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아는 삼국시대가 위오촉이 서로 싸우다가 서진 사마염의 통일로 끝났지만 다시 5호16국 시대를 거쳐서 몇백년의 혼란기를 수문제 양견이 짜잔하고 통일했다고 많이들 알고계시죠. 그런데 이 수문제가 통일하기 직전의 중국의 상황은 북주, 북제, 남조 진나라의 두번째 삼국시대였습니다. 이 두번째 삼국시대를 통일한건 수나라니깐 수문제가 이건 마치 위촉오가 싸웠는데 서진이 통일한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죠? '양견 걔 완전 사마염아니냐' 라고 하실수 있는데 좀 비슷합니다. 서진이 생기기전 부터 촉나라는 이미 망한것처럼, 수나라가 생기기전부터 이미 한개의 나라는 망해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강남왕조 (삼국지의 경우 오, 수나라의 경우 진)만을 병합하고 삼국통일을 완성하죠. 양견이 북주를 찬탈해서 수나라를 세우는데, 찬탈전에도 이미 북주는 천통에 가까워져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우문옹이 했던 일이죠.
서위 동위 시절의 지도5호16국시대가 선비족 북위의 북조통일로 남북조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 북위가 권신 고환의 전횡으로 인해 못견뎌서 황제가 지방군벌인 우문태에게 도망친 뒤, 고환은 새로운 황제를 세워서 무슨 아비뇽유수로 교황 두명 있듯이 북위에는 황제가 두명있는 상황이 벌어지게되죠. 결국 두개의 나라로 쪼개지게 되는데 우문태쪽 황제의 나라를 서위, 고환쪽 황제의 나라를 동위라고 부릅니다. 두개의 나라에 두개의 황제, 그리고 두명의 권신이 존재하는 상태가 된거죠. 우문태든 고환이든 본인대에서는 황위를 찬탈하지는 않습니다. 두나라 모두 창업자라 볼수있는 우문태와 고환이 죽자마자 황위를 찬탈하는데, 우문태의 후손이 서위를 찬탈해서 북주가 되고 고환의 후손이 동위를 찬탈해서 북제가 됩니다. 그리고 우문옹은 우문씨에서 짐작하셨겠지만 북주 사람이었죠. 무려 우문태의 아들입니다.
서위 동위를 각각 찬탈후인 북주 북제 시절의 지도. 서위보다 북주의 영토가 넓어진건 후경의 난을 틈타 우문태가 촉과 형주 북부를 정벌해서 그렇습니다. 그 우문태가 죽을때 가장 근심스러웠던 것은, 자신의 후계문제였습니다. 우문태에게는 우문육이라는 장남이 있고, 우문각이라는 3남이 있었습니다. (2남은 요절). 장남이던 우문육은 서출이라 3남 우문각에게 자신의 세력을 물려주려고 후계자로 지목했는데, 3남 우문각의 나이는 고작 15세였습니다. 후계자의 걱정이 되는것은 당연한 상태였죠. 또 다른 문제도 있었습니다. 사실 서위의 실권자였던 우문태였지만, 우문태는 그 세력의 기반을 하발악이라는 군벌에게서 물려받았습니다. 혈족이 아닌 수하인 자신이 그 세력을 물려받게되었죠. 더 나아가 하발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원래 북위의 실권자는 이주영이라는 군벌이었는데 이주영의 사후 이주영의 세력이 이주씨에게 계승된게 아니고, 수하였던 고환(앞서나온 동위의 권신)과 하발악이 쪼개가진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이주씨들은 고환에게 도륙당하고요. 아직 어린 나이였던 우문각이 범같은 자신의 수하들을 상대로 자신의 세력을 잘 이어받을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되는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상황일때는 보통 종친을 이용하죠.
우문태가 우문각을 후계로 세웠으니 우문각을 잘 보필해달라는 부탁을 종친중에 해야합니다. 장남인 우문육에게 맡기는건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기는것처럼 불가능한 상황이고 우문태는 자신이 전쟁터에 항상 데려다니던 장성한 조카 우문호에게 자신의 후사를 부탁합니다. 부디 문각이를 잘 보필해주렴.(손찬이형처럼 문각이도 우문씨입니다.) 우문호는 당시 3~40대였는데, 우문태 휘하에는 이주영, 하발악때부터 종군하던 신하들이 이미 지위가 높아져버린 그런 상황이라 우문호에게도 만만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우문호는 우문태를 벤치마킹합니다. 우문태가 하발악의 세력을 이어받을때, 우근이라는 신하를 찾아가서 인정받는데요. 우문호도 우근부터 찾아갑니다. (이 우근은 살수대첩의 패장 우중문과 우문술 중 우중문의 할아버지입니다.) 우문호는 우근을 찾아가서 인정을 받아서, 우문태의 범같은 장수들 사이에서 우문태의 유지를 잇는 적임자로 낙점받습니다. 우문호가 낙점받은뒤 우문태의 유지에 따라 우문각을 후계자로 세웁니다.
