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0/07/07 13:19:03
Name 회색사과
File #1 KakaoTalk_20200629_220740359.jpg (2.10 MB), Download : 89
File #2 KakaoTalk_20200707_131543832.jpg (2.15 MB), Download : 30
Subject [일반] 민어곰탕과 수국화분





D–10

일요일 오전부터 할머니께 전화가 왔다.

“너는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냐?”
나는 할머니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할머니는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냐시지만 실상은 왜 할머니를 보러 오지 않냐고 화내시는 거다.

내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 여섯 층 위에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살고 계신다. 어머니가 회사에 다니셨기에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나는 외할머니댁에서 살았고 내가 초등학교를 가기 위해 부모님댁에 살게 된 이후로도 매일같이 나를 보살피기 위하여 보광동과 삼성동을 오고 가셨다. 강남세무서 앞에서 212번을 타고 고속터미널에 가서 78-2로 갈아타고 보광동 정수직업훈련소 앞에서 내린다. 6년간 3000번 이상을 환갑 넘은 노인네 둘이 버스를 타고 다녔다. 주말에는 내가 매주 할머니 댁에 갔었다. 외할머니와 나의 관계는 부모자식보다 끈끈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우리 집이 용인으로 이사를 오고, “사과네 곁에 살란다” 면서 할머니네도 이사를 오셨다. 출근하는 날을 빼고는 아침마다 할머니 댁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 그게 한 4년 되었나보다. 내가 부모님 댁에서 나와 살게 된 이후로도 주말마다 할머니 댁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 재택근무하는 동안은   매일같이 할머니와 아침을 먹었는데, 재택근무가 끝나고 번화가로 출퇴근을 하게 되자 코로나를 묻혀올까 무서워 할머니 댁에 안 갔더니 화를 내시는 거다

“엄마가 왜불쌍해 씩씩하게 잘사는구만”
할머니가 하는 말은 다 알아먹었지만 괜히 한 번 능청을 떨어본다. 일요일이 아버지 생신이시기도 하고 이번 주말에는 할머니 댁에 한 번 가봐야겠다.


D – 7

이제 여름이기도 하고 아버지가 생선을 워낙 좋아하시니 주말 메뉴는 민어탕으로 해야겠다. PGR에 생선사는 법도 물어보았다. 민어 사는 법을 물었더니 곰국 끓이는 법도 알려주셨다. PGR에 묻기를 잘한 것 같다.


D-5

오후 근무를 빼고 노량진에 민어를 사러 갔다. 내장 빼고 4키로.. 일부는 횟감으로, 일부는 전유어용으로, 일부는 탕용으로 손질해왔다. 오래 푹 고기 위해 뼈는 따로 받아왔다. 일부러 서덜만 넣고 푹 고기 시작했다. 거품을 걷으며 곰탕용 들통에 물이 반이 되도록 고았다. 저녁 8시부터 시작했는데 새벽 1시쯤 되서야 1차 작업이 끝났다. 생선을 네 시간을 끓였는데 소 뼈 고은 것처럼 뽀얀 국물이 되었고 비린내도 없다. 신기하다. 내일 아침에 야채 넣고 살 넣고 먹으면 될 것 같다.


D-4  

아침에 할머니 댁에 가서 아버지 생신상을 멋드러지게 차렸다. 회에 전유어에 뽀얀 민어 곰탕까지. 주인공은 아버지였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무사히 이번 여름 넘기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아니 사실 별 생각 없었다. 그냥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맛있는 거 먹었네 정도였던 거 같다.

D-1

할머니께서 수국 화분을 나눈다고 부산을 떠신다. 사과 이사 가는데 화분 하나 해다 주면 얼마나 좋겠냐고… 내 이사는 내년 1월으로 예정되어 있었고, 할머니 근처에 살며 수시로 할머니 시중을 드는 작은 삼촌은 이사 갈 날도 많이 남았는데 왜 벌써 이러시냐고 할머니를 말렸다. 컨디션도 안 좋은데 왜 벌써 이러시냐고.. 이사 가려면 6개월도 더 남았는데 그 때 가서 작업하시자고.. 말리는 삼촌을 뒤로하고 할머니는 오늘 굳이 하셔야겠다고 우기셨다.


D-0 6월 24일 수요일

작은 삼촌과 저녁을 먹고 작은 삼촌을 보내고.. 거실에 누워 계시다가 안방에 들어가서 자자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안방으로 들어가셨다고 한다. 평소에 몸이 아프다 하시는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는 안마기로 할머니를 안마해드렸고, 할머니께서 잠드시는 것을 보고 할아버지도 침대에 누우셨다고 한다. 그리고 할머니는 멀리 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당신이 가실 것을 알고 계셨던 게 아닌가 싶다. 이대로 못 보고 가면 손자 마음에 한이 생길 걸 아시고 열흘 전에 부르신 것이고 가시는 길에 그래도 뭔가 하나 해주고 가고 싶어서 하루 전날에 화분을 만지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내가 자식 낳으면 줄 거라고 하시던 나 어릴 적 덮던 담요를 덮고 할머니는 멀리 가셨다.

