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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7/20 18:27:27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역사] 중국 지식인 량치차오가 바라본 한일병합
량치차오(양계초)는 중국의 근대화를 꿈꿨던 지식인으로, 당대 중국에서 가장 박식한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청나라 말기 중국 개혁의 실권자 캉유웨이의 심복으로 언론활동을 전개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사업에 직접 참여했던 적이 있었고, 따라서 민간인의 시각 뿐만 아니라 정부의 시각까지 겸비할 수 있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사법개혁, 입헌개혁, 군제개혁 등이 시급함을 알고 있었고, 중국이 개혁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포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월남망국사략]을 저술했고, 또 곧 이어 [조선망국사략]도 저술했습니다. 조선망국사는 단행본이라기보다, 언론에 투고한 칼럼형식인데, 해당 저술을 엮어서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먼저 핵심 중 핵심은 다음의 문장입니다.

[무릇 한 나라는 스스로 벌한 뒤에야 남이 벌한다] 

1. 그의 저술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제의식입니다. 조선정부의 우유부단함, 부정부패 그리고 학정에 대한 비판은 아주 혹독합니다. 그는 조선의 국왕 본인부터 시작해서 양반에 이르까지 망국에 책임이 없는 자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이사벨라 버드 비숍 등 동시대 조선을 관찰한 모든 외국인들의 저술에서 공통되게 드러나는 사항인데, 구한말 정치의 문란함과 민중의 궁핍은 실로 엄청난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구미열강 출신의 저술가나 일본인의 저술과는 달리 조선의 이런저런 단점을 언급하면서 꼭 과연 우리 중국은 어떠한가라며 되묻습니다. 바꿔 말하면, 조선을 망하게 한 단점들이 우리나라라고 없겠는가? 조선은 우리나라의 선례가 되는 게 아닌가? 라며 동포들의 각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2. 다른 한편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역시 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인물인지라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외교술을 상당히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톈진조약이나 청일전쟁의 발발, 일본의 만환교환론(만주=조선 교환론) 등 각종 조약을 언급하면서 해당 조약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었고, 당시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이해관계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임오군란에서 갑신정변에 이르기까지, 톈진조약에서 동학운동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동학에서 청일전쟁이 발발하기까지, 그리고 청일전쟁 중 민비암살사건으로 일본세력이 후퇴하고 러시아가 부상하기까지, 그리고 러일전쟁에서 한국병합에 이르는 과정을 간략하지만 핵심을 짚어가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실책이 무엇이었고, 일본의 실책이 무엇이었고, 조선의 실책이 무엇이었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3. 그리고 그는 갑신정변 이후 조선주재 청국 책임자 원세개(위안스카이)를 매섭게 비판하는데, 그의 오만방자함으로 인해 조선의 인심이 흉흉해지고, 국가대사를 그르쳤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가 조선의 내정개혁을 방해하였고, 항상 오만하여 조선인들의 마음을 사지 못했고, 또 일본의 위협에 맞서 그때그때 땜빵질 대처하다가 결국 청일전쟁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량치차오는 근대계몽주의자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순진한 이상주의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일본의 책략으로 중국이 최종적으로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4. 나라는 항상 먼저 벌하고 나서야 남이 벌한다는 것의 연장선상에서, 량치차오는 일진회를 한국멸망의 일등공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조선의 정치와 경제를 파탄낸버린 조선정부도 조선정부지만, 일진회와 같은 적극적인 협력자가 없었다면 국가의 완전한 멸망은 불가능했다가 그의 견해입니다. 량치차오는 (1) 일본이 지난 40년간 항상 조선의 독립과 주권을 위해 노력했다고 선전했다는 점, (2) 당대 국제정치의 흐름 상 노골적인 합병은 굉장히 부정적인 것으로 비춰진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일진회가 자발적으로 나라를 바치겠다고 한 것은 일본 입장에서 상당히 부담을 덜어주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본이 합병의 공을 찬양한다면, 송병준과 이용구가 마땅히 이토 히로부미 위에 있어야 할 것이다."

