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MSG를 친 글이므로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제갈량의 5차북벌은 서로 대치만 했다는 이미지가 강합니다만, 실제로는 사마의 입장에서 꽤나 난감한 전장이었습니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무공을 넘어 동쪽으로 가는게 아니라 오장원으로 가면 우리는 무사할 것이라고 하고 과연 제갈량은 오장원으로 가서 사마의와 대치합니다.
제갈량은 사마의가 동쪽으로 갈 것이라는 생각을 무시하는 것처럼 북원으로 가서 아예 농서와의 연결을 차단하려고 한 것이 본래 목적이었고 북원에 참호와 보루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마의는 이에 대해 마땅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를 지적한 곽회를 파견해 간신히 막아냈으며 곧이어 제갈량의 목적이 서쪽차단이라고 생각해 서쪽으로 군사를 움직이는 제갈량의 모습을 보고 모든 장수들이 그쪽으로 가나보다 그렇게 생각할때 홀로 제갈량의 양수 공격을 예측한 곽회의 예측으로 이를 막아내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제갈량이 보즐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제 오장원은 무공 서쪽 10리에 있는 곳이었고 제갈량은 맹염으로 하여금 무공수 동쪽으로 건너가 진지를 짓게 합니다. 무공으로 전진하겠다는 소리였죠. 사마의는 황급히 기병 1만으로 이를 저지하려다 제갈량에게 화살만 듬뿍 맞고 퇴각합니다. 오서 오주전에 따르면 5월달에 이미 제갈량은 무공에서 나왔다고 하니 제갈량은 5월 전에 이미 무공을 건너 도착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갈량은 사마의 자신이 염려했던대로 장익을 전군도독 및 부풍태수로 임명, 무공을 나와 위남을 점거한채 활개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사마의는 이렇게 제갈량의 공격에 방어만 할 뿐 무공수 공격을 제외하고 오직 수비로만 일관합니다. 이는 사마의와 제갈량이 대치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위명제 조예가 얼마후 사신을 보내 제갈량이 지쳐 나가 떨어질때까지 절대로 공격하지 말고 버티라는 명을 받았기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덕분에 사마의는 제갈량이 여자옷과 장신구를 보내 도발할 때도 부들부들 거리면서 참아야 했고 계속되는 제갈량의 도발 시도에 중앙에 표를 보내 신비를 요청, '나는 공격하고 싶은데 신비가 가진 황제의 부절 때문에 공격할 수 없다'라는 제스쳐로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려 하거나 진지 구석탱이에서 2000명의 병사들에게 오나라가 항복했다는 소리를 지르게 하는 등 눈물겨운 쇼를 이어갑니다. 물론 제갈량의 반응은 "내일 모레 환갑인 영감이 쇼하네","백약(강유)아, 쟤들이 우리를 이길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저렇게 천리까지 신비 부절 들려보내 쇼를 하는 거란다"라는 비웃음에 가까운 반응이었습니다. 사마의와 제갈량 모두 알고 있었던 겁니다. 사마의는 정면승부를 하면 촉군을 이길수 없다는 걸 알았고 제갈량은 사마의가 나오기만 한다면 위군에게 지지는 않는다는걸 알았던 것이죠. 한진춘추와 진양추에서 보여지듯이, 제갈량은 사마의에게 싸움을 유도했습니다. 둔전을 시행하여 오래 주둔할 기초를 만들고, 계속 싸움을 걸었다. 이건 그만큼 제갈량이 사마의와의 결전을 원했다는 것입니다.
대치한지 100여일, 사마의는 위에서 말한 눈물겨운 똥X쇼를 계속 했고 제갈량은 계속 집요하게 싸움을 걸면서 사마의를 괴롭힙니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도발할때마다 화를 내면서 공격을 가려하고 신비가 그걸 계속 저지해서 마지 못해 굴복하는 쇼를 하고 있었는데 일단 신비가 군사들의 존경을 받고 명령을 어기는 자가 없기는 했지만 이런 미봉책도 하루 이틀이지 총사령관이 이런식으로 황제조차도 계속되는 적의 공격시도와 도발을 회피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 군대에 인식되게 되면 군의 사기는 떨어질것이 자명했습니다. 마치 4차 북벌 당시 장합을 비롯해 사마의 휘하 장수들이 제갈량을 공격하지 않으려는 사마의를 참다못해 일제히 들고 일어나 제갈량을 치자고 했던 그 때처럼 말이죠. 게다가 제갈량은 후일 촉의 진지에서 대량의 양곡이 나왔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군량도 충분했습니다.
