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넉넉히 잤지만 몸은 더 자자고 난리다. 배고픈거보다 잠이 먼저다. 폰을 쳐다본다. 음? 잘 안보는 학원 단톡인데...왜 채팅이 이리 쌓였냐?
....젠장. 안보고 그대로 잤으면 뭐될뻔했네.
온몸에 식은땀이 흐른다. 옷은 그냥 아무렇게나 집어 입었다. 마스크를 집어 썼다. 당뇨 있는 아버지에게 외쳤다. 이제부터 나한테 접근하지 마시라고. 최소 2미터 이상 거리 유지하고 마스크 쓰고 계시라고. 어머니도 마찬가지시라고.
확진이라고? 코로나? 신종플루도 메르스도 먼이야기였는데 코로나는 이제 먼이야기가 아니다. 내 이야기가 됐다.
학원에서 같이 강의듣던 분이 확진이시란다. 광주 X번. 씻지도 않았다. 양치도 안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다. 일단 검사 받아야한다. 그리고 사람은 피해야 한다. 사람이 오면 수배된 사람마냥 사람 피해서 다른 골목으로 들어간다. 당뇨 있으신 아버지, 산모도우미 하시면서 즐거우신다는 어머니가 먼저 생각난다. 젠장. 뭐 한것도 없는 자식인데. 그나마 좀 쉬고 좋아 하시는 일 하시는 건데. 시X
아픈 발바닥 때문에 20분 정도 걸리는 보건소 옆 선별진료소를 10분 만에 주파해버렸다. 사람 피해가며 이리저리 돌았는데.
온몸을 방호복을 입은 분이 건네주신 문진표를 작성하는데 온몸에 식은땀은 식은땀대로, 덜덜 떨리는 손. 내 몸이 아닌거 같다. 체온은 35.4도. 근데 느낌은 40도는 넘은것 같다. 시x 어제 편의점 갔는데. 버스 세번 탔는데. 버거킹 갔는데. 마스크 안내렸겠지? 젠장 어떡하지?
문진표 작성하고 검사를 받는다. 나중에 단톡으로 듣기엔 학원 동기분들은 코에 면봉을 밀어넣을때 고통이 심하셨다던데 나는 코보다는 목으로 밀어넣는 면봉이 더 고통스러웠고 토악질이 나올뻔 했다. 속이 비어서 다행이지.
방으로 들어와서 자가격리가 시작됐다. 타구에 사는 분들 중에는 검사결과가 나온 분들이 계셨다. 제발 추가 확진자가 안나타나길 바랬는데 한분이 확진되셨다. 젠장.
사람 피말린다는게 이건가 싶다. 문자 통보가 된다길래 폰을 보며 이리 뒤척 저리뒤척 하다가 어느샌가 잠들다 깼다. 이걸 몇번 하고 일요일 오후. 음성판정. 31일까지의 자가격리 안내가 왔다.
자가격리 앱 깔고 담당 공무원과 통화하면서 요청했다. 음식이나 그런거는 그렇다 치더라도 체온계와 소독제는 제발 빨리 보내달라고. 결국 일요일 월요일을 거쳐 화요일에 왔다. 젠장. 그 사이에 체온이 오르면 어쩌려고...
9시 2시 6시 검사하고 앱에 건강 상태를 업로드한다. 체온 1도라도 올라가면 미치겠다. 단톡에서는 정상체온이고 37.5도부터 문제라지만 내 입장에서는 체온 1도 1도가 정말 다르다. 땀은 땀대로 난다. 씻는건 씻는건데...정작 내가 미치는 건 따로 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나의 가장 안전한 곳인 집에서 마스크를 끼고 나를 대면한다는게, 내가 가족들을 대면할때 멀찍히 떨어져서 혹은 문을 닫아두고 대화한다는게 미칠노릇이다.
2주가 되면서 또 이런게 적응됐다. 같이 사용하는 냉장고에서 뭐라도 꺼내려면 손소독제 바르고, 일회용 장갑 낀 다음 꺼낸다. 처음엔 진짜 적응 안되고 속으로는 화가 나던거였는데 이젠 어쩔수 없다는걸 일찍 자신에게 납득시켰다. 이거라도 안하면 진짜 가족들 x된다는걸 언론이든 어디든 다 본거니까.