5. 량치차오는 또한 이분법적인 선악관에 빠지지 않고, 일본 전략전술의 집요함과 치밀함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전 부분을 발췌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 일본은 조선을 도모함에 있어 수십년간 정책이 일관되었다. 처음에 일정한 계획을 세우고 나서부터 그에 따라 행하고, 일사불란했다. 예를 들어 조선이 관문을 닫고 사신을 단절했을 때 모든 것을 우리에게 떠넘기자(외국이 조선과 교섭하려고 했을 때 조선은 청나라하고 얘기해라라고 떠넘긴 일을 의미합니다), 러시아, 미국 등 여러 나라는 또한 한동안 방향을 바꿔 우리와 교섭했다. 그러나 일본은 시종 바꾸려고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치욕을 참아내며(서계거부 사건을 의미합니다) 조선의 바쳐짐을 구했다. 일찍부터 이미 조선이 우리를 벗어나 독립하지 않으면, 저들은 그 기교를 펼칠 바가 없다는 것을 명백히 알았다. 

둘. 일본은 조선에서 실패 역시 여러 번 했다. 우리가 그들을 막았고(갑신정변), 러시아가 막았고(아관파천), 조선인들 스스로가 막았다(의병운동). 더 나아가서 열강들이 여러 차례 그 적을 도와 막았으나(삼국간섭), 저들은 일찍이 이 때문에 그 처음에 세운 뜻을 버리지 않고, 마치 강물의 흐름이 그러한 것과 같이 했다. 어떤 때는 고개를 휘감아 돌고, 어떤 떄는 땅으로 흘러가고, 어떤 때는 모래와 자갈에 스며들고 내려가 ,반드시 바다에 이르고서야 그쳤다. 그 큰일을 위해 굴욕을 참고 백번 꺾여도 돌이키지 않는 기개는 참으로 정성이 지극한 바였고, 귀신도 피하는 것이었다. 

셋. 기회를 살피는 데 지극히 민첩하고, 나아가는 것 또한 지극히 신속했으니, 만약 추호라도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놓쳐서 달아나게 하는 일이 결코 없었다. 

넷. 위험을 무릅쓰고 매진하여 다른 나라가 하지 않는 일을 할 수 있었다. 그 심한 것이 우정총국 사건(갑신정변)이나 민비암살사건과 같은 것들이었다. 늘 벼락 같은 수단으로 대응하는 자들로 하여금 어찌할 바를 모르게 했다. 때문에 그 이후의 효과를 거두었다. (개인적으로 이 두 건은 일본의 명백한 실책으로 보지만, 아무튼...) 

다섯. 다른 나라들이 한국을 도모한 것은 오직 힘을 다해 궁정을 조종하고, 궁정에서도 또한 단지 당시 세력이 있는 곳만을 보고 이용하고자 했으며, 모든 잠재 세력에게 동시에 미칠 여유가 없었다. 일본은 마치 수은이 땅에 흐를 때 들어가지 않는 구멍이 없듯이 어느 방면을 막론하고 다 힘을 썼으며, 또 당파의 이합집산에 대해 잘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싸움을 붙이기도 하고, 뒤섞기도 하고, 올렸다 내렸다 들었다 놓았다 하여 변동되어 고정되지 않으며 한결같이 자기 나라에 유리함을 목표로 삼았다. 

여섯. 그 인민 여론의 세력에 대해 다른 나라들은 조금도 뜻을 두지 않았으나, 일본은 40년 동안 경영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일진회 등을 만들어내 저 무형 유형의 교묘한 책략들을 제공했다. 

일곱. 다른 나라들이 키우고자 서둘렀던 것은 오직 정치상의 세력이었으나, 일본은 경제상의 세력과 정치상의 세력에 동시에 맹렬히 나아가며 쉬지 않았다. 

여덟. 다른 나라의 주동자들은 우리의 위안스카이나 러시아의 베베르 같은 이가 있으되 불과 한 두 사람이었다. 저들은 여러 방면 모두 갈래를 나누어 활동하는 이들이 있어 마치 하나의 군대와 같이, 위로는 장교로부터 아래로는 병졸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직책에 따라 함께 달려갔고, 또 유격편대가 기발하게 의표를 찔러 승리하는 것이 더 있었다. 

저들이 마음으로 도모하고 눈으로 집중하는 것이 어찌 조선 하나뿐이겠는가? 이에 나는 조선의 멸망을 보며 춥지도 않은데 전율을 느낀다. (사실 이게 핵심입니다... 일본의 중국침략을 예견하였고, 그러한 치밀한 적을 상대로 중국은 전략을 짜야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6. 그리고 량치차오는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을 여러 차례 칭찬하고 또 그를 위해 다수의 시를 썼습니다. "삼한의 수많은 인물 중에 내게는 두 남아만 보인다"라고 언급하면서 안중근, 그리고 국치에 대한 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한 홍범식을 기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기개 있는 조선의 표상으로, 중국인들에게도 모범이 되어야하는 용기와 의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량치차오는 이미 망한 이웃국가의 현실을 보며 망해가고 있는 자기 나라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중국도 파국의 길을 면하지는 못했죠. 다만 국공내전과 중일전쟁을 보지 않고 죽은 게 그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영국식 입헌군주정을 추구했고, 후일에는 민주공화정에도 찬성하게 되었지만, 결국 그가 바랐던 중국은 탄생하지 못했고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제3자의 눈으로 보는 조선멸망사도 상당히 의미있을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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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상대성이론
20/07/20 18:38
수정 아이콘
한국사회에선 절대악시되지만 저 시기 일본은 정말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배우면 안되겠습니다만...

