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ante
"조국은 국가의 위대한 인물들을 기억한다"
프랑스 파리 한복판에 위치한 팡테옹 입구에 새겨진 문구입니다.
팡테옹은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장소임에도 건축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깊이 때문에 오늘날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입니다. 어떻게 보면 현충원 같은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이곳은 군인 뿐만 아니라 철학자, 시인, 과학자 등 프랑스의 명성을 드높인 인물들 또한 안장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팡테옹이 처음부터 이런 목적으로 지어진 것은 아닙니다.
원래 팡테옹은 1764년, 파리의 수호성인 성녀 쥬느비에브(Genevieve)를 기리기 위한 성당으로 지어졌습니다. 로마의 성베드로대성당, 런던의 세인트폴대성당과 견줄만한 거대하고 화려한 성당을 짓는 것이 목적이었죠. 따라서 원래 명칭은 성 쥬네비에브 성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이 완공되기 직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고, 이 건물은 파리의 다른 성당들과 마찬가지로 가톨릭 교회가 아닌 국가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1791년 혁명정부의 프랑스 국회(Assemble Nationale)는 이 곳을 국가의 위인을 기리기 위한 장소로 사용하기로 결의했습니다.
그 결의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새로이 완공된 성쥬네비에브성당은 우리가 혁명을 쟁취한 날 이후로부터 위대한 업적을 세운 인물을 안장하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
2. 어떤 인물을 안치할 지는 오직 국회만이 결정할 수 있다
3. 최근 서거한 미라보는 그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다
4. 혁명 이전 시대의 인물, 예컨대 데카르트, 볼테르, 루소에 대해서는 예외를 둘 수 있는데 그 권한 오직 국회만이 행사할 수 있다
5. 파리시 당국은 성쥬네비에브성당이 새로운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즉시 준비를 해야 하며, 다음과 같은 글귀를 새길 것을 결의한다. "조국은 국가의 위대한 인물들을 기억한다(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ante)"
혁명정부는 성당을 국가기념관으로 개조하여 이곳에 안치할 첫 인물들로 혁명에 큰 공을 세운 귀족 미라보와, 그 이전 시대의 철학자 3인을 안치하기로 결의했습니다. 그 후 혁명 정부는 왕당파에 의해 살해당한 혁명가와 혁명정부를 위해 목숨을 잃은 명망 높은 장군을 안치하였고, 또 혁명의 나팔수였던 장폴 마라(Marat)도 안치하였는데, 마라의 경우 로베스피에르 정부가 무너진 후 팡테옹에서 쫓겨났습니다.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집권하고 황제가 되자 그는 팡테옹 안장 권한을 국회로부터 빼앗았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본인과 같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사망한 군인과 장군들을 대거안치하였지만, 의외의 인물들도 안치하였습니다. 예컨대 장 에티엔느 포르탈리스는 개신교도의 동등한 법적 권리를 요구한 법학자였고, 조세프-루이는 수학자였습니다.
1815년 유럽연합군에 의해 나폴레옹 정부가 무너지고 왕정복고가 이루어지자, 팡테옹은 다시 원래대로 성당이 되었습니다. 특히 샤를10세의 경우 혁명가들과 나폴레옹 가담파 모두를 극도로 혐오하였고, 모든 것을 1789년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어했죠. 그런데 이미 시대가 바뀌었고 그는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실각하였고, 그 후 새로 왕으로 등극한 루이-필리프는 화해의 제스쳐로 세인트 헬레나에서 나폴레옹 유해를 모셔와 앵발리드에 안치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앵발리드에서 나폴레옹 무덤을 볼 수 있는 것은 루이-필리프 왕 덕분입니다.
아무튼 왕정복구 이후 팡테옹은 줄곧 성당으로 기능했고, 이는 심지어 제3공화국이 출범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1885년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서거를 계기로 다시 혁명 정부의 의도대로 위인을 기리는 장소로 전환되었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장례식은 대단히 성대하게 치러졌으며, 마치 국왕의 서거를 방불케하는 장관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무려 2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배했다고 하며, 2천명이 넘는 인사들이 그에게 헌화하러 방문했다고 하니, 문인으로서 그와 같은 영광을 누린 이는 아마 전무후무할 것입니다. 그의 서거를 계기로 제3공화국의 국회는 빅토르 위고를 성쥬네비에브성당에 안치하기로 결정하였고, 그때부터 우리가 아는 것처럼 팡테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위인을 안치하는 것은 순조롭지만은 않습니다.
누구를 안치시킬 것인가? 누가 위인인가? 그가 왜 위인으로 취급받아야 하는가? 사실 이는 대단히 정치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1908년 "나는 고발한다"로 유명한 에밀 졸라를 안치하기로 결정했을 때, 또는 1924년 프랑스 사회주의의 거두 장조레스를 안치했을 때 대단히 논란이 되었습니다. 특히 보수우파들은 격렬히 반응했고,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편 물리학자나 화학자 등 과학자들은 정치적 논란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에, 뛰어난 과학자들을 안치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했습니다. 그런데 국가적으로 인정받는 그런 과학자들이 있다는 것도, 그리고 이들을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군인 못지 않게 기린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오늘날 팡테옹에 위인을 안치할 권한은 프랑스 대통령이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그 권한을 신중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누구를 안치할 것인가를 결정함으로써 본인의 정치적 비전을 대내외적으로 선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아주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꼭 동시대인을 안치할 필요는 없고, 21세기의 대통령이 19세기의 인물을 안치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몬테크리스토의 백작"으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가 팡테옹에 안치된 것은 2002년의 일이었습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임기 중 4명의 레지스탕스 순국열사들을 안치하였고,
현임 대통령 엠마뉘엘 마크롱은 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1970년대 프랑스 보건장관을 지낸 시몬느 베일을 안치했습니다. 시몬느 베일은 낙태죄를 폐지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조국은 국가의 위대한 인물들을 기억한다"
대한민국도 국가의 위대한 인물들을 기억하고, 대중적인 장소에서 보다 웅장하고 성대하게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