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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 22:45
아 감옥에서 병사했군요.
그런데도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7적과 나란히 봉헌한 일본의 행태를 보면 기막힙니다. 뱀발: 저기 번역하신 300P가 안 되는 '8월 폭풍'의 증보판을 국립 중앙 도서관에서 봤습니다. 그것은 번역하실 생각이 없으신가요
20/07/05 22:33
보면 추축국들은 말로만 동맹이었지 서로에게 도움은 안된걸로,,,,
만약에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안했다면 미국의 참전도 늦어젔고 독일이 영국이나 소련을 더 팰 수도 있었을거라 보는데요 실제로 처칠이 "이제 우리 연합군이 이겼다. 히틀러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무솔리니의 운명도 결정되었다. 일본인의 경우는 가루가 돼버리겠지." 이렇게 말했다죠
20/07/05 22:38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이일 삼국동맹을 반대한 해군 쪽 인사들은 이 동맹으로 유럽의 전쟁에 일본이 끌려들어간다고 주장했는데, 정 반대가 되어버렸습니다.
20/07/05 22:37
사실 41년 후반에 일본이 소련 극동을 공격했다 해도 1921년 러시아 내전 때 간섭군으로 들어와서 생고생만 하다 돌아갔던 때랑 크게 차이는 없었겠지만 이 때 모스크바 방어로 전용된 시베리아 사단의 활약이나 41년 11월 말~12월 초까지 소련의 상황을 생각하면 소련의 운명이 바뀔 수 있었던 순간이었죠.
하늘이 준 최후의 기회를 상호간의 통수 끝에 허망하게 날려먹는 꼬라지라니. 당시엔 알 수 없었겠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돌아보면 참 우스운 순간입니다
20/07/05 22:39
하지만 최근의 연구(데이비드 글랜츠의 2017년 논문)에 의하면 스탈린이라면 연해주를 포기하고서라도 극동 배치 병력을 모스크바에 투입하였을 거라고 합니다.
20/07/05 22:44
사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이 극동을 공격했든 안 했든 모스크바 공격 자체는 실패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프리 매카기에 따르면 소련군은 373개 사단을 뽑아내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독일군은 200개 정도일 거라 생각했고 실제 전투력은 절반 이하인 찌끄레기일 거라고 믿었죠. 독일군이 현실을 깨달았대도 그냥 42년을 기약했을 것이고. 독일군도 실상은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 상황이었으니까요
20/07/05 22:55
사실 이걸 가지고 독일만 고군분투 했다 하기에는, 프랑스가 엘랑해버린 40년 6월부터 41년 6월까지는 영국 원맨쇼. 41년 6월부터 (서부전선이 개막한) 44년 6월까지는 소련 원맨쇼였죠. 의외로 이탈리아를 비롯한 추축군들도 허깨비는 아니었고.
아 물론 1차대전 독일의 경우에는 진짜 17대 1의 진수를 보여주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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