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이 사진을 보여드린 적이 있지요. 생명이 다한 [불꽃심장부족] 워커의 모습입니다. 개미들은 둥지, 사육장 안에서 죽은 동료의 시체를 밖으로 꺼냅니다. 사육장 내에서 부패하면 위협이 되지요. 하지만 사람 입장에서 보면 꼭 운구행렬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래서 이렇게 동료의 시체를 내다 놓는 일을 [라스트 라이드]라고 부릅니다.
일몰망치군단의 워커 하나도 쓰러졌네요. 최근 규모가 큰 두 부족에서 죽음을 맞이한 워커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여름을 맞아 조금 걱정이 되는 부분입니다. 여름에 창궐하는 해충과 곰팡이는 개미 최대의 적입니다. 특히 노란곰팡이는 군체를 전멸시키는 죽음의 역병이지요. 그저 군체가 오래되어 규모가 있다보니 수명사하는 워커가 많을 뿐일 수도 있지만, 더 주의해야겠습니다.
죽은 동료의 시체를 온전히 내놓는 일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 머리나 배만 들고 무덤자리를 찾습니다. 가슴부분은 아직 본 일이 없네요. 늘 머리 아니면 배를 들고 어디가 양지바른가 찾습니다. 어제 이 라스트 라이드를 담당한 것은 다름아닌 나이젤이었습니다. 하나뿐인 더듬이를 열심히 흔들며 운구를 합니다. 좋은 터를 찾자 돌 밑에 동료의 유해를 내려놓고 다시 바쁜 걸음을 옮깁니다. 요 근래에 나이젤은 가장 바쁜 개미인 듯 보였습니다. 새벽녘에는 늘 먹탐장을 돌아다니고, 먹이도 잘 챙겨먹고 여기저기 탐색도 부지런히 했지요.
오늘 불꽃심장부족에서만 무려 세 마리의 개미가 라스트 라이드를 나왔습니다. 최소 두 마리의 워커가 [개림 바톨] 안에서 죽은 것이죠. 걱정이 늘어갑니다. 개미들이 이렇게 밖으로 내놓은 유해는 제가 발견하면 바로 꺼내줍니다. 먹탐장에 그대로 두는 것도 위생상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오늘의 유해들도 바로 꺼냈습니다. 그런데...
(다음 사진은 마음 약하신 분들은 보지 않으시길 권장합니다...)
꺼낸 유해가 낯이 익습니다. 하나뿐인 더듬이... 더듬이가 하나인 다른 개미가 있었거나, 아니면 죽은 워커의 더듬이가 떨어진 것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오늘 이른 아침 내내 보이지 않았던 나이젤의 모습이 마음에 걸립니다. 지난 며칠을 거르지 않고 아침 탐색에 나섰던 부지런한 나이젤 말이지요. 어제는 동료의 유해를 날랐던 나이젤이, 오늘은 이렇게 동료의 품에 안겨 집을 나섰나봅니다.
여왕을 말고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름을 붙여주었던 녀석입니다. 어딘가 어수룩해 보여도 나름대로 열심히 다니던 녀석이 측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녀석이 하나뿐인 더듬이로 뭘 찾고 경쾌하게 움직일 때면 유쾌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기에 가장 정이 많이 간 녀석이죠. 지금 덩그러니 놓인 녀석의 유해를 보니 마음이 너무 안좋습니다. 그저 개미였지만... 저런 개미가 아직도 천 마리가 넘게 더 있지만, 나이젤의 죽음은 생각보다 훨씬 크게 다가오네요. 남들보다 힘든 상황에도 남들만큼 부지런하게, 생의 마지막날까지도 부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떠난 나이젤이 꼭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생전에 부지런했던 만큼, 그 이상의 명복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잘가, 나이젤. 고마웠어.
이별이 있으면 만남도 있지요. 새로운 콜로니가 집에 찾아왔습니다.
플루온 제국에 찾아온 일곱번째 이민선, [미크로스 7]입니다. 탑승원들이 살짝 보이네요.
좀 더 가까이서 볼까요? 두 마리의 여왕과 열마리를 조금 넘는 워커가 보이는군요. 애벌레와 알도 있습니다. 오자마자 한 그릇 뚝딱하신 밀웜의 흔적도 있군요.
이 개미들은 이렇게 생긴 아이들입니다. 정말 예쁘지 않나요? 이 콜로니의 정체는 다음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얘들 소개 에피소드를 적으려 했는데, 뜻하지 않게 나이젤의 죽음을 맞아서 의기소침해 있습니다. 제 글을 읽으신 분들 중에도 나이젤을 아시는 분들이 계시지요. 함께 나이젤의 명복을 빌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픈 손가락의 죽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오늘도 넓은 방에서 부족을 돌보시는 여왕님의 자태로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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