전부 우문씨라서 혼동될수 있으니 이해를 돕기 위해 넣어드리는 우문태의 가계도. 화살표는 부→자. 숫자는 황제가 된 순서입니다. 0번은 추존.아직 나라는 서위입니다. 우문태는 찬탈을 하지 않았어요. 우문호는 우근의 지지하에 우문각으로 하여금 우문태의 세력을 잇게 만들고 서위의 황제를 핍박합니다. 그래서 서위의 황제가 황위를 우문각에게 선양하게 됩니다. 이로서 북주라는 나라가 건국되게 됩니다. 사실상 우문태의 시절부터 우문태가 황제나 었지만, 공식적으로 처음 황제에 부임한건 아들인 우문각이었습니다. 근데 이 북주라는 나라가 문제가 많은게 무슨 황제가 1대부터 꼭두각시입니다. 보시다시피 우문각을 황제로 만드는 사람은 우문태에게 유지를 부탁받은 조카 우문호(우문각의 사촌형)였습니다. 그렇기에 우문태는 황제보다 더 한 권력자가 되어서 전횡을 휘둘렀고, 우문태의 아들은 황제가 되었으나 우문태때처럼 황제가 꼭두각시인건 똑같고 우문태의 실권이 조카 우문호에게 돌아간 꼴이 되었습니다.
우문태의 범같은 장수들 소개. 조귀 독고신 우근 양충등을 찾아보실수 있습니다.이를 두고볼 노신들이 아니었습니다. 선대때부터 전장에서 잔뼈가 굵던 조귀와 독고신이 우문호를 척살할 계획을 세우지만 오히려 우문호에게 당합니다. 황제 우문각도 지방군벌들을 불러들여와서 우문호를 제거하려했는데, 우문호가 우문각에게 '어찌 혈육의 정을 믿지 않고 저들을 믿으려하냐고 울면서 막습니다. 그리고는 우문각도 우문호에게 폐위당하고 시해당하죠. 우문호는 우문각을 폐위한뒤 새로운 황제를 세우는데 그게 앞서 서출이었던 우문태의 장남 우문육이었습니다.
우문육은 우문호에 의해 황제가 되었지만 그 역시 꼭두각시노름을 비껴갈수는 없었습니다. 우문호가 사실상 황제이며 자기는 바지사장에 불과한 상태였죠. 우문호는 우문육도 경계해서 결국 독살하기에 이릅니다. 중독되어 와병중이던 우문육은 자신의 어린 아들보다는 (어린아들이 황제가 되어봤자 역시 우문호에게 죽을것이니) 사이가 좋았던 이복동생 4남 우문옹에게 보위를 물려주기로 결정합니다. 드디어 등장한 주인공 우문옹입니다. 우문육은 평소 우문옹이 식견이 높으나 말수가 적은것을 높게 평가했고 아꼈습니다. 그래서 항상 우문옹과 나라의 중대사를 의논하곤했는데, 우문호가 전횡을 벌이고 있는 이 상황에 맞는 후계적임자를 우문옹으로 결정한것이었죠. (아들을 무늬뿐인 황제시키느니 아들도 보호할겸 일석이조.) 그래서 우문육이 죽자 우문옹이 황위를 이어받게되는데 그가 북주의 3대황제 무제입니다. 이게 불과 우문태 사후 5년 안에 벌어진 일입니다.
우문옹은 이복형 우문육이 보증했던 과묵한 남자였는데, 그런만큼 속을 알기 힘든 남자였습니다. 그런 우문옹은 겉으로는 우문호를 따라서 우문호도 안심하고 있었죠. 우문호는 우문태처럼 당장의 제위욕심자체는 없었던것 같습니다. 자신을 잘 따르는 이번 꼭두각시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눈을 대외로 돌립니다. 지금 상황은 우문씨의 북주와 고환의 후계자인 북제와 남조를 이어받은 진나라가 있던 시기입니다. 적은 외부에도 있었던 시기죠. 타겟은 당연히 북위라는 한집에서 태어난 북제였죠. 이 당시 북제에는 세개의 기둥인 명장이 있었는데, 바로 곡률광 고장공 단소였습니다. 셋에게 번번히 막혀서 북제원정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북제 노답삼형제! 우측에서 좌측으로 읽어주세요. 고장공은 코에이 삼국지 고대무장으로 나와서 나름 유명합니다. 난릉왕이라는 작위를 받아서 난릉왕으로 사극화도 많이 되었구요.대외적 원정실패로 명망이 깍인 시점이 권신에게는 가장 위험한 시점입니다. 우문호도 위기의식이 아주 없진 않았으나 우문옹을 믿고 있었죠. 무려 13년동안이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별일이야 있겠어 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우문호는 당시 나이기준 노친네인 60세에 가까웠습니다. 우문호의 가신은 우문호에게 이제 그만 자리에서 물러나시면 주공단과 소공석의 업적(옛날 주 무왕의 동생들로서 섭정의 교과서로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을 재현하는것이라고 간했으나, 우문호는 듣지 않습니다. 권력은 하루아침에 놓기 쉽지 않죠. 우문호가 바라는 것은 추후 아들대에서는 황통을 우문호계통이 이어받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3년동안 칼을 갈았던 우문옹은 이때 움직입니다. 우문호를 조용히 궁에 불러서 태후께서 술을 많이 드시는데 자신의 말은 듣지않으니 사촌형님께서 대신 말해주시오라고 말하고는 둘이서 태후를 찾아가다가 뒤에서 지팡이로 우문호를 패죽여버립니다.
