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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8 12:17
사실 한중태수로 장비 대신 위연이 간 것도 한중보다 파서 지방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 생각을 합니다. 상용 쪽도 마찬가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상용이 파서보다는 덜 중요하죠. 이제서야 우리가 돌이켜보면 장비가 전진배치되는 것이 형주의 비상 사태와 병력 지원에 더 용이할 것 같겠지만, 당시에 제일 중요한건 익주 지방의 내부 반란 진압과 안정화가 맞으니까요. 물론 그것보다도 더 위협적인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유비가 한중으로 나오고 익주에 있던 병력들이 위험성을 감수하더라도 형주 방면으로 지원을 나오겠지만 당시의 정보로 얻을 수 있는 상황 판단으로는 그 정도까지라고 판단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는 와중에 오나라의 기습으로 형주가 순식간에 쓸려나갔고...
20/08/18 12:22
조운이 전투의 전면에 선 전투는 방통 사후 유비입촉, 제갈량의 1차 북벌 두가지가 있습니다. 입촉 당시 조운은 제갈량과 따로 떨어져 성도를 빙 돌아가는 공략루트를 단독으로 맡은 바 있습니다. 여기에 서브로 나섰던 한중 공방전과 이릉대전 시기에 강주에서 유비를 서포트 한 것이 있었습니다. 조운은 전면에서 큰 군공을 세운적은 없으나 군주, 사령관이 하달한 명령을 이행하는 능력이나 군대를 이끌고 후방지원 혹은 미끼역할을 위한 농성은 수준급으로 해낸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조운은 유비가 오를 치기위해 출정할때 말리면서 말한것에서 보이듯이 주적이 오가 아닌 위라고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제갈량의 노선과도 일맥상통 하죠. 따라서 조운이 손권과의 관계를 조율하는데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노숙이 217년에 죽고 손권과 여몽은 대놓고 형주를 먹을 생각을 하고 유비는 익양대치로 문제의 해결을 보았다고 보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문제가 있었지만 조운의 정치력이라면 양측의 갈등에 있어서 자신이 할 수 있을만큼 촉 측에 정치적 이익이 가도록 노력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관우도 6년 동안 형주를 지켰으니 정치력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관우의 정치력은 주로 내정의 측면으로 관우는 형주 다스리면서 수비를 강화하고 군대를 양성해 위나라에 선공을 가할 정도로 덩치를 불렸던 것이 가깝습니다. 실질적으로 유비세력 내부에서 정치력을 행사하지 않은 미축, 미방 형제와 달리 조운은 익주 평정 이후 익주의 재산분배건에서 제장 다수의 의견을 씹어넘기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킬 정도로 유비세력 내부에서 군주의 강한 신임, 정치적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만한 정치 감각이 있었으며, 철저한 FM 성향이기에 관우도 함부로 그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 설령 위와 오가 동맹을 맺는다해도 강릉은 상당한 요새이니, 만약 방어와 농성에 일가견이 있는 조운이 강릉을 틀어막고 관우는 양양과 번성을 치며 상용에서 제대로 지원해 줬다면 결과는 몰랐을 것입니다. 진수의 평이나 조운별전, 자치통감 등을 살펴보면 조운에게 한신처럼 정복전의 총책임을 맡기는것은 무리가 있어도 강릉을 끼고 서형주를 지키는 수준에서의 책임을 맡기는것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즉, 그는 관우의 조아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조운이 관우를 다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당시 명성이나 능력이나 촉의 장수 중 최고로 칭해지는 사람은 관우였습니다. 형주를 맡기려면 조직에서 제일 권위가 높은 2인자가 필요한데 관우말고 그런 사람이 없으니까요. 조운이 능력은 좋을지언정 유비 다음가는 수준의 권위를 가진것은 아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관우의 부장으로서 남군태수 직을 수행 할 수는 있습니다. 조운은 형주에 있을 당시엔 계양태수를 한 적도 있고, 이후의 실제 역사에선 이릉대전 당시 강주독을 하기도 했으며, 1차 북벌 당시에는 등지와 함께 의군을 이끌고 위나라 대장군 조진을 붙잡아 두어, 조진이 제갈량 본대에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조운군이 물자까지 싸들고 돌아가는것도 못 막게해 결국 논공행상에 끼지도 못하게 하는 등, 능력을 입증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미방이 익주로 가고 대신 후방에 철저한 FM 성향의 조운이 방비하고 있었다면 여몽이 그렇게 쉽게 뒤통수를 후려갈기진 못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형주를 지켜내거나 혹은 밀리더라도 관우군이 후퇴해올 시간을 벌었을 테니까요. 물론 조운이 군주의 직속무장으로서의 중앙을 감독하고 군주를 군사적으로 보좌하는 능력이 발휘되었기에 유비에게도 꼭 필요한 인재여서 조운을 데리고 있었던 것이기도 하기에 조운이 익주에 있었던 것이지만, 만약 조운이 그 능력을 발휘해 관우를 지원했다면 관우가 고군분투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게 제 의견입니다.