조선만 삼켰으면 소화를 충분히 하고도 남았을텐데 1900년대 초반까지의 그 영민한 모습은 어디가고 안좋은 점만 남아서 중국 입에 반쯤 넣은 채로 미국한테까지 포크 꽂다가 배가 터져버렸네요
LightBringer
20/07/20 18:44
수정 아이콘
너무 잘나가다 보니 자기 객관화따윈 내다던져버린...
20/07/20 19:04
수정 아이콘
딱 유신 정도만 배울만 해요.
Liberalist
20/07/20 19:09
수정 아이콘
저 시기 일본은 딱 메이지 시대의 모습만을 배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얘네는 이토가 골로 간 뒤로 다이쇼 때부터 슬슬 맛탱이가 가기 시작하더니, 쇼와 되니까 이건 뭐 브레이크 떼어버린 폭주기관차가 되어 버려서...
20/07/20 19:37
수정 아이콘
1차 세계대전까지의 일본은 참 될놈은 뭘해도 된다는 느낌이고
2차 세계대전까지의 일본은 참 뭘해도 저런 선택만 줄창하는가 싶은 느낌이에요.
개발괴발
20/07/20 20:43
수정 아이콘
"겨우" 조선 정도만 병탄하는 걸로는 일본의 앞날이 매우 걱정스러웠을거라 짐작됩니다.

당시 세계 최강이라 여겨지던 영국/프랑스/러시아/독일/미국의 동아시아 진출을 보고 있으면,
적어도 체급은 비슷하게 맞춰놔야 될 거 같다는 두려움을 계속 가지고 있었을 거 같아요.
실제로 러시아랑 붙어서 신승하기는 했지만 국지적 승리에 가까웠고, 전쟁 배상금조차 못 타냈죠.
그나마도 러시아는 저 5개국들 중 최약체였고요 =_=

