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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6/24 17:58:49
Name PKKA
Subject [일반] "8월의 폭풍"으로: 소련과 일본의 40년 충돌사-4 (수정됨)
* 본인은 『8월의 폭풍』의 역자이자 연재소설 『경성활극록』의 저자임을 독자분들에게 먼저 알리는 바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5357299
https://novel.munpia.com/163398


4. 시베리아 내전의 종결과 일본군의 철수

1918년 12월에 콜차크 군대는 우랄 산맥을 넘어서 유럽러시아로 진입하여 소비에트 정권을 무너뜨리려 들었습니다.

그러나 콜차크의 서진은 막히고 말았습니다. 붉은 군대 동부전선군의 제4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과감하고 열정적인 지휘관 미하일 프룬제는 콜차크 군대의 남익을 공격, 유럽러시아로 향하는 중요 거점들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프룬제는 이 공으로 동부전선군의 남부집단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제정 체제에 불만이 많아 붉은 군대에 가담한 제정군 대령 출신인 전선군 사령관 세르게이 카메네프의 지원 아래, 프룬제는 1919년 4월부터 6월까지 내내 콜차크에게 공세를 퍼부었습니다.

프룬제의 남부집단은 콜차크 군대의 제3군단과 제6군단 사이의 전투지경선을 파고들어서 콜차크가 점령한 거점인 우파를 수복하고 콜차크군을 산산조각 내버렸습니다.

유럽러시아 진출이 좌절되고 막대한 손실을 입은 콜차크 군대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붉은 군대의 계속된 공세에 콜차크는 계속해서 밀려났으며, 종국에는 1919년 11월에 시베리아정부의 수도 옴스크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옴스크에서 탈출한 콜차크는 로마노프 왕조가 은닉한 금괴를 찾아서 군자금으로 사용해 재기할 계획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가이다의 체코군단은 콜차크를 더 도와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체코군단은 원래 내전에 휘말리지 않고 안전하게 체코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콜차크가 이들에게 소비에트를 전복하면 고향으로 돌려보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시베리아정부를 도와주었을 뿐이었습니다.

체코군단은 콜차크에게 이용만 당했다고 생각하여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체코군단은 소비에트와 협상을 하며 무장해제 요구를 수용하되 안전하게 체코로 귀환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콜차크를 넘겨주었습니다.

소비에트 또한 체코군단의 안전한 귀환이 간섭국의 개입 명분이었기에, 체코군단을 돌려보내주면 명분이 사라진다고 여기며 협상에 긍정적으로 나왔습습니다.

1920년 2월에 소비에트는 콜차크를 처형하고 체코군단과 맺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리하에 체코군단은 기나긴 싸움 끝에 마침내 조국 체코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전 개입의 명분인 체코군단이 사라지자 간섭군은 파병을 계속 유지할 명분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결국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소비에트 정권 전복이라는 너무 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철군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하라 총리 또한 콜차크의 몰락으로 소비에트 정권 전복이 비현실적인 목표가 되었고 출병의 명분도 사라졌음을 잘 알았기에 병력을 단계적으로 철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육군은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시베리아에 출병하여 여러 장병들이 희생되었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철수할 수는 없다고 불만을 터트렸습니다.

하라 내각은 군부의 반발을 무릎쓰고 1920년 2월에 아무르주에서 병력을 철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편 최대의 위협인 콜차크가 사라지자, 소비에트 정부는 극동 지역의 권력을 재편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유럽러시아에서는 여전히 데니킨, 브랑겔, 크라스노프를 비롯한 백군 세력이 위협을 가하고 있어서, 소비에트가 극동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습니다.

또한 극동에서 일본과 직접 충돌하는 것도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간섭군의 내전 개입은 공식적인 선전포고도 없이 진행된 것이라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애매한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일본과 전면전을 벌이기 보다는 게속 애매한 상태로 두는 게 더 이득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소비에트 정부는 극동소비에트 의장이었던 크라스노쇼코프의 주장을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크라스노쇼코프는 극동 지역에 소비에트 정부와 별개의 정부를 만들고, 그 정부가 극동에서 내전을 수행하여 일본과의 전쟁과 외교를 담당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소비에트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완충국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920년 2월, 러시아 극동지방에 극동공화국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습니다.

