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와 유럽의 지정학적 파장을 설명한 저작 [붕괴, Crashed]로 유명한 애덤 투즈의 전작
[대격변, the Deluge]가 드디어 번역되었습니다.
(참고로 붕괴보다 먼저 출간된 책입니다. 2014년 작)
역자는 믿고 보는 조행복님. 개인적으로 최고로 꼽는 유럽전후사 서적, 토니 주트의 [포스트워]의 역자이기도 합니다.
애덤 투즈의 책이 계속 이렇게 한국에서 소개되고 있다는 게 무척 반갑습니다.
참고로 저자는 영국인이지만,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도 대단한 셀럽입니다. 그가 한국에도 와서 강연 했으면 좋겠습니다.
[대격변]은 저도 아직 읽고 있는 책이지만, 내용이 무척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어,
역사와 국제정치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아주 몰입해서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유럽을 황폐화시키고, 미국이 어떻게 세계무대에 데뷔했는지 아주 명쾌하고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전쟁 수행에 있어 미국의 월스트리트의 자금이 얼마나 결정적이었는지, 한편 미국의 이해관계가 유럽의 그것과는 얼마나 달랐는지,
다른 한편 빌헬름2세와 독일 팽창주의자들은 앵글로색슨 기득권을 얼마나 부러워하고 두려워했는지 (영국의 해외제국, 미국의 대륙형 스케일)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은 미국에 45억 달러, 프랑스는 35억 달러, 이탈리아는 18억 달러를 빚졌고,
심지어 신생국가 소련조차 미국의 식량원조로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압도적인 힘을 가졌으나, 질서를 수립하는 데 참여하기를 거부했고,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던 유럽국가들은 힘이 없었습니다.
전쟁이라는 엄청난 상황을 겪은 후임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여전히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었고
프랑스의 아리스티드 브리앙과 독일의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이 어렵게 프-독 화해를 향해 걸어갔으나,
대공황이라는 경제충격으로 인해 정치질서가 와해되고, 또 미국의 국내정치는 세계적 차원의 국제질서를 더욱 어렵게 했습니다.
세계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끼치면서도, 세계에는 무관심한 미국의 모습...
미국의 국내정치, 즉 자기들끼리의 정쟁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차지한 힘 때문에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한편 당시의 미국은 오늘날 아메리카 퍼스트의 미국과 겹쳐보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 포인트는, 1차세계대전이 의외로 동아시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일본은 세계대전을 기회로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고, 또 중국 동북부에서 별 다른 간섭 없이 활개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신생 중화민국은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당당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거듭나고자 했는데, 일본이 이를 집요하게 방해합니다.
중국에 체류하던 주중미국외교관들은 신생 공화국 중국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자 했지만,
워싱턴은 일본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소극적이었습니다. 이때 미국이 국민당에게 대대적인 지원을 했다면,
역사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겠죠.
제1차세계대전은 유럽내전이라고도 불리지만, 세계대전이라는 명칭이 사실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동아시아에서 동남아시아, 중동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 모두 이 전쟁의 흐름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고,
정부자격으로 또는 민간자격으로 또는 완전히 개인자격으로 직접 연루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이 전쟁의 결과에 큰 영향을 받았죠.
지역질서 차원이 아니라, 글로벌한 차원에서 정치와 사회가 재편된 첫번째 역사적 대사건,
노아의 홍수(Deluge)와도 같았던 역사의 드라마를 그린 책으로, 다른 분들도 아주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