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에 개미를 잡아다 모래 채운 병에 넣고 굴 파는걸 멍하니 지켜본 일이 있으신가요? 세상이 좋아져서, 이제 그 짓을 아주 체계적이고 과학적이며 예술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의 발단은 만악의 근원인 유튜브입니다. 최근 즐겨보는 채널에서 개미 이야기가 마구 쏟아져 나왔고, 들여다보고 있자니,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높지 않더군요. 그래서 개미 사육의 길에 저도 모르게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어디에나 그렇듯이 이 분야에도 고인물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의 콤콤한 페로몬을 따라가다 보면 초보자도 비교적 쉽게 개미왕국을 소유할 수 있지요. 사전 조사를 며칠간 하고, 개미사육용품을 마련하고, 드디어 개미를 입양했습니다. 조금 알아보니, 개미사육에는 정말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1. 저비용 트리
개미를 키우는 데 가장 좋은 환경은 흔히 생각하는 흙이 아닙니다. 700원짜리 펜통입니다. 얇은 플라스틱으로 된 펜통 안에 솜이나 석고로 습도유지 장치를 만들어주면 최고의 개미집이 됩니다. 대형종이라도 펜통 하나에 수십단위의 개미를 키울 수 있습니다. 펜통 몇개를 12밀리 비닐호스로 통로를 만들어 이어주면 백단위 대군체도 충분히 키울 수 있습니다. 여기에 살다보면 손에 자주 들어오는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를 연결하여 먹이탐색장을 만들어주면 끝입니다.
개미를 분양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를 좀 하고 운이 좋다면 신여왕개미를 직접 채집하여 여왕 한마리가 대군체를 이루어가는 모든 트리를 함께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초보는 이렇게 대뜸 신여왕을 채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희망 고인물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은 소풍삼아 채집을 나가시고 신여왕을 쓸어담아 오셔서 가끔 마음씨 좋게 무료분양을 해주십니다. 정말 드물게는 한동안 키워서 덩치가 커진 군체를 무료분양해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렇게 개미도 비용 부담 없이 데려올 수 있습니다.
2. 고비용 트리
저비용 트리의 단점은 뭘까요. 단연코 첫번째는 뽀대가 안난다입니다. 펜통에 비닐호스 얼기설기 엮어놓은 사육장이 뭐 멋이 나겠습니까. 역시 뽀대는 돈을 좀 발라야 나는 법입니다. 그래서 아크릴 사육장, 흙 사육장 등 개미사육을 위해 만들어진 기성 사육장 상품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게 펜통 엮은 수제 사육장보다는 그나마 볼만합니다. 물론 본인이 금손이라면 쌓인 노하우를 동원하여 환상적인 사육장을 DIY할 수도 있습니다. 개중에는 정말 엄청난 규모의 비바리움을 직접 만들어 거기에서 개미를 사육하는 분도 계십니다.
