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성당의 모습은 유럽의 고딕양식의 성당입니다. 프랑스에서 유행하기 시작해서 유럽전역으로 퍼지고, 나중에 한국 서울 명동에도 유사한 양식의 성당이 지어졌죠. 그런데 성당이 언제나 그런 모습을 지녔던 것은 아닙니다. 초창기 성당들의 모습을 보려면 프랑스가 아니라 이탈리아에 가봐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이탈리아가 로마제국의 본산지이고,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제국의 중요 공공건물을 기독교 교회에 기증했기 때문입니다.
이 최초의 성당들을 바실리카(Basilica)라고 부릅니다. 오늘날에는 교황 공인 "대성당"들이라고 불리죠.
바실리카는 원래 로마의 다목적복합 공공건물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법/행정/상업 등의 사무를 보았고, 주로 포럼 바로 옆에 건설되어 도시 라이프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죠. 일례로 오현제 중 한명인 트라야누스 황제가 지은 바실리카 울피아는 황궁이나 콜로세움 등을 제외하면 당시 로마시내 최고 규모의 공공건물이었다고 합니다.
바실리카 울피아 복원도
바실리카는 긴 직사각형의 형태로 지어졌으며 끝부분은 반돔형태로 하여 그 중앙에 황제나 유피테르신 등의 신의 석상을 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둥이 좌우 양쪽으로 쭉 늘어져있어 장엄한 모습을 자랑했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이후 바실리카 건물은 교회에 기증되거나 또는 새로운 교회를 지을 때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었습니다. 오락을 목적으로 하는 장소를 제외하면 아마도 시민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가 바실리카이고, 초기 기독교 전도를 하던 사람들도 바실리카를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로마 시내에는 이런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들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세월이 지나 여러 시대의 양식이 덧붙여지긴 했지만, 내부의 기본적인 설계 자체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로마 테르미니역 근처에 위치한 "산타 마리아 마조레(Santa Maria Maggiore)" 성당인데, 특기할 점은 이 성당의 건축연도가 432년이라는 것입니다. 아직 서로마제국이 살아있을 때 지어진 건물이라는 것이죠. 물론 세월이 지나면서 계속 증축/복원되었고, 18세기에 최종적으로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가 당시의 전형적인 바실리카 양식이며 중앙제대 상단 쪽에 후기 로마제국의 모자이크 미술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내부
베들레헴을 묘사한 모자이크 미술 (전형적인 로마 미술)
이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성라테라노대성당 또한 바실리카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나, 내부가 굉장히 많이 개조되어서 바실리카의 원형을 담당하는 기둥들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성당의 정문입니다. 라테라노 대성당의 정문은 로마제국 원로원(Curia Julia) 건물의 정문을 그대로 떼어내서 붙인 거라고 하더군요. 그 정문 덕분에 2000년이 넘는 역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서로마제국 멸망 후, 유럽은 여러 게르만 왕국들로 분열되었습니다. 중세가 암흑시대였다는 건 이미 역사학계에서 반박된 지 오래되었지만, 과거 로마제국 전성기에 비하면 삶의 질이나 기술이 현격히 떨어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당장 생각해보면 이집트에서 걷은 세금으로 갈리아(프랑스)에 투자할 수 있는 광범위한 행정력, 또는 그리스나 레반트의 기술자들을 이탈리아와 서유럽에 데리고오는 교통시스템이나 인센티브 등이 상실되었으니 전체적인 부의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그래도 교회는 계속 성당을 새로이 짓고자 했고, 그 결과 우리가 로마네스크라고 부르는 양식이 탄생했습니다. 로마네스크(Romanesque)라는 단어는 사실 일종의 "비하적"인 말입니다. 어감을 굳이 살려서 번역하자면 "로마따라쟁이"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중세의 왕국들이나 영주들은 당연 로마제국의 자본도 기술도 없었으니, 어설프게 따라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인상적인 건물들을 남겼었죠.
프랑스 툴루즈에 위치한 생세르낭(Saint Sernin) 성당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본 건물은 바실리카의 형태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도, 자기들이 구할 수 있는 자재로 만든 독특한 성당입니다. 예컨대 로마 바실리카의 특징인 타원형 기둥들은 찾아볼 수 없지만 (이게 굉장히 고가의 자재였다고 합니다...) 인근에서 구할 수 있는 자재로 돌기둥을 만들었죠.
