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의 4차북벌은 1차 북벌과 함께 제갈량의 가장 아쉬운 북벌로 꼽힙니다. 보통은 하필 장마철에 비가 내려서 군량이 이어지지 않는 바람에 실패하고 이엄이 제대로 보급을 하지 않았던 것을 두려워해 제갈량을 모함한 북벌로도 알려져 있지요. 저도 대충 그렇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삼국지집해에서 자치통감 호삼성 주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죠.
'이평은 참군 호충과 독군 성번을 파견하여 뜻을 설명하고 퇴각하라고 했다'라고 하는 부분을 중 삼국지집해에 달린 자치통감 호삼성주에 따르면 '뜻을 설명하고' 부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여기서 쓰인 단어인 '喻指'는 호삼성주에 따르면 '후주(유선)이 양곡운반이 이어지지 않음을 가리킴으로서 알렸던 말(喻以後主指言運糧不繼。)입니다. '喻指'는 '임금이 신하에게 조령을 내리다'라는 뜻이 있으니까요. 즉, 이엄은 '유선이 장마철이라 군량이 이어지지 않았다고 후퇴하라는 했다는 뜻'을 제갈량에게 전달한 것입니다.
문제는 유선은 제갈량에게 이런말 한 적 없습니다. 즉, 이엄은 제갈량을 퇴각시키기 위해 퇴각은 황제의 뜻이라고 거짓말을 해놓은 것입니다. 그래놓고 황제에게는 제갈량이 스스로 후퇴하려 했다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엄이 이 다음 유선에게 올린 표만 봐도 유선은 제갈량에게 후퇴하라고 시킨적도 없고 이 일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고 봐야 하죠.
또 파성넷 이엄전에서는 '여름과 가을사이에 장맛비가 내려서 군량이 이어지지 않았다'라고 해석하는데 원문은 '秋夏之際,值天霖雨,運糧不繼' 입니다. 여기서 '天霖雨''은 '장마, 장맛비이란 뜻으로 '值天霖雨'은 '장마철을 맞이해' 혹은 '장맛비를 맞아'로 해석됩니다. 국역 자치통감도 '장마철이 오자 이엄이 걱정했다'로 해석하고 있고 '值'라는 글자 자체가 ~할 즈음하다, 때를 맞이하다라는 뜻도 있으니 해석이 자연스러우려면 이게 맞습니다. 문제는 이엄이 운송을 못한다는 이유로 장맛비를 핑계로 황제의 명을 빙자하여 제갈량을 불렀다는 것이죠.
그래서 '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계속 장마비가 쏟아져 식량 운반이 지속되지 못했으므로, 이평은 참군 호충과 독군 성번을 파견하여 그의 뜻을 설명하고 제갈양에게 후퇴하여 돌아오도록 하라고 했다. 이평은 군대가 후퇴했다는 소식을 듣고, 거짓으로 놀란체 하며 말했다.'라는 문장은 다음과 같이 바꾸어 해석되어야 합니다.
'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장맛비를 맞아 식량 운반이 지속되지 못한다하여 이평은 참군 호충과 독군 성번을 파견하여 (식량운반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황제의 지시를 전하고 제갈량에게 후퇴하여 돌아오라 했다. 제갈량은 이를 받아들여 후퇴하였다. 이평은 군대가 후퇴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겉으로는 놀라면서 말하였다.'
