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비어런스의 발사 성공으로 제가 들르는 유일한 커뮤니티 사이트인 pgr21에도 관련 글들이 많이 올라오네요.
[우주전쟁]님이 올리시는 글들 저도 잘 읽고 있습니다 :)
전 오퍼튜니티가 주인공인 그림책의 그림을 그린 적이 있습니다. 재작년부터 1년간 오퍼튜니티 자료를 찾아가며 고생했던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작업하면서 느꼈던 오퍼튜니티에 대한 이야기와 그림 몇장을 남겨보겠습니다.
(맘에 든 그림이라 표지에도 썼습니다...)
보통 글/그림을 혼자 다 하는 그림책은 투고를 하던가 아니면 아는 편집자가 '혹시 가지고 있는 더미 있으면 보여줘봐'하고 물어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글과 그림이 따로인 그림책은 대부분 먼저 글작가에게 글을 받은 출판사에서 글과 잘 맞겠다 싶은 그림작가에게 연락을 하여 작업이 이뤄집니다.
어느날 그때까진 안면이 없던 출판사에서 오퍼튜니티라는 화성탐사로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건데 혹시 관심이 있는지 궁금하다란 연락이 왔어요.
이과출신이기도 하고 워낙 우주에 관심이 많기도 해서 바로 승낙했습니다. 게다가 몇년전에 첫째가 지인에게 꽤 정밀한 오퍼튜니티 모형을 선물받았어요. 그 당시엔 아무 생각없이 '어? 이렇게 생긴 로봇도 있네?'하고 넘겼었는데, 전화를 끊고 갑자기 그 모형이 떠오르면서 내가 그릴 운명인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논픽션류에는 자료가 꽤 중요한데 그걸 이미 충족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어쨌거나 한동안 오퍼튜니티만 생각하고 그리면서 살다보니 머나먼 화성땅에서 천천히 나아갔던 이 탐사로버의 매력이 점점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 고민하다 도달한 결론은...
1. 역시 그림을 그릴 때는 생김새가 제일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우선 처음으로 눈(카메라들)과 머리가 달린 귀여운(?) 형태로 만들어졌다는게 핵심이었습니다 (딱 월E 느낌!).
첫 화성탐사로버는 영화 마션에 나왔던, 마치 태양전지 달린 상자각에 안테나와 바퀴 여섯개를 달아놓은 듯한 '소저너'란 로버였어요. 나름 귀엽기도 하지만 마션에서도 그렇고 감정이입이 좀 힘든 생김새죠.
하지만 오퍼튜니티는 그리면서 자꾸만 얘한텐 감정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눈과 긴 목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아마 소저너가 주인공이었으면 딱딱하기만 해서 그리는 것도 좀 힘들었을 겁니다.
2. 서로 다른 운명에 처한 쌍동이 로버.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둘은 똑같이 생겼고 동시에 만들어진 쌍동이 로버입니다. 물을 발견하리란 기대를 한껏 짊어지고 먼저 출발한 스피릿이었습니다만, 별 소득없는 곳에 착륙하면서 고전했습니다.
그에 반해 얼마 후 발사된 오퍼튜니티는 떨어진 바로 그곳에서 블루베리라 불리는 물의 흔적을 발견하는 행운을 거머쥡니다. 또 진 주인공답게 바퀴가 모래에 빠져 오도가도 못하게 되는 위기에도 처합니다. 하지만 든든한 조력자인 과학자들이 지구에서 급하게 화성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놓고 시행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겨우 빠져나오며 극복합니다. 자료조사차 다큐를 보면서 이 부분에선 왠지 소년만화의 한장면처럼 오퍼튜니티가 한단계 성장한 느낌도 들더라고요.
그에 질세라 스피릿도 고장난 바퀴 하나가 땅을 긁으며 가는 바람에 우연히 그 파인 곳에서 규사 성분을 발견하고, 화성에 미생물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성과가 계속 이어지기 전에 스피릿은 오퍼튜니티에 비하면 너무나 일찍 신호가 끊겨버리죠. ㅜㅜ
'평생 만날 수 없는 쌍동이 형제의 극과 극으로 다른 운명'...
3.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기간동안의 임무 수행.
언제나 초월자들은 매력적입니다.
이 정도로 정리되더군요.
나름 2년간 찾고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하면서 애착이 커졌나 봅니다.
퍼시비어런스의 활약도 기대됩니다.
이번에 화성에 가게 되면 거의 실시간으로 찾아볼 것 같아요.
* 작년에 방문했던 미국의 케네디 우주센터에는 기념품샵 앞에 레고로 만든 거대 화성탐사로버가 있었습니다.
역시 레고는 대단하죠. 자료로 써야지 하고 찰칵!
* 벌써 1년도 더 전의 일이긴 하지만 그림 그리던 과정도 몇 장 올립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던 아들의 모형
속표지에 쓰려고 했던 그림인데 아쉽지만 안 쓰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