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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 20:45
삼국지 읽을 때 매번 조조한테 호구잡히고 온갖 개고상 하던 유비가 한중공방전에서 처음으로 조조 털어버리는 걸 보고 희열을 느끼고 관우가 형주공방전에서 천하를 뒤흔들때 절정에 달하다가 갑자기 대뜸 손권의 뒤치기와 함께 관우가 죽으면서 현타 씨게 오는데 장비까지 엄청 허무하게 죽고 얼마 안가 유비까지 죽어버리면서 오는 그 좌절감과 유사한..(..)
20/06/10 20:47
30년이 지난 후에 생각해 보면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순으로 대통령이 된 것이 결과적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87년 6월 이후 우리 사회는 큰 피를 보지 않고 민주사회로 연착륙했으니까요.
20/06/10 22:02
저도 결과적으로는 노태우 당선과 삼당합당이 민주화 연착륙에 기여했고, YS는 어쨌든 공언대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호랑이를 잡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회가 숙청된 이후인 DJ 당선때까지도 쿠데타 계획이 있었다 이런 썰이 있을 정도면 뭐...) 당시 사람들의 허탈함은 사실 상상도 안가네요.
20/06/10 20:58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하나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전두환하고 노태우는 제3세계국가 독재자들이 하듯이 시위하는거 탱크로 깔아뭉개고 몇십만명 몇백만명이 됐건 학살하지 않고 얌전히(?) 6.29 선언을 해서 민주화의 발판을 만들어 준걸까요?
1. 하고 싶었으나 미국이 그러지 말라고 했다. 2. 하고 싶었으나 그러면 북한이 남침(?)할 빌미를 준다. 3. 직선제를 하더라도 선거를 통해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 4. 88올림픽을 앞두고 너무 모양빠지는 짓은 별로였다. 5. 그정도규모의 학살은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일어났고 그래도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였다. 저는 4번에 한표 던집니다. 많은 가르침을 주십시오 교수님들.
20/06/10 21:36
5번도 무시할수 없는게 국회 야당비율이 40%에 유력 신문사들도 다 민간 소유였던 당시 5공을 쉽게 천안문 깔아뭉갰던 중국과 비교하면 실례죠
20/06/10 22:06
이미 12.12로 군권을 잡은 사람이기도 하고 (국회는 5.17 쿠테타로 해산) 지방인 광주에서 있었던 일인것도 컸습니다.
서울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똑같이 하는게 가능했을지 의문이긴 합니다.
20/06/10 22:19
아무래도 외국인도 많고 해서 당장 막기는 힘들었을거거든요... 특히 해당시위에 미국인이 있는데 미국인을 폭행하고 해했다면...
미국의 반응이 불보듯 뻔했겠죠...
20/06/10 22:21
4+1에다가 문어아재(더 심한 단어 썼다가 고칩니다...)가 정통성이 역대급으로 최하인 탓도 있습니다. 박정희에 향수를 갖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이 있지만 전두환 추앙하는 애들은 일베에 소수랑 전두환 친구들 밖에 없죠 뭐. 그리고 어느 정도는 3도 포함되는게 3을 만드려고 김대중 출마를 노태우측에서 부추겼다는 의견도 있어요. 사실 김영삼으로 단일화했으면 군사정권의 필패였죠.
20/06/11 05:33
광주항쟁 때문입니다.
6월항쟁 참여자와 기자, 연구자 가운데는 6월항쟁에 군이 나오지 않은 것은 미국이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중략) 군이 출동하지 않은 것은 미국과 직접 관계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중략)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내부에 있었다. 계엄을 선포하려면 국무위원의 서명이 필요한데, 총리서리나 내무부장관 등은 계엄에 반대할 수 있었다. 더 큰 이유는 노태우와 민정당에 있었다. 노태우는 6월 19일 군 출동 준비 지시를 듣고 이기백 국방부장관, 안기부장 등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군의 출동만은 불가하다는 점을 건의해달라”고 말했다. (중략) 노태우와 민정당 당직자들은 국이 나오면 모든 정치 일정이 뒤바뀌어 자신들의 제2기 권력 창출이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심지어 쿠데타가 일어나면 자신들이 희생양이 될 수도 있었다. (중략) 군이 나오지 않으려는 중요 요인은 광주항쟁에 있었다. 광주항쟁에서의 경험과 그 이후 운동권의 광주 학살자 처단 주장은 군을 괴롭게 했을 터인데, 6월항쟁에서도 광주처럼 사생결단하고 시위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군이 출동하더라도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중략) 전두환도 6월항쟁에 군이 나서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전두환은 어느 누구보다도 광주항쟁이 뇌리에서 떠날 수 없었다. 책 『6월 민주항쟁』 중 「6월항쟁의 전개와 의미」 편에서 질문에 대한 답변과 관련된 부분을 발췌했습니다.