예, 다시 말해서
이엄은 황제의 명을 사칭해서 제갈량군을 후퇴시켰던 겁니다. 제갈량은 장맛비가 내리니 군량을 더 이어갈 수 없다는 조작된 황제의 명을 받아들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제갈량이 탁고대신이라고 해도 장맛비 때문에 군량을 이을 수 없으니 돌아오라는 황제의 명을 거부할 순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태가 발생한 이유는 화양국지와 자치통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화양국지와 자치통감에 따르면 4차 북벌에선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건흥 9년(231년) 봄, 승상 제갈량은 다시 출병하여 기산을 포위하고, 처음으로 목우를 이용해 수송하였고 참군 왕평에게 남쪽 포위 진형을 지키게 하였다. 사마선왕이 제갈량을 막고, 장합이 왕평을 막았는데, 제갈량은 군량의 운방이 원활치 못함을 걱정하고 세가지 책략을 세워 도호 이평에게 알려 말하기를, '상책은 적의 퇴로를 끊는 것, 중책은 적과 지구전을 벌이는 것, 하책은 귀환하여 황토(촉의 땅)에 사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때, 사마선왕 등 위군의 병량도 역시 다하였는데, 한 여름에 비가 내렸다(盛夏雨水), 이평은 조운으로 보급을 못하는것을 두려워해 서신으로 제갈량에게 마땅히 병사를 물려 귀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6월, 제갈량은 이평의 조언을 받아들여 철퇴하였다. 장합은 청봉까지 진군하여 교전하였으나, 그곳에서 제갈량에게 죽었다. 8월, 제갈량이 한중에 귀환했다. 이평은 제갈량에게 병량 운송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책망당할까 두려워하여 독운령인 잠술을 죽이려 하였고 두려워하여 제갈량에게 왜 돌아가는지 물었다. 또한 후주에게 표문을 올려, 제갈량이 일부러 철퇴하였다고 말했다.
제갈량은 노하였고, 이에 상표하여 이평을 폐하여 평민으로 돌리고, 재동에 유배하였고, 이평의 자식 이풍의 병사를 빼앗고 종사중랑으로 삼아,장사인 장완과 더불어 거부의 일을 맡게 하였다. -
화양국지한의 승상 제갈량이 기산(祁山)을 공격할 때, 이평(李平)에게 후방 업무를 관장하는 유후(留後)를 맡겨, 운송에 관한 일을 주관하고 감독하게 하였다. 마침 장마철이어서, 이평은 군량미 운송이 잘 이어지지 않을까 두려워 하여, 참군(參軍) 호충(孤忠)과 독군(督軍) 성번(成籓)을 파견하여 유선이 양곡 운반이 이어지지 않는 것을 지적하며 말했다면서, 제갈량을 불러 돌아 오라고 하니, 제갈량이 그 뜻을 받아서 군사를 퇴각했다. 이평이 군대가 철수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겉으로는 놀라면서 말하였다.
"군량이 풍족한데, 어찌하여 곧바로 돌아 오는가!"
또한 운송 책임자인 독운(督運)인 잠술(岑述)을 죽여서 자신이 잘 처리하지 못한 책임(不辦之責)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또 한주 유선에게 표문을 올려서 말하였다.
"군사들이 거짓으로 물러나는 것이며, 적을 유인하려는 것입니다"
제갈량이 그가 손으로 직접 쓴 전후의 상소문을 모두 찾아서 보니, 앞 뒤가 맞지가 않았다. 이평이 말과 사정이 궁하고 다하게 되어, 머리를 조아리면서 사죄하였다. 이에 제갈량은 이평이 앞뒤로 저지른 허물과 악행을 표문으로 올려서, 관직에서 면직시키고, 작위와 봉토를 빼앗고, 재동군(梓潼郡)으로 귀양을 보냈다. -
자치통감화양국지와 자치통감을 종합하면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갈량은 노성에서 사마의를 깨뜨렸지만 한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것은 군량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앞으로 위군과 싸우는데 군량이 부족할까봐 걱정한게 아니라 이 표현에 뒤이어 사마의 역시 군량이 떨어졌다는 표현을 볼 때
제갈량은 정말로 사마의와 같이 식량이 이어지지 않아서 곤란에 처해 있어 걱정하고 있었던 겁니다. 즉, 이때 촉군 후방의
이엄은 제대로 보급을 해주지 않고 있었습니다.당시 노성전투 이후 한진춘추에서는 단순히 사마의가 영채에 돌아갔다고 하는데 실제 사마의는 패배 이후 상규 인근까지 도망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산도를 타고 위쪽으로 올라가는 순서가 기산-노성-목문-상규 이렇게 가는데 제갈량이 후퇴할때 추격하던 장합을 목문도에서 잡았지요. 즉, 제갈량은 사마의를 쫒아 상규 인근까지 진출했고 이후 후퇴하면서 남쪽인 목문에 주둔, 장합을 사살하고 천천히 후퇴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제갈량은 사마의를 상규까지 몰아 붙이고 있었고 결정적인 승기를 잡을 수도 있었습니다. 식량 문제만 아니라면 말이죠.
