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아주 흥미로운 도서가 출판되었습니다. 제목은 [칭기스의 교환: 몽골제국과 세계화의 시작]입니다. 역사학자 티모시 메이가 저술한 책으로, 국내에서는 몽골사 전문가 권용철 씨가 번역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몽골과 중앙유라시아 역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서 관련 책들이 다수 출판되고 있는데,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 중앙유라시아 역사의 신이라 불린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별명이 호동 칸이라고 하죠)를 필두로하여 몽골제국 관련 책들이 다수 출판되었는데, 이에 다른 신진 학자들도 대중적인 교양서를 다수 출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출판된 것들만 해도 러시아를 지배한 [킵차크 한국(the Golden Horde)]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이 있고, 또는 몽골제국이 붕괴하면서 탄생한 후계국가들,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몽골의 유산을 이어받았는지를 설명하는 [몽골제국의 후예들]이라는 책도 출판되었습니다. 이 흐름 중에서 출판된 가장 최신의 도서가 바로 [칭기스의 교환]입니다.
2. 먼저 제목은 정말 섹시하게 잘 지은 책인 거 같습니다. 몽골제국이 세계에 어떤 임팩트를 주었나와 같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문장을 사용하기 보다 저자는 이런 클리셰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칭기스의 교환]이라고 명명했다고 합니다. 그는 콜럼버스의 교환(Columbian Exchange)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하는데, 적절한 표현인 것으로 보입니다. 콜럼버스의 교환이란, 말과 병균이 신대륙으로 건너가고 토마토 감자 코코아 같은 작물들이 구대륙으로 넘어가는 일련의 사건들을 포괄하는 말로, 세계사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저자는 몽골 세계제국이 콜럼버스의 교환만큼이나 세계사에 큰 분기점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저자가 제기한 또 한 가지 지적사항이 있는데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몽골제국은 세계제국이었고, 몽골제국에 대한 기록은 몽골어는 물론 위구르어, 페르시아어, 아랍어, 슬라브어, 티벳어, 중국어(한문) 등 굉장히 많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어느 한쪽 사료에만 의존하여 몽골제국을 해석하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최근 학계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 가령 동아시아의 원나라 전문가, 페르시아 및 중앙아시아 전문가, 러시아 및 유라시아 전문가 들 간의 협업으로 몽골제국을 보다 입체적이며 포괄적으로 조망하려고 하는 시도가 있다고 합니다.
4. 본 책의 1부는 몽골제국의 탄생과 팽창에 대한 일반적인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칭기스칸이 누구였는지, 그가 어떻게 주변 부족들을 북속시켰는지, 그의 후계자들이 어떻게 중동을 정복하고, 중앙아시아를 정복하고 또는 유럽 앞마당까지 진출하였는지 등을 서술하는데, 이 부분은 아마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대부분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들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부분인데, 몽골제국이라는 국가가 아직 생소한 독자에게는 분명 중요한 인트로일 것입니다.
5. 이 책의 강점은 2부에서 설명하고 있는 몽골제국의 경제, 무역, 행정, 종교 등 실제로 칭기스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경제에 대한 관념]입니다. 몽골의 칸들은 칭기스칸 본인부터 시작해서 상업에 대해 실용적인 관점을 갖고 있었고, 상인들을 우대하였습니다. 약간 과장에서 말하자면 오늘날 국가들이 해외자본유치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듯이 몽골의 칸들은 상인들을 계속 끌어들이고자 노력했고, 동서를 상인들의 카라반에 [개인재산으로 투자]했다고 합니다. 특히 우구데이 칸은 상인들에게 높은 값을 쳐주면서 그들의 물건을 시중가보다 높게 쳐주면서 구매했다고 하는데, 꽤 놀라운 일입니다.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보자면 국왕에게 [개인재산]이란 게 없고, 국왕이 상인으로부터 물건을 구매하거나 또는 대출을 받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데, 몽골의 군주들은 그런 점에서 오히려 서양의 군주들과 비슷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국가권력과 일부 대상인들이 결탁하여 독점상인으로 군림하여 여러 폐단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어쨌든 꽤나 신선한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6. [사유재산] 관련 또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관념이 심지어 내전이 벌어졌을 때도 유지되었다는 점입니다. 몽골제국이 분열하고 칸들이 서로 전쟁을 벌일 때조차, A 칸국에 있는 칸은 B 칸국에 있는 자기 재산에서 나오는 수입을 계속 제공받을 수 있었고는 반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한국과 일본이 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한국인의 재산이 일본에서 압류당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과 같은 일이죠.