생새르낭대성당, 물론 상당부분 증축된 흔적이 있지만 - 특히 첩탑 - 어떤 모습인지는 가늠할 수 있습니다
생세르낭대성당 내부, 타원형 기둥이 없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소 이단적(?)이고 야심찬 건물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헨의 그 유명한 대성당. 서유럽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샤를마뉴 또는 카를대제가 지시하여 지은 성당으로, 비잔틴양식과 게르만적 느낌(?)을 혼합하여 지은 성당으로, 굉장히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바실리카의 형태는 아니지만, 특히 아주 고가의 자재인 원형기둥도 찾아볼 수 있고, 비잔틴(동로마)과 마찬가지로 천장에 금박모자이크로 장식해놓은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증축된 부분이 아닌 본래 건축물의 핵심부를 살펴보면, 라벤나에 위치한 산비탈레성당(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지은 건물)과 유사한 기하학적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건축물입니다.
아헨성당의 내부 (기하학적 모양 / 기둥 / 동로마 색조 / 금박 모자이크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12~13세기 무렵 유럽의 경제적 수준이나 삶은 상당히 나아졌다고 합니다. 기후가 따뜻해지고, 농업생산량도 늘었고 인구도 증가하였다고 합니다. 아울러 십자군전쟁으로 인해 지중해 경제권이 다시 부활하였고, 상업이 발달하고 여러 도시들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 뿐만 아니라, 프랑스 북부와 독일 등지에서도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삶이 발달하여 이런 도시들 중심으로 건축도 새로운 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특히 프랑스 북부를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건축양식이 발전했는데, 향후 이 양식은 스페인에서부터 스칸디나비아까지 전 유럽을 석권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고딕양식인데, 본래 "프랑크인의 업적(Opus Francigenum)"이라 불렸습니다. 고딕 양식의 특징은 높이와 빛입니다.
신에게 더 가까이, 하늘로 향하고자 하는 강렬한 집념. 그리고 하느님이 "빛이 있으라(창세기 1:3)"라고 명령한 것과 같이 빛의 천국을 지상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집념.
이를 위해 성당을 더욱 높게, 더욱 뾰족하게 만들고자 했으며 어두웠던 로마네스크의 성당과 달리 사방에서 빛이 들어와 안을 환하게 비추는, 심지어 그것도 스테인드글라스를 이용하여 더욱 알록달록하게 비추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고딕양식은 건축학적 혁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앙의 부활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인도 오늘날 고딕 대성당들에 입장할 때 감탄하는데, 초가집과 유사한 건물이 대다수였던 당시 중세의 일반인은 건축물의 장엄함, 빛의 황홀감에 취해 이곳이 바로 천국이라고 느꼈을 것이었습니다.
노트르담대성당 외부
노트르담대성당 내부
15~16세기에 이르면 우리가 흔히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운동이 촉발됩니다. 르네상스란 프랑스어로 "다시 태어나다"라는 뜻으로, 죽었던 고대 그리스로마의 인문학적 정신이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지식인들은 고전적 미학을 선으로 보았고, 고딕양식을 "북방 게르만 야만족들이나 좋아하는 양식"이라며 비하했습니다. 사실 고딕양식이라는 말 자체가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비잔틴이라는 말이 동로마 멸망 이후에 만들어졌듯이 고딕 양식도 그 양식이 유행했을 때는 없던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들이나 지식인들의 프랑스/독일을 위시한 북부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열등감이라고 할까... 아무튼 이들은 고유의 정신을 찾아서, 새로운 건축양식을 도입해서 성당을 짓고자 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피렌체의 산타마리아델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 성당으로, 우리나라에서 "냉정과 열정 사이"로도 유명하죠. 이 성당은 거대한 뚜껑... 두오모로도 유명한데, 이는 브루넬레스키가 로마에서 유학 중일 때 판테온 건물을 보면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부는 지극히 르네상스적인 프레스코회화로 가득 채웠습니다.