제갈량은 고심한 끝에 제대로 보급을 주지 않는 후방의 이엄에게 부탁합니다. 지금 우리군은 보급만 되면 상규까지 가서 위군의 뒤를 끊어 전멸시킬수 있고 그게 안 되더라도 지구전만 해도 중간은 간다. 그런데 이렇게 보급이 안되면 후퇴하는 수 밖에 없다는 거죠. 그만큼 제갈량에게는 보급이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촉군과 위군이 대치하고 있는 도중 한 여름이 되었고 마침 장마철이라 비가 내립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비가 줄창 폭우로 내려서 보급이 끊긴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雨水'는 그냥 비가 내렸다는 표현이지 홍수가 나거나 했다는 표현이 아니거든요. 결정적으로 이엄은 비가 와서 조운이나 기타 수단을 통한 보급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 했습니다. 이전부터 제대로 보급을 해주지 못하고 있었다고해도 어느 정도 보급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보급을 장마철이 오면 그 때문에 그것도 못할까봐 두려워 하고 있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아직 장마 때문에 보급이 끊긴 상황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죠.
어쨌거나 보급이 제대로 안되어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까봐 두려워한 이엄은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고 맙니다. 황제의 명령을 날조해서 제갈량을 후퇴하게 만든 것이죠. 장마가 오기전에 제갈량이 북벌의 의지를 보이고 보급을 부탁했던 이상 자신과 제갈량 이상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자, 황제의 명을 덧붙여서 더 이상 보급에 자신없는 이 전쟁을 확실하게 끝내려고 했던 것이죠. 제갈량이 퇴각함과 동시에 그는 제갈량이 후퇴한 것은 적을 안으로 끌어들여 싸우려 하는것이라는 거짓보고를 황제에게 올립니다. 그리고 운송 책임자인 독운령 잠술을 죽이려 하는데 이는 운반 책임자의 증언이 없으면 자신이 보급을 제대로 안한 죄를 숨길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호삼성은 이 행위를 두고 이엄이 죄를 제갈량에게 덮어 씌우려 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궁금하실겁니다. '아니 그럼 장마가 오기전부터 보급을 제대로 안 해 줬고 기상악화의 문제도 아니고 이엄은 왜 보급에 문제를 일으킨거지?'
정사 삼국지와 자치통감은 그냥 간단하게 이엄이 왜 이랬는지 설명합니다.
'不辦''
辦'이라는 글자는 '힘들이다, 힘쓰다, 힘써 일하다, 갖추다, 준비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不'이 붙었다면 그 반대가 되는것이지요.
이엄은 자신이 맡인 임무에 힘들이지 않았고 힘쓰지 않았으며 힘써 일하지 않았으며 보급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제갈량이 자신의 승상부까지 내어주며 맡긴 후방 임무에 대해 태업을 일삼고 일을 제대로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무자인 운반 책임자 잠술을 죽이고 자신의 임무에 태만했던 사실을 숨기려 했고 더 이상 보급을 제대로 못해 제갈량에게 책망을 당할까봐 지레짐작하고 비가 와 보급에 차질이 더 생길것을 두려워 해 황제의 명을 조작하여 제갈량을 후퇴시켰고 황제를 속이고 끝내는 도망가려 하다가 제갈량이 돌아와서 모든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자 꼼짝없이 죄를 시인할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가 왜 이렇게 어이없는 짓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는 이전부터 국가의 이익보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제갈량은 자신이 들어줄 수 있는선에서 최대한 그에게 혜택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가 국가의 이익이 되어줄 사람이라고 생각해 믿고 맡긴거지요. 하지만 이엄은 이 모든 신뢰를 철저히 배신했고 제갈량은 표문에서 자신이 토로했듯이 이엄이 이 정도로 국가에 해를 끼치는 사람인지 몰랐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엄은 두번 다시 촉한의 중신으로 돌아 올 수 없었습니다.
p.s 아 미처 못적었는데 호삼성에 따르면 저기서 나오는 참군 호충은 후에 남방경영을 하는 마충입니다. 외가에서 자라 성씨가 호씨였는데 후에 마씨로 바꾼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