20/08/18 13:41
조운이 없으면 유비 본진이 허술해지죠.
심하면 반란이나 암살이 일어날 수도 있구요. 또 유비가 보기에 너무 FM적이라 사령관급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큰 일을 도모하려면 약간 무모해도 지를 줄 알기도 하고 위아래로 좀 다독일 필요도 있으니까요. 근데 그럼 관우는?!
20/08/18 13:57
예, 그래서 사실 유비 입장에서 조운을 빼기 뭣하죠. 반란이라면 이엄이라는 카드를 쓸 수도 있는데 군정면에선 확실히 조운만한 사람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FM 성향상 적어도 남군을 굳히는데는 최적의 카드입니다. 또 1차 북벌 실패후 일화나 순평후라는 시호만 봐도 조운이 그렇게 유도리가 없는 사람도 아니고요.
20/08/18 14:07
말씀하신대로면 조운이 남군에서 보조만 해줬다면 좋았겠네요 진짜
최선은 오나라와 화친을 도모하면서 위나라와 전쟁하는거고 적어도 관우가 목숨을 잃는 상황까진 안 갔을 것 같네요
20/08/18 16:53
저도 여기 동감이요. 방통이 안죽고 살아있어서 형주에 있는게 가장 좋았겠지만, 조운이 강릉에 있었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겠죠. 조운이 빠지면 성도의 무게감이 약해지겠지만, 황충도 있고 진도도 있었고, 막 한중왕 칭하고 별다른 반란도 없고 다들 깨갱할 때니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거 같아요.
20/08/19 01:49
유비를 오래 따르던 장수들(관우, 장비, 위연, 유봉, 관평 등)이 이미 모두 외부로 차출되어서 조운까지 빼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황충이나 익주에서 항복한 장수들에게 수도 방위를 맡길만큼 신뢰할 수 있느냐 문제인 것 같네요.
20/08/19 02:45
일단 수도 방위는 이릉대전 이후 제갈량이 성도에 부재했음에도 익주출신 양홍 등의 중신들이 다른 장수들을 동원해 반란을 평정하고 방위한 만큼 자체적으로 때울 수준은 된다고 봅니다. 문제는 미방에 대한 유비집단의 신뢰도 문제겠죠.
20/08/18 12:25
바꿀것도 없이 그냥 그대로 두고 시뮬돌려도 십중팔구는 관우가 죽지 않았을것같아요
아마 조조도 손권도 관우를 죽이는것을 원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을듯
20/08/18 13:52
어차피 장수급을 보낸다는건 다른 방면 문제 때문에 어렵고
미방 쪽은 그게 최선일 것이고 상용에서 원조가 갔어야만하니 결국은 감찰관 문제로 귀결될건데 원조를 보낼만한 판단을 하고 요구할 싸가지 넘치는 유망주라면 마속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20/08/18 19:40
애당초 일각에선 맹달이 주변 태수들과 연계해서 구원군을 때맞춰 보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몽과 육손도 바보가 아니라 상용에서 도와주러 올 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관우가 맥성 도착하기 전에 육손이 직접 가서 구원군을 박살내버렸다고 하더군요.
