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 국적의 여성이고 20대고 장애인이며 호주로 워홀 다녀온 친구와 식사하고 차를 마셨습니다.
몇 년된 친구이고 소개팅 같은 건 아닙니다. 전 불혹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한테 호주머니가 안 달린 하의가 딱 한 벌 있는데(잠옷), 은근히 입을 때마다 불편해서 신경이 쓰입니다.
그 옷도 비교적 최근에 생긴 바지입니다. 그전에는 살면서 호주머니가 없는 하의를 입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거죠.
밑에 올라온 글 중에서 학생들 중에 성별 거꾸로 태어나고 싶다는 의견이 꽤 많았는데 저로선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여자로 사는 건 참 귀찮을 거 같아요. 넘사벽으로 귀찮을 거 같습니다.
호주에 다녀온 친구는 제가 생각하기에 꽤 많은 추파를 받았고 그 중에는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즉 절차와 배려를 무시한 것도 있었다는데,
어택하는 거야 수컷의 생태라지만 유부남이나 할아버지도 포함되어 있고, 사랑에 나이는 없다지만, 글쎄올시다.
혐오의 시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 리플 중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 안에 있는 혐오가 정말로 늘어났을까요.
사실 저는 모든 국적의 사람들을 혐오합니다. 물론 제가 잘 모르는 나라의 사람들은 혐오하지 않습니다. 잘 모르니까요.
그런데 저는 잘 아는 나라가 없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도 잘 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몇 군데 빼면 지도 위에서 도시의 지명하고 위치를 연결할 수 있을 정도로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아무 나라 사람도 혐오하지 않습니다. 아니, 사실이 아니네요. 조금만 알게 되면 바로 혐오합니다.
좋아하는 나라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만나본 일본 사람들은 대체로 좋아하는데, 일본인은, 글쎄올시다.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사람 안에 있는 혐오가 정말로 늘어났을까요.
질문을 조금 바꿔봅시다. 옛날 사람들은 지금 사람들보다 덜 혐오했을까요. 아니, 근데 혐오가 뭘까요.
(대충 이질적인 것 배척, 생물 본능, 동질성 이익 공유, 우파 기본 원리 등등)
아, 동질성과 이질성, 초집단적 공동체성 회복 같은 게 키워드가 되겠네요. 근데 공동체라는 게 있긴 한가요.
공동체, 운명 공동체, 이익과 손실을 공동으로 삼는 집단.
그런데 이 이해손실을 보는 시야가 제 오른발 엄지발톱처럼 계속 안으로만 파고 들고 있단 말입니다.
하나라도 더 빼앗기는 것 같고 죽여야 할 놈들만 보인단 말이죠.
피씨통신이라도 생기기 전쯤을 생각하면,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공공에 알릴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중학교 선생님이 논리적 사고력을 키우려면 꼭 챙겨보라고 했던 신문 사설 따위나 날뛰었을 뿐이지,
일반적인 사람은 대자보를 쓰거나 삐라라도 만들지 않는 한, 잡지를 만들거나 졸라게 어디에 투고하지 않는 한,
내 생각을 널리 사람들에게 알릴 기회는 전혀 없었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굴러다니는 날적이 같은 것도 열심히 적고.
교실에서 교사의 폭력을 날려버린 건 의식의 변화보다 매체의 발달이 결정적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누구나 기록 매체를 가지고 내 행동이 기록되어 수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상황.
이때 기록, 정보는 권력을 분산하는 매개물이 되었습니다. 이런 흐름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것들이 정보로서 유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알려지고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헤드라인하고 사설 보면서 부들부들 데꿀멍하는 시대는 끝났고 바로 바로 댓글다는 게 시대정신입죠.
그런데 현실에 외날검은 별로 없기에 새로운 문제의 지평도 함께 열렸습니다. 보면서 기분이 나빠진다는 문제가 생긴 거죠.
덧글을 달거나 아예 다른 독립적인 정보를 생산해서 유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혐오의 지반이 달라진 게 아니라 이게 증폭되는 무수한 전장이 열린 것입니다. 하스스톤에 채팅창이 생긴 거죠. 이 나쁜 노루야. 렉사르 강아지야.
제가 만나본 흑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마 제가 알았던 흑인이 적었고 충분히 가까이 지내지 못했나봅니다.
백인 중에는 맘에 드는 친구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중으로 따지면, 글쎄올시다. 지독한 친구가 많았죠.
그런데 인상으로 남아 있는 건 결국 흑인이 강한 거 같습니다. 숫자도 적었고 특징도 강하고. 소수자는 딱지가 붙기 쉽습니다.
의사도 싫고 검사도 싫은데, 저는 중국인이 더 싫겠죠? 중국인도 저를 싫어할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알고 지낸 중국인이 한 명도 없습니다.
알리 판매자들은 지금까지 모든 물품을 제대로 처리해줬습니다.
오늘 한성대 입구에 있는 송림원에서 간짜장을 먹었는데, 여기 간짜장은 최고입니다. 중국인 주방장님 감사합니다.
예쁜 여자와 안 예쁜 여자 중 어느 쪽이 더 싫으십니까? 둘 다 당신을 싫어한다는 전제 하에요. 저는 그냥 제가 싫습니다.
남자들끼리 술자리에서 떠들던 얘기와 수위를 온라인에서도 시원하게 했으면 좋겠고 실제로 몇 사이트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얼마전 소설 69를 다 읽었는데 첫 부분을 읽을 쯤에는 불편했습니다. 남자들 술자리의 정서를 글자로 옮긴 소설이니까요.
불편을 느낀 건 불편했지만 그래도 불편을 느끼는 제가 불편하진 않았습니다.
남성 시인들의 문화와 정서가 역사적으로 그렇게 양아치였다고 합니다. 온갖 고뇌는 다 씹으면서요.
일본 사이트를 번역해서 보여주는 사이트가 있고, 한국 사이트를 번역해서 보여주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생각하기도 싫은 일입니다. 보면 마음 속에 검은 게 생겨나는 걸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직접적 관계 및 경험, 지식과 간접적인 정보의 비대칭이 커져갑니다.
사람들 이제 많이 똑똑합니다. 정보 약자가 아닙니다. 중학교 때 현금 뭉치 들고 용산 간게 갑자기 떠오르네요.
카세트 테이프에 적혀 있던 영어 가사들도 생각나구요.
그런데 너무 많이 알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니,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게 많아진 건가. 아는 게 문제가 아닌가.
분명 알지 말아야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알아서 좋은 것만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유튜브가 흥한 건 동영상이 최상위 정보 매체인 까닭도 있지만, 광고를 수용하게끔 하는 매체이기 때문인 점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비로소 온라인 매체는 자본주의와 성공적인 결합을 이루고 정보 제공자와 취득자의 대등한 관계가 성립된 것입니다.
그 결과 비효율적인 형식을 갖는 정보도 늘어났습니다.
정보 경험의 질이 떨어진 부분도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인간이 얼마나 책을 덜/못 읽게될 것인지 생각하면 역시 양날검입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세계대전이
어딘가서부터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가 자라나는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터넷이 문제라거나 인간에게 아직 과분하다고 하면 안 될텐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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