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0/08/16 15:33:26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역사] 윤치호의 미국관(美國觀), 그는 왜 대미개전을 지지했나?
윤치호는 구한말 지식인으로, 1883년부터 1943년까지 방대한 일기를 남겼습니다. 
그는 독립운동에 몸을 투신하지 않았지만 일제에도 협력하지 않고 오히려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면서도 이를 일본에 누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전시 체제에 들어가 중일전쟁, 나아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자 그는 적극적 친일 협력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는 자신이 일기에서 그렇게 욕하던 제국일본과 혼연일체가 되어 대미개전을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영미문명을 누구보다 옹호하던 자였는데, 왜 미국에 대한 개전을 지지하게 된 것일까요?

그의 미국관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1906년, 을사조약 이후로부터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나는 미국인을 좋아한다. 나는 알렌 박사를 사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에서의 미국자본 투자가 우리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확보할 것이라는 완전히 터무니없었고, 지금도 터무니없는 사실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미국인이 양도받은 금광 사업권, 서울-제물포 간 철도 사업권, 서울의 전차 사업권, 수도시설 사업권을 보라. 조선 반도 전역의 미국인 선교사 숫자와 영향력을 보라.

조선은 명백히 국가 규모에 비해 유럽의 단일 강국보다 더 많은 권리를 미국인에게 양도했다. 그러나 어느 나라가 제일 먼저 그 보호조약을 인정했는가? 미국이다! 조선에 대표를 파견한 정부 가운데 어느 정부가 제일 먼저 조선에서 대표를 철수시켰는가? 미국 정부다! 미국 다음으로 영국이 다른 국가들보다 더 많은 권리를 조선에서 획득했다. 영국은 조선이 일본의 손아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했는가? 그런데도 미국이나 영국 공사관은 권리를 강요할 때마다 미국 자본이나 영국 자본이 조선에 많이 투자될수록 그 보답으로 미국과 영국은 조선의 불행에 더 공감하고 도와주려고 할 것이라고 그럴듯하지만 지금은 탄로가 난 거짓말이다"

그 미국과 영국이 조선을 도와줄 것처럼 속삭이다가 완전히 배신한 것으로부터 이들에 대한 증오를 품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감정은 계속 지속되어 1930년대와 40년대에 더욱 강화됩니다. 

1938년 그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국가간 윤리나 민족간 윤리가 개인간 도덕 수준-이것도 불완전하지만-에 미치지 못하여 왔다. 정글의 법칙이 세계를 지배하는 최고의 법칙이고, 힘이 곧 정의라는 식이다. 귀중한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개발할 능력도 없고 방어할 힘도 없는 국가나 민족이 이 고통받는 지구에 더 이상 지장을 주지 않을 때라야 비로소 야심찬 혹은 공격적인 전쟁도 중단될 것이다. 세상이란 그러한 본성을 지닌 인간이 거주하는 세상일진데 일본,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제국주의적인 행위를 비난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사실상 유럽의 모든 열강은 일본이 약한 이웃 나라들에 공격을 가한 일로 먼저 돌을 던질 수 없다. 그런즉 일본이 극동지역에서의 백인들의 난폭한 오만함을 박살냈다는 사실에는 변호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일본은 백인종의 교만이 낳은 쌍둥이, 곧 앵글로색슨족이 극동아시아 국가들에 부과한 치외법권(治外法權)과 관세차별을 철폐했다. 바라건대, 영원히 철폐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상하이(上海)는 브로드 가든(Broad Garden) 정문에다가 “개와 중국인 출입금지”라는 현수막을 내걸 정도로 앵글로색슨의 야만성을 구현한 도시다. 상하이가 영원히 지옥에 떨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1939년에는 또 이렇게 썼습니다. 

"서울 집. 신문들에 따르면, 어제 오전 6시부터 일본 군사당국과 영사관이 텐진 지역의 영국 및 프랑스 조계를 봉쇄하여 조계 안으로 들어가는 모든 남녀를 검문・검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거만한 영국인 남녀들이 마치 첩자나 밀수꾼처럼 검색을 받기 위해 옷을 벗지 않으면 안 되는 수모를 당해도 고분고분 복종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라. 중국인들의 눈앞에서 오만방자한 앵글로색슨족의 체면이 땅에 떨어졌다. 나는 한편으로 일본인들이 영국인들에게 이런 식으로 인간적인 굴욕을 당하게 하는 게 조금 심하다고 생각하지만, 영국인들이 중국인들과 동양 인종에게 참을 수 없이 교만하게 굴었던 데 대한 죄 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예전에 영국인들이 상하이 공원으로 들어가는 문에다가 한자와 영문으로 “개와 중국인 출입금지”라고 크게 써서 걸어둔 현수막을 보았을 때 얼마나 서글펐는지 지금도 극심한 분노를 느낀다."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1940년, 그는 또 아래와 같이 썼습니다. 

