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표준시 1945년 8월 9일, 동경 표준시 8월 8일 자정, 소련군의 150만 대군이 제2차 세계대전 최후의 대공세를 실시했습니다.
만주의 일본 관동군을 섬멸하고 관동군이 세운 괴뢰국가 만주국을 멸망시키는 만주전략공세작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소련군의 만주작전은 일본의 항복, 소련의 동북아 세력 확대, 중국의 공산화, 한반도의 분단, 그리고 쿠릴 열도 분쟁이라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여러 중대한 결과를 남겼습니다.
러시아의 학자의 표도르 째르치즈스키의 표현을 빌리면, 소련의 만주작전만큼 “아시아 역사에서 이만큼 중요한 일주일”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 작전의 전모는 한국의 일반적인 대중에게 제2차 세계대전의 다른 작전 및 전투와 비교하면 매우 생소한 존재로 남아 있었습니다. 작전 자체가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하여 대중이 접할 수 있는 한국어 자료가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경우, 만주작전이 한반도의 분단을 초래한 직접적인 결과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 작전을 직시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전쟁으로 내면화된 반공주의와 군사독재정춴의 서슬퍼런 검열과 감시 하에서는, 소련군이 "활약"하거나 "승리"하는 얘기를 꺼내기 힘들었습니다. 과거에 출간된 몇 안되는 세계군사사 서적에서는 1942년 11월 스탈린그라드 반격 이후의 독소전쟁에 대한 서술은 아예 없는 것처럼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았을 정도였습니다.
소련군의 군사적 승리를 다루는 저작은 오랫동안 대중에게 소개될 수도 없었으며, 소개되어서도 안되었습니다.
유관국들의 자료도 제한적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작전의 패자인 일본의 경우, 만주작전은 기억하기도 싫은 흑역사 중의 흑역사로 남았습니다. 중국전선에서는 나름대로 내세울 만한 전과가 있고, 태평양전쟁에서는 거의 무의미한 자살돌격으로 귀결되었을지라도 감투정신과 정신력을 발휘했다는 자기위안을 할 구석이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1945년 8월의 관동군은 소련군이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무너졌기에, 어떠한 위안을 삼을 구석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인의 집단기억에서 만주작전은 기억 저편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남은 것은 소련이 1941년 3월에 맺은 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으며, 관동군 포로들이 시베리아로 끌려가 고생했다는 피해자 의식밖에는 없었습니다.
작전의 승자인 소련/현대 러시아의 경우, 당연히 만주작전과 관련된 엄청난 양의 자료를 축적하였습니다. 만주작전은 기념할 만할 군사적 대승리였고 소련이 동북아시아를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시켰다는 선전용으로 쓸 가치가 높았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국내에는 소련 자료가 거의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태평양전쟁을 주도한 미국의 경우, 만주작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태평양전쟁 종결과 일본 항복의 최대 공헌자는 일본제국을 상대로 4년간의 전쟁을 수행하고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합중국이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소련군의 참전은 자신들이 다 해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꽃는 행위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주로 영미권의 원서이자 익히 국내에 출간된 여러 제2차 세계대전 통사에서 만주작전은 흡사 전쟁 말기의 짤막한 에피소드 정도로만 그려집니다.
21세기 이전에 출간된 통사들부터 그리하였다. 미국 타임-라이프(Time-Life) 사의 제2차 세계대전 총서인 『타임라이프 2차 세계대전사』에서 일본의 항복과 태평양전쟁의 종결을 다루는 편은 만주 작전을 단 세 쪽에서만 언급합니다.
독일의 보수주의 역사가 안드레아스 힐그루버(Andreas Hilgruber)의 저작인 『국제정치와 전쟁전략 :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관련해서 두 쪽에서만 언급합니다.
한국에서 21세기 이후에 출간된 저작에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의 유명한 군사사가 존 키건(John Keegan)은 1989년에 저술한 그의 방대한 제2차 세계대전사 통사인 『2차세계대전사』에서 만주작전을 단 한 쪽에서만 언급했습니다.
존 키건의 제자로 영국의 대중역사가인 앤터니 비버(Antony Beavor) 또한 그의 저서 『제2차 세계대전 : 모든 것을 빨아들인 블랙홀의 역사』에서 만주작전을 두 쪽에서만 다루었습니다.
폴그레이브 맥밀런(Palgrave Macmillan)사의 아틀라스 제2차 세계대전을 번역한 책에서도 만주작전은 1쪽에서만 다룹니다.
그나마 통사 서적 중에서는 영국의 오스프리(Osprey) 출판사에서 나온 판본을 원본으로 하는 책인 『제2차 세계대전 : 탐욕의 끝, 사상 최악의 전쟁』이 비교적 분량을 할애하는 편이지만 방대한 분량에 비하면 역시 6쪽에 불과합니다.