저비용 트리의 두번째 단점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입니다. 신여왕 한 마리를 데려다가 만날 들여다보고 있으면 얘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시름시름 앓고 아무것도 안합니다. 그러다 죽는 일도 다반사고요. 신여왕을 데려와서 해야 하는 일은 수분, 습도유지를 위한 장치를 해준 다음에 서랍같은 어두운 곳에 박아두고 '까먹는 겁니다.' 존버라고 하셔도 좋습니다. 신여왕은 들여다보지 않고 놔두면 놔둘 수록 좋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산란을 하고 그 알이 첫번째 일개미가 되어 움직일 때까지 약 한 달 반에서 두 달이 걸립니다. 그렇게 일개미를 한 마리 한 마리 모아서 100마리가 되고 200마리가 되어 대군체의 길로 접어들 때까지는 년 단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거기까지 순탄하게 군체가 성장하지 못하고 중간에 전멸할 가능성도 있죠. 그래서 돈을 바를 수가 있습니다. 정말 운이 좋다면 큰 군체를 싸게 혹은 무료로 데려올 수 있겠지만, 규모가 있는 군체는 보통 분양을 합니다. 가격은 분양하시는 분 마음대로입니다만, 1Q100W 이상의 군체는 보통 3만원 위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여기서 Q는 여왕, W는 워커, 일개미를 말합니다. 병정개미가 있다면 S라고 합니다. 1Q100W라면 여왕 한 마리에 일개미가 한 100마리 되는 군체를 말하죠. 왜 여왕의 숫자도 적냐면, 복수여왕 군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확률은 낮지만, 복수의 여왕이 한 군체를 이루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공적으로 합사를 해서 만들기도 하죠. 이런 복수군체는 산란을 여러 마리의 여왕이 하므로, 군체의 성장속도가 훨씬 빠릅니다. 그래서 더 비싸죠. <<
뭐가 됐든 노선을 결정하고 집에 사육장을 갖춰 개미를 키우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개멍을 즐길 수 있습니다. 수조에 생선키우시는 분들이 수조에서 오가는 생선들을 보며 멍때리시는 것을 물멍이라고 하죠? 개멍도 물멍에 못지 않습니다. 개미들은 정말 바쁘게 삽니다. 알과 애벌레를 돌보는 애들, 여기저기 탐색하며 먹이찾는 애들, 정찰병이 부르면 가서 먹이를 운반해오는 애들, 흙을 파서 굴을 만드는 애들... 그리고 개미사육의 백미인 여왕 폐하 배알과 사냥 관전이 있죠. 들여다보고 있으면 시간이 순삭됩니다. 그리고 알이 점점 커지다가 애벌레가 되고 그 애벌레가 고치가 되고 마침내 아직 색도 다 들지 않은 일개미가 되어 움직이는 것도 아주 즐거운 모습입니다. 그렇게 키우는 군체가 점점 커져 그야말로 왕국이 되는 과정도 기쁘겠지요.
고인물들께서 말씀하시길, 개미사육 입문용 3대장 품종이 있습니다. 일본왕개미(검은왕개미), 한국홍가슴개미, 흑색패인왕개미의 세 종류입니다. 이 세 종류는 사육하기에 쉽고 덩치가 커서 관찰하기 좋으며 외모가 나름 준수하다는 장점을 공유합니다. 저는 성격이 아주 더러워서 뒤틀린 수집욕과 장비병, 부캐병이 다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삼대장 다 키웁니다. 키우다보니 나름 종류간의 개성이 다르더군요.
1. 흑색패인왕개미(흑패)
입문용 세 품종중에는 덩치가 약간 작습니다. 그런데, 티가 안납니다. 삼대장 부족은 모두 병정개미-솔져 계급이 존재합니다. 일개미-워커와는 차별된 피지컬을 자랑하는 병정개미는 개미 사육의 다른 즐거움입니다. 헌데, 흑패의 병정개미는 차원이 다릅니다. 덩치가 거의 여왕만합니다. 보통 군체가 커지면 솔져의 수와 질=덩치가 커집니다. 흑패의 솔져는 체격자체도 크거니와 커다란 머리와 흉폭한 가위턱으로 정말 볼만한 비쥬얼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반 워커들은 흑패가 가장 작지만, 솔져들은 최곱니다. 특히 흑패는 검은 유광의 몸을 가져서 비쥬얼이 정말 좋습니다. 멋있어요.
다만, 얘들은 초보가 처음 키우기에 적합한 종은 아닌 듯 합니다. 너무 심심해요. 먹이반응이라고 말하는데, 먹을 것을 던져주면 환장하고 달려들고, 생먹이를 주면 마구 사냥하는 그런 모습이 있어야 재미가 있는데, 얘들은 안그럽니다. 먹을 게 와도 소가 닭을 보듯 그냥 방치할 때가 많습니다. 안볼때라도 싸그리 먹어치우냐면 그것도 아니고요. 입이 짧은지 깨작댑니다. 군체가 아주 커지면 먹이반응도 좋아지고 필사적으로 먹이를 벌러 다닌다는데, 소규모때는 그야말로 가만히 있는 게 일인 애들입니다.