장례식장에서 삼촌과 숙모와 이모들에게 할머니의 어떤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물어봤다. 삼촌은 삼촌 학생 때, 숙모는 숙모 처음 시집오셔서 할머니께 서운했을 때, 이모는 이모가 해준 음식을 할머니가 맛있게 드셨을 때가 생각이 난다고 하셨다. 내가 그 순간 기억했던 할머니의 모습은 초등학생 시절 주말에 할머니 댁에서 본가로 돌아올 때, 해가 어둑어둑 해지는 보광동 삼거리에서 “함무니 빠빠이~” 하면서 인사하던 모습이었다. 내일이면 할머니가 또 나를 보러 올 것이고, 다음 주말이면 내가 할머니를 보러 또 가는 게 당연하던 그 순간에 인사하던 모습이었다.

“함무니 빠빠이”


=========================================================================

저희 할머니께서 얼마 전에 멀리 가셨습니다. 뭔가 할머니 얘기를 어딘가 써보고 싶어서… 가시기 전에 PGR 덕에 민어 곰국 해드린 것이 생각나서 PGR에 한 번 써 봅니다.
https://pgr21.net./qna/145937
이 글에 답변 달아주신 선배님들 감사합니다.

혹시 식물 기르는 데 조예가 싶으신 선배님 혹시 계실까요?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화분을 가져왔는데, 생각해보니 저 한 명이 가지고 있기에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화분이네요. 할머니 손자들이 여럿 있고 다들 할머니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요… 제가 잘 키워서 분을 나누어 제 사촌들에게 나누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이런 환경에서 아침 저녁으로 분무기로 물 주고 있습니다. [동향이라 오전에만 해가 듭니다.]

처음에는 컵으로 물을 줬는데 자꾸 물받이에 물이 남길래 분무기로 아침저녁 주고 있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쩌글링
20/07/07 13:42
수정 아이콘
수국은 물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과습에는 장사 없습니다. 사진으로 보기에 꽃을 감상하기에는 아직 좀 작아보이지만, 꽃 대 자르고 가지치기 한 후 해 잘 드는 베란다에 방치하면 잘 살아 있을 거에요.
회색사과
20/07/07 13:44
수정 아이콘
물을 충분히 / 많지 않게 - 이게 초보 화초러에게는 너무 어렵더라구요..

어느 정도가 과한건지 적은 것인지, 얘가 물이 많아서 시들한지 적어서 시들한지 감이 안 옵니다 ㅠㅠ
쩌글링
20/07/07 14:05
수정 아이콘
어렵습니다.
보통 물이 적어서 문제인 경우는 많이 드물더라... 정도 감각을 가지고 화분,흙,주변환경에 따라 조정해야지요.

혹시 매일 물을 주고 있고, 그 때마다 물받이에 물이 남았다면, 일반적인 환경에서 과습이 우려됩니다.
물론 과습이 단순히 물만 많이 줘서 생기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화분의 통기가 부족할 때 더 생기지요.
가장 확실한 건 통제된 환경에서 화분을 여러개 죽여가며 시도해보는 거지만, 절대 죽여선 안되는 유품 같은 화분이라면, 제품화된 화분 습도측정기를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일단 수 개월 간 죽이지 않고, 일부 성장 까지 성공했다면, 그 다음 부터는 내년 개화를 위한 가지치기 등 수국에 특화되어 있는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 지점에서 수국 키우기가 좀 까다롭기는 하지만, 워낙 인터넷에 정보가 많으니 참고하실 수 있을 거에요.
회색사과
20/07/07 14:0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분무기로 주고부터는 물받이에 물이 고이지는 않는데..
잎이 부쩍 자라서 그런가 끝이 살짝 시들한 기분이 드는데 제가 아프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네요...