다른 통사 서적보다 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제러드 와인버그(Gerhardt Weinberg)의 저작에서도 만주작전은 1쪽에서만 간략히 언급합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펴낸 『세계전쟁사』에서는 만주작전을 아예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통사류를 제외하면 만주작전을 비교적 자세하게 접할 수 있는 저작은 소련 군사사, 특히 소련군의 작전술 개념과 소련군 작전수행에 대한 권위자인 데이비드 글랜츠(David M. Glantz)가 조너선 하우스(Jonathan House)와 공저한 『독소전쟁사』였습다.
소련과 독일의 격돌을 소련의 군사작전 측면에서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만주작전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다루고 있다. 러시아 총참모대학의 교재였던 『러시아 연방군의 전략과 작전술』 과 영국의 소련군 연구자였던 피터 비거(Peter H. Vigor)의 『소련 전격전 이론』은 만주작전을 한국어로 소개된 문건 중 만주작전을 더욱 자세히 다루는 문건이었습니다. 그러다 두 저서 모두 국방대학교 안보총서로 출간된 비매품이라 일반 대중에게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소련의 만주작전에 대해서 대중은 피상적인 수준에서만 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중서적과 달리 만주작전은 전문 학자들 사이에서는 비교적 여러 번 다루어진 주제입니다.
한반도의 분단과 동북아 냉전체제의 기원과 맞물리는 중요한 연구 소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내의 연구들은 대체로 군사사적 관점에서 작전 자체를 다루기보다는, 소련의 대일전 참전이라는 국제정치적 맥락, 한반도 분단 및 북한 정권의 탄생이라는 국내정치적 맥락에서 작전을 조명한 관계로 작전의 군사적 측면에 대한 고찰은 부족한 편이었습니다.
즉, 만주작전은 기존 선행연구에서 국내정치사와 국제정치사의 “배경”에 불과했습니다. 선행연구 중 김기조의『한반도 38선 분할의 역사』 가 이 중 만주작전을 가장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 사학계가 전쟁사를 다루면서도 전쟁의 부차적 측면이라 할 수 있는 전시의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는 다루지만, 전쟁사의 핵심인 군사사를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외면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외에 만주작전을 한반도와 만주, 연해주를 둘러싼 소련과 일본의 군사적 갈등 관계의 맥락에서 조명한 연구로는 심헌용의 『소련의 대한반도 군사정책』이 있습니다.
불균형을 해결하려고 노력한 연구는 상명대학교 류한수 교수의 연구입니다. 류한수 교수는 소련군의 만주작전을 1991년의 걸프전쟁에서 다국적군이 수행한 “사막의 폭풍”작전과 비교하는 논문 「1945년 “8월의 폭풍”과 1991년 “사막의 폭풍”: 붉은 군대의 만주 전역과 미군의 이라크 전역의 유사성 분석」을 통하여 만주작전과 사막의 폭풍 작전의 유사성을 밝혀내었습니다.
그러나 언급한 연구들은 모두 전문적 학술연구로, 대중이 접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런 관계로 소련군의 만주작전에 대한 한국 대중의 인식은 전반적으로 백지 상태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 독자가 만주작전에 대해 “스토리라인”을 통해 접할 수 있던 저작은 일본의 대하소설 『불모지대』(不毛地帶)로 추정됩니다.
『하얀거탑』(白い巨塔)의 저자로 유명한 야마사키 도요코(山崎豊子)의 이 소설은, 일본군의 참모장교 출신으로 소련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이후 기업가로 성공하는 주인공을 다룬 대하소설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소설의 초반부는 주인공이 소련군에 포로로 잡혀서 시베리아 유형 생활을 하며 고난을 겪는 부분이기 때문에 반공주의 정서에 익숙한 한국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의 모델은 다름 아닌 관동군 정보참모를 역임했고 전후 일본의 성공한 기업가이자 극우 인사로 일본과 한국 양쪽의 정계와 재계의 막후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세지마 류조(瀬島龍三)였습니다.