제국주의 좀 깔짝거리면서 조선 정도 먹은걸로는 나중에 다른 열강과 한판 붙었을 때 전혀 승산이 없다고 여겨서,
중국이니 필리핀이니 진출하면서 크기를 키운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결국엔 나름 체급좀 키웠다 싶어서 미국에 선빵 갈겨봤는데 결과는...
aurelius
20/07/20 21:22
수정 아이콘
당장 에도막부 시대 사람인 요시다 쇼인부터가 만주와 필리핀을 손에 넣어 서구열강과 경합해야 한다고 주장했었죠. 서양은 커녕 서양 꼬리조차 만져보지 못한 요시다 쇼인부터 이럴진데, 실제로 유럽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메이지 시대의 엘리트들은 더더욱 큰 충격을 받았고, 이들의 [안보관]은 더더욱 제국주의적인 것으로 나아갔었죠.
20/07/20 19:05
수정 아이콘
관련 내용 보면 볼수록 저 당시 조선이 얼마나 답도 없는 지 알 수 있음..;;
크레토스
20/07/20 19:27
수정 아이콘
뭐 저런말하던 그 당시 청나라는 조선보다 개판이었다는게.. 실제로 간도도 조선에 뺏길뻔 했으니까요. 나라도 한일합방 불과 1년 뒤에 망했고
aurelius
20/07/20 19:32
수정 아이콘
조선보다 개판이었다고 하기엔 청나라에 대해 실례입니다. 나름 청나라도 말기에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때가 이미 늦었고, 조선과 다른 성질의 과제가 도사리고 있었죠. 청나라의 첫번째 핸디캡은 [외국인 왕조]였다는 점이었고, 따라서 한인이든 무슬림이든 항상 민족반란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점. 둘째 핸디캡은 1대1로 상대하기에도 버거운데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서양열강의 연합된 힘과 직접적으로 마주해야 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결정적으로 청에서 중화민국으로 넘어갔지만, 결국 [국체]는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국체 자체가 사라진 조선과는 전혀 다르죠.
크레토스
20/07/20 19:45
수정 아이콘
청나라에 대한 실례요? 환경이 어렵건 어떻건 저당시 청나라가 개판이었다는 건 그냥 사실이죠. 실례가 되고 말게 뭐가 있는지.. 실제로 간도도 러일전쟁 없었으면 어찌될지 모를 정도였고요.
중화민국이 조선보다 낫다는 건 동의합니다만 그건 청의 후신이고요. 같은 연도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국가들을 비교하면 대한민국이 중화민국보다 낫다는 소리랑 뭐가 다른지
aurelius
20/07/20 21:12
수정 아이콘
(수정됨) 청나라가 아무리 개판이었어도, 조선에 비할 바가 안됩니다. 중앙정부 최상부(서태후를 비롯한 세력)에서의 의사결정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지 청나라의 중하급 관료 및 민간에서의 역량은 동시대 일본에 비해서 크게 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당장 이홍장의 경우 하루 일과가 상하이에서 발간된 영자신문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 어느 조선인 관료도 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그는 열강 간의 이해관계를 이용하여 청일전쟁에서 패했어도 일본을 물 먹일 수 있었고, 영국을 이용하여 러시아를 견제하고, 러시아를 이용하여 일본을 견제하는 등, 상당한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그 덕분에 만주와 신장 그리고 티벳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홍장이 괜히 동양의 비스마르크라 불린 게 아닙니다. 그리고 민간에서는 조선과는 비교를 허하지 않는, 심지어 일본인 자본가들보다 부자인 사람들이 많았고, 이들은 공장을 짓고 철도를 부설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광서제의 경우 캉유웨이를 전폭적으로 신임하고 적극적으로 근대화를 추진했습니다. 문제는 서태후의 뒷통수가 더 쌨다는 거.. 그리고 청과 중화민국의 관계는 조선->대한민국과는 다르게 청의 모든 국제조약과 책무를 그대로 계승한 성질의 것입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이 김대중 정권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나라가 완전히 바뀌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죠. 중화민국은 청나라 마지막 황실과의 협상을 통해 청의 영토와 조약, 국제적 책무와 채무 모두 계승한 나라입니다.
놀고먹고자고
20/07/20 19:42
수정 아이콘
중국과 일본 모두 똑똑한 사람이 많죠.
어느쪽으로도 시각을 편협하게 고정시키지 말고 역사를 교훈삼아야 중국과 일본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7/20 23:52
수정 아이콘
역만없이긴 한데

이세계물이라고 치고 현재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 37년 일본의 천황이 된다면?
만약 일본의 입장에서 만주사변 후 37년 중일전쟁 발발 직후 라면 어떻게 행동하는게 가장 좋을까요?

중국이 의외로 안끝나니까....자원딸리고 그래서 동남아쪽 서구열강들 식민지 털다가 어그로 끌어서 봉쇄당하고 아 안되겠다 선빵치자! 해서 망한걸로 아는데.....

안되겠다 만주랑 조선까지만 딱 먹고 욕심 그만 부리자. 했으면...?
이리스피르
20/07/21 00:35
수정 아이콘
육군이 천황 말을 안들었겠죠.
20/07/21 00:36
수정 아이콘
아니....그런 질문이 아니잖아요 ㅠㅠ

그냥 일본이 어떻게 했어야 할까...이런거죠....
이리스피르
20/07/21 00:39
수정 아이콘
솔직히 그 유신?에 관여했던 정계인사들 죽어나가고 나서는 군국주의 일직선이라... 저때 되면 늦은거죠...
저런건 진짜 사람을 죽여서 해결해야되는 문제라...

그리고 언급하신게 37년 천황으로 빙의?? 하면 이니까요... 적당히 욕심 안부리고 넘어가자 해도... 육군이 말을 들을리가요...
20/07/21 00:45
수정 아이콘
천황 빙의는 그냥 요새 유행하는 이세계물 따라 써본거고 그냥 일본에게 최선의 시나리오는 뭐였을까 하는거죠

애초에 뭐 타임머신도 없는데 말도 안되는 질문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그때의 일본은 군국주의에 눈이 돌아가있었고 정상적인 사고하는 애들은 이미 죽었다라는 답변은 매우 감사합니다
Jedi Woon
20/07/21 01:04
수정 아이콘
오히려 천황을 커튼 뒤에 숨기고 군부가 꿍짝꿍짝 더 꾸며댔을 겁니다.
천황이 최상위 권력자라지만 실질적 지지세력이 없기 때문에 뭘 어찌할 능력도 없고, 37년이면 이미 기울대로 기울어진 상황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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