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들이 있던 부대에 위문 편지나 지원을 해줬던 아스톤빌라팀을 기리는 이름으로 아스톤 빌라라는 이름으로 수용소내 축구팀을 만들고 축구를 했습니다
이렇게 전쟁 한복판에서도 쉬는 기간이 되면 축구를 하곤 했는데
입대한 군인들중 선수출신들은 전쟁 중간에 정식 축구경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위 사진은 아스날 역대 득점 5위인 테드 드레이크라는 선수입니다.
그는 공군 중위로 군대를 복무했는데 1944년 프랑스 해방이후 현지 프랑스 주민들에게 대민지원을 명분으로 축구경기가 있었을 때 팀원으로 같이 활약했습니다.
이 군인팀은 프랑스팀과 경기해서 5:0으로 이기고 벨기에 브뤼셀로 넘어가서 벨기에팀과 경기를 했고 이경기에서는 3:0으로 이겼습니다.
이렇게 여러 일들이 있었던 wartime league는 연합군이 베를린 점령을 한 이후에도
전후 복구과정을 위해서 한시즌 더 진행되었습니다
다만 리그 war cup는 사라지고 fa컵은 부활했고
1946년 fa컵 결승은 더비 카운티대 찰튼 애슬레틱이었습니다.
이렇게 2차세계대전기간은 잉글랜드 축구는 비상시 체제로 운영되었습니다. 이렇게 전쟁시 평소와는 다른 체제로 리그가 진행되었기에 이시기 기록에 대해서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러다보니 기록관련해서 논란이 생기곤 했고 가장 크게 문제시 되었던 부분이 뉴캐슬 최다득점자 문제였습니다.
2005년 앨런 시어러가 206골로 클럽 역사상 최다 득점자로 은퇴했는데,
문제는 재키밀번이라는 선수였습니다. 이 선수가 전쟁떄 38골을 득점해서 이 득점을 포함하면 시어러는 2위로 밀려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올드 뉴캐슬팬들은 왈가왈부하면서 전쟁기간이라고 이를 넘어가는게 말이 많냐라고 다퉜지만 재키 밀번의 유족들이 시어러의 손을 들어주면서 결국 시어러가 공식적으로 뉴캐슬 최다득점자로 인정되었죠.
이처럼 전쟁때도 축구를 끊기지도 않았던 잉글랜드애들… 축구에 대한 열정이 어마어마했다고 밖에 말 못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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