20/06/11 05:43
그리고
6·29 전날인 6월 28일 전두환은 “군대가 나오면 항상 쿠데타 위험이 있어”라고 말했는데, 이 부분이 특히 중요하다. 12·12, 5·17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인 전두환은 쿠데타가 일어나면 자신도 정승화(12·12쿠데타)나 김종필(5·17쿠데타)처럼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더구나 6월항쟁은 쿠데타 군의 전두환 처단에 더 없이 명분이 좋을 수 있었다. (중략) 전두환은 퇴임 후 자신의 안위에 대해 굉장히 신경을 썼다. 전두환 노태우에게 직선제를 해도 이긴다고 권한 사람들도 대개는 두 김이 경합할 것이라는 점을 깔고 권했을 것이다. 같은 책에서 발췌. 위 다섯 항목 중에서 가장 진실에 가까운 항목은 3번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6/10 22:0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미국은 전두환에게 군사개입을 반대한다는 명백한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까요? 왜 미국이 이때는 이랬으면서 광주에서는 그랬는지...
20/06/10 23:19
당장 구체적인 걸 찾아드리기에는 나무위키 이상은 힘들겠고...
광주 때는 이란 대사관 인질 사건 등으로 거기에 정신이 더 팔려있었던 점은 있겠죠. 그리고 설마 그런 짓까지 벌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지 싶구요. 6월에 미국이 한 걸 보면 광주의 참상을 안 충격이든, 막나가는 모습에 대한 반감이든, 이후 민주화 세력의 반미 움직임 때문이든간에 오히려 그 때의 광주가 미국을 바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0/06/10 23:48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미국은 원래 3세계에서 민주정권보다는 (친미)독재정권을 선호하는데
기본적으로는 친미지만 약간 개기던 박정희가 예상밖의 사고로 가고 다른 독재자가 대신 한다고 설치니 당연히 미국은 묵인해주고 대가로 친미독재 받는게 이득이죠. 독재자가 다른 독재자로 대체되는 과정은 굉장히 혼란스러우나 (미국도 어버버 했을지도) 이미 7년해먹은 독재자가 시민들 또 쏴죽이고 정권연장하는거는 간결한 사태이고 그거까지 묵인한다? 부패한 베트남정권의 악몽이 없었으면 그렇게 했을지도??
20/06/10 22:24
저 중산층의 정치세력화가 성공했기 때문에 한국의 민주주의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실현했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저 요소의 부재때문에 중국의 민주화는 택도 없는 소리고 설사 된다 한들 한국에서 바라는 그런 형태의 민주화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중국처럼 독재 권력이 중산층들을 흡수하는 시스템이 되어버리는 순간 민주화는 요원하다고 봐요. 그 시스템의 극단이 싱가포르고.
20/06/10 22:26
제가 대학들어가고 바로 일어난 역사죠. 87년. 저도 서울역 앞에 모였던 그 인파속에 있었습니다!
저당시 "넥타이"부대가 바로 제 부모님, 삼촌 세대시고 (30-40-50)년대 생들...그 분들중 많은 분들이 현 정부에 반대하는게 아이러니 합니다. 당시 제 여친이 연대다녔는데, 우상호 서대협 회장 멋있다고 얼마나 자랑하던지...
20/06/10 23:04
어릴 적에 큰 대학교 근처에 살았습니다. 친구들과 개울에서 놀고 화단을 뛰어다니던 시절에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동네를 덮치면, 아주머니들이 나오셔서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셨죠. 아직 환한 빛이 가시지 않은 시간에 더 뛰어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재채기에 기침이 나는 그 냄새가 싫어서 엄마 손을 붙잡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때 그것이 '데모'때문이라고 들었지만, 데모가 무엇인지 몰랐던 시절이었어요. 동네 파출소에 걸려있던 대머리 대통령 할아버지의 사진이 언젠가 보통사람 할아버지로 바뀌고, 또 눈이 작은 학실히 할아버지로 바뀌는 것이 이 땅의 역사에 어떤 의미인지 그 때엔 몰랐습니다. 그리고 자라고 배우며 그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새삼 생각했습니다. 그 매캐한 냄새를 온몸으로 받아가며 싸웠던 많은 국민들이 무엇을 쟁취해낸 것인지를... 그 열매가 달콤함을 많은 시간 잊고 사는 것이 죄스러운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달콤함의 가치와 의미가 퇴색되는 일이 없도록, 그 달콤함을 전용하고 독점하는 일이 없도록 그날 진압봉과 최루탄 앞에 서 있던 많은 선배들이 '당시에' 가졌던 마음을 우리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20/06/11 08:33
한국 근현대사는 시대의 과업을 이뤄낸 위대한 세대들의 집합이죠..
광복 - 산업화(경제) - 민주화(정치) - 정보화(과학기술) - 한류(문화) 로 이어지는 흐름.. 과연 이 흐름이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업까지 이뤄낼지는 지켜봐야하겠네요
20/06/11 13:53
영화 <1987>이 좋은 점이 바로 본문과 같은 점을 잘 살려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87년 항쟁은 어떤 한 영웅이 이끌어간게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조금씩 힘을 보태고 용기를 낸 결과가 합쳐진 것이라는 그 사실을, 한명의 메인 주인공을 두지 않고 여러 인물들이 군상극으로 풀어나가는 연출을 통해 너무나 잘 드러냈다고 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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