일단 살리기부터 ㅠㅠ 해보겠습니다.
20/07/07 14:01
수정 아이콘
처음 키운 화분이 수국이었는데 과습으로 죽었습니다. ㅠㅠ 물 좋아한다고 하길래 물을 너무 많이 준 탓에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아무리 이쁘고 사랑스러워도 애정이 과하면 안 좋아요. 화원 이모님들은 그냥 흙이 말랐을 때 흠뻑주면 된다고 쉽게 말하는데 초보는 그것도 어렵죠 크크. 아마 보통 수국 과습이면 잎이 검게 탈 거예요. 그것도 환경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요.
회색사과
20/07/07 14:1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잘 키워보겠습니다.
진산월(陳山月)
20/07/07 14:31
수정 아이콘
할머니께서 손주들과 가족을 많이 사랑하셨나 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회색사과
20/07/07 15:18
수정 아이콘
네 할머니 자식/손자들을 엄청 사랑하셨고, 받은 만큼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할머니를 사랑했습니다. 흐흐

감사합니다
20/07/07 14:57
수정 아이콘
저도 93세 할머니께서 기력이 다 쇠하셨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빌어먹을 코로나때문에 일년넘게 귀국을 못하네요 네시간이면 찾아뵐텐데... 기약도없고ㅜㅜ
회색사과
20/07/07 15:18
수정 아이콘
아이고.. ㅠㅠ

얼른 코로나가 마무리 되어 뵈시기를 기원합니다
20/07/07 16:25
수정 아이콘
수국 키우실 때 수분 조절도 중요하지만,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회색사과
20/07/07 16:28
수정 아이콘
오오.. 감사합니다. 그렇게 두겠습니다
마리아 호아키나
20/07/07 16:48
수정 아이콘
오래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나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회색사과
20/07/07 17:34
수정 아이콘
할머니 가시는 길에 인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7/07 17:00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회색사과
20/07/07 17:35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가시기 전에 뵈어 그런지 아직 실감이 안 나서 그런지
막 힘들고 그러지는 않네요.

가끔 할머니가 엄청 보고싶어지기는 합니다만 흐흐

감사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7149 [일반] 까라면 까는 권위주의적인 대표적인 문구라고 봅니다 [8] Demanon7487 20/07/09 7487 2
87148 [일반] 데스노트 37화 중, 궁지에 몰린 라이토 더빙 해봤습니다! [4] 유머게시판6411 20/07/09 6411 5
87147 [일반] 영화 3편을 공짜로 보기 [12] 及時雨8430 20/07/09 8430 2
87144 [일반] 잘못된 정비가 불러온 항공 대참사 JAL 123편 추락사고 [17] 우주전쟁12420 20/07/09 12420 14
87137 [일반] 그들이 옵니다. 어디에? 국방 TV에! [21] 후추통12354 20/07/08 12354 1
87136 [일반] 인터넷 방송인 진워렌버핏 사망. [46] 츠라빈스카야17558 20/07/08 17558 1
87134 [일반] [개미사육기] 반란 [45] ArthurMorgan8311 20/07/08 8311 26
87131 [일반] 최근에 유래를 알고선 충격을 받았던 단어 "흥청망청" [24] 겨울삼각형12984 20/07/08 12984 16
87130 [일반] 눈물을 마시는 새 오디오북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54] 하늘깃9993 20/07/08 9993 4
87126 [일반] 한국형 전투기 KFX에 관한 소개 2 [22] 가라한15313 20/07/08 15313 33
87125 [일반] 부동산 통해서 개인정보가 샌 것인가... [8] s-toss8161 20/07/08 8161 0
87124 [일반] 유령 수술로 죽은 권대희씨 사건. 유령수술, 검사의 불기소 남용 [20] hey!9014 20/07/08 9014 7
87118 [일반] 당나라에서 배향했던 역대 중국의 명장 75인. [55] Love&Hate16925 20/07/07 16925 6
87117 [일반] 살인범의 걸음걸이(금호강 살인사건) [16] 청자켓14717 20/07/07 14717 2
87115 [일반] 민어곰탕과 수국화분 [16] 회색사과10200 20/07/07 10200 34
87114 [일반] 너무 착하게 살지 마세요 [135] 토니파커17012 20/07/07 17012 16
87113 [일반] 요즘 근황. [19] 공기청정기8402 20/07/07 8402 2
87111 [일반] "8월의 폭풍"으로: 소련과 일본의 40년 충돌사-15 [3] PKKA7030 20/07/07 7030 12
87110 [일반] 어제 황야의 무법자 영화 다시 틀어보면서 [8] 프란넬5880 20/07/07 5880 0
87108 [일반] 개인의 관점에서 남녀갈등의 관한 일기 [33] 초동역학10803 20/07/07 10803 15
87107 [일반] 사회생활시 처신에 대한 절대적인 진리..? [65] 움하하12798 20/07/07 12798 10
87106 [일반] 가붕개 자녀가 성공할 확률은 얼마인가? [44] 꿀꿀꾸잉16629 20/07/06 16629 46
87105 [일반] 에어버스 쪼렙 시절 손을 뻗어준 귀인이 있었으니 [19] 우주전쟁10885 20/07/06 10885 2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