20/08/18 19:56
맹달이 스스로 위나라에 망명할때 유비에게 쓴 글에서 암시되는 내용입니다. 실제로 육손에게 격파된 상용쪽 인원도 있고요. 애초에 지원군 보내 달라 할때 보내 줬으면 체면은 섰겠지만 그러지 않았으니 그래서 결국 맹달이 망명을 선택했겠습니다만...
20/08/19 01:20
하긴 관우가 지원 요청했던 건 위기상황이 아니라 7군 수몰시키고 기세등등한 상황에서 병력을 보내달라고 한거라 맹달 입장에선 아 여기도 갓 점령해서 불안하고 관우는 저렇게 잘싸우고 있는데 우리 병력 굳이 빼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 만도 했고, 막상 관우가 위기에 빠졌을 때(연의의 시점이기도 하죠)는 병력을 보냈으니 딱히 큰 잘못을 한 건 없는 것 같은데.... 유봉-맹달이 관우의 부하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원군 요청이니 자기 판단으로 행동하는거니까요. 그런데 자기 양아들까지 죽게 할 정도로 유비의 분노가 워낙 심했으니 방법이 없긴 했죠.
20/08/19 01:40
사실 그것도 있지만 유봉과의 갈등이 첨예화 된 탓도 컸죠. 당장 유비가 상용을 잃고 패전한 유봉의 죄로 제일 먼저 든게 관우의 죽음보다도 맹달을 왜 투항시키고 상용을 잃었는가에 대한 것이었으니까요.
20/08/18 12:35
익주 내부와 한중을 언제든지 드나들수 있는 위치에 장비를 선택한건 저는 맞다고 생각해요.
유비의 가장 중요한 지역은 형주가 아니라 익주니까요. 관우가 손권과의 외교를 등한시 하면서 북진한건 그냥 실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비만 안왔어도.. 우금이 신속하게 군을 운영했어도 (그전까지 우금의 역량을 생각하면 도대체 수몰당하는동안 왜 가만히 있었나 싶긴합니다.) 성공하기 힘들었을테니까요. 물론 거기서 우금의 7군을 수몰시키고 양번을 벼랑끝까지 몰아붙인건 진짜 관우를 리스펙할수밖에 없긴하지만요.. 저는 관우는 손권을 가장 조심했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강이남의 위치한 왕조가 멸망하는 루트는 대부분 형주에서 거슬러 올라오는것이었죠. 위 세력이 움직이기 힘들때 관우가 육군 수군 이끌고 강하를 쳐서 올라가기 시작했으면 오는 극도로 위험했을거라고 보입니다.. 육손이 이릉에서 뚫렸으면 같은 그림이 나왔을것이구요. 손권이 괜히 형주를 욕심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반면 형주에서 촉을 들어가는건 매우 어려운 일이죠. 촉오동맹이 맺어지려면 결국 형주는 오에서 가져가야 갈등의 소지가 없어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라인이 서로 공격하기 딱 껄끄럽기때문에요. 그런의미에서 관우의 전투력은 리스펙만할만하지만 형주의 지배자로서 옳은 움직임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관우는 제무덤을 판게 아닌가 싶습니다
20/08/18 12:39
여담이긴 한데 오나라가 무너질 때랑 남조의 진나라가 무너질때는 사실 형주에서부터 무너진게 아니라 익주, 형주를 비롯해 회남까지 전방위적으로 한꺼번에 밀고 들어와서 무너진 겁니다. 남송은 양번이 무너지고 우수수 무너진게 크지만요.
