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2020 시즌의 첫 그랑프리가 막 끝났다. 진짜 오랜만에 열린 그랑프리를 모두 기다렸지만,
기다린 것 보다 훨씬 재미있잖아????!!!!!
0. 알아두어야 할 배경
팀은 10개, 드라이버는 20명. 팀마다 차가 다름.
작년 순위대로 쓰면(괄호는 드라이버 순위. 6위까지만)
메르세데스(엔진 직접 개발): 루이스 해밀턴(1), 발테리 보타스(2)
페라리(엔진 직접 개발): 세바스티안 페텔(4), 샤를 르끌레르(5)
레드불(혼다 엔진 사실상 독점 계약): 막스 베르스타펜(3), 알렉산더 알본
맥라렌(르노 엔진, 2021부터 메르세데스 엔진): 카를로스 사인츠(6), 랜도 노리스
르노(엔진 직접 개발): 다니엘 리카르도, 에스테반 오콘
알파타우리(혼다 엔진, 레드불 형제팀): 다닐 크비얏, 피에르 가슬리
레이싱포인트(메르세데스 엔진, 부자팀): 세르히오 페레즈, 랜스 스트롤
알파로메오(페라리 엔진, 페라리 형제팀): 키미 라이코넨, 안토니오 지오비나찌
하스(페라리 엔진, 저자본 미국팀): 로망 그로장, 케빈 마그누센
윌리엄스(메르세데스 엔진, 망한 팀): 조지 러셀, 니콜라스 라티피
겨울 동안 차를 만들어서 윈터테스트를 통해 어느 정도 성능을 알아볼 수 있다.
(보통 때는 연습 주행도 금지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
레이스는 금/토의 연습 주행(3번에 나눠서 함), 토요일의 퀄리파잉, 일요일의 레이스
퀄리파잉은 3단계로 이루어지며 Q1에서 5명 탈락, Q2에서 5명 탈락.
본 레이스 스타팅 그리드는 퀄리파잉 결과에 따름(Q3에서 8등하면 8그리드, Q2에서 14등으로 Q3 못가면 14 그리드)
오스트리아 스필버그 서킷은 레드불의 홈이며 레드불링로 네이밍 됨.
짧고 직선 구간+급브레이킹이 많은 데다가 겁나 더워서 엔진이나 브레이크 등이 잘 터지는 걸로 유명함.
2019, 2018 모두 레드불의 막스 베르스타펜이 우승.
올해는 레드불링에서 1, 2 그랑프리를 1주 간격으로 연달아 하기로 함(취소된 곳이 많아서)
1. 꿀잼의 서막
작년 페라리는 이상할 정도로 직빨이 좋았고(뒤차가 추월을 위해 혜택을 받는 DRS를 켜도 페라리를 못이김), 다른 팀이 이거 뭔가 치팅한거라 의심을 제기함.
그런데 FIA 조사 결과가 "페라리가 규정의 헛점을 이용한거 같은데 우리 능력으로 그걸 못 발견함. 그리고 그 노하우는 페라리의 IP(지적 재산권)라서 공개는 못함. 앞으로는 안쓴다 함. 끗."이어서 다른 팀들이 개빡침.
암튼, 2020 시즌 전 윈터 테스트가 이루어졌는데.
페라리 개 망 함.
경쟁자인 메르세데스/레드불은 물론이고 2019 메르세데스를 그대로 카피하다시피한 레이싱포인트에게도 밀릴 지 모르는 결과가 나옴.
다른 팀들, "야 그러니까 작년 치팅 맞잖아. 이탈리아 잡놈들"
몇 달간의 지연을 끝내고 레드불링 스케쥴이 잡히면서 각 팀은 엔진/에어로 업데이트를 준비함. (메르-안정성 개선, 레드불-엔진 맵핑 개선 등)
페라리: "어, 우리 윈터 테스트 망한거 같아서 몇 가지 시도해봤는데 다 안되더라고. 레드불링 1,2 레이스는 포기하고 3주차 헝가로링에 업데이트 들고갈게. 레드불링 레이스는 데이터 수집에 도움이 될 거 같다."
버짓캡을 반대할 정도로 압도적인 예산을 쓰는 f1의 최명문 팀이 저따위 준비를 한다는 것에 다들 아연 실색.
다른 한 편으로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2019 메르 차를 사진 수천장 찍어가며 카피한 2020 레이싱 포인트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름.
2. 야, 이거 대단한데?
프랙티스에서 이미 조짐은 보였지만, 퀄리파잉 결과는 그야말로 대 충격
일단, 페라리가 대 폭 망
베텔이 Q2에서 11위로 탈락. 르끌레르가 10위로 간신히 Q3가서 결국 7 그리드까지 해냄
메르세데스는 해밀턴의 뽐뿌로 BLM을 위한 블랙 리버리(차 도장)를 하건 뭘 하건 그냥 1,2 그리드(보타스-해밀턴)
3위는 막스, 레드불의 기대에는 조금 못미치는 결과
놀랍게도 4위가 맥라렌의 랜도 노리스, 사인츠도 8위.
