꿰맸어요?"
"하...아니 이러면 어떻게 풀라는거야."
"나~참 일관성도 없고"
알고보니 나의 소중이는 수술 교보재였을 뿐만 아니라, "수술바늘 꿰매기의 나쁜 사례" 교보재로도 훌륭한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원래라면 손쉽게 풀려야하는 실밥이 희한하게 배배 꼬여있었고 -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머니와 나는 정말로 아연실색했다 - 게다가 빨간약을 계속 바르는 통(이건 내 잘못도있지만...)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실밥을 풀 수가 없으며, 꿰매기가 엉망이라서, 흉터가 남을 것이라는게 이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결국 선생님은 일단 딱딱하게 굳은 빨간약부터 녹이고 다시 풀자고 이야기 했고, 결국 나는 실밥을 풀러갔다가 빠구맞고 다시 외갓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간 나는 매일매일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반신욕 치료(?)를 하게 되었다. 반신욕으로 따뜻한 온수에 소중이를 담궈서 빨간약을 최대한 녹여내고, 소독은 과산화수소수로 하여 소독약이 남지 않도록 했다. 과산화수소수 소독약은 엄청나게 따끔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실밥을 풀지 못해 우울했던 내 기분은 더욱 우울해졌다는 것을 언급해두기로 하자.
다시 일주일 후 비뇨기과를 찾아갔지만, 결국 선생님은 실밥을 풀기를 포기하고, 고대 마케도니아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알렉산더 대왕의 필살기- 매듭 자르기 -를 시전하셨다. 하지만 살 안쪽으로 배배 꼬인데다 빨간약으로 코팅되어있던 일부 실밥조각은 잘라도 깨끗히 제거가 되지 않았고, 배배꼬인 실밥에 의해 터진 상처 부분에는 흉터가 생겨서, 결국 나는 소중이에 실밥조각과 흉터를 남긴 채로 개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살 안에 남아있는 실밥 조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후 조금씩 조금씩 살 사이에서 밀려나왔고, 나도 눈에 뜨일때마다 쪽집개를 이용하여 뽑아내었지만, 실밥 조각이 외관상 보이지 않게 되는데만도 수 년이 걸렸고, 흉터는 당연하지만 없어지지 않았다. 그 기나긴 기간동안 나는 수술자리를 봉합한 젊은 의사선생님에 대해 원망까진 아니었지만 그다지 유쾌한 감정을 갖지는 않았다. 사실 의료사고라고 봐야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딱히 뭐 기능상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바바리맨 취미도 없는지라 남에게 보일 일도 없는 부위의 흉터이고 딱히 외모를 신경쓰는 성격도 아니어서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쯤에는 수술에 대한 것도, 흉터에 대한 것도 모두 잊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수 년 후 어느날.
모텔에서 열심히 허리 운동을 한 후, 땀을 식히며 오렌지쥬스를 마시며 누워있는데 여자친구가 내 쪼그라든 소중이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 아닌가. 그러더니 마치 생물시간에 플라나리아 관찰하듯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흐음.." "어머..."등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불현듯 옛날의 그 의료사고(?)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혹시 뭔가 잘못되었나 싶어서 나는 왜 그러냐고 물어봤고 여자친구은 눈을 돌리며 수줍게 대답했다.
"오빠 소중이에 있는 흉터가 우둘투둘해서.....아잉 몰라..."
그 때 처음알았다. 의료사고가 고마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고마워요 쌤님. 덕분에 사랑받고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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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글쓰기 이벤트로 내려고 준비했던 글인데....멍때리다가 놓쳤는데 그렇다고 딴데 올릴 정도로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것도 아니라서 그냥 올립니다. 각종 문예적 개선점에 대한 피드백 환영합니다. 또한 글쓰기에 참고해야 할 서적 알려주시면 매우 감사드리겠습니다. 은퇴 후 제2커리어로 안팔리는(...) 라노벨 작가도 생각하고 있사오니, 좋은 책 추천해 주신 분께는 기억해두었다가 혹시 20년쯤 후(.....)에 책이 출판되면 사인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