산타마리아델피오레 외관
산타마리아델피오레 내부 (프레스코회화)
르네상스 운동은 주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얼마 후 기독교세계(서유럽)은 격동의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인쇄술의 발명과 루터의 혁명적 사상이 결합되어 기존의 권위를 부정하는 대규모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종교전쟁의 시대입니다. 기독교세계(Christendom)은 일종의 내전에 빠지게 되어 국가와 국가가 대립할 뿐만 아니라 각 국가 내부에서도 개신교와 구교가 대립하여 격렬히 싸웠습니다. 그 결과 독일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북유럽 국가들은 개신교 국가로 거듭나게 되었고 영국은 루터파나 칼뱅파는 아니지만, 로마교회와 완전히 결별하여 독자적인 길을 걸었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권위는 실추되었고, 이는 교황에게 큰 위기로 다가왔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교황청은 예수회를 중심으로 개신교를 지식인 집단을 육성하고자 했으며 또 해외선교도 가장 열렬히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유럽에서 잃은 권위를 아시아와 아메리카에서 얻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압도적으로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로 세인을 감탄시켜 가톨릭 교회에 돌아오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바로크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바로크 건축물의 진수는 뭐니뭐니 해도 역시 성베드로대성당입니다. 1626년 완공된 건물로, 축구장 6개가 들어갈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 그리고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정교하고 화려한 미술, 이탈리아 천재들의 작품이 곳곳에 즐비하며 건물의 모든 부분이 각자 독립된 예술품입니다. 시각적인 웅장함과 화려함으로 위세를 자랑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물입니다. 그리고 그 의도는 완벽히 적중하였습니다.
성베드로성당 외부 (르네상스적 취향과 바로크의 화려함이 결합된 모습입니다)
성베드로성당 내부
로마교회로부터 이탈한 영국도 이 건물을 보고 넋이 빠졌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한 세기 후 결국 이 건물을 모방한 건물을 런던 한복판에 지었습니다. 세인트폴대성당입니다.
세인트폴대성당 (영국, 런던)
바로크 시대가 지나고, 19세기에 접어들면 유럽은 이제 근대세계로 들어오게 됩니다. 과학과 이성의 시대, 탈종교의 시대, 산업화의 시대 그리고 유럽열강이 지구를 분할하던 시대. 종교는 비롯 그 중요성을 잃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그런지 온갖 종류의 실험이 난무하게 됩니다. 신고전주의, 신비잔틴양식 등... 기존의 상식과는 좀 다른 양식으로 성당을 짓기 시작합니다.
신고전주의의 대표적 사례는 파리 시내에 있는 마들렌성당입니다. 19세기 중반에 지어진 건물로 얼핏 보면 도저히 성당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전과 같은 모습이죠.
마들렌성당, 파리
신비잔틴양식을 대표하는 건물로는 영국 런던에 위치한 웨스트민스터 성당인데, 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교회)과는 달리 가톨릭 성당입니다. 심지어 건축된 것도 19세기 말이고, 1903년 완공된 건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가톨릭 교회이면서도 굉장히 생소한 건축기법을 사용하고 있고, 색감이 아주 다채롭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성당, 런던
웨스트민스터 성당, 내부 모자이크 (동로마 모자이크를 현대적 감각으로 흉내낸 모습이죠)
그리고 현재 가장 야심차면서도 독특하고 흥미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 곳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입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죠. 스페인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디자인한 이 성당은 오늘날에도 계속 지어지고 있는 건물이며, 여러 기법을 혼합한 아주 독특한 건물입니다. 그런데 최초 고딕양식을 고안한 사람들의 정신, "빛이 가장 핵심"이라는 정신을 이어받아, 빛의 황홀경을 연출하는 현대적, 아니 포스트모던한 건물입니다. SF영화에 나올법한 건물디자인인데, 기계적이지 않고 마치 숲에 들어온 것과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킵니다.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로마 성베드로성당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압도당함"이라는 감정을 느꼈습니다만, 성베드로대성당과는 다른 종류의 "압도당함"이었습니다. 웅장함이 아니라 아름답다는 감정이라고 할까요.
사그라다 파밀리아 외관
완공조감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내부 전경 (정말 숲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오늘날에는 어떤 종류의 실험 또는 도전을 할 수 있을까요? 대한민국의 천주교가 새로운 실험의 선봉에 설 수 있을지, 주목되는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