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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7/29 21:53:17
Name 우주전쟁
Subject [일반] 언니와 심하게 비교당한 동생 (수정됨)
영미문학사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세 자매를 꼽으라면 역시 브론테 자매들을 떠올릴 것입니다. 언니인 샬럿 브론테는 [제인 에어], 가운데 에밀리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 막내인 앤 브론테는 [아그네스 그레이]로 모두들 문학사에 자신들의 이름을 남겼습니다.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아그네스 그레이]는 모두 같은 해에 초판이 출판되었습니다. 그런데 막내인 앤 브론테의 작품 [아그네스 그레이]는 약간 평가가 처지는 느낌이고 샬럿의 [제인 에어]와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 이 두 작품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제인 에어][폭풍의 언덕]은 출판 당시 극과 극의 반응을 얻었다는 점입니다. 언니 샬럿의 소설 [제인 에어]는 출판되자마자 많은 호평을 받으면서 곧 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스스로를 존중하면서 꿋꿋하게 자신의 사랑을 지켜 나가는 주인공 제인 에어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생 에밀리의 상황은 좀 달랐습니다. 지금이야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허먼 멜빌의 [모비딕]과 함께 영문학사 3대 비극이니 서머싯 몸이 선정한 세계 10대 소설 가운데 하나이니 하는 평가를 받으면서 19세기 대표적인 영국소설의 하나로 자리매김했지만 1847년 이 작품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의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두 가문을 파멸에 이르게 한 소설 속 주인공 히스클리프의 비도덕적인 행위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내용이다 보니 그래도 소설이라면 직접적으로든 혹은 암시적으로라도 삶에 있어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당시 독자들과 비평가들이 이 소설을 선뜻 받아들이기엔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사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히스클리프는 "견공의 자제분"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들은 모두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람이란 언제든지 "견공의 자제분"이 될 수 있으며 심지어 그걸 부끄러워 하지도 않는다는 점을요). 어쩌면 자신의 감정에 지나치게 솔직하고 도덕적인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모습은 오히려 현대에 와서 더 해석되고 받아들여질 여지가 크다는 생각입니다.

당시 비평가들이 이 두 소설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들을 보면 당시 이 두 소설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게 달랐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Here all the faults of Jane Eyre (by Charlotte Brontë) are magnified a thousand fold, and the only consolation which we have in reflecting upon it is that it will never be generally read.

여기 [폭풍의 언덕]에서는 [제인 에어]의 미숙한 부분들이 1,000배나 더 확대되었다. 이 소설을 생각할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은 이 소설이 앞으로 절대 널리 읽히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



[How a human being could have attempted such a book as the present without committing suicide before he had finished a dozen chapters, is a mystery. It is a compound of vulgar depravity and unnatural horrors….

어떻게 (작가가) 인간으로서 이 소설 12장 분량을 완성하기 전에(폭풍의 언덕은 총 34장으로 구성되어 있음) 자살하지 않고 이 소설을 끝까지 쓰겠다고 시도할 수 있었는지 정말 미스테리하다. 이 소설은 저속한 악행과 비정상적인 공포의 조합이다.]



무엇보다도 압권은 다음과 같은 비평 내용이었습니다.

[Read Jane Eyre is our advice, but burn Wuthering Heights….

[제인 에어]를 읽으십시오. 그리고 [폭풍의 언덕]은 불태워 버리세요...]



에밀리 브론테는 자신의 유일한 소설 [폭풍의 언덕]이 출판되고 난 이듬해인 1848년 병으로 일찍 죽습니다. 결국 살아생전 자신의 작품이 화려하게 부활하는 것을 보지는 못한 셈이죠. 그래도 지금은 공평하게 언니, 동생의 작품들이 다 명작의 반열에 올랐으니 저 세상에서는 자매들끼리 흡족해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9297819.jpg
당시는 근본없는 작품...지금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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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9 22:09
수정 아이콘
유명한 고전 교양서들은 가급적 많이 보려고 노력했었는데, 그 와중에서도 도저히 못 읽겠던 책이 폭풍의 언덕이었어요. 이제와서 다시 집어들 것 같진 않지만, 살짝 아쉽네요.
코드읽는아조씨
20/07/29 23:27
수정 아이콘
군대에서 읽긴 했는데 너어어무 졸려요 몇번 집어던졌는지...
우주전쟁
20/07/30 10:24
수정 아이콘
저도 최근에 독파했는데 주인공에 대한 이해의 노력을 조금만 줄이시면 한 번 읽어볼만 하지 싶습니다. 어차피 고전소설이라 현대의 장르소설이 주는 재미는 기대할 수 없는 거니까요.
VictoryFood
20/07/29 22:11
수정 아이콘
지금은 폭풍의 언덕이 더 평이 좋죠.
막내 동생 지못미 ㅠㅠ
及時雨
20/07/29 22:11
수정 아이콘
이 집안 진짜 불쌍맨은 샬럿이랑 에밀리 사이에 태어났던 청일점 브란웰 브란테입니다.
맨날 누나랑 여동생한테 비교 당하던 탓인지 가족 초상화 그린 거에서 자기 얼굴만 지워버렸더라고요...
https://www.independent.co.uk/news/long_reads/branwell-bronte-emily-charlotte-anne-family-haworth-yorkshire-a7940396.html
거짓말쟁이
20/07/29 22:54
수정 아이콘
역시 기자처럼 쓰레기 되기 쉬운 직업 평론가..
20/07/29 23:12
수정 아이콘
제인 에어는 초딩때 봤는데 무지 재밌어서 여러출판사 버전으로도 봤는데 지금은 라노벨이나 무협,판타지 보고 삽니다~
Rorschach
20/07/29 23:26
수정 아이콘
폭풍의 언덕은 원작은 못보고 영화화 된 것 중에서 카야스코델라리오가 캐시로 나왔건 것만 봤는데 주요 인물들이 하나같이 너무 싸이코같아서 보기가 힘들더군요 크크
호야만세
20/07/30 00:30
수정 아이콘
중학교 1학년때 처음 읽었는데.. 뭔가 그 특유의 우울하고 음침한 느낌 때문에 멘탈이 흔들려서 중간에 그만뒀던 책...히스클리프가 캐서린 무덤 파는 장면에서 덮었던 책..그래도 생각난 김에 한번 더 읽어 봐야 겠어요.
율리우스 카이사르
20/07/30 04:40
수정 아이콘
고딩 때 자매작품이라고 둘다 봤는데 전 제인에어는 걍 성장소설 같은 가벼운 작품이라고 느낀 반면 폭풍의 언덕 은 너무 빠져서 봤던거 같아요.
시린비
20/07/30 10:32
수정 아이콘
설령 진짜 작품이 별로더라도 어떻게 자살안하고 이거썼냐 수준의 글은 너무한거 같아요. 그냥 평점 낮게 주면 되는 것을
우주전쟁
20/07/30 11:18
수정 아이콘
영국 애들이 이상하게 비평 이런데서 좀 과하게 치는 경향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유머 감각도 좀 시니컬하고...
20/07/30 12:38
수정 아이콘
폭풍의 언덕 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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