우문옹은 우문호를 살해한뒤 빼앗긴 실권을 되찾고 친정을 시작했습니다. 13년동안 참았던 형들의 복수를 한 우문옹이 능력있는 군주였던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을겁니다. 당시 북주 최고의 장수는 위효관이었는데 이 위효관은 무려 북제의 창업자 고환을 물리쳐서 홧병나서 죽게 만든 남자였습니다. 이런 위효관에게도 북주의 3기둥인 곡률광 단소 고장공은 위협적이었습니다. 위효관은 지용을 겸비한 장수였는데, 곡률광은 힘으로서는 안되겠다고 깨끗하게 인정합니다. 그래서 계책으로 제거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곡률광의 곡은 곡식이었고 자가 명월이었는데 곡식과 밝은 달이 높게 될거라는 노래를 지어부르게 만들어서 즉 곡률광이 황제가 될거라는 노래를 북제에 퍼지게 만든거죠. 당시 북제의 황제 고위는 이에 곡률광을 의심해 척살해버립니다. 죽이고 나서 곡률광의 집을 뒤져보니 검소하기 이를데없어서 야심없는 남자임이 너무 뻔히 보여서 후회했다고는 합니다. 그럼에도 고위는 멈추지 않습니다. 고장공은 원래부터 눈에 가시였기때문에 제거했어요. 단소는 이미 늙어죽었습니다. 아니 이렇게 고민거리 세개가 동시에 해결되다니.
고징의 가계도입니다. 화살표는 부→자. 숫자는 황제가 된 순서입니다. -1,0번은 추존. 고장공은 고환의 장남 고징의 아들이라 현 황제 고위에게는 눈엣가시였습니다.3기둥이 무너진 북제는 우문옹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내 원정군을 몰아쳐서 북제를 박살내버립니다. 북주의 공세를 막을수 있었던것이 3기둥덕인줄 모르고 향락에 젖어있던 북제황제 고위는 황후에게 성의 함락 장면을 보여주고 싶다며 함락직전 공세를 멈출정도로 철없는 남자였습니다. 감당해낼수가 없었죠. 결국 사실상 고위를 마지막으로 북제는 멸망하게 됩니다. 우문옹은 북제의 수도 업성을 함락시킨뒤 곡률광을 추모하며 내 어찌 곡률광이 살아있었다면 북제 땅을 밟을 수 있었겠느냐 라고 이야기합니다. 북제까지 멸망한 시점에서 남조의 진나라가 북주를 대항할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문옹의 천하통일은 사실상 시간문제였죠.
이게 우문옹이 우문호를 죽이고 실권을 되찾은 뒤 5년 남짓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황제가 되고 13년을 때만 바라보고 숨죽여있다가, 우문호를 척살하고 실권을 찾은지 5년만에 북주를 멸망시켰던 남자. 그치만 수명은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북방을 좀 더 단단히 하고자 원정하던 와중에 병을 얻어 죽게됩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고작 36세. 우문옹이 조금 더 오래살았다면 아마 수나라는 없었겠죠. 우문옹이 죽으면서 아들에게 황위가 돌아가는데 이 아들의 장인이 바로 양견이고, 양견이 외척으로서 실권을 쥐게 됩니다. 게다가 이 아들까지 요절하는 바람에 양견은 황제의 외할아버지가 되고, 이내 북주를 접수해서 수나라를 선포하죠. 그리고 수나라는 남조의 진나라를 멸하고 중국 재 통일을 이룩합니다.
난릉왕 고장공이 제목인 드라마. 제목은 난릉왕이지만 진주인공은 우문옹인 느낌이다.
나름 짧고 굵게 드라마틱한 삶을 살고가서 드라마내에서 주인공으로도 인기가 많더군요. 우문옹, 고장공, 양견 세명이 또래인데, 사극으로 만들어지면 셋이서 친구처럼 나와서 한여자를 두고 공간을 초월한 삼각관계 사각관계를 맺게됩니다. 중드도 한드와 이런 점은 크게 다르지 않네요. 하지만 주인공은 항상 우문옹입니다. 하다못해 제목조차 '난릉왕 고장공'인 드라마의 주인공도 사실상 우문옹이에요. 고장공은 모든걸 희생하며 끝내 목숨까지 내놓는 모래시계 이정재롤이고 우문옹이 진주인공입니다. 양견은 독고황후에게 잡힌 공처가 이미지고요. 여튼 우문태의 아들로 태어나 우문씨의 천하통일 일보직전에서 수명이 허락하지 않아 멈추게된 남자. 수나라의 천하통일의 토대를 쌓은 남자. 천하인에 가까워던 남자 북주 무제 우문옹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