크라스노쇼코프를 대통령으로 하는 극동공화국은 시베리아정부에서도 빨갱이로 몰려 탄압받은 맨세비키와 사회혁명당까지 포괄하여 자유선거로 의원을 선출하고 사유재산의 소유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태를 띈 정부였습니다. 완충국으로만 보기에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체제였습니다.

그런데 예상 못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1920년 3월 연해주의 소도시 니콜라옙스크(니항)에서 붉은 군대의 야코프 트라파친이 지휘하는 파르티잔 병력이 일본 거류민들을 학살한 것이었습니다.

이 학살에는 트라파친 부대의 휘하에 있던 한인 공산주의자 박일리야와 그의 사할린의용대가 가담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무슨 독립군이 주도해 학살을 벌인 양 악선전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은 니콜라옙스크 학살로 인해 소비에트에 대한 보복여론이 강해졌고 철군에서 출병 유지로 방향이 틀어졌습니다.

극동공화국은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책임을 인정하고 학살을 주도한 트라파치늘 처형해 일본을 달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은 1920년 7월에 니항 사건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포츠머스 조약에 따라 러시아의 영토로 인정한 북사할린을 침공해 점령했습니다. 일본은 트라파친의 처형으로 만족하지 않고 만족할 만할 배상이 나올 때까지 시베리아에서 철군하지 않고 계속 북사할린을 점령하겠다며 극동공화국에 엄포를 놓았습니다.

이리하여 극동공화국과 일본은 2년 가까이 계속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대세는 일본의 철군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3개 사단 규모의 병력을 시베리아에 유지한다 하더라도, 출병의 목적인 시베리아의 식민지화 또는 반식민지화는 너무 먼 목푱뎠습니다.

시베리아는 3개 사단의 병력과 백군 세력 만으로는 통제하기에 너무 거대했습니다. 일본군은 파르티잔과 산발적인 교전을 벌이며 조금씩 소모되고 있었고, 시베리아의 겨울은 이런 추위에 익숙치 않은 일본 병사들을 무자비하게 괴롭혔습니다.

게다가 일본이 지원하는 백군 세력도 몰락하고 있었습니다. 호르바트, 칼미코프, 세묘노프 모두 맹주인 시베리아정부가 사라지자 지리멸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계속해서 거점을 상실하던 백군 세력은 급기야 일본군의 지원 루트인
블라디보스토크마저 상실했습니다.

결국 거점을 모두 잃고 망하게 된 호르바트와 세묘노프는 도주하였습니다. 칼미코프는 중국 봉천군벌 군대와 충돌이 일어나 죽었습니다.

시베리아 주둔을 계속 유지해도 일본이 얻을 수 있는 건 나날히 늘어나는 피해 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국내 여론도 철군 요구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훗날에 '다이쇼 데모크라시'라 불리는 자유민권운동의 열풍과 유럽에서 유입된 반전 평화주의 사조의 유행으로 철군을 요구하는 시위가 빗발쳤습니다.

미국 또한 계속해서 일본에 철수하라고 압력을 넣는 터였습니다.