7. 몽골제국의 행정 또한 인상깊은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몽골인들은 어느 한 민족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민족들을 등용하여 행정을 꾸렸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처음 제국으로 부상했을부터 제국의 행정은 몽골인이 아니라 거란인 황족 야율초재가 도맡았습니다. 여담이지만 거란은 본래 키타이라고 발음하는데, 요나라 때부터 대제국을 이룩해 북중국을 지배했던 민족입니다. 그래서 키타이가 곧 중국을 의미하게 되는 말이 되었고, 러시아를 포함한 슬라브어권에서는 중국을 여전히 키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참고로 홍콩의 캐세이퍼시픽(Cathay Pacific)항공의 Cathay도 키타이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기조는 쿠빌라이 칸 시대까지 이어졌고, 그는 중원을 정복한 이후에도 많은 수의 색목인을 통해 제국을 다스렸습니다. 베네치아인 마르코폴로도 그 중 한명이었죠. 그리고 쿠빌라이가 건설한 도시 칸발리크(Khanbaliq)는 무슬림이 건설한 도시였고, 한족은 이를 대도(大都)라고 불렀으며 이는 후일 북경이 되었습니다.
8. 몽골제국은 한편 종교적으로 상당히 개방된 제국이었습니다. 그들은 칸의 권위를 위협하지 않는 선에 그 어떤 종교도 수용했습니다. 이슬람, 기독교(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정교회, 로마가톨릭 등), 불교 등. 심지어 각 교파의 사제들을 불러 어느 신앙이 가장 우월한지 토론하게까지 했다고 합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몽골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몽골인들의 영적 구심점이 된 것은 티벳불교였지만, 쿠빌라이 시대까지만 해도 기독교 또한 꽤나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부분인데, 의외로 몽골제국 상층부의 귀족부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기독교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에 호의적인 관심을 보인 칸들도 종종 있었고, 쿠빌라이 또한 칸발리크(북경)에 주재한 프란치스코회 소속의 로마가톨릭 선교사에게 자네의 신앙이 그렇게 좋은거라면 선교사 100명을 한번 보내오라라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그러한 파견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오늘날 북경에 최초의 로마가톨릭관구가 생긴 것은 쿠빌라이 치세 때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가톨릭 선교사들은 신약성서를 위구르어(또는 위구르문자 - 당시 몽골인들은 위구르문자를 사용)로 번역했는데, 북경에 거주하는 사람이 위구르어로 성서를 번역한다는 것은 당시 북경에서는 위구르어가 국제어(lingua franca)였다든지 또는 한족을 상대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필요가 없었다든지 등의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10.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몽골제국의 탄생은 세계사의 탄생이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유라시아 전체가 하나의 교통망으로 연결되어 물자와 사람이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었고, 새로운 발명들 또한 아주 짧은 시간에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가지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화약과 나침반 등이죠. 그리고 세계 전체를 조망하는 역사를 탄생시켰는데, 몽골제국의 궁중역사가 라시드 웃딘은 [집사]라는 역사서를 저술하였고, 여기에는 몽골의 역사뿐만 아니라 몽골이 정복한 무수히 많은 민족들의 역사까지, 심지어 가보지도 못한 서유럽의 역사까지 망라하려고 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아르메니아에서 투르크인들과 몽골인들을 상대한 아르메니아계 가톨릭 귀족은 훗날 프랑스 파리에 건너가 프랑스어로 [동방의 역사]를 저술하였고 중국(키타이), 돌궐, 호레즘, 쿠마니아, 인도, 페르시아 등 14개국의 역사를 포함했을뿐만 아니라 몽골의 역사도 포함하였고, 마지막으로 서유럽과 몽골의 동맹을 통해 성지를 다시 탈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몽골세계제국, 우리나라와도 사실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고려왕국과 고려국왕의 위치가 무엇이었고, 세계사적 관점에서 고려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