저자는 세지마의 행적을 미화하기 위해 여러 기법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관동군의 항복에서 비통한 감정이 끓어오르도록 묘사하고, 일본군 장교 출신인 주인공이 뛰어난 군인정신과 도덕심을 가지고 공산화된 포로의 핍박에도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않는 올곧음과 기개를 가진 인물로 묘사하여 천황 숭배와 우익 내셔널리즘을 미화하는 경향을 보이는 작품이 『불모지대』입니다. 이 소설에서 형성된 만주작전에 대한 심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백지상태의 지적 공백을 틈타서 두 개의 음모론이 등장했습니다. 하나는 한국항공대 강사 이희진의 주장이었습니다.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이 미국의 계획에 따라 벌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는 이희진은, 자신의 1992년도 석사학위논문과 그 속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6.25 미스테리』에서 소련의 만주작전은 한반도를 분단하려는 미국의 음모에 따른 일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이희진 교수는 소련군이 작전에 투입했다는 150만 병력은 시베리아 철도로 그 정도의 병력을 3개월 안에 수송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과장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희진 교수는 소련이 미국에 계속 물자지원을 요청하였고, 일본인 거류민의 증언을 바탕으로 실상 소련군은 추레한 복장에 약탈에 바빠서 군기도 빠질 대로 빠진 엉망진창의 군대였으며 작전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급하게 참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자는 이 때문에 소련군의 대일전 참전이 애당초 필요가 없었지만, 미국의 대소불신과 국내정치적 역학관계가 작용해 한반도 공동 관리에서 분단으로 정책이 전환된 미국의 의도에 따라 참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다른 음모론은 만주작전이 일본의 의도적인 한반도 분할 음모에 의한 결과였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원래는 일본 학자 고시로 유키코(小代有希子)가 2005년에 기고한 논문에서 주장한 가설로 음모론이라기보다는 38선 분할의 과정을 설명하려는 가설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국내에 소개되며 흡사 한반도 분할이 일본의 거대한 음모로 진행되었다는 식의 음모론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이 주장에 의하면 일본 대본영은 한반도 분할과 동북아에서 미국과 소련의 충돌을 유도하기 위해 소련군의 만주침공 계획을 알고 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방치하여 소련의 남하를 유도했다는 것이고, 관동군이 소련군에게 무력하게 무너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가설은 유명한 한국현대사 연구자 브루스 커밍스(Bruce Cummings)가 무비판적으로 저서에 인용하며 한국에 알려졌습니다. 이후 2005년에 <시사저널>기사를 통해 음모론으로 변질되어 국내에 소개되었고, 2019년 현재에는 인터넷 매체 <딴지일보>의 창설자로 유명한 언론인 김어준이 교통방송(TBS)에서 진행하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재발굴되어 소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두 개의 중요한 저작이 작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첫째는 , 미국의 군사사가 데이비드 글랜츠의 『8월의 폭풍: 1945년 8월 9-16일, 소련의 만주전역 전략공세』입니다. 바로 필자가 번역한 이 저작은 만주작전을 철저히 군사적으로 분석하며, 어째서 소련군이 단기간에 승리를 거두었는지, 소련군이 어떠한 전략, 작전술, 전술을 구사해 일본군을 섬멸했는지 상세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필자 본인이 번역해서 이렇게 쓰기도 하지만(히히히;;), 소련군이 어떤 군대인지에 대한 인식이 극히 저조한 우리나라에서, 이 저작은 기존의 편견을 깰 수 있는 중요한 저작입니다.
둘째는, 일본계 미국인 학자인 하세가와 쓰요시 교수의 저작 『종전의 설계자들: 1945년 스탈린과 트루먼, 그리고 일본의 항복』입니다.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둘러싼 국제정치적 상황을 상세히 다루고 분석한 저작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소련이 대일전에 참전했는지, 소련의 대일전 참전 문제를 두고 소련, 미국, 일본의 삼국이 어떠한 작용을 했는지에 대해 상세히 분석합니다.
본인은 『8월의 폭풍』의 역자로서 작전 자체뿐만 아니라, 러일전쟁 종결부터 만주작전에 이르는 40년 동안 소련과 일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다루며 만주작전의 배경과 전개를 이해하는 연재를 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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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제2차세계대전사에 관심있다고 생각하고 그중 태평양전쟁에 관심이 많았는데
말씀하신대로 러시아의 참전은 "러일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침공한 러시아의 공세에 일본은 두발의 원폭을 맞을 것보다 놀랐고 그로 인해 무조건적인 항복을 했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네요.
좋은책 번역 감사하고 읽어보겠습니다.
이런 글을 읽으면 드는게 참 저는 우물 안 개구리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제서야 영어로 된 저작을 읽으면서 '세계가 이렇게 넓다니!' 하면서 접하는 정보의 양과 질에 감동을 하며 세상을 다 이해하는 기분이 들지만 냉정히 보면 그냥 이것도 영미권의 시각으로 본 세상일 뿐이지요.
비영어권 국가에선 같은 사건에 놀라울 정도로 영미권(과 그걸 그대로 받아 쓰는 한국)과 시각을 크게 달리 하더라고요.
영어 하나도 힘든데 타 언어까지 배워서 세상을 바라보기는 정녕 불가능한가 싶고 이게 스스로의 한계 같아서 좀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