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한사영은 촉한을 번영케 했다는 4명의 현명한 재상. 제갈량, 장완, 비의, 동윤을 이르는 말입니다. 보통 촉한은 제갈량의 식소사번 이미지와 동윤의 비의의 일을 1년동안 열심히 처리하다 죽었다는 이미지 때문에 과로사가 많다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촉한의 시스템이 이들을 과로사로 몰아 넣었을까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전 우선 보통 우리가 '제갈량의 후계자'로 인식하고 있는 장완에 대해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완이 '제갈량의 후계자'인데다 제갈량보다 12년이나 더 살아서(246 년졸) 제갈량보다 대여섯 살은 어리지 않을까 보통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글곰님의 촉서 제갈량전에도 비슷하게 묘사하셨지요. 하지만 반준전을 보면 의외로 오히려 장완 쪽이 제갈량보다 연상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우선 장완은 반준의 이종사촌형(姨兄)입니다. 반준전에 의하면 반준은 약관에 송충에게 수학, 나이 30이 채 안 되었을 때 유표가 강하군 종사로 임명, 사이현장을 죽이고 이후 상향현령이 되어 치적을 쌓았다고 하지요. 여기까지가 황조 생전(황조는 208년 봄에 사망)의 일입니다. '30이 안 되었을 때'라면 27-29세 정도로 잡으면 될 듯한데, '강하군 종사>사이현장을 뇌물수수건으로 사형시켜 군(郡)을 진동시킴>상향현령으로 치적을 쌓음' 커리어입니다. 이미 207년부터 손권은 황조를 공격해 관리와 백성을 잡아갔고 208년 봄에 사이현에 있던 황조를 손권이 죽임으로서 사이현이 손씨에게 넘어갔다는 걸 생각하면 사이현장 사형과 상향현령 임명은 그전에 있었던 일일테고 몇 달간 빠르게 일어난 일로 잡아 최소한의 연도로 가능한 207년에 반준이 27세일 경우 반준은 181년생이 되고 29세면 179년생이 됩니다. 이게 가장 어리게 잡은 생년이고, 207년에도 손권의 침략으로 강하군이 혼란한 상황임을 감안하여 강하군 종사 커리어가 더 이전인 206년 이전에 시작되었을 수도 있음을 고려하고 이런 일이 몇개월 만에 뚝딱 처리될만한 일인지 생각해보면 반준은 208년에 이미 30대에 들어섰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반준은 아무리 못해도 최소 170년대 후반 출생으로, 사촌형 장완 역시 최소 170년대 중후반 출생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제갈량은 181년생인데, 이렇게 보면 제갈량이 오히려 장완보다 최소한 너댓살 어린 셈이 되지요.
장완전을 보면 제갈량은 항상 "공염은 뜻을 충성과 고아함에 두고 있으니, 나와 함께 제왕의 대업을 도와줄 사람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또 은밀히 표를 올려 유선에게 "신에게 만일 불행이 있게 된다면, 훗일은 응당 장완에게 맡기십시오."라고 했다지요, 그런데 이런 장완의 실제 나이를 고찰해 보면 제갈량이 장완을 후계자로 삼았다고 보통 해석되는 이 문장들의 의미가 완전히 바뀝니다. 즉, 장완이 제갈량보다 나이가 많았다면 제갈량에게 있어서 장완은 단순히 상사, 부하의 관계를 넘어서 '지금' 자신과 함께 대업을 도울 동료이고, 자신이 혹시라도 잘못되는 비상사태에 자신을 대신할 수 있는 일종의 동등한 러닝메이트로 삼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보면 어떤 의미에서든 장완은 '제갈량의 후계자'가 아니라 '제갈량이 가장 믿을 수 있는 동료'가 될 것이고 진짜 '제갈량의 후계자'로 볼 수 있는 인물들은 비의와 동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강유가 될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비슷한 시기에 제갈량에게 등용된 젊은 신진관료라는 공통점도 있고요.
이렇게 보면 장완은 제갈량이 죽었을때 이미 환갑에 가까운 나이였거나 환갑을 훨씬 넘었을 나이일 겁니다. 요즘이야 60을 넘기면 한창 청춘이라지만 서기 3세기 쯤에 이 나이면 노인이어도 한참 노인인 셈이죠. 하지만 장완은 제갈량이 자신에게 맡긴 촉한을 그가 중병에 걸린 243년까지 약 10여년간 효과적으로 통치해냅니다. 즉, 노인임에도 10여년간은 제갈량과 같은 총괄 업무를 무리없이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제갈량이 시스템을 잘 남겨두었다고 할 수 있지요. 장완을 두고 이전 사람, 즉 제갈량보다 못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화양국지는 이 때의 통치를 두고 '촉에서는 여전히 선정이 지속되었다'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제갈량 같은 뛰어난 인물이 통치하는것이 아니더라도 촉한은 여진히 강건한 통치를 이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는 증명이 될 것입니다. 243년부터 246년까지의 중병은 장완이 170년대 중후반 생이라면 246년 사망 당시 70 언저리니 과로라기보단 노환이라고 볼 수 있고요. 유능한 인재들이 묘하게 오래 못 사는 촉한인데 저 정도면 과로사가 아니라 매우 장수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장완이 와병중임에도 촉한의 통치체제는 무리없이 돌아갔고요.
244년부터 장완의 권리를 천천히 물려 받기 시작한 비의의 경우엔 장완보다 더욱 편안한 업무스타일을 가진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그는 바둑 등의 잡기를 즐기면서도 업무스타일이 술술 넘어가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것도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으면 곤란한 일입니다. 비의는 분명 주로 큰 일에 대해서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했을 것이고 작은 일은 유능한 부하들에게 맡기는 스타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업무 도중에 바둑을 둘 정도로 여유를 부리진 못하겠지요. 동윤이 비의의 업무를 따라하려다가 그 엄청난 업무량을 혼자서 꾸역꾸역 처리하다가 사실상 과로사 한 것을 생각하면 비의에게도 만만치 않은 업무가 몰려들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의가 상대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업무를 총괄할 수 있었던 것은 비의의 업무스타일에 맞추어 행정업무를 분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촉한 행정부에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컨데 제갈량은 스스로 죽을때까지 많은 업무를 스스로 떠안았고 결국 그것이 그의 과로사로 연결되는 원인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제갈량의 동료와 후계자들은 제갈량이 남겨둔 촉한의 행정 체계에서 상대적으로 쾌적하게 업무를 볼 수 있었고 그런 행정체제를 구축한 제갈량의 능력은 무시할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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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사촌 형 맞나요?
장완의 여동생이 반준의 아내라고 알고 있는데 당시에도 여자의 나이가 더 어렸던 것을 생각하면 장완이 제갈량보다 나이가 많았을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서에 중병을 앓다가 사망했다고 되어 있는데 늙어 죽은 거라면 굳이 저렇게 기록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