20/08/18 12:44
말씀대로죠 단순 형주를 언급한건 예주, 서주, 양주북부를 차지한 위의 전선과의 구분을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익주+형주를 가진 유비가 손권에게 있어 엄청난 위기감을 불러일으켰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몽을 극찬한 이유도 거기서 나왔을것같구요
20/08/18 13:00
사실 관우 입장에선 남형주가 두개로 쪼개진 시점에서 그런 시도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오나라가 남형주를 다 먹으면 영안에서 방어선이 정해지고 촉한이 남형주를 다 먹으면 강하에서 방어선이 결정되는데 관우가 남서형주만 가진 상황에서 오나라를 친다? 강하만 보유하고 있으면 장강과 한수가 만나는 강하에서 한점으로 다 막아 낼 수 있습니다. 오나라가 무너질때랑 남조의 진나라가 무너질 때는 여기에 결정타로 회남전선이 구축되지 않았기에 거기가 무너져서 결국 멸망한거죠. 회남전선이 구축된 남송이 양번이 무너진 후에 앞선 사례와 달리 가사도가 아직 15만 대군을 동원할 수 있었고 천천히 무너진것과 사정이 다른 이유가 이거고요. 그러니 손권이 딱하게도 계속 회남전선 구축을 위해 합비를 친게 아니겠습니까.
20/08/18 13:11
결국 강하가 핵심인데 제가 오의 군사능력을 너무 무시하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수이남의 위를 상대하기 위해 본진에는 언제나 병력이 있어야하고 그렇기때문에 적벽에서 2만 이릉에서 5만 제갈각 시대쯤 가면 더 굴리는 숫자가 늘어나긴 합니다만 오의 특성상 군사력에 하자가 있는 점을 낮게봐서요. 물론 오의 수성 능력은 뛰어났지만 그건 장강을 낀 위와의 전투였고 막강한 수군을 보유했던 관우와 관우가 형주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를 보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서.. 제가 관우를 너무 높게 평가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20/08/18 13:18
아니 저도 관우의 능력을 높게 평가합니다만, 오나라의 경우엔 수군 전력부터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당장 번성전 당시 관우의 수군은 그야말로 무적, 위나라 수군은 방덕의 조각배 빼고는 관우 수군 앞에 나타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7년전 청니대치에서 관우를 한수에서 밀어붙이던 때랑은 정반대 상황이고 그래서 관우가 한수 타고 양번을 마음껏 공략할 수 있었던 거지요.
하지만 오나라의 경우는 다릅니다. 관우가 10여년간 조련해 온 수군과 맞먹는 정도의 강력한 수군을 보유한 오나라입니다. 위나라조차 오나라의 수군에 밀려서 유수구를 건너지를 못했는데 강하에 집결된 오나라 수군을 관우가 쉽게 돌파할 수 있었을까요? 전 조금 회의적입니다. 사실 애당초 이러면 오나라의 회수 방면이 약해져서 위험해질수도 있고 관우도 오나라는 천하삼분지계를 위해선 살려 둬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쳐들어갈 생각도 없었을 겁니다.
20/08/19 01:59
제가 생각하기엔...
1) 유봉과 맹달이 양번을 포위하고 있을 때 도착해서 양번이 더 빨리 함락되면... 관우는 양번에 주둔하고, 조조군은 완에 주둔하고, 오는 강릉이랑 형남4군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러면 전선이 정말 괴상해져요. 양양은 남북으로 다른 적에 둘러쌓여 툭 튀어나온 거점이 되어버리고, 강릉은 영안에서 장강 타고 내려오는 길과 양양에서 육로로 내려오는 길을 막아야하고 완은 평지에다가 수도가 코 앞이라 똥줄이 많이 탈 거예요. 진정한 삼국의 눈치게임이 시작될 것 같네요. 2) 미방이 항복한 상황에서 유봉과 맹달이 오면 사생결단으로 양번을 함락시키지 않는 이상 피해없이 상용으로 퇴각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3) 미방이 항복을 하지 않았다면 여몽은 형주를 쳐들어오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항복을 하지 않았는데도 여몽이 왔다면 관우가 돌아오기 전에 강릉을 함락시키냐 문제인데, 사실상 불가능하죠. 오나라는 얻는거 하나도 없고 위나라 포위만 풀어준 꼴...