짜증난다. 내 방에서 한발자국도 안나갔는데 격리 위치에서 이탈했다고 앱이 계속 울려대고 담당자가 계속 전화해온다. 내가 미쳤다고, 뭔 돈이 있다고 격리지를 이탈하나. 결국 와이파이를 끄고 데이터로 바꾼 다음 위치정보를 리셋 한 뒤에야 맵 위치정보가 제대로 돌아온다. 빌어먹을 구글 맵..
수요일...목요일에 격리 해제를 하기 전 검사를 받는다. 여기서 음성 나와야 격리해제 된다.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생각 든다. 이 개고생 했는데 확진이면? 음성이라는 생각은 머릿속에 들지도 않는다. 그냥 난 코로나 양성이다. 안내 문자에서 오는 격리 해제전 검사에서 2명이 확진된게 포인트 500짜리 고딕 폰트로 보인다. 저게 남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 같아진다.
목요일 오전 해제 전 감사를 위해서 간다. 역시 똑같다. 아니 좀 다르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마스크만 끼고 갔는데 이제는 손 소독을 한 다음 일회용 장갑을 낀다.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어머니는 전화하셔서 우산 안가져 갔냐고 걱정하신다. 근데 난 일부러 안가져간거다. 일단 난 확진이다. 양성이다. 장갑을 꼈다 한들 우산을 쓰면 손에 있는 바이러스가 옮길수도 있다. 그러니까 일단 최대한 아무것도 안쓴다. 물론 사람 오면 수배자마냥 다른 골목으로 튼다. 역시 입안에 넣는게 코보다 더 고통스럽고 역하다. 밥 안먹길 잘했지.
머릿속에서는 난 그냥 확진자다. 근데 음성일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니 역시 잠 못잔다. 아무것도 안된다.
금요일 오늘. 격리해제는 정오에 된다는데...전엔 9시 반에는 결과가 나왔는데 11시가 되도록 결과가 안나온다. 왜지? 짜증이 밀려온다.
결국 담당자에게 전화했다. 왜 결과가 안오냐고. "다른 구 계신 분들은 어제 밤에도 결과 나오신분 계신데 저번부터 처리가 왜 늦는거냐" 이런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이 담당자가 무슨 잘못인가. 광주지역에서 빌런 하나 때문에 확진자와 자가격리자가 마구 쏟아져 나왔는데. 여기에 자가격리 이탈자가 나왔다는 대답과 최대한 알아보겠다는 말에 "네 빨리좀 처리해주세요" 라고말할수 밖에 없었다.
11시 50분. "XXX님 검사 결과 음성입니다."
뭔가 환호가 나올거 같은데..그냥 그랬다. 마스크 벗고 나서 부모님께 음성이라고 말씀드리고 그간 쌓인 빨래감을 가져와서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음 방 청소를 했다. 땀이 물처럼 흐른다. 전부 다 꺼낸 다음 샤워한다. 그리고 옷 갈아입고 단골 카레집으로 직행했다.
"으..너무 덥다."
지난 2주간 격리하면서 땀이 나도 덥다라는 느낌보다는 체온이 올라가면 어떡하지? 맛을 못느끼고 냄새도 못맡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하다 격리해제하자마자 나온게 덥다라니. 헛웃음이 나왔다.
"건강검진 결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2시30분경 항상 오던 담당자로부터의 문자다.
"체온 36.5도. 특이사항 정오부로 자가격리 해제되었습니다. 더 이상 확진자와 자가격리자가 나오지 않아 편히 쉴수 있길 기원합니다."
2주간의 자가격리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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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저희 아버지가 겪었던 일과 비슷하네요
장염증상때문에 응급실가서 입원좀 하려고 했는데 열이있어서 코로나진료소로 가서 열재고 그날 저녁에 결과나와서
다음날 진료보러가서 입원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부지도 항생제 맞으면서 영양제 맞으니까 바로 살거같다고 하시던데..크크
이틀이라니 더 고생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