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불꽃심장부족의 사육장을 제가 청소하기 귀찮아서, 비바리움의 청소부인 공벌레를 합사시킬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럼 얘들이 각종 쓰레기를 싹 먹어치워줄테니까요. 그래서 동네에 나가 공벌레 한 마리를 납치해 왔습니다. 과연 합사가 가능한 지 시험삼아 투입해보았지요. 전에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정말 하루 진종일 얻어터지며 쫓겨다녔습니다. 우주방어를 펼쳐서 상처를 입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런데 이 공벌레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과정에서 불꽃심장부족이 아주 전술적인 움직임을 보여줬습니다. 그림을 보며 설명해 보겠습니다.
1번 위치가 공벌레가 최초로 발견된 장소입니다. 여기서 워커 4~5마리에게 포위당한 공벌레는 볼 모드로 우주방어를 펼치며 약 1분을 버텼습니다. 틈을 봐서 재빨리 드라이빙 모드로 변신, 2번 위치로 달렸습니다. 그 뒤를 추격하던 불꽃심장 워커들은 여기서 갑자기 산개합니다. 두 마리는 계속 공벌레를 추적했지만, 세 마리는 먹탐장의 다른 방향으로 달려간 겁니다. 저는 얘들이 포기하는 줄 알았습니다. 3번 위치까지 도망친 공벌레는 부쉬 안으로 숨어듭니다. 부쉬는 공벌레보다 체고가 높은 개미들에게는 쉽게 지나가기 힘든 지형입니다. 여기서 두 마리의 추적자는 다시 분산했습니다. 한 마리는 공벌레의 뒤를 따라 부쉬로 진입, 그리고 다른 한 마리는 부쉬를 우회하여 바로 4번 지점으로 달렸습니다. 이 우회기동에서 저는 감탄했습니다. 공벌레의 동선을 예측한 것이니까요. 공벌레 보신 적 있나요? 얘들 진짜 빠릅니다. 우회하여 온 추격자를 부스터 온으로 따돌리며 5번 지점으로 도주한 공벌레에게 벼락이 떨어집니다. 아까 2번 지점에서 다른 노선을 택한 워커들의 기습을 받은 것이죠. 세상에, 설마 노린 걸까요? 2번 지점을 지날 때부터 병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천라지망을 펼친 다는 것이 개미에게 가능한 일일까요?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그냥 포기하고 다른 데 간 애들에게 얻어걸린 것일 가능성이 있어요.
그런데 얘들이 진짜 의외로 똘똘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다른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젤리 먹이를 주곤 하는 미니어처 쟁반입니다. 그런데 언제보니까 뭐가 잔뜩 쌓여있는 겁니다. 투덜대며 설거지를 해주었습니다. 얘들아, 이것은 쓰레기통이 아니야...
그런데 다음 젤리를 다 먹고선 또 이렇게 해놨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그냥 취미같지 않습니다. 쟁반에 쓰레기장으로서 아주 훌륭한 매력이 있는 걸까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일이 다시 생깁니다. 전에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개미국밥을 양껏 주고 싶은 마음에, 고기불판 한가득 부어주었습니다. 전에 줬던 것보다 양이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뭔가 이물질이 떠있습니다.
여기는 최초로! 동영상을 한 번 보여드리겠습니다. 쟁반 위쪽 구석에 뭔가를 열심히 물어다가 국밥에 말고 있는 녀석이 보입니다. 영상에는 보이지 않지만, 세 마리 정도가 이런 행동을 반복하였습니다. 얘들은 확실히 이 국밥의 호수를 메꿀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조금 생각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곤충젤리나 개미국밥에는 당분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점성이 높죠. 음료수 흘린 자리가 끈적해지는 것처럼, 젤리나 국밥은 끈적합니다. 이게 우리 기준이면 그냥 불쾌하고 신경쓰이는 일이지만, 개미에게는 다릅니다. 실수로 국밥에 다이빙했던 녀석이 한동안 중력수련하는 손오공처럼 힘겹게 다니더군요. 그리고 국밥을 먹고 마른 자리는 개미에게는 슬픈 미이라의 저주가 되어 목숨을 위협하는 트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얘들은 아마 본능적으로 그것을 아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밟아도 안전한, 모래알이나 풀잎조각, 이끼를 모아 끈끈한 곳을 메꾸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밥쟁반에는 더 많은 부유물이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보고, 쟁반을 꺼내 국밥을 버리고 깨끗이 닦아주었습니다. 저 정도로 위협을 느끼는 것을 더 넣어두기가 꺼려지더군요. 이 과정을 보면서 확실히 개미는 본능이 뛰어난 생물임을 느꼈습니다. 군체의 생존을 위해서 개미들이 보여주는 행동 가운데는 정말 놀라운 것들이 많습니다. 다른 콜로니와 전쟁이 일어날 경우에, 전선에 전 병력을 투입하지 않고 빈집털이를 위한 별동대를 보내는 전술도 구사한다더군요. 곰팡이 농사를 지어 먹고사는 개미나, 진딧물 농장을 가꾸어 감로를 얻는 개미의 이야기는 유명하니 아시는 분도 많을 테지요.
개미는 한자로 의(蟻)라고 씁니다. 개미 의자는 옳을 의(義)자와 벌레 충(蟲)자가 합쳐진 글자지요. 단순히 음만을 딴 것이 아닌, 개미가 동료나 군체를 위해 행하는 희생과 봉사, 노동을 보고 옛 사람들도 개미가 의로운 벌레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요? ^^
늘 읽어주시고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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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개미들에게 지나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좋지 않지요, 확실히... 그래도 조명이나 진동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아주 심각한 것은 아닌 듯도 합니다. 지속적, 장기적으로 자극하면 여왕의 수명도 줄고 군체가 빨리 멸망하겠죠; 저도 사진 찍을때나 먹이 급여, 청소때 가급적 아주 조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