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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8 12:01
지금 글 내용이 성경에 묘사된 아달랴 내용 그대로 입니다....
다윗 왕가 남자 자손 끔살... 7년간 통치 요아스 즉위 때 끔살 당함.... 요게 전부이긴 합니다..... 성경의 관점은 여호야다 제사장이 어떻게 개혁해나가는가에 맞춰져 있어서 아달랴 통치기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20/05/28 12:04
네 짧게 짧게 언급은 꽤 됩니다. 구절로 치면 10구절 정도에 언급이 되고 주요 구절은 아래와 같네요.
자세히는 안나와 있어서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크크; [열왕기하 11:3] 요아스가 그와 함께 여호와의 성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열왕기하 11:20]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성이 평온하더라 아달랴를 무리가 왕궁에서 칼로 죽였더라 [역대하 22:12] 요아스가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20/05/28 11:54
성경에서 제일 유명한 악녀중 하나가 바로 이세벨이었죠.
성경에는 아달랴 여왕 얘기는 안나오는데, 몰랐던 걸 알아가네요. 잘 읽었습니다 :)
20/05/28 11:55
고대 기준으로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여자가 즉위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왕들은 괴상한 상황에서 즉위한 양반들이고, 따라서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눈에 띄는 이력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20/05/28 12:03
자기를 봐줄 후원세력을 상실한 시점에서 정권을 창출해낸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당시 아달랴의 후원세력인 북이스라엘의 오므리 왕가를 몰살한 예후가 아람 왕 하사엘의 침공을 이때에 받았다면 적어도 북이스라엘의 간섭은 피할 수 있었겠지만 다윗 왕가 빼면 시체인 남유다에서 다윗 왕가를 몰살한 아달랴에 즉각적인 반격을 할 수 없었다는 게...
20/05/28 12:21
아달랴가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남유다가 제대로 된 군대가 당시에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아달랴의 시아버지인 여호사밧 왕 때에 북왕국의 아합왕과 같이 아람왕 벤하닷과 싸우다가 털리고 군대가 쪼그라들기 시작하였고 이후 여호사밧왕의 아들이자 아달랴의 남편인 여호람 왕 때에 식민지였던 에돔이 독립을 선언하자 그 쪽으로 가다가 그곳에서도 털리고 그렇게 해서 결국 아하시야 왕 때 즉 아달랴가 곧 반역을 시작할 때 즈음에는 남왕국 유다에는 군대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아하시야 왕 또한 북왕국으로 갔을 때에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군대와 함께 가서 아람왕 하사엘과 싸우는 중이었기에 더욱더 남왕국 유다에는 군대가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아달랴가 여호야다에게 끔살당할 때에 성전경비대 수십 명 가지고 혁명을 일으켰는데 그대로 쓸려나갔습니다. 결국 아달랴가 권력을 쟁취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달랴가 혁명으로 인해서 끔살을 당하게 된 것도 남유다에 당시 제대로 된 군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20/05/28 12:23
이 시기 이스라엘 역사 진짜 재미있죠. 팔레스타인을 쥐고 호령했던 북이스라엘의 최전성기 오므리 왕조와 (호왈식) 100만 대군을 거느리고 있던 남유다,
동맹과 정벌과 정략결혼과 쿠데타가 난무하던 시기.... 야훼 신앙으로 맞서던 엘리야 엘리사 사제에 군사력으로 그들을 지원하던 레갑 공동체.... 패러독스에서 DLC 하나 나오면 대박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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