더 놀라운 건 레이싱 포인트의 페레즈와 스트롤이 6, 9위.
페라리 엔진을 받은 팀들은 모두 폭망.
이건 뭐 볼것도 없이 맨날 보는 레파토리-메르세데스 집안 싸움-에다가 미친 황소(막스)의 경쟁이네.
레이싱 포인트나 맥라렌이 잘하면 포디움에 들려나?
3. 아무것도 예상하지 마라
(스포가 있습니다. 하이라이트가 곧 유튭에 띁 테니 보고 오셔도 좋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예상대로 메르세데스는 달려나가고 그 뒤를 미디움 타이어를 끼운 막스가 쫓아가는 상황에서,
막스가 리타이어 한다! (랩 11) - 이 망할 놈들아 홈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
리카르도가 리타이어 한다!(랩 17) - 불쌍한 리카르도, 내년엔 맥라렌 가서 힐링 받아
그리고 사인츠는 내년 팀 동료가 될 르끌레르와 경주하며 아.. 이거 취업 사기인가 페라리 하나도 안빠르네를 외치는 상황에서
베텔이 또 스핀을 한다! - 베텔은 원래 스핀 전문. 외국애들도 meme을 붙여 놓은 상황.
그나저나 짭르세데스(레이싱포인트) 진짜 성능 좋은데? 근데 페레즈 차는 왜 프랙티스 부터 계속 방구가 나오냐? 저러다가 차 퍼지는 거 아니냐?
응? 스트롤이 리타이어 한다!(랩 20) - 뜬금없이 랜스 스트롤이 리타이어. 상위권 차가 2대가 리타하면서 혼란의 도가니
마그누센이 리타이어 한다!(랩 24) - 브레이크 이슈로 리타이어, 세이프티 카 출동!
모든 차들의 간격이 사라지면서 다들 타이어도 갈아끼우고 새로운 기회를 노리는데, 메르세데스 팀 라디오는 해밀턴과 보타스에게 연석 밟으면 센서 잘못 돼서 파워 유닛 나가니까 조심하라고 함. 해밀턴은 나보고 이기지 말라는 거냐며 징징.
그렇게 잘 가다가
그로장이 리타이어 한다!(랩 49) - 역시 브레이크 이슈
조지 러셀이 리타이어 한다!(랩 49) - 갑자기 파워 나감. 혹시나 10위 안에 들어보나 했더니..
라이코넨이 리타이어 한다!(랩 54) - 바퀴가 덜 끼워져서 날라감 이건 뭐....
다시 한 번 세이프티 카. 다들 타이어를 갈아끼우는데 좋은 포지션 잡은 타이어 관리의 도사 페레즈(짭르세데스)는 미디엄으로 버티기 들어감(4위). 메르세데스 1,2 역시 하드 타이어로 계속 버팀(순위 밀릴까봐)
알본이 소프트를 끼고 와서 홈 그라운드에서 멋진 추월 쇼를 보여주며 해밀턴 뒤로 붙었다가 낡은 하드 타이어인 해밀턴을 제치려는 순간!!!
아 박았죠! 박았죠! 작년 브라질에서와 똑같이 추월하는 알본을 자비없이 박아버리고 갈 길 가는 해밀턴.
해설자들: 알본, 훨씬 빠른 페이스인데 인내심을 갖고 여유있게 추월하지. 뭐하러 그놈을 건드려서..
https://media-mbst-pub-ue1.s3.amazonaws.com/creatr-uploaded-images/2019-11/92bfb390-0997-11ea-bfff-8eae8ea65c06" alt="" width="444" height="250" />
알본은 최하위, 해밀턴이 5초 페널티를 받는 것은 거의 기정 사실인 상황에서
보타스-해밀턴-페레즈-노리스-르끌레-사인츠 는 모두 포디움을 노리게 된 상황
그런데 이때, 똥차로 힘겹게 내년의 팀메이트 사인츠를 막아내며(야 르끌, 빨간차 좋다며, 조용해봐 카를로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내가 올해 조지게 생겼다.) 버티던 르끌레가 갑자기 미친놈 모드를 발동하며 노리스, 페레즈를 모두 제치고 3위로 올라서게 됨.
그리고 노리스도 멋지게 페레즈를 추월!
보타스-해밀턴-르끌레-노리스-페레즈-사인츠
크비얏이 리타이어 한다!(랩 67) - 서스펜션이 부서지다니...