2. 일본왕개미(일왕)
외래종이 아니라 우리나라 서식종입니다만, 일본에서 먼저 발견되어 학명을 다는 바람에 캄포노투스 자포니쿠스, 일본왕개미라는 명칭이 붙어버린 애들입니다. 길을 다니시다가 발발거리고 돌아다니는 일반사이즈의 개미를 보셨다, 그러면 그건 곰개미일 확률이 큽니다. 근데 와 얘는 덩치 좀 있는데? 싶은 녀석을 보셨으면 십중팔구는 얘네입니다. 우리나라에 사는 개미 중에 가장 덩치가 커요. 검은 몸에 자세히 보면 배 부분에 금색 털이 있습니다. 얘들이야말로 초보가 가장 손에 넣기 쉬운 품종입니다. 키우기도 쉽고, 먹이반응이나 움직임도 나쁘지 않아요. 아무데서나 잘 사는 애들이라서 흙 사육장에 넣어놓으면 굴도 진짜 잘 팝니다. 무난하기 그지 없는 입문용 종류라고 볼 수 있겠네요.
3. 한국홍가슴개미(한홍)
그냥 홍가슴개미는 우리나라에 안삽니다. 한국홍가슴개미는 그냥 홍가슴개미와는 다른 우리나라 고유종이에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얘들은 가슴부분만 붉은색입니다. 그래서 예뻐요. 특이하기도 하죠. 얘들은 주로 고지대에 서식하기 때문에 흔하게는 볼 수 없는 애들입니다. 덩치는 일왕과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개미죠. 한홍은 일왕만큼 쉽게 구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키우는 맛은 최고입니다. 입문자들에게도 강력 추천할 수 있는 애들입니다. 일단 앞서 말한 대로 비쥬얼이 훌륭하고, 솔져계급도 있어서 보는 맛이 납니다. 그리고 얘들은 흑패, 일왕보다 먹이반응이 훨씬 좋습니다. 뭐가 있다 싶으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먹고 사냥합니다. 밀웜같은 생먹이를 주면 정말 열심히 달려들어 사냥하죠. 반전이라면, 싸움은 잘 못해요; 1cm 정도의 소형 밀웜을 그냥 주면 워커 세 마리 정도가 한 10분을 물고 늘어지다가 결국 놓치는 일이 많습니다. 먹이 사냥에는 솔져가 잘 등장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생먹이를 줄 때는 그냥 갓 죽인 애를 주거나, 사냥을 좀 보고싶다면 반쯤 죽여서 줘야합니다. 밀웜같은 애들도 반항이 격렬해서 사냥하다가 다리나 더듬이를 다칠 수도 있거든요.
키우다보면, 이것저것 욕심도 나고 해서 더 공부하고 챙기게 됩니다. 생먹이를 위해서 밀웜도 직접 키우게 되요. 사실 밀웜을 한 번 주문하면 최저 2백마리 가량이 오는데, 어지간한 군체가 아니면 이걸 다 먹이기 전에 밀웜이 다 커서 번식합니다; 조금만 관리를 해주면 밀웜이 무한정 공급되는 거죠. 오늘은 사육장 청소를 인위적으로 하지 않고 자연에 맡겨볼까하는 마음에 청소부인 등각류 공벌레를 한 마리 한홍 먹이탐색장에 넣어봤습니다. 정말 하루 종일 쫓겨다닙니다... 그러다가 걸리면 공처럼 돌돌 말고 우주방어에 들어갑니다. 싸움 못하는 한홍 워커들은 한동안 얘를 어떻게 해보려고 별 짓을 다하지만 결국 못뚫어요. 그럼 틈을 봐서 다시 쌩하고 도망가고... 또 잡히면 우주방어... 이걸 진종일 반복하길래 불쌍해서 그냥 꺼내줬습니다. 결국 제가 2주에 한 번씩 먹탐장 청소해줘야 할 것 같아요.
최근 정말 심신이 피폐한 시기에 가장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 개미사육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혹시 흥미가 있으신 분은 지금 초보유입이 어마어마하니 이 때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요? 개멍의 세계에서 시간을 지워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