이 사이 촉군과 위군 사이에는 사자들이 분주히 오갔는데 사마의는 어느날 제갈량이 어떻게 행동할지 알아보려는 듯 군사에 대한 일은 묻지 않고 제갈량의 신상정보만 촉의 사자에게 묻습니다. '제갈공은 식사는 어떻게 하고 생활은 어떻게 하시오?' 촉의 사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갈공께서는 일찍 일어나 늦게 주무시고 태형 20대 정도는 직접 챙기시고 식사도 매우 적게하십니다.' 사마의 입장에서는 드디어 이길수 있는 길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10만의 군대를 이끌면서 그런 세세한 것까지 처리하고 밤늦게까지 점령지의 군정사무까지 모두 맡아서 처리한다? 이건 딱 봐도 과로사 각이었습니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죽겠구나라고 생각해서 제갈량이 죽으면 바로 공격하기로 하고 조금 더 참기로 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제갈량 군영 인근의 백성들이 마침내 고대하던 소식을 전해 옵니다. 생각했던 대로 제갈량이 죽었다는 소식이었죠. 사마의는 이건 볼 것도 없이 공격각이다를 외치며 곧바로 본인의 특기인 기동전을 이용해 촉군을 전력으로 추격합니다. 그런데...막상 추격하고 퇴각하는 촉군을 조우한 순간 사마의는 이상함을 느낍니다. 분명히 제갈량은 죽었다는데 총사령관을 잃었다던 촉군은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사마의를 조우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군기를 반대로 하고 북을 울리도록 하여 사마의군에게 향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이건 아무리봐도 퇴각이 아니라 자기를 기다리고 공격하려는 모양새였습니다.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에 순간적으로 사마의는 뭔가 이상함을 깨닫습니다. 보통 총사령관의 신상정보는 일급기밀로 분류해서 주변에 알리지 않는게 정상입니다. 여러분도 어렸을때 삼국지 읽으면서 이 대목에서 이런 생각을 하셨을 거예요. '저 촉의 사자란 놈은 제갈공은 푹 쉬고 밥도 잘 먹고 지내고 계십니다해도 모자를 판에 왜 대놓고 저런 소리를 하지?'라고 말이죠. 근데 이 촉의 사자란 놈은 마치 초조해진 사마의에게 '대놓고 들으라는 듯이' 이 정보를 고스란히 알려 줍니다. 사마의가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했다면 '제갈량이 곧 죽겠구나'라고 생각하는 대신 '이놈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중요한 기밀을 알리는거지?'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갈량의 도발에 짜증과 초조감을 느끼던 사마의는 이걸 제갈량의 건강에 적신호가 온다는 쪽으로 해석해버립니다.
그러고보니 백성들이 급히 사마의의 진지로 달려와 제갈량의 죽음을 알린것도 갑자기 뭔가 수상해졌을 겁니다. 제갈량이 위남에서 인심을 얻었다는데 농민들이 그렇게 쉽게 나에게 달려왔을까? 아니 처음부터 그놈들이 농민이긴 했을까, 실제론 농민이 아니라 제갈량의 세작은 아니었을까?
자기를 향해 진군하는 촉군을 보고 조금 더 생각이 진행되다보니 사마의는 이런 생각이 들었을겁니다. '이건 내가 퇴각하는 촉군을 쫒는게 아니라 어느새 내가 내 병력을 이끌고 내 진지에서 나와 공격을 시도하고 촉군은 나와 결전하려 하는 상황이다.' 즉, 다시 말해서 이건 사마의가 그토록 기피하던 촉군과의 정면승부가 벌어진다는 소리였고 제갈량이 그토록 바라던 바로 그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사마의의 머릿속에는 이 생각밖에는 안들었을 겁니다. '큰일났다, 이것은 공명의 함정이다!'
사마의는 이 순간 촉군을 추격하고 말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바로 군사를 물립니다. 사마의는 이게 공명의 함정이라 생각했고 이제라도 제갈량의 의도에 말려들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을겁니다. 사마의는 정신없이 본진으로 돌아와 한동안 진지에 머물면서 촉군을 핍박하지 못하고 그들이 무슨 시도를 또 하려는지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촉군이 무얼 한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마의는 곧 촉군이 정말로 퇴각한게 맞으며 제갈량이 죽은것도 진짜인 것을 알게 됩니다. 뒤늦게라도 촉군을 추격해봤지만 추격하면서 들려오는 소식은 이미 위연과 양의간의 분쟁까지 끝난 촉군은 무사히 퇴각했다는 사실 뿐이었습니다.
결국 사마의는 남아있는 촉군의 진지에서 대량의 양곡과 문서만을 전리품으로 챙긴채 장안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갈량의 진지를 살펴보며 '제갈량은 천하의 기재로다'라는 감탄의 말을 남기고서 말이죠. 백성들은 이를 두고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도망케 했다'라고 말을 지어내 퍼뜨렸고 사마의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내가 살아있는 사람은 헤아려도 죽은 사람을 헤아릴 순 없지 않은가?'라는 말을 남깁니다.