결국 1922년 6월에 시베리아 출병의 실패를 인정한 하라 총리에 이어 총리대신에 오른, 해군대신 출신의 가토 도모사부로 총리대신이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드디어 일본은 4년에 이르는 누적된 피해와 대규모 지출에도 시베리아의 식민지화 또는 반식민지화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시베리아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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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20/06/24 18:26
수정 아이콘
여러가지 몰랐던 부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20/06/24 18:54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미키맨틀
20/06/24 19:0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뱀발: 독소전쟁사 개정판이 2018년도에 새로 나왔는데 번역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전 독소전쟁사 초판을 번역하신 분들이 워낙 뛰어나신 분들이라 부담이 될 수 있겠지만
개정판이 독일측 자료도 많이 참조했다고 하니 독소전쟁사의 입문서로 딱 일 것 같은데
번역판 소식이 없어서 많이 아쉬워서 말씀드립니다.
20/06/24 19:19
수정 아이콘
그때 역자분들이 이미 하셨는데, 출판사가 돈이 안된다고 퇴짜를 놓았다는군요 ㅠㅠ
펠릭스30세(무직)
20/06/24 19:20
수정 아이콘
잘읽었습니다
20/06/24 19:24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카스가 미라이
20/06/24 19:38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알면 알수록 전간기 20년 동안 대단히 흥미로운 사건들이 많네요.
20/06/24 19:45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흥미로운 일 잔뜩이에요.
-안군-
20/06/24 20:51
수정 아이콘
이쪽 역사는 거의 문외한에 가까웠는데, 일본이 극동지역에서 입은 손실도 만만치 않았고, 초창기 소련의 기세도 장난 아니었군요.
많은 것들을 배워갑니다.
20/06/24 21:04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20/06/25 03:09
수정 아이콘
흐흐 이번에는 적백내전을 끝내셔야하다보니, 우랄산맥을 넘어가서 저에게 익숙한 이름들을 많이 보여주시는군요. 데네킨... 브랑겔... 크라스노프... 제가 적백내전에 관심이 좀 있습니다만, 이걸 볼때마다 정말 '정부를 탈취'하는게 얼마나 정치세력과 군사세력에게 중요한지, 뼈저리게 알려주는 역사의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다시보고 또 볼 때마다 코닐로프가 정말 엄청난 트롤입니다. 크크. 반공 쿠데타를 시작했으면 케렌스키하고 합의를 봐서 (아무리 인기가 없어도) 그를 바지사장으로 계속 두던가, 케렌스키 대신 오래 살아서 이름을 팔면서 백군의 우두머리가 되던가 그랬어야 했는데, 포격으로 적백내전이 시작하자마자 사망이라니...

한편, 정부군-반란군으로 바뀌어가고 있던 적백내전의 흐름 속에서도 일본은 계속해서 열심히 이런저런 방식으로 이득을 보고 있었군요. 이번 화에서 일본군이 시베리아에서 철수 했으니, 이제 곧 관동군이 등장하겠군요? 매일 기대하고 있습니다!
20/06/25 09:20
수정 아이콘
사실 이득 본 것도 없고 손해만 봤습니다. 목표달성은 못하고 인명피해와 전비지출만 남았죠.
아무튼 계속 기대하신다니 감사합니다!
20/06/25 15:45
수정 아이콘
흐흐흐 맞습니다 손해만 봤지요... 본문에서 적어주신 내용인데도 마치 안 읽은 것 처럼 댓글을 달아서 죄송합니다. 다만 저는 그래도 나중에 '할힌골'에서 '노몬한' 당하는 일본 입장에서는 명분없고 전비만 축낸 전쟁(?) 입장이더라도 자바이칼(=트란스바이칼)까지 가서 치타에서 백군을 살리네 마네~ 했던 것은 그래도 또 하나의 성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야 그 시절에 벌써 극동을 다 집어삼킬 투사능력이 되었구나 놀람 반, 아이고 이 앞뒤가림 못하는 것들아, 라는 당혹감 반입니다 크크)

어차피 러일전쟁에서 배상금을 청일전쟁때처럼 달달하게 받지 못한 시점에서 (그러게 왜 전쟁을 이상하게 배워서...) 일본제국의 파쇼 폭주기관차 엔진은 작동이 시작되었고, 비록 이번에는 다이쇼데모크라시로 철군을 강요받았지만, 나중에는 경제적인 사고 자체를 멈춰버리고, 물주인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하는 극단까지 가게되니... 음음.. 한국의 중등교육에서는 일본이 30년대는 되어야지 갑자기 폭주하기 시작한것 같지만 PKKA님의 글을 보니 역시 역사는 매우 차근차근 밀도가 있는 과정이군요... 잘 배울 수 있는 글이라니 너무나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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