알본이 리타이어 한다!(랩 67) - 야 2위까지 하고 리타이어 하면 더 멋졌을건데
총 9대가 리타이어하는 대환장 파티속에서 베텔은 꼴지였다가 어느새 10위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남은 문제는 해밀턴이 5초 페널티를 받았을 때 몇위가 될 것이냐?
해밀턴-르끌 3초 차이, 르끌-노리스 2.5초 차이 도합 5.5초 정도.
해밀턴은 빨리 달려야 하니까 보타스랑 자리 바꿔달라고 함. 어차피 보타스가 1위 될거니까. 하지만 보타스도 마음이 급하고(스위치 하다보면 0.5~1초 정도 손해를 보게 됨) 2랩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노리스가 마지막 랩을 패스티스트 랩으로 찍으면서 4.8초 차이 이내로 레이스 완료!
최종 순위는 보타스-르끌-노리스-해밀턴-사인츠-페레즈 가 되었다.
4. 감상
근 5년 간 가장 재미있는 그랑프리.
어차피 올해도 메르세데스가 해먹겠지만, 보타스가 오늘처럼 칼 갈고 나와서 해밀턴 조바심 나게만 해 줘도 꿀잼은 기본이다.
20명 중 9명이 리타이어. 고온 고속 급커브 고저차 트랙 + 시즌 첫 레이스의 어설픔 = 꿀잼 감사합니다.
막스는 올해 챔피언 도전이 꼭 필요한 입장(최연소 월챔)에서 시작부터 0포인트는 타격이 크다. 알본까지 리타이어라는 건 엔진 신뢰성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
해밀턴은 여전히 괴물같이 잘하지만, BLM 관련해서 플로이드를 위한 kneeling 세러모니를 모든 드라이버에게 강요하다가 거절당하자 비난하는 등 약간 막나가는 측면이 있다. (아이고 흑인 드라이버가 황인 드라이버(알본) 치고 간다!!)
하스는 페라리 엔진이 문제가 아니고 작년 리치 에너지와의 스폰서쉽 개판난 이후로 돈이 없는지 올해 차가 아예 엉망인 상황. 브레이크 이슈가 지속적으로 터진다. (아니 그럼 그것보다 느린 윌리엄스는.)
윌리엄스의 니콜라스 라티피는 아빠가 부자라서 윌리엄스 지분 있는건 좋은데, 어느 정도 잘 해야 의미가 있지 러셀과 차이가 너무 난다. 아무리 데뷔전이지만 랩 타임이 거의 1초 가까이 차이나버리면...(같은 페이 드라이버인 랜스 스트롤은 실력으로는 안까임)
Meme master인 랜도 노리스는 영 드라이버들이 그렇듯 완전체 형이며(조지 러셀, 막스 베르스타펜, 샤를 르끌레르, 피에를 가슬리..?) 스티어링과 브레이킹을 절제하는 타입으로 숏런에 강하다. 반대로 레이스 페이스는 사인츠에게 많이 밀렸었는데 특히 배틀에서 요령이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오늘의 생에 첫 포디움 입성을 통해 크게 발전할 수 있을거라 기대한다. (맥라렌의 홈 그로운 투자가 빛을 발했다! 라고 보기엔 얘도 금수저라서.)
그러나 무엇보다도,
숏런에서 처참한 수준을 보여준, 베텔 말로는 코너에서는 오버스티어 나고 다운 포스가 부족해서 그립이 안나는데 직빨도 안나는 이상한 차가 된 페라리를 끌고 2위를 한 르끌레르는 정말 미친놈이다.
퀄리에서도 베텔과 약간 차이를 보이더니, 레이스에 들어가서는 확연히 밀리는 페이스의 차를 끌고 어떻게든 뒷차는 방어해 내고 버로우 타다가 막판에 힘을 모아서 추월쇼를 보여주는 능력은 굉장했다. 왜 페라리가 4월챔 베텔을 그렇게 가차없이 버리고 르끌 중심으로 팀을 만들기로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해밀턴-막스와 더불어 현재 그리드에서 가장 재능+실력이 확실한 드라이버다. 페라리 차의 특성상 초 예민한 컨트롤 때문에 미스가 종종 난다는 걸 고려하면 저정도 경험으로 그걸 메꿔내는 건 막스 1,2년차에 버금간다.
(한국에 르끌 탈모 기원 집회가 있다는게 사실인가요?)
자, 과연 다음 레이스는 어떻게 될까? 퍼진 차들은 또 퍼질까? 박은 놈들은 서로를 또 박으려고 할까?
짭르세데스는 여전히 잘 달릴까? 페라리는 여전히 똥차겠지?
게다가, 게다가게다가
다음 주 일기예보는 토/일 모두 비가 온다!!
고속의 내리막 커브에서 비를 맞으며 달리는 차들을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웅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