2, '식소사번', 보통 식사는 적게하고 일은 많이 한다는 말로 쓰이며 제갈량의 과로사를 뜻하는 상징적인 말로 쓰입니다. 그만큼 제갈량이 죽을 힘을 다해 북벌을 진행했다는 말로 쓰이는 이 말은 어쩌면 또 다른 진실을 담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실 5차 북벌에서 제갈량의 행보는 보통 매체에서 나오듯이 제갈량이 병마에 시달리면서 북벌을 진행했다는 인상과는 전혀 다릅니다.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무공으로 가고 곧바로 무공에서 나와 '사마의는 제갈량이 맘대로 설치고 다니게 내버리 두었다.'는 장엄의 묵기 말대로 이곳 저곳을 찔러 보고 사마의에게 무수한 공격시도를 겁니다. 이게 5월 이후, 그러니까 제갈량이 죽기 전 불과 2~3개월 간의 일 입니다. 이 기간 동안 제갈량은 군정 업무 처리도 하고 조정에 표도 올리고 보즐과 편지도 주고 받는등 바쁘게 지내는데 여기에 제갈량이 아프다 볼 여지가 있는지 살짝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갈량이 이 기간에 병마에 시달렸다면 몸도 아파 지휘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를 결전을 원하진 않았을테고 초반인 4월경에 북원전투, 무공수 전투 이후 5월부터 본진에 처박혀 나오지 않는 100여일간 도발도 하는 등 이렇게 활발한 행동을 벌이지는 못했을 겁니다. 5월부터 100여일이나 싸움을 걸었다면 거의 7~8월까지 제갈량은 자신이 군을 지휘해 사마의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당장 아파서 죽음을 걱정했다면 이렇게 나올 수 없겠죠.
어쨌거나 제갈량은 사마의에게 여자옷과 장신구를 보내 도발하게 하는 등 사마의를 분노케 해보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후일 2년씩이나 병자행세를 하면서 칼을 갈아 정시정변을 성공시킨 사마의였고 사마의는 황제의 권위를 이용해서라도 어떻게든 분노를 참으며 꾹 버팁니다. 마치 절대로 니 마음대로 하게 두진 않겠다는 식으로 말이죠. 따라서 제갈량은 그런 사마의를 유인할 맛있는 미끼를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게 좋을까요? 사마의가 촉군을 공격하러 나올정도로 촉군에게 리스크가 부여되는 먹이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먹이는 무엇일까, 제갈량은 사마의가 가장 꺼리는 상대, 호삼성의 평대로 '오직 제갈량이 살아있는 것을 두려워 한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인 제갈량 자신의 신상에 이상이 생겼다는 소식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을까요? 마침 제갈량이 워커홀릭, 일 중독자라는 얘기는 아마도 위나라 사람들도 다 알고 있던 사실이었을 겁니다. 사마의가 촉 사자에게 물은것도 따지고 보면 제갈량의 건강 상태를 먼저 물어서 대놓고 '제갈량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조바심을 드러내는 판국이었고 아무리 못해도 유선 다음의 적군의 두번째 대빵이니까 그 정도 소식은 났겠죠, 그러니까 그 사실을 이용해 좀 더 양념을 쳐서 사람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과로하고 있다고 소문을 퍼뜨리면? 그 동안 제갈량의 행적을 사마의가 알고 있었다면 그렇게 과로를 하는데 얼마 못 갈수도 있다라고 판단할 여지가 있고 실제로 사마의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후 제갈량이 아프다던가 죽었다던가 하는 소문이 퍼지고 촉군이 퇴각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살짝 보여주기만 하면 사마의는 이 맛있는 먹이를 먹으러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이게 설령 먹히지 않더라도 이전같이 계속 지구전 하면서 사마의에게 공격을 걸며 싸울 생각이 들때까지 괴롭히면 되니까 실제 리스크도 적죠. 그리고 실제 그 소문이 퍼지자 사마의는 촉군을 공격하려고 나선것도 사실이고요.
