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에 살다보니 햇볕에 빨래 말리는게 쉽지 않다. 창을 통해 햇빛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베란다나 발코니처럼 거의 외부에서 말리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냄새에 민감한 사람은 알겠지만 쉰내가 한 번 나기 시작하면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초기에는 섬유유연제 등으로 커버가 되지만 심해지면 오히려 냄새가 섞여 고약해진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자기 자신의 냄새는 못 맡는다고 했다. 장마 동안에는 어쩔 수 없다 쳐도 다음주(오늘)부터 내 옷과 몸에서 쉰내가 나면 상대방이 얼마나 불쾌하게 생각할까 걱정이 된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봤다. 구연산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바로 2kg짜리를 주문했다. 1kg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지만, 2kg 가격이 1kg이랑 큰 차이가 없는데 2kg 사는게 개이득 아니겠는가? 주말동안 구연산을 팍팍 넣어 빨래를 했다. 솔직히 차이는 모르겠지만 일단 기분은 좋다. 근데 생각보다 훨씬 많이 남았다. 이과출신인 나의 감으로는 1.211kg 정도 남은거 같다.
인터넷을 찾아봤다. 구연산이 또 물 때(석회질) 제거에 기가 막힌다고 한다. 그래서 물통과 커피포트를 닦기로 했다. 참고로 내가 쓰는 커피포트는 유리로 되어있어 LED가 들어오면 영롱하다. 대신에 유리라서 금속재질에 비하면 내구성이 약할 수 밖에 없다. 갑자기 왜 커피포트의 재질 이야기를 하냐면 닦는 도중에 와장창 깨먹었기 때문이다. 강화유리라 그런가 쨍그랑이 아니라 파사삭 하면서 흩어지는 모습을 보며 내 멘탈도 바스라졌다.
마음을 추스르고 유리조각을 치우다보니 문제가 생겼다. 싱크대에 찌거기 거름망에 있는 유리조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냥 이것도 새로 하나 사기로 정했다. 그리고 과감하게 통째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저녁은 짬뽕밥을 먹었다. 생각보다 많이 매웠다. 입을 식힐 무언가를 찾다가 얼마 전에 샀던 복숭아가 보였다. 보나마나 깎는 도중에 매운 느낌은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먹기로 했다. 껍질을 깎고 과육을 도려내고 씨앗부분을 휙 던져 씽크대에 버렸다. 맛나게 복숭아까지 먹고 설거지로 숟가락과 칼을 씻는데 뭔가 이상하다. 물이 잘 안 빠지는 느낌적인 느낌.
잠깐 왜 이러지 생각하다가 거름망이 없다는걸 깨달았다. 아까 던져버린 씨앗은 어디갔을까? 설마 아니겠지 했지만 물이 안 빠지는 이유가 그거 말고 어디 있을까... 일단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아는 분 불러서 최대한 싸게 처리해준다고 했다. 물론 시간이 늦었으니 다음날 아침에 말이다.
다행히 생각보다 비용은 적게 들었다. 5만원. 근데 거기에 커피포트 3만원, 거름망 몇 천원, 구연산 1만원까지 대략 도합 10만원이 날아갔다. 씽크대에 복숭아 씨 버린 것도 나, 커피포트 깨먹은 것도 나, 구연산 산 것도 나지만 이 모든게 장마 때문에 시작된거 아니겠는가?
저주할거다 장마, 올해부터 넌 나의 원수다. 뭘 어떻게 할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알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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