"서울 집. 독일 군대가 26일에 칼레를 점했다고 신문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그렇다면 도버해협에서 영국 쪽이 독일 장거리포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영국과 프랑스는 마치 학교 야구단이 프로 베테랑팀을 맞아 고전하듯이 나치의 번개공습에 속수무책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앵글로색슨의 자만심과 꼴사나운 인종적 오만함의 풍선이 터질 때가 된 것 같다."

그리고 1941년 진주만 공습 당시, 윤치호는 이에 대해 아래와 같은 감상을 적었습니다. 

"서울 집. 미국 호놀룰루와 하와이제도 진주만에 있는 미국 해군기지가 어제 오전 7시 35분(하와이 시간)에 폭격기들과 함포들로부터 갑작스런 폭격을 받아 미 함대와 전투기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고 신문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루스벨트는 전통적으로 ‘깜짝쇼’를 대단히 좋아하는 것 같다. 장개석을 돕겠다고 고집을 피울 때부터 알아보았다. 일본에 철재와 석유 수출을 거부하며, 일본의 숨통을 죄기 위해 음으로 양으로 강경 조치들을 취하고 A단계, B단계, C단계, D단계 등 계속해서 경제 봉쇄를 단행함으로써 그는 태평양 연안의 모든 국가에게 저주를 내리게 될 전쟁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일본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을 시작한 이상, 백인종 특히 앵글로색슨족의 견디기 힘든 인종적 편견과 민족적 오만 및 국가적 침략으로부터 유색인종을 해방시키는 데 성공했으면 좋겠다."

"서울 집. 지금으로부터 56년 전 처음으로 상하이에 갔을 때, 잘난 체하는 영국인들의 조계 쪽으로 가다가 수초천 다리 바로 건너편 공원 어귀에 중국어와 영어로 ‘개와 중국인 출입 금지’라는 글귀가 적힌 긴 간판이 걸려 있는 걸 보고, 나는 설움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영국인들, 미국인들, 아니 백인들은 자기들이 정복한 모든 대륙 입구에 이런 간판을 걸어놓은 셈이다. 그러다가 이제는 일본이 성장해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 간판을 끌어내리면서 백인들을 향해 ‘우리도 좀 살아보자’고 외칠 수 있게 되었다. 오! 기도하건대, 제발 일본이 앵글로색슨족의 인종적 편견과 불의와 거만함이라는 풍선에 구멍을 뚫는 데 성공하기를, 그뿐만 아니라 풍선을 갈기갈기 찢으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수백 년 동안 유색인종들에게 열등감과 수치심을 안겨주는 도구로 써왔던, 당신들의 그 잘난 과학적 발견과 발명품들을 가지고 지옥에나 떨어져라!”

그는 지속적으로 영미국가들의 인종차별을 지적하면서, 일본의 승리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일기에서 일본의 지배를 잔혹하고 때로는 야만적임을 인정하면서도, 그리고 이를 자신의 개인일기에서 사적으로 비밀스럽게 비판하면서도, 일본의 승리를 기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대단히 모순적인 감정을 품은 것입니다. 같은 시기에 일본의 패전을 예측하고 있던 다른 조선인들도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개인적 편견과 트라우마가 얼마나 시야를 흐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코사카 호노카
20/08/16 15:54
수정 아이콘
자기 목에 목줄을 쥔 이를 응원하는 상황이, 납득이 안 가는 게 아니라 참 서글프기 짝이 없네요...
20/08/16 16:03
수정 아이콘
개와 중국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에 격분하면서도 또 장개석을 비웃고 있죠. 이미 저때쯤 되면 논리 모순이 파탄지경에 이르렀다고 봐야 할 듯
므라노
20/08/16 16:21
수정 아이콘
끔찍한 현실에 분개하지만 그걸 바꿀 능력도 의지도 없고 그렇다고 그런 무기력한 자신을 받아들일 수 조차 없어 귀를 막고 눈을 감아버리는, 그러고 분노를 다른 곳에 돌려버리는 유약한 인간이라 정말 추하기 그지 없습니다.