문제는 제갈량이 실제로, 갑자기 급사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제갈량전 주석 진양추에는 의미심장한 기록이 있는데요. 제갈량의 본진에 혜성이 나타났는데 갑자기 제갈량이 죽어버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실제 기록이 '有星赤而芒角,自東北西南流,投于亮營,三投再還,往大還小。俄而亮卒。'이에요. 그냥 혜성이 지나간 후에 갑자기 제갈량이 뜬금없이(俄) 죽어버렸던 겁니다. 이와 같은 의미심장한 기록은 위연전에도 나타나는데요, 가을에 제갈량은 병이 들어 위독해지고(秋,亮病困) 비의, 강유, 양의를 불러 비밀리에 퇴각할 절도를 짓고나서 때마침(適) 죽어버립니다. 즉 제갈량은 그 전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가을(제갈량전에 따르면 8월에 질병이 걸렸었다고 하죠.)에 병에 걸려 위독해지고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뜨고 만거죠. 급사라는 인식을 주기 충분합니다. 익부기구잡기와 그를 인용한 자치통감에는 성도에서 제갈량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유선이 이복을 보냈고 며칠간 국정에 대한 일을 논한후 돌아가다가 갑자기 제갈량의 후계자를 누구로 할 건지 생각이나서 며칠간 길을 되돌아와 물어봤다는, 제갈량이 오랜기간 아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만 (
https://cafe.naver.com/booheong/176975 부흥카페 가입 필요)를 보면 익부기구잡기가 틀렸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부흥 아이디가 없으시거나 긴글을 요약해 줬으면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말씀드립니다만, 요약하면 촉서 장완전, 양의전, 화양국지 유후주지에 보면 모두 생전에 제갈량이 유선에게 비밀리에 표를 올려 자신이 잘못되면 장완에게 대신하게 하라고 말했는데 이제와서 유선이 제갈량에게 또 후계자를 묻는다는건 말이 안된다는거죠.
어쨌거나 실제로 제갈량은 활발하게 공격하던 도중 갑자기 병에 걸려 급사했을 공산이 있습니다. 제갈량전 주석 위서에서는 형세가 어려워지자 제갈량이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데 실제 공세를 펼치던 쪽은 제갈량이니까 맞지 않는다고 쳐도 피를 토했다는게 사실이라면 갑자기 신체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은 식사와 적은 수면, 과도하게 받는 스트레스로 인한 심신쇠약으로 갑자기 쓰려졌을 가능성이 높고요, 이 경우에도 쓰려지기 전까진 멀쩡해보이다 급작스레 쓰러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전에 글을 썼을때 어느 분이 댓글로 지적해 주신건데 '간에 문제 있을때 관련 합병증으로 피토하며 급사하는 경우가 더 많다.'라고 써주셨더군요. 실제로 제갈량이 일을 많이 했던 것은 사실이니 그 동안의 피로가 간에 쌓았을 공산은 충분히 있고 이게 급사의 원인일 수 있었겠죠. 좀 평소에 쉬어가며 일을 했으면 좋았을텐데 아이러니하게도 결국엔 과로사가 현실이 되어 버린 형국이었습니다.
상황을 보면 제갈량은 거의 돌발적인 급사를 당했던 것으로 보이고 그래서 당장 주위에 있는 승상부의 인원인 양의, 비의, 강유만을 불러서 언제 숨이 넘어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퇴각계획만을 다급히 논의해 일러준 후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매체에서는 제갈량이 이전부터 아팠고 죽음을 촉군 전체가 알고 슬퍼하는걸로 나옵니다만, 실제 상황은 달랐습니다. 한진춘추에 따르면 제갈량이 죽었을 당시 양의는 퇴각할때까지 발상을 하지 않았고 퇴각 이후 야곡에 들어가서야 발상합니다. 위연전에 따르면 제갈량의 죽음 직후 양의는 제갈량의 죽음을 불문에 붙였고 이를 안 것은 당시 촉군 최고위급인 위연, 양의, 비의, 강유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제갈량의 죽음이 급작스러운 사태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어쨌거나 이렇게 보면 아마도 촉군의 질서정연한 퇴각, 강유의 매우 신속한 임기응변도 어찌보면 제갈량 생전에 이미 계획된 작전체계를 강유가 시행한 것일 수 있습니다. 즉, 원래대로라면 사마의가 제갈량의 신상에 이상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공격해왔을때 사마의군을 격멸하려는 체제를 강유가 활용해서 사마의에게 실제로 공격당할 수 있다는 위협감을 주고 그를 후퇴시키는데 이용한 것이라는 거죠. 아마도 제갈량이 죽어가면서 퇴각계획을 짤 때 이 계획을 변형했을 수도 있고요. 퇴각 계획을 짤때 제갈량과 논의한 세 사람인 비의, 강유, 양의 중 강유와 양의 둘이 사마의의 군대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대응한 것을 보면 아마 제갈량은 사마의가 나타나면 원래 계획대로 하라고 충분히 명령했을 수 있습니다. 죽은 공명과 산 강유가 사마의를 쫒은 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3. 사마의의 말인'나는 산 사람은 헤아릴 수 있지만 죽은 사람을 헤아려 대적할 순 없다'라는 말은 어쩌면 이런 허탈한 심정에서 나온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마의 입장에선 자신이 괜히 별 생각 없이 말한 사자의 말에 과민반응한 거고 적장 강유가 임기응변을 잘해서 이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제갈량의 계획적인 함정인데 제갈량이 진짜 죽어서 이렇게 된 건지 알 도리가 없을테니까요. 웃으면서 했다는 이 말에는 이런 복잡 다단한 심정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