20/08/18 14:42
개인적으로 유비도 관우를 30여년간 본 게 있는데 왕전/한신급은 기대도 안 했겠지만, 제갈량이 말한 '상장'급은 이야기가 다르지 않을까 생각했을 듯 합니다.
20/08/18 16:10
미방 얘기 없이는 그 모든 가정이 부질없죠. 상용 지원군 이야기도 강릉이 멀쩡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고.
공손찬의 역경루, 심배의 업, 장안성, 양양-번성의 예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강릉성 정도의 규모의 성이면 걍 버티려고 맘 먹으면 1년 이상 버티는 게 가능한 거성입니다. 이런 성을 내줘버린다는 건 전제 자체가 불가능했겠죠.
20/08/18 17:58
대체 관우가 미방에게 뭘 어떻게 했길래 미방급 인사가 강릉성을 그냥 홀라당 넘겨줬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그 시기에 간옹 손건은 다 죽은 상태였고 미방보다 짬으로 위에 있던 사람은 관우 장비 미축밖에 없죠. 형주 2인자였으니 권력서열에서도 충분히 상위급이고, 오나라에서 뭘로 꼬신다한들 촉에서 미방이 누리던 것 이상을 줄 수는 없어요. 근데 배신이라니....
20/08/19 06:46
전 글곰님의 제갈량전의 서술이 실제와 유사하지 않을까 합니다. 미축전에 보면 관우와 미방이 형주에 남았을때부터 사적인 일로 사이가 틀어졌다고 나오고 관우가 미방이나 사인을 경시하고 미방이 관우를 미워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걸로 보아 감정상 문제가 꽤 있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왜 있잖아요, 사회에서 부대끼다보면 정말 사람간에 성향이 맞지 않아 미워져서 '확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길수도 있는 법인데 관우와 미방이 아마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감정의 골이 깊어가다가 미방의 잘못인 남군성 화재로 인해서 관우가 이에 맞는 처벌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자 미방이 스스로 두려워지고 한편으로는 관우에게 엿이나 먹어보라고 손권과 내통했을 가능성이 높겠죠. 남아 있는 사료로 추정하면 대충 이 정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20/08/19 09:07
그런 맥락애서 전 관우가 미방에게 보인 태도가 자기 목을 조였다고 생각합니다.
유비 초기때부터 따라다닌 미방조차도 저렇게 잡아먹을듯 구는데, 나중에 굴러온 형주 호족들은 관우를 도대체 어떻게 봤을까요?
20/08/19 10:17
형주 호족들이 관우가 몰락할때 저항한 흔적은 많습니다, 당장 미방이 혼자서만 문을 열어 재낄때 강릉성에서 오로지 미방만 기습적으로 항복했기에 여몽에 저항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요, 육손은 의도군-상용에서 관우 잔당 세력과 한마탕 전쟁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관우의 구역이 완전히 오나라에 넘어간 후에도 번주나, 습진 같은 형주 호족이나 무릉만이들은 오나라에 저항했고요. 사실 이렇게 때문에 관우가 형주호족들을 막 대했다...라고 보긴 어렵지 않나 합니다. 의외로 사서 서술은 미방과 관우의 갈등에 초점을 두지 형주 호족들로 시선을 옮기면 꽤 오나라 군에 저항하더라구요.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는 뜻입니다.
아 그리고 관우와 미방의 불화는 사적인 것입니다만, 처벌은 보급 불량과 남군성 화재 등 공적인 영역에서 관우가 처리한 것입니다. 이것만 보자면 사적인 감정 영역에서 관우가 미방에게 불이익을 줬다고 보긴 어렵죠. 게다가 번성 전투 당시 보급 불량은 미방의 고의적인 태만이 있었습니다. 사적감정으로 적과 내통하고 보급에 소홀했으며 남군성 화재에 책임이 있는 미방을 사적 감정이 없다 한들 공적인 영역에서 처벌하는게 사리에 틀리다고는 보이진 않는군요.