항상 윤치호처럼은 돼지 말아야지라고 스스로 되뇌입니다. 저랑 성향이 비슷하기에.
aurelius
20/08/16 16:27
수정 아이콘
청일전쟁 후 조선정부를 조언하던 러시아 공사 웨베르와 그의 부인은 윤치호 본인에게 직접 “자네는 능력은 좋은데 너무 비관적이야”라고 비판했습니다. 윤차호는 본인 빼고 나머지 모든 사람이 머저리라고 생각하면서 시종일관 다른 사람들이 사악하거나 멍청하다고 하면서 정작 그들 앞에서는 한 마디 하지 못했죠. 그리고 일기에서는 온갖 일에 비분강개하면서 정작 개탄스러운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 태어났다면 아마 전국구급 최고의 키보드워리어가 되었을 것입니다. 혹은 정작 직접 리스크를 지는 것은 싫어했기 때문에 진중권처럼 기명으로 칼럼 쓰기보다 방구석 키보드 워리어가 되었을 수도 있고요. 참 모순적인 인간입니다.
及時雨
20/08/16 16:26
수정 아이콘
영어랑 일기 2툴의 헛똑똑이로 남았죠 결국...
20/08/16 16:31
수정 아이콘
윤치호씨 이거 영혐이에요
뜨와에므와
20/08/16 20:02
수정 아이콘
구한말 지식인의 한계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
공염불
20/08/16 20:58
수정 아이콘
아이고 관심도 의미도 없다
지금 사회지식인, 지도층이란 인간들 하는 짓거리들보면...이런 인간한테 왜 관심을 가져야하는지
11년째도피중
20/08/17 16:05
수정 아이콘
사회 지도층이란 존재하지도 않는 존재들입니다만 굳이 이런 인간을 왜 관심을 두느냐하면 바로 [이 모든게 다 소용없다]는 혐오와 불신이 만들어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내 편이라고 생각한 독립운동가라는 사람들도 혐오하게 되고 도와주겠다는 자들도 결론적으로는 다 썩었다고 느껴 혐오하게 되고 모든 것에 대한 혐오가 절정에 이를 때 소위 말하는 흑화의 길을 가버린 게지요.
특이한 인물이 아닙니다. 언제든 등장했고 지금도 존재하며 앞으로도 존재할 유형의 인물이 바로 윤치호 입니다. 더 극단적으로 가면 이완용의 경우도 있습니다. [다들 나를 욕하고 있지만, 사실은 내가 조선 최고의 충신이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7698 [일반] 월급쟁이로 그리운 것 [20] style11385 20/08/18 11385 9
87697 [일반] [일상] 우울한 사람의 우울하지만은 않은 하루 [26] 꾸꾸7884 20/08/18 7884 9
87691 [일반] 21세기 세계 인권 운동에 대한 진지한 비판 [27] 데브레첸11559 20/08/18 11559 19
87689 [일반] [삼국지 떡밥] 유비의 인사 배치로 관우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51] 꺄르르뭥미10728 20/08/18 10728 0
87684 [일반] [샘숭] 갤럭시탭 S7 사전예약이 곧 시작 됩니다. [208] 길갈20335 20/08/17 20335 5
87683 [일반] (20200817) 범유행 직전입니다. 다시 위기의식을 가지셔야합니다. [85] 여왕의심복30528 20/08/17 30528 178
87682 [일반] 개신교와 코로나와 포괄적차별금지법이 짬뽕된 젊은 교인의 답답함 [57] 타는쓰레기12864 20/08/17 12864 44
87681 [일반] [칼럼] 日 경시하는 맨 마지막 나라가 되어야 한다 [152] aurelius18450 20/08/17 18450 50
87679 [일반] [시사] 벨라루스 집회 사상 최대, 러시아에 군사지원 요청 [24] aurelius12914 20/08/17 12914 1
87678 [일반] [보건] 전광훈 목사 확진 [338] 동년배25503 20/08/17 25503 12
87676 [일반] 올여름 알차게 쓴 헤드폰 KSC75 [16] 윤정11125 20/08/17 11125 2
87675 [일반] (일상) 장마는 나의 원수 [11] CoMbI COLa7496 20/08/17 7496 26
87674 [일반] 관현악 환상곡 "동요로 만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3] 표절작곡가6052 20/08/17 6052 4
87673 [일반] 노견을 먼저 보내주는 것 문제일까요? [28] 머리부터발끝까지11994 20/08/16 11994 8
87672 [일반] [보건] 부산시도 8월 17일 12시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됩니다 [8] 어강됴리8705 20/08/16 8705 1
87671 [일반] [시사] 일본의 재무장과 미국, 영국, 프랑스 묵인 [155] aurelius16454 20/08/16 16454 17
87670 [일반] 교육 목적의 체벌은 합당할까요? [149] 피잘모모10414 20/08/16 10414 1
87669 [일반] 오래된 친구와 다퉜습니다. [92] 누텔라에토스트13670 20/08/16 13670 0
87666 [일반] 그 교회 관련자가 의사집회에 참여(사실상 음향 시설 아르바이트)했다고 하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80] Brandon Ingram16527 20/08/16 16527 0
87665 [일반] [펌] 고령화에 대한 경제학적 생각. [23] 데브레첸7866 20/08/16 7866 2
87664 [일반] [역사] 윤치호의 미국관(美國觀), 그는 왜 대미개전을 지지했나? [9] aurelius8725 20/08/16 8725 6
87663 [일반] 우울한지 10년 되었습니다. [65] 꾸꾸11325 20/08/16 11325 27
87662 [일반] 서울 경기 지역 감염병 격리병상 포화직전입니다. [71] 여왕의심복28388 20/08/16 28388 109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