20/08/19 10:27
아.. 제가 본 곳에선 형주 호족들이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대부분 그냥 술에 물탄듯 넘어간 줄 알았는데 아니였군요.
감사합니다
20/08/19 11:26
여몽이 남군성 내부 정리하고 민심을 어루만질때 육손이 하던 일이 각지에서 저항하던 관우 잔당을 처리하던 일이었으니까요. 특히 의도군, 상용쪽에서 육손이 관우 잔당 세력이나 친 유비파 호족들을 격파하고 다녔습니다.
20/08/19 12:14
참 둘이 2-30년은 된 사이이고 손건 간옹 죽으면서 그 시대 사람들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좀 친하게 지내지.... -_-
관우가 정말 짤없이 군령대로 다스리겠다고 엄포놨으면 미방이 항복할만도 하네요. 북벌 당시 이엄도 보급 못한 거 걸릴까봐 거짓보고까지 했을 정도니. 당시에 보급 제대로 못하면 얼마나 처벌받는지는 모르겠고 아무리 그래도 자기 형 얼굴이 있는데 사형까진 아니었겠지만 장 100대(....) 이랬으면 배신해야죠 뭐. ;;;;
20/08/19 13:21
중국 최초의 농민봉기인 진승 오광의 난도 홍수때문에 늦게 도착해서 죽을 위기라 그냥 어차피 죽을꺼 하고 들고 일어난거니...
참 크크크
20/08/19 14:24
북벌 당시 이엄은 황제명을 사칭해서 거짓말을 한 게 좀 컸고요. 뭐 관우도 미축이 물주해준 공을 생각하면 미방을 강하게 처벌했을지는 의문이라고 봅니다. 다만 사이가 나쁘고 아니 몇년전만해도 동급이던 놈이 이젠 나를 치려 하네, 우리 집안 없었으면 형주, 익주는 고사하고 거지꼴이었을 것들이라는 게 크게 작용했을 수 있지요. 보통 장 100대라고 해도 관우가 병사들에게 엄하지 않았다는 기록을 생각한면 미방급 되는 인사에게 그렇게 엄하게 군법을 적용했을까 싶고...어쨌든 관우가 미방한테 문책한건 모두 공적 사한에서 미방이 실수한게 맞으니까요. 관우가 미방이 실수 안했는데 갈구진 않았죠.
20/08/18 18:11
이전의 삼국지 글에도 댓글로 달았던 이야기인데요, 몇년간의 형주 대치국면에 의해 관우는 양번공략 중에서도 손권이 뒷치기를 하러 올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강릉성에 미방을 주둔시킨 것이었고 봉화대도 세웠다고 하죠.
관우 입장에서 더 중요한건 양번함략을 위한 상용군의 지원이 아니라, 퇴로 확보를 위한 강릉 수성이었을 겁니다. 양번을 함략하더라도 강릉성이 떨어져버리면 역으로 양번에 고립되버리는 형상이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상용군의 이동에 의해 상용 자체의 방비가 취약해지는 단점도 존재합니다) 그래서 결론은, 상용에 누가 갔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강릉성에서 보급을 맡고있던게 누구냐가 더 중요했다고 봅니다. 관우의 북진 시점에 익주에서 파견을 나올 수 있는 인력은 아예 없었다고 봐야하고, 데리고 있던 장수 중에서 가장 믿을만한 사람에게 보급을 맡겨야 하는데, 이건 어떻게 봐도 미방 밖에는 없단 말이죠.(줄잡아 20~30년을 함께한 동료니까요) 해당 위치에 최적화된 인물은 마량인데, 마량은 제갈량의 입촉때 익주로 들어가서 없었고요.
20/08/19 02:09
마량이 미방보다 능력이 있어서 익주에 필요했겠죠. 그리고 당시 맹달이 형주에 있고 마량, 이적은 익주로 들어온 것을 보면 출신 지역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배치를 했을테고, 정말 미방 말고는 남는 사람